초등 3년∼고등학생까지 복음 전파에 전념
9기생 겨울방학 때 인도차이나 갈 예정
선교는 어른들만 할 수 있다는 편견을 버리자. 교회학교 샘스쿨(SAM School)은 초등학교에서 고등학교 학생들에게 선교적 마인드를 심어준다. 해외 단기 선교를 통해 선교사적 삶을 실천하도록 지도한다. 지난 여름 8기 훈련생들은 복음화율 1%로 안되는 터키에서 복음을 전했다. 이들은 터키의 수도인 앙카라, 갑바도기아, 에베소, 버가모 등을 돌며 연주, 워십, 태권도, 드라마를 통해 오직 주님만이 구세주이심을 선포했다. 초등학교 3학년부터 고등학교 2학년생으로 구성된 샘스쿨 28명은 성경 2000권을 현지인들에게 나눠주는 행사도 가졌다.
터키는 연간 만 명 이상의 성지순례객들이 오는 관광지다. UN가입을 위해 교회를 세울 수 있을 정도로 개방되었다. 그러나 이슬람에서 기독교로 개종을 하면 신분증에 프로테스탄트(개신교)라고 찍히게 된다. 취직에도 영향이 있고, 가족들로부터 외면을 당한다.
샘스쿨이 현지에서 만난 무스타파라는 교역자 이야기는 복음을 받아들이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잘 말해주고 있다. 코느투켄트에서 사역 중인 그는 올해 25세로 개종한 지 6년이 지났다. 경찰관 아버지와 주부인 어머니 사이에서 4형제 중 막내로 태어난 그는 형과 비슷힌 시기에 예수님을 영접했다. 태어나자마자 회교도였던 그는 회교도 법에 따라 하루 5번 기도했다. 그러나 16살 때 회교법에 대해 교민을 하기 시작했다.
성인이 된 후 한 친구가 앙카라 대학에서 열리는 책을 나눠주는 행사에 함께 가자고 했다. 그리고 앙카라에 있는 교회에 가자는 제안을 받았다.
그는 거기서 복음을 받아들이고 기독교인이 되었으며 작년에 성경학교를 졸업했다. 버거킹 지점장으로 일하다 주일을 지킬 수 없어 직장도 그만 두었다.
그러나 집에서는 그런 그를 이해하지 않았다. 같은시기에 주님을 만난 형은 믿음을 지키겠다며 아버지를 피해 도망갔다. 그는 아버지가 내쫓아도 예수님을 따르겠다고 다짐하고선 짐을 싸놓고 집을 나서려 했다. 그러나 그 사건을 계기로 부모님의 마음이 바뀌기 시작했다.
개종했다는 이유로 그는 친구들을 다 잃었다. 친한 친구들에게 여러번 복음을 전했지만 그에게 돌아 온 것은 멸시와 천대였다. 새로운 직장을 얻기도 힘들었다. 하지만 주님을 알게 된 것이 생의 가장 큰 기쁨이라고 고백했다.
그에 따르면 많은 회교도인들에게 예수님을 믿느냐고 물으면 모두들 “그렇다”라고 말한단다. 그러나 예수님을 구세주가 아니라 예언자로 믿고 있다고 한다.
“무슬림은 알라에 대한 두려움을 갖고 있다. 그들에게 그건 당연한 것이다. 때문에 회교도들에게 성경을 전하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들은 성경이 변질되었다고 믿는다. 마지막 날에 예수님이 회교도들을 부르러 온다고 믿고 있다”
무슬림 세계에서 하나님은 벌을 주는 무서운 분으로 인식되고 있다는 무스타파의 말에 샘스쿨 학생들은 무슬림이 사랑의 하나님을 알게 해달라며 눈물로 기도했다.
앙카라에서 사역을 마친 어린 선교사들은 갑바도기아로 자리를 옮겨 또 다시 복음을 전했다. 갑바도기아는 한국말을 할 줄 아는 현지인이 많아 각별한 주의가 필요했다. 특히 사진을 함부로 찍거나 산만하지 않게 전도활동을 전개해야 했다.
“씨제 헤디에 뵈르멕 이즈티요름(당신에게 선물을 주고 싶어요)” 아이들은 눈에 보이지 않게 감춰놨던 성경을 조심스럽게 꺼내 현지인들에게 나눠주었다. 터키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부흥되길 바라면서 말이다.
이번 선교여행에서 샘스쿨 학생들은 기독교인들이 로마의 핍박을 피해 숨어살았던 곳도 탐방했다. 사람들 눈에쉽게 띄지 않았던 이 곳은 ‘요정의 굴뚝’이라 불리웠다. 괴레메(안보이다라는 뜻)도 찾았다. 지하 7층으로 구성된 데링쿠유(지하교회)도 갔다. 2∼3세기에 파여진 데링쿠유는 300여 개의 동굴에 2∼3만명을 힌꺼번에 살았다. 지하 7층에는 십자가 모양의 교회가 자라잡고 있었다. 처음 이 곳에 발견됐을 당시 예배당 안쪽에는 많은 해골들이 가지런히 놓여있었다. 모두 로마군들에게 살해된 사람들이었다.
“믿음의 선진들은 이 곳에서 태어나 죽을 때까지 여기서 살았습니다. 이들 중에는 햇볕을 한 번도 보지 못한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고 합니다” 이 곳까지 안내한 선교사의 설명에 아이들은 숙연해졌다.
바울에 의해 복음이 전해졌던 터키. 서머나교회가 있던 이즈미르, 안디옥으로 불렸던 안탈랴 등이 있던 곳이지만 1930년 공식적인 기독교인은 0명이었다. 복음이 쇠퇴하고 이슬람의 세력이 강화됐다는 증거였다.
1962년 영국 선교사 2명이 들어오면서 터키는 선교의 불이 다시 붙기 시작했다. 2000년에는 기독교인이 2000명으로 집계됐다. 많은 선교팀의 헌신도 있었지만 1999년 4월 이즈미르에 일어난 대지진으로 사람들은 복음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 때 엄청나게 많은 사람이 죽으면서 사람들의 마음은 풀어졌다. 한 형제는 지진속에서 예수님을 만나는 기적을 체험했다. 이 일로 기독교인이 되었고 전도에 나서 많은 사람들을 주께 인도했다.
이번 선교여행에서 학생들은 주님의 역사를 얼마나 바랐던지 기도 중 콘야 땅에 십자가가 세워지는 환상을 보기도 했다. 가진 것을 나눴을 때 하나님이 역사하신다는 것도 알았다. 선교 사명은 나이를 불문하고 주님을 믿는 모든 자녀에게 주신 사명이란 사실을 선교여행을 통해 깨달았다.
샘스쿨은 현재 9기 훈련생 교육을 토요일마다 실시하고 있다. 선교가 무엇인지, 어떻게 사는 것이 선교적 삶인지를 배워가고 있는 이들은 오는 겨울 방학 때 인도차이나반도에 가서 오중복음과 삼중축복을 전할 계획이다.
잃었던 아들이 돌아오기까지 쉬지 않고 기다리던 아버지의 심정으로 주님을 알지 못하는 열방이 돌아오길 기다리시는 하나님을 위해 샘스쿨 학생들은 아브라함, 바울처럼 사용되길 간절히 기도하고 있다.
출처
복구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