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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사시대(prehistoric age) |
역사시대(historic age) | ||||||
구석기시대 |
신석기시대 |
고대 |
중세 |
근세 |
근대 |
현대 | |
청동기시대 |
철기시대 |
고려시대 |
조선전기 |
문호개방 |
광복이후 | ||
수렵, 어로, 채집, 뗀석기, 이동생활 |
농경목축, 간석기, 정착생활 |
계급발생, 국가성립(고조선) |
부족국가, 정복전쟁, 3국(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 통일신라, 발해 |
개방적 신분구조 |
상공업발달, 화폐경제발달, 자본주의 맹아 |
문호개방, 근대화 |
광복과 분단, 민주화, 경제성장 |
1. 구석기시대
가. 시기 : 약 70만년전 - 단양 금굴 동굴의 유적
구석기 시대는 세시기로 구분된다.
세번째 빙하기까지를 전기 구석기 시대,
세번째와 네번째 사이의 간빙기 말부터 네번째 빙하기 초까지를 중기 구석기 시대(7만에서 4만년전),
네번째 빙하기의 나머지 부분을 후기 구석기 시대(4만에서 1만년전)라 한다. 전기 구석기시대의 이른 시기에는 손쓴 사람이 살았으며, 이후로는 곧선사람이 활동하였다. 그리고 중기 구석기 시대에는 슬기사람, 후기 구석기 시대에는 슬기 슬기 사람이 살았다.
나. 대표적 유적지
⑴ 분포 : 한반도 전지역에 고르게 분포 (내륙, 해안 등)
⑵ 대표적 유적지
① 시기별 구분 함북
전기 구석기시대의 유적지- 흑룡강성 하얼빈의 고향둔(1931), 길림성 안도의 석문산촌동굴, 함북 웅진 굴포리(1962), 평양 상원의 검은모루 동굴, 황해도 평산의 해상동굴, 충북 단양의 상시리 금굴동굴, 충북 청원 두루봉 동굴, 충남 공주 석장리(1964), 강원도 명주 심곡리, 경기도 연천의 전곡리
중기 구석기시대의 유적지- 평양 역포 대현동,
후기 구석기시대의 유적지- 평남 덕천 승리산 동굴, 평양 만달리 동굴, 청원의 두루봉 동굴
② 특징
두만강 유역의 동관진 유적 : 최초의 발굴, 맘모스, 코뿔소, 석기, 골각기 (1933년)
공주군 석장리 : 남한 최초(1964)의 발굴, 전기에서 후기의 유물이 동시 출토
상원 검은모루동굴 : 40-60만년전의 포유동물, 뼈, 화석 주먹도끼 등이 발견
부먹도끼(연천 전곡리)
연천 전곡리 : 양면 주먹(양날)도끼 발견(아슐리안 계통)
주먹도끼(광주시 실촌읍)
제천 점말동굴 : 사람의 얼굴을 새긴 코뿔소의 뼈,
슴베찌르개(광주시 실촌읍)
③ 사람 뼈나 화석의 출토 : 승리산 동굴, 제천 점말동굴, 청원 두루봉 동굴, 평양 만달리 동굴 유적, 단양 상시 동굴,
- 단양 상시 - 머리뼈, 덕천 승리산 동굴 - 어금니(아래턱)뼈 발견
시기 |
유적 유물 |
내용 |
전기 |
경기도 연천 전곡리(全谷里, 1979) |
유럽 Assurian계통의 주먹도끼와 동아시아식 찍개가 동시에 출토, 후기까지 연결되며 약 30만년전 제2간빙기 것으로 추정 |
평양 상원 모루동굴(1966) |
동물화석과 주먹도끼, 긁개, 망치 등 석기 발견, 60만년전~50만년전으로 추정, 중국 뻬이징 원인과 동시대의 것으로 추정 | |
청원 두루봉 동굴(1975) |
3~4살 되는 어린이 두 사람의 모든 뼈와 화덕자리 발견(슬기슬기인) | |
충북 단양 도담리 금굴 |
한반도 구석기 시대의 시작 시기를 입증, 70만년전으로 추정 | |
기타 |
흑룡강성 하얼빈의 고향둔(1931), 길림성 안도의 석문산촌동굴, 함북 웅진 굴포리(1962), 황해도 평산의 해상동굴, 강원도 강릉시 심곡리 | |
충남 공주 석장리 유적(1964) |
13개 문화층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전기 구석기 유물부터 중기를 거쳐 후기까지 포괄적 유물이 출토되며 가장 밑의 제1문화층은 찍개층으로 60~50만년전의 것으로 추정되며 주거지, 화덕자리, 외날찍개 발견 | |
중기 |
평양 만달리 동굴 |
24~30살 가량 되는 남자의 거의 완벽한 머리뼈 1점과 아래턱뼈 2점 발견(萬達人) |
평양 역포구 대현동 유적 |
역포인(7~8세 어린이로 추정) | |
평안남도 덕천 승리산 유적 |
두 개의 이빨이 박혀 있는 35살 가량의 남자 아래턱뼈 1점 발견(德川人) | |
충북 제천시 송학면 포전리 점말동굴(1973) |
1층은 56,000년전으로 중기 구석기는 , 2층은 13000년전으로 후기 구석기, 3층은 7000년전으로 신석기시대의 유물 발견되며 10만 년 전 구석기 시대의 유물로 추정되는 식물 화석, 원숭이 뼈, 사람의 얼굴을 새긴 코뿔소뼈 따위가 출토되었다. | |
충남 공주 석장리 유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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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
함북 웅기 굴포리(1963) |
찌르개 박편 석기 발견, 석기 제작지 발견, 맘모스 화석 발견, 약 3만년전으로 추정 |
함북 동관진 유적(1933) |
mammoth, 코뿔소(犀牛) 등 포유류 의 화석과 몈개의 석기와 골각기가 발견된 한반도에서 최초로 발견된 구석기 유적지로서 일제시대 식민 사학자들은 부정함 | |
황해 평산 해상동굴 |
곰의 뼈 화석 출토 | |
제주 빌레못 동굴(1973) |
동물 화석, 뗀석기 출토, 혈거 유적지로 8~7만년전으로 추정 | |
충북 단양 상시리 유적 |
바위그늘, 인골(상시인), 남한 최초의 인류화석이 발견된 | |
충북 단양 수양개 유적(1983~85년에 충북대학교 박물관) |
중기구석기시대와 후기구석기시대의 문화층으로 나뉘며 중기구석기문화층에서는 찍개, 긁개, 찌르개, 주먹대패 등의 석기가 나왔다. 후기구석기문화층에서는 잘 떼고 다듬어 만든 여러 종류의 석기가 나왔고, 석기제작터에서는 크고 작은 수많은 격지를 비롯하여 몸돌·망치돌·모룻돌이 발굴되었다. 주먹도끼·긁개·배모양밀개·부채꼴밀개·슴베찌르개·새기개 등이 후기구석기층에서 나왔다. 격지석기 가운데는 돌날을 이용하여 만든 긁개, 밀개, 돌날몸돌도 나왔고 슴베찌르개는 후기구석기문화층을 대표하는 석기 가운데 하나이다. | |
전남 순천시 외서면 월암리의 월평 유적(1998, 2001) |
졸돌날몸돌, 밑개, 새기개, 슴베찌르개, 창끝찌르개 등 발달된 사냥 기술을 가진 후기구석기인들의 보금자리이며, 마한으로 여겨지는 철기시대의 마을이 있던 곳이다. 월평유적은 1995년 7월 조선대학교의 지표조사를 통해 처음 발견되었고, 전라남도와 순천시의 조사비 지원으로 1998년 1차 학술발굴이 이루어졌다. 조사 이후 국내외 여러 학회에서 소개되어 그 중요성이 널리 알려졌으며 2000년에 전남도 기념물 제181호로 지정되었다. 2001년의 2차 발굴에서 더 새롭고 흥미로운 자료들이 드러나 국내의 석장리와 수양개 유적, 우크라이나의 메지리치유적, 연해주의 우스티노브카유적, 일본의 시라다키 하또리다이유적과의 비교 연구가 기대되는 곳이다. | |
함북 웅기 굴포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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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공주 석장리 유적(1964) |
밀개, 새기개 발견 |
Ⅱ. 구석기인의 생활과 문화
주거지 : 강이나 바닷가
경제활동 : 수렵 채집 어로 - 이동 생활
도구 : 뗀석기(打製石器)
사냥도구 : 주먹도끼(兩面核石斧, hand ax), 외날찍개(打截器, chopper)와 양날찍개(chopping tool), 찌르개(尖頭器, point), 팔매돌(擲石)
조리도구 : 긁개(搔器, scrapper), 밀개(削器, end-scrapper)
공구 : 새기개(刻刀, graver)
이음도구(모듬연장, 複合道具)등/ 골각기
사회모습 : 무리(群)사회, 배타적 성격, 불(火)의 사용, 목적의식적 노동전개,
언어의 사용 : 아랫 턱뼈(下顎骨)의 발달, (가족단위로 무리를 지어 생활)
개모양의 석상, 고래 멧돼지, 새 등을 새긴 조각과 그림의 발견은 사냥 대상이 되는 동물의 번성을 비는 주술적 의미를 지닌 것으로 보인다(예술과 신앙생활).
중석기 시대 : B.C 8,000년전 (약 1만년전)
거창 임불리, 통영 상노대도 -잔석기(細石器)
구분 |
시기 |
유물 |
유적 |
경제생활 |
주거생활 |
사회생활 |
문화예술 |
종교신앙 |
구석기시대 |
약 70만 년 전 |
뗀석기(打製石器)-몸돌(石核)석기, 격지(剝片)석기, 골각기 |
흙무덤 |
사냥(狩獵)・채집・어로 ․채집 |
동굴, 바위그늘, 평지 생활 ․강가의 막집 ․불의 사용 |
무리생활(horde), 이동생활 |
동굴벽그림(洞窟壁畵) (주술적 의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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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석기시대 |
기원전 6000년 |
간석기(磨製石器, 농기구), 토기/전기: 원시민무늬토기(原始無文土器)와 덧무늬토기(隆起文土器)/중기: 빗살무늬토기(櫛文土器)/후기: 平底櫛文土器, 물결무늬토기(波狀文土器), 번개무늬토기(雷文土器), 골각기 |
흙무덤,조개더미(貝塚) |
사냥(狩獵)・채집・어로 원시적 농경(조․피), ․원시적 수공업(가락바퀴. 뼈바늘) |
강가. 해안가 거주 ․원형, 방형 움집(竪穴住居), 화덕자리(爐址) |
정착생활, ․부족사회(족외혼, exogamy), 평등사회 |
가면, 동물 조각, ․장신구 |
animism, shamanism, totemism, ancestor worship. 영혼불멸사상 |
청동기시대 |
기원전 10세기 |
간석기 (농기구) ․청동기(무기, 제사 도구): 비파형동검, 거친 무늬거울(多鈕粗文鏡), 토기 민무늬토기(無文土器), 미송리식 토기 |
巨石文化 ; 고인돌(支石墓, dolmen), 선돌(立石, menhir), 돌널무덤石棺墓) |
농경의 비중 증가(벼농 사 시작), ․목축의 발달(가축 사육 |
산간 구릉 지대 거주 ․움집의 규모 확대- -지상 가옥화, ․배산 임수의 취락 |
성읍국가(군장국가)의 성립, 사유재산발생, 계급분화, ․남성중심사회 |
종교 의식 관련 |
선민사상 |
철기시대 |
기원전 4세기 |
철기(농기구. 무기) ․청동기 (의기화): 세형동검, 잔무늬 거울(多鈕細文鏡), ․토기(회색토기, 다양화), 화폐(명도전),거푸집(鎔范), 붓 |
독무덤(甕棺墓),널무덤(土壙木槨墓) |
철제 농기구 사용 (생산력 증대),교역(명도전, 연나라 화폐) |
주거 지역 확대 |
연맹왕국성립, 직업의 분화, 제천행사 |
바위그림(岩刻畵), 청동기 의기화 |
부족신 숭배 |
덧띠새김무늬 토기(突帶文 또는 刻目突帶文土器) : 신석기 시대 말기부터 나타나는 새로운 양식의 토기로서 청동기 시대 가장 이른 시기(早期)를 대표한다.
제2절 신석기인의 등장
시대 |
도구 |
내용 | |||
구석기시대 |
전기 |
뗀석기( 打製石器) |
몸돌석기(石核石器) |
주먹도끼(握斧), 찍개 |
사냥도구: 주먹도끼, 찍개, 찌르개 |
중기 |
격지석기(剝片石器) |
긁개, 밀개, 톱니날석기 |
요리도구: 긁개, 밀개, 톱니날석기 | ||
후기 |
돌날, 짜르개 |
농구 : 새기개 | |||
중석기시대 |
잔석기(細石器) |
톱, 활, 창, 낫, 작살 등 슴베잔석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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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석기시대 |
점렬무늬토기(點列文土器) |
삼각점렬토기 |
촌리 바위그늘, 월령리 한둘굴, 사계리 신석기 후기 | ||
원형점렬토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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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점렬토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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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 |
이른민무니토기(原始無文土器) |
알이 약간 굵은 돌이 섞인 진흙을 손으로(手捏法) 빚어서 만든 비교적 소형의 투박한 토기로 무니가 없음 | |||
덧무니토기(隆起文土器) |
표면에 띠 모양의 흙을 덧붙여서 무늬를 만든 토기 | ||||
중기 |
빗살무늬토기(櫛文土器) |
골각기 |
돌이 섞이지 않은 진흙을 빚어서 테를 말아 올리거나(輪積法) 긴 띠를 만들어 감아올려서(捲上法) 만든 토기 | ||
후기 |
겹아가리토기(二重口緣土器) |
아가리바깥면 중앙에 턱을 형성하여 만든 특징적인 모양의 항아리 |
북촌리, 부산동상동, 금곡동, 암남동, 기해 수가리, 범밤리, 양산 신암ㄹ, 거제 신달도 | ||
평저빗살무늬토기(平底櫛文土器) |
빗살무늬의 바닥이 납작하게 된 토기 | ||||
물결무늬토기(波狀文土器), |
문양에 물결무늬가 있는 토기 | ||||
번개무늬토기(雷文土器) |
회(回)자 모양의 무늬가 있는 토기 | ||||
청동기시대 |
덧띠새김무늬 토기(突帶文 또는 刻目突帶文土器) |
신석기 시대 말 BC 2000년경부터 BC 1500년경에 나타나는 새로운 양식의 토기로서 청동기 시대 가장 이른 시기(早期) | |||
민무늬 토기(無文土器) |
밑바닥이 좁고 아가리를 뒤집어 겹으로 만든(二重口緣) 적갈색을 띤 무니 없는 토기 | ||||
미송리식 토기 |
밑이 납작한 항아리 양쪽 옆으로 손잡이가 하나씩 달리고 목이 넓게 올라가서 다시 안으로 오므라들고, 표면에 집선 무늬가 있는 토기 | ||||
붉은 간토기(홍도, 紅陶, 적색마연토기(赤色磨硏土器),단도마연토기(丹塗磨硏土器)) |
토기 겉에 붉은색 물감을 발라 간(마연한) 토기. | ||||
철기시대 |
민무늬 토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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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띠토기(점토대토기(粘土帶土器) |
아가리 바깥부분에 단면이 원형 내지 타원형 또는 삼각형의 덧띠를 말아 붙여서 아가리를 두껍게 만든 청동기시대의 민무늬토기.점토대토기 | ||||
검은간토기(흑도(黑陶), 검정토기, 흑색토기, 흑색마연토기(黑色磨硏土器)) |
아주 고운 흙을 사용하여 만들고, 표면에 흑연 등의 광물질을 바른 후 문질러 광택을 | ||||
중국식 회색토기 |
고분과 고분벽화 (구석기 기록없음)
구분 |
시대 및 장소 |
고분양식 |
대표 고분 |
특징과 내용 | |
신석기 |
독무덤(甕棺墓) |
부산 동삼동, 진주 상촌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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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무덤(土壙墓) |
통영 연대도(煙臺島)와 욕지도(欲知島) |
앤대도에는 일종의 공동묘지 성립. 울산 后浦의 바닷가 골장제묘 | |||
청동기 |
고인돌(支石墓) |
탁자식고인돌(卓子式支石墓, 北方式支石墓) |
황해도 안악, 대동강, 재령강, 황주천 일대, 평안남도 용강군 석천산(石泉山) 일대, 강원도 고성과 춘천, 전라북도 고창 |
형태상으로는 지상에 4개의 판석형(板石型) 고임돌(支石)을 세워서 장방형(長方形)의 무덤칸을 만들고, 그 위에 거대한 덮개돌(上石)을 올려 놓은 탁자식(北方式) 고인돌이다. | |
바둑판식고인돌(碁盤式支石墓) |
전북 고창, 전남 화순, 인천시 강화, 전남 여수 적량동(비파형동검 출토) |
판돌(板石), 깬돌(割石), 냇돌(川石) 등을 사용하여 지하에 무덤칸을 만들고 덮개돌(上石)과 무덤칸 사이에 3, 4매 또는 그 이상의 고임돌(支石)이 있는 형식으로 지하 매장시설의 구조는 돌널형(石棺形), 혼축형(混築形) 돌덧널형(石槨形), 돌돌림형(圍石形) 그리고 토광형(土壙形)등 다양하다. | |||
개석식 고인돌(蓋石式支石墓) |
고임돌(支石)이 없이 지하에 있는 매장시설 위를 뚜껑처럼 덮개돌(上石)이 직접 덮고 있는 형태이다. 이 형태는 무지석식, 접지형, 심촌리형, 구덩식, 대석개묘 등이라고도 하며, 변형 고인돌로 간주하여 기반식(南方式)고인돌 안에 포함시키기도 한다. | ||||
묘역식고인돌(墓域式支石墓)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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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널무무덤(石棺墓) |
遼河의 동쪽, 松花江 유역, 부여 송국리 유적(비파형동검 부장) |
직사각형 모양의 사방의 벽을 널돌(판석板石)로 조립해 만들고 그 안에 시체를 두는 무덤. 한자로는 석관묘(石棺墓) | |||
움무덤(土壙墓) |
內蒙古, 遼西지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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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무덤(甕棺墓) |
한반도 서남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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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무지무덤(積石墓) |
웅진 시도, 통녕 연대도와 욕지도, 춘천시 진천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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둔덕무덤 |
樓上무덤 崗上무덤 |
1963년 북한과 중국 두 나라 고고학자들의 공동발굴에 의해 이루어졌다. 누상(樓上)이라고 불리는 작은 언덕 위에 있는 이 무덤은 언덕의 정상부를 평평하게 고른 뒤 주위에 커다란 돌로 담을 쌓아 한 변에 20m 가량의 방형 구획을 정한 후 그 내부에 여러 개의 무덤구덩이를 만든 형태이다. 그 위에는 검은 흙과 자갈을 섞어서 전체를 덮었다. 심양 정가자와 6512호 | |||
철기시대 |
초기 |
돌무지널무덤(積石木棺墓) |
요동 운가촌무덤, 부여 합송리, 논산 운북리, 장수 남양리, 함평 초포리무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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널무덤(土壙木槨墓) |
평양 정백동과 태성리, 영천 어은동, 경주 일십리유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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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
독무덤(甕棺墓)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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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널무덤(木槨墓)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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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구토광묘(周溝土壙墓) |
안산 신길택지구(2007). 서산시 해미면 기지리(2005) |
신길택지지구에서 2007년 6월 주구토광묘(周溝土壙墓)와 집터 23기 등 다량의 신석기 유물과 유적이 발견되었다. 서산서 4-5세기 백제 집단 분구묘 46기, 동경 1점ㆍ흑색마연토기 7점 무덤 주위로 주구(周溝)라고 일컫는 도랑과 비슷한 시설물을 돌린 분구묘(墳丘墓) 46기가 떼를 이룬 채 충남 서산에서 확인됐다. 공주대박물관(관장 이남석)은 2005년 7월1일 이후 서산시 해미면 기지리 공군시험장 예정지 일대 7천700여 평에 대한 발굴조사를 벌인 결과 청동기시대 주거지 9기와 같은 시대 수혈유구 6기, 초기삼국시대 주거지 2기 외에 4-5세기 백제시대 분구묘 46기를 확인했다고 7일 발표했다. 이 중 분구묘는 일정한 구역에서 매우 밀집도가 높은 상태로 조성됐음이 밝혀졌다. 이들은 시신을 안치한 매장 주체부를 중심으로 한 변 10-20m 가량 되는 사각형 주구를 마련했다. 주구는 네 모서리 각을 죽인 이른바 말각방형(抹角方形)이었다. 주구 중앙부에는 역시 말각방형으로 땅을 파고들어가 토광(土壙.흙구덩이)을 마련한 다음, 거기에 시신을 안치한 목관(木棺.널)을 놓았음이 조사결과 밝혀졌다. 21호 분구묘의 경우, 매장 주체부 중앙에 중국에서 수입한 한식경(漢式鏡)의 일종인 사유훼룡문경이라는 동경(銅鏡) 1점이 발견됐으며, 묻힌 사람의 왼쪽에는 모종의 청동기물을 구성한 부속품이었다고 생각되는 환(環.고리)과 방울이 출토됐다. 아울러 이 무덤에서는 수정과 벽옥제 관옥(管玉. 푸른빛이 도는 대롱 모양 옥), 금박옥 등이 확인됐다. | |||
분구묘(분구묘) |
영산강 중하류역의 나주(羅州), 함평(咸平), 영암(靈岩) 일대 / 움무덤을 매장주체부로 하는 초기 분구묘로서 함평 예덕리 만가촌(萬家村)무덤, 영암 만수리(萬樹里) 4호분, 나주 용호(龍虎)무덤, 독무덤을 매장주체부로 하는 대형 분구묘인 나주 대안리(大安里)무덤, 무안 사창리(社倉里)무덤, 영암 시종 옥야리(沃野里)무덤 |
일반적인 무덤은 지하나 반지하, 혹은 지상에 매장시설을 만들고 그 매장시설 위로 흙이나 돌을 쌓아 봉분(封墳)을 만들지만, 분구묘는 미리 흙이나 돌로써 봉분과 같은 분구를 조성하고 그 위에 매장시설을 만드는 독특한 무덤양식이다. 분구묘는 주검을 안치하는 매장주체부의 형태에 관계없이 분묘의 외형에 따라 분류한 것이며, 성토한 봉분 속에는 독널무덤 혹은 널무덤 등 다양한 묘제가 존재한다. 외형 형태에 따라 원방형분(圓方形墳)과 전방후원분(前方後圓墳)으로 나눌 수 있다. 원방형분은 최근에 조사 예가 증가하고 있으며, 전방후원분과 계기적으로 연관성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대표적인 유적으로는 서울 가락동 2호분, 천안 두정동 분구묘, 익산 율촌리 분구묘 등을 들 수 있으며, 전북 고창 지방에 집중분포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가락동 2호분과 천안 두정동은 분구 외곽에 도랑[주구(週溝)]이 없는 반면 익산과 고창지역에서 확인되고 있는 분구묘에서는 주구가 확인되고 있으며, 이 주구 내부에서 대형 독널무덤이 출토되고 있어 영산강유역에 집중 분포하고 있는 전방후원분과 상호 연관성이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축조 시기는 대략 3세기에서 4세기경으로 판단하고 있다. 전방후원분은 일본의 고분시대(4~6C경)에 성행했던 무덤양식으로, 평면도상으로 보면 원형(圓形)과 방형(方形)의 분구가 붙어있는 모습을 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전통 악기인 장고의 형태와 유사하다고 하여 장고분(長鼓墳)으로 불리우고 있다. 영어로는 원형과 방형의 구멍이 이어진 열쇠구멍 모양과 유사한 점에 착안하여 ‘Keyhole-shaped tomb’이라고 번역되기도 한다. 이전에 이 묘제는 일본에 집중 분포하고 있어서 일본의 고유묘제로 판단했으나, 영산강유역을 중심으로 많은 수의 전방후원분이 확인되어 한반도에서 일본으로 전파되었음이 확인되었다. 대표적인 전방후원분으로는 전라남도 광주시 월계동(月桂洞) 1호분과 2호분 그리고 명화동(明花洞) 고분, 함평군(咸平郡)의 신덕(新德)고분 등이 발굴 조사되었고 해남(海南)과 함평의 장고산(長鼓山)고분 등을 들 수 있다. 특히 나주 신촌리 9호분 을관(乙棺)에서는 금동관?환두대도를 비롯한 화려한 유물이 출토되었다. 이들 전남지방에서 발견된 전방후원형의 고분들은 대개 매장주체부가 굴식돌방(橫穴式石室)식과 독널무덤(甕棺墓)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분구묘의 기원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정확한 출자를 알 수 없으나, 중국 외몽고의 Noin-Ula고분이 알려져 있으며, 또한 고구려의 돌무지무덤 중에도 압록강 중류 지역의 자강도 초산군(楚山郡) 운평리(雲坪里) 고분군 내의 4지구 6호분이 원형 돌무지분구에 방대형의 단이 결합된 구조여서 전방후원형에 가깝다고 한다. | |||
삼국시대 |
고구려 |
초기 |
돌무지무덤(石塚) |
장군총(將軍塚)<吉林省 通溝> 태왕릉(太王陵) |
pyramid식으로 석재를 쌓아올린 형식의 7층계단식 무덤 |
후기 |
굴식돌방무덤(봉토돌방무덤, 土塚) |
쌍영총(雙楹塚) 무용총(舞踊塚), 강서대묘(江西大墓) |
석재를 널방(玄室)을 만든 위에 흙을 덮어서 만든 봉분 四神圖 : 靑龍, 白虎, 朱雀, 玄武 | ||
백제 |
한성시대 |
돌무지무덤 |
석촌동고분(石村洞古墳), 가락동 |
고구려의 영향 | |
굴식돌방무덤 |
宋山里古墳(송산리고분) |
거대한 규모 | |||
웅진시대 |
굴식돌방무덤 |
능산리고분(陵山里古墳) |
규모가 작고 세련됨 | ||
수혈식돌덧널무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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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돌무덤(塼築墳, 塼室墳) |
무령왕릉 |
중국 남조의 영향 | |||
사비시대 |
굴식돌방무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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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구묘(墳丘墓)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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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방후원형(前方後圓形) |
전방후원분은 일본의 고분시대(4~6C경)에 성행했던 무덤양식으로, 평면도상으로 보면 원형(圓形)과 방형(方形)의 분구가 붙어있는 모습을 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전통 악기인 장고의 형태와 유사하다고 하여 장고분(長鼓墳)으로 불리우고 있다. 영어로는 원형과 방형의 구멍이 이어진 열쇠구멍 모양과 유사한 점에 착안하여 ‘Keyhole-shaped tomb’이라고 번역되기도 한다. | ||||
가야 |
덧널무덤(木槨墓)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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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덩식돌덧널무덤(竪穴式石槨墓) |
구덩식 돌방무덤[竪穴式石室墓(수혈식석실묘) | ||||
굴식돌방무덤(橫穴式石室墓) |
고성 송학동 고분군 1호분 B지구의 횡혈식석실분은 국내 최초의 채색고분 |
원형(圓形)의 분구에 직사각형 또는 사각형 분구를 붙여놓은 평면형을 나타내는 무덤 가야고분의 분포와 출토지역은 고령지역(지산동고분군·중화동고분군·고아동고분군), 함안지역(말이산고분군), 김해지역(예안리고분군·양전동고분군·생곡리고분군), 부산지역(복천동과 연산동고분군·당감동고분군), 경상북도 구미지역(비산동과 내당동고분군) 등이다. | |||
신라 |
3세기 이후 |
경주식덧널무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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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세기 이후 |
돌무지덧널무덤(積石木槨墳) |
경주평야의 98호고분(皇南大塚) : 南墳과 北墳의 쌍무덤(瓢形墳), 鳳凰大古墳, 金冠塚, 金鈴塚, 天馬塚, 瑞鳳塚 |
도굴이 어려움 | ||
지방 |
구덩식돌덧널무덤(竪穴式石槨陵) |
경산, 대구, 창령, 안양, 부산, 의성, 안동 | |||
통일신라 |
굴식돌방무덤(橫穴式石室墓) |
경덕왕릉, 흥덕왕릉, 掛陵(괘릉), 金庾信墓 |
호석(護石, 둘레돌)에 12지신상 조각 | ||
앞트기식돌방무덤(橫口式石室墓)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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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해 |
굴식돌방무덤(橫穴式石室墓) |
貞惠公主誌墓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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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돌무덤(塼築墳) |
貞孝公主誌墓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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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
굴식돌방무덤(橫穴式石室墓) |
태조의 顯陵, 원종의 韶陵, 七陵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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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
굴식돌방무덤(橫穴式石室墓) |
강서대묘(우현리대묘) : 평안남도 대안시 삼묘리(옛 이름은 강서군 강서면 삼묘리)에 있는 고구려시대 벽화고분의 하나
Ⅰ. 신석기인의 등장
한반도 약 8000년부터
Ⅱ. 신석기인의 생활
이른 민무늬토기
덧무늬토기
눌러찍기 무늬토기
빗살무늬토기
평저빗살무늬토기
물결무늬토기
번개무늬토기
덧띠새김무늬토기(경기 가평 강원 정선)
덧무늬토기(隆起文土器)
세선융기문토기(細線隆起文土器) : 토기 표면에 순수하게 가는 덧띠를 따로 덧붙이는 것
태선융기문토기(太線隆起文土器) : 토기 표면에 순수하게 굵은 덧띠를 따로 덧붙이는 것
새김무늬토기(沈線文土器) : 토기벽에 덧띠를 붙인 뒤 그 위에 다시 아삭아삭 새기거나 덧무늬 없는 부분에 새김무늬(沈線文)를 베푼 것
찍은무늬토기(押印·押捺文土器) : 토기벽에 덧띠를 붙인 뒤 그 위에 다시 아삭아삭 새기거나 덧무늬 없는 부분에 찍은무늬(押印·押捺文)를 베푼 것
미송리식토기(이중구면부단지) : 1959년 평북 의주군 미송리 동굴 유적 중 무늬 없는 토기 문화층에서 출토된 한반도 서북 지방의 무늬 없는 토기의 한 형식으로 예맥족(穢貊族)의 유물로 추정된다. 미송리 외에도 현재까지 평북 용천군 신암리, 압록강 상류의 자강도 중강군 장성리 및 토성리, 청천강 유역의 세죽리 및 구룡리, 대동강·재령강 유역에서도 발견되고 있다. 그밖에도 한반도의 서·중·남부 지구, 중국 길림·장춘 지구, 요녕 동부 지구, 요서 지구, 요동반도 일대에 분포한다.
새김덧띠무늬토기(각목돌대문토기(刻目突帶文土器). 정선 아우라지 유적에서 확인된 46.6평짜리 초대형 청동기시대 조기(早期) 주거지 출토 2005.10.26 (서울=연합뉴스)
제3절 신석기시대의 사회와 문화
Ⅰ. 씨족공동체의 사회
Ⅱ. 무술신앙
Ⅲ. 원시예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