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빛 덩어리가 하늘에서 쉭 하고 날아와 가슴으로 확 내리꽂혔다. 이게 뭐지? 정신을 차릴 새도 없이 다시 한 번 날아온 황금빛 덩어리는 여지없이 나의 가슴에 정확하게 내리꽂혔다. 수술이 끝났다. 마취에서 깨어 눈을 뜨자 나를 둘러싼 가족들의 얼굴이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유방암 3기 선고를 받다 조금만 늦었어도 골수로 번져 손을 쓸 수 없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가슴에서 시작해서 이미 임파선을 타고 겨드랑이 림프절을 속속들이 장악한 암세포는 조직이 너무 넓게 번져 의사도 반신반의하며 항암주사부터 맞자고 했다. “지금 칼을 대면 죽습니다.” 의사의 말이 먹먹하게 들렸다. 세 번쯤 주사를 맞고 경과를 봐서 가슴을 열자고 한다. 멍하게 한 순간이 지나고 이제 갓 유치원에 입학한 막내의 얼굴이 떠올랐다. 청주에서 서울로 오가며 항암치료를 시작했다. 항암주사를 맞은 후, 온몸에 오한이 든 듯 심하게 떨리는 증상이 계속되고, 무엇 하나 입에 대지도 못한 채 비닐 봉지를 턱 밑에 받치고 살면서 쉴 새 없이 토해댔다. 기운이 너무 없어 영양 주사를 맞다보니 구토증세만 더욱 심해져서 그것도 그만 뒀다. 가슴의 통증은 마치 드릴로 생살을 뚫어내는 듯 깊고도 아찔해서 통증이 시작되면 움켜잡고 숨도 쉴 수가 없었다. ‘이대로 죽으면 어쩌지? 아니야, 죽지는 않을 거야.’ 두 가지 생각이 끊임없이 교차하고 살아온 세월들이 눈앞을 지나가고 아이들만 생각하면 눈물이 나는데, 어느 날 단학선원의 전단지가 날아들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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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성수련장에서 내 병은 완쾌되었다 단월드로 달려갔다. 첫날부터 누운 자세에서 양다리를 수직으로 하늘로 세우고 발끝을 몸으로 당긴 채 자세를 유지하는 직각연단이라는 것을 하게 되었다. 수직으로 뻗어 올린 다리를 유지하느라 허리 뒤쪽이 말도 못하게 당기고 쫙 편 채 유지해야 하는 오금은 자꾸만 오그라들어 1분도 버티기 힘든 자세를 이를 악물고 버티는데 진동이 오기 시작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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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어찌할 수 없을 정도로 온몸이 심하게 떨리는 체험을 15분 정도 지속하면서 고통 속에서도 암세포가 떨어져나가는구나 하는 확신이 들었다. 그 날부터 아침에 한 번 저녁에 한 번 , 하루 두 번씩 수련 했다. 그리고 혼자 남아 직각연단을 계속 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 나하고 타협하지 말자 ’ 라는 마음을 다지기 위해 연단 만한 것이 없었고, 연단과 진동으로 나의 세포가 바뀐다는 확신이 있었다. 이를 악물고 하니 연단 시간이 조금씩 늘어나고 마침내 한 시간은 거뜬히 버틸 수 있게 되었다. |
밤이면 “ 내 세포는 지금 싱싱하게 살아나고 있다” 라고 3백 번이고 4백 번이고 종이 몇 장을 빽빽이 채우도록 써 내려갔다. 단월드 수련 시작 보름만에 심성수련을 받게 되었다. 심기혈정을 마음에 새기며 백 퍼센트 전력투구하던 어느 순간 열려있는 온 마음으로 모든 사물과 현상을 받아들이고 있는 나를 보았다. ‘아! 암세포가 나를 살리려고 왔구나. 아픔을 통해서 살아온 시간을 돌아보라고, 나의 습을 벗어버리라고.’ 지금 와서 돌아보니 더욱 확실하게 말할 수 있다. 내 병은 그 때 나았다. 심성 체험으로 수술을 받지 않고도 나을 수 있다는 확신을 얻고 수술을 취소하고자 했으나, 펄쩍 뛰며 만류하는 의사를 완전히 거역할 수가 없었다. 수술대에 누워 천부경을 외었다. 가슴을 열어보고 의사가 놀라워했다는 후문은 나중에야 들었다. 오른쪽 가슴에서 겨드랑이까지 빽빽이 들어찼던 암세포 열 줄기가 다 사라지고, 1센티미터 크기의 작은 세포 하나만이 남아 있더라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잊을 수 없는 것은 수술 직후에 내 가슴에 내려와 박힌 황금빛 덩어리. 수련을 시작한지 한 달 보름만의 일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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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술 후에도 유난히 회복이 빨랐다. 퇴원하자마자 수련장에 들어갔는데 수술한 오른쪽 겨드랑이를 중심으로 얼마나 강력한 진동이 왔는지, 수술 후 아직도 화상 입은 듯 팔의 감각이 따끔따끔 아프다는 동료환자들이 무색하게, 일주일만에 감각이 돌아왔다. 서울과 청주를 매일같이 33일 동안 오가며 재발 방지를 위한 방사선 치료를 받았는데 단 한 번도 백혈구 수치가 떨어진 적이 없었다. 방사선 치료를 받으면 백혈구 수치가 정상인보다 현저하게 줄어 면역력이 약화되는 것은 상식과 같은 일이었다. 하루도 체력단련을 쉬지 않았고 한 시간씩 꼭 연단을 했으며, 명상 중에 뇌간으로 들어가 백혈구를 만들어 혈액으로 흘려보내는 뇌호흡 수련을 계속 이은 덕분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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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싱한 기쁨으로 살다 몸에서 암세포가 말끔히 사라졌다. 7개월도 되지 않아 재발 방지 프로그램까지 모두 마쳤다. 수련도 어느 때보다 열성적으로 하고 특별 수련이란 수련은 죄다 쫓아다니며 받았다. 그런데 마음이 허전해 오기 시작했다. 이제 내가 받은 축복을, 감사함을 나누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임산부 태교 뇌호흡반을 꾸리는 것을 시작으로 산후조리원과 노인정 방문지도 , 가정방문 활공날을 정하고 , 올해 들어서는 둘째 아이 선생님을 졸라 학급 뇌호흡 교실을 일주일에 한 번 열고 , 내친 김에 선생님 단전호흡 교실까지 만들었다. 얼마 전에는 반가부좌로 명상에 들었다가 눈을 뜨니 눈앞에 산이 보였다. 그 길로 용암 원봉산 정상에 공원 선원도 열었다. | |
이제 두 달째 접어드는데 고정회원이 1백 명을 넘어섰다. 아침에 눈을 뜨면 오른쪽 가슴의 편평한 상처자리를 쓰다듬는다. 가슴 한쪽을 잃었지만 오히려 한 순간도 감사함을 잊은 적이 없다. 유방암을 조기발견하면 완치율이 높으나 재발의 위험성도 높아, 10명 중 6, 7명은 재발을 겪는다고 한다. 먹지 않으면 2∼3개월 내로 재발 될 테니 5년 동안은 꼭 먹어야 한다며 의사가 약을 내주었다. 먹지 않았다. 암세포 몇 개 죽이겠다고 싱싱한 세포까지 죽여가며, 약을 먹을 때마다 환자라는 사실을 상기하느니 매일 윗몸일으키기 2백 번을 하면서 살아있다는 기쁨을 만끽하기로 했다. 약을 먹지 않은지 2년 째 접어드나 내 몸엔 아무런 이상이 없다. 당연하다. 이미 심성수련장에서 내 병은 완쾌되었다. 내 마음이 다 나았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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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드립니다.
와! 대단하십니다. 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