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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세 사람이 모이면 교회인가 ?- 마태복음18:20에 대한 해석과 함께 - |
두 세 사람의 성도가 모이면 그것을 곧 교회라 할 수 있느냐 하는 질문을 받습니다.
아마 선교단체를 통해 신앙을 접하는 많은 청년의 한결같은 주관적인 성경해석의 단면이라 생각 되어 집니다.
사실 교회 안의 많은 사람들이 아무 스스럼없이 그런 것으로 생각하고 있는 듯 합니다.
이러한 의식은 먼저 교회에 대한 부정적인 면 때문에 더욱 부각 되어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많은 성도들이 교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실망하게 될 경우, 이러한 의식이 교회를 멀리하고 심지어 주관적이고 이기적인 신앙으로 전이됨을 바라 보게 됩니다. 그러면서도 자신은 교인이라고 말합니다.
우리 성도들이 흔히 잘못알고 있는 신앙생활은 먼저 우리가 우리의 나약성 때문에 개인이 스스로 신앙생활을 이루어 나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언제나 지상교회에 소속되어야하며 (비록 지상 교회가 연약하다 하더라도, 그러나 바른 교회가 아니라 판단되어질 경우에는 별개의 차원이지만) 이 지상교회를 통하여 중보하며, 양육되어짐으로 보다 천상의 교회를 지향할 수 있도록 살아갈 수 밖에 없음을 믿음으로 수납하여야 합니다.
우리 성도는 개인적인 수도를 통해서 천국에 가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선택된자들의 교회를 통해 궁극적으로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신다는 것을 바르게 인식하여야만 할 것입니다.
많은 선교단체가 있습니다. 언제나 개혁주의 신앙을 브르짖으면서도 수적인 증가를 지상 목표로 설정하고, 나아가 스스로 교회임을 과시해 나아갑니다. (물론 건전한 선교단체도 있음니다)
오늘날 교회를 부인하는 선교단체들을 바라 보시기 바랍니다. 이들의 내부를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바른말씀이 상실되었으며, 양육이 형식으로 치닫고 있고, 권징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바른 교회를 위해 선교단체 본연의 책무를 벗어난지 오래 돼었습니다. 이들의 교회를 바라 보십시오 바른 신앙의 공감대를 누리지 못하고 모두가 제각각의 신앙을 가린채 복음송으로 하나임을 가장합니다. 얼마나 비참한 오늘날의 교회의 현실입니까? 교회의 정체성이 상실된 현실에 살고있음이 가슴아프게 합니다. ------------------------------- 그런 사람들은 대개 사람의 수가 몇 명이든 하나님이 함께 계시면 그것이 곧 교회 아니냐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 주장은 일반적으로 마태복음의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마18:20)는 말씀에 그 근거를 두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교회란 그런 단순한 의미가 아니며 몇 사람의 성도가 모이면 그것 자체로서 교회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이제 마태복음 18:20의 말씀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그 내용을 담고 있는 마태복음 15-20에는 전체적으로 권징에 관한 교훈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가서 너와 그 사람과만 상대하여 권고하라 만일 들으면 네가 네 형제를 얻은 것이요(15) 만일 듣지 않거든 한 두 사람을 데리고 가서 두 세 증인의 입으로 말마다 증참케 하라(16) 만일 그들의 말도 듣지 않거든 교회에 말하고 교회의 말도 듣지 않거든 이방인과 세리와 같이 여기라(17)".
여기서 우리가 우선 눈여겨보아야 할 부분은 17절의 '교회'입니다.
즉 20절의 '두 세 사람'은 믿는 사람의 단순한 수가 아니라 '조직교회에 속한 두 세 사람'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교회에 속한 어떤 성도가 죄를 범했을 경우 그것을 알게 된 교회의 다른 성도들이 어떻게 해야 할까 하는 문제와 관련됩니다.
성경은 그 범죄사실을 미리 알게 된 성도가 당사자에게 권고하고, 그래도 듣지 않으면 한 두 사람을 데려가 '두 세 증인'의 입으로 증참케 하라고 합니다. 그래도 듣지 않거든 교회에 말하고 교회가 최종적으로 그 문제를 처리하도록 교훈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무엇이든지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18)이라는 언약의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19절에는 "진실로 다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에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저희를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19)는 말씀이 기록되어 있고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20)는 말씀이 따라 나옵니다. 여기서 '두 세 사람'이라는 말은 그런 작은 수라도 모이면 교회가 된다는 뜻이 아니라, 권징을 위한 교회의 사역 절차에 하나님께서 부여하신 권위가 있음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태복음 18:20에서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고 한 말씀은 소수라도 교회가 될 수 있다는 근거가 아니라 권징사역의 절차에 관련된 것입니다.
이제 성경의 교훈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교의학적 측면에서 말씀드릴까 합니다. 장로교회에는 목사, 장로, 집사 등의 직분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고 성례가 시행되며 교회적 구제가 이루어지는 것은 개별적 판단이 아니라 직분적 기능에 의한 것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직분을 통해 주님의 교회가 세워져 가야 하는데 그 성도의 무리를 우리는 조직교회라 일컫습니다.
이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예를 들어볼까 합니다. 가정과 가족은 용례상 서로 다른 의미입니다. 함께 사는 식구가 여러 명 있다면 그 전체를 가정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 중 몇 사람이 따로 모여 있다고 해서 그것을 가정이라 하지 않겠지요? 식구 몇 사람이 모이면 가족이기는 하지만 그 모임이 가정은 아닌 것입니다.
가정과 가족이 서로 다르다는 의미입니다. 물론 가족의 수가 많은 가정이 있는가 하면 한 두 사람의 단촐한 가정도 있습니다. 수가 많든 적든 간에 그 기능에 의해 온전한 가정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이와 비슷한 예를 하나 더 들어보겠습니다. 국가와 국민은 관련이 있으나 서로 다른 의미입니다. 국가는 모든 국민들의 총합을 일컫습니다. 그렇다고 그 국가에 속한 국민 몇 사람이 모였을 때 그것을 국가라 하지 않습니다. 그들이 국가에 속한 국민이기는 하지만 국가는 아닌 것입니다. 또한 국민의 수가 십억이 넘는 큰 국가가 있는가 하면 전체 국민이 수십만 명 밖에 되지 않는 작은 국가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국민의 수와 관계없이 독립 국가는 국가로서 그 기능을 수행하게 됩니다. 교회에 관한 이야기를 하면서 가정이나 국가와 동일한 입장에서 말하기는 어려울지 모르지만 비슷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는 있습니다.
교회는 교인들의 수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직분에 따른 직능이 올바르게 이행되고 있느냐 하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교회에는 목사, 장로, 집사가 있어서 제각기 맡은 직분에 따라 교회를 세우는 일에 신실하게 참여해야 합니다. 즉 직분이 무시된 채 개별적 판단과 합의에 따라 교회를 이끌어 가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물론 특별한 경우 조직교회에 참여할 수 없는 형편에 놓일 수가 있습니다. 교회가 없는 이슬람 국가에서 살아가는 성도나 몇 개월간 선박에서 근무해야 하는 선원, 그리고 주변에 건전한 교회가 없어서 어려움을 겪는 성도 등입니다.
이럴 경우에도 원칙적으로는 성도가 조직교회에 소속이 되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본 교회와 떨어져 있을 동안에도 여전히 그 교회 성도로서 기도 중 서로 교통이 가능한 것입니다.
성도들은 조직교회에 속해 있어야 하며 혹 그럴만한 건전한 교회가 없다고 생각되면 참된 교회를 만날 수 있도록 기도하는 마음을 지켜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이 처럼 두 세 사람이 모이면 그것 자체로서 교회가 될 수 없음을 기억시기 바랍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런 소수의 모임이 소중하지 않다는 말은 결코 아닙니다.
이는 마치 가정에 속한 몇 사람의 가족이 만나도 여전히 소중하며 국민 몇 사람이 모여도 여전히 소중한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
첫댓글 결국"교회" 는'조직체'라는 말이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