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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여름휴가
(2003. 08. 15 - 08. 17)
이번 여름휴가는 우여 곡절 끝에 숙소를 정하였으므로 더욱 의미가 있는 듯싶다.
처음에는 8월 15일부터 17일까지 가기로 형님과 결정하고는 콘도 민박 등 숙소를 예약하고자 하였으나 황금연휴와 겹쳐져서 도저히 예약을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날짜를 2일만 당기자고 제안해서는 8월 13일부터 15일 까지 가기로 결정하고는 홍병일씨에게 부탁을 하여 콘도예약까지 해 놓았다는 연락도 받았었다.
하지만 아버님께서 8월 13일 저녁 거청이 아저씨의 영세식 대부를 서기로 하셨으므로 당초 계획대로 15일부터 가야만 했다.
8월 15일는 광복절 휴일이고 16일은 토요일인데 요즘 토요휴무제를 실시하는 회사가 많고 또한 주 5일제 근무의 시범으로 공무원들은 매월 네 번째 주 토요일을 휴무일로 하는데 마침 네 번째 토요일은 을지연습 기간이라 한 주일을 앞당겨서 16일 날 휴무를 실시한다.
그러므로 이 기간은 황금연휴로서 동해안은 대 만원을 이룰 것으로 예측이 되였고 그래서 2일 앞당겨 가기로 했는데 예기치 못한 상황이 발생하여 부득이 그 기간에 가기로 했던 것이다.
8월 14일
나이를 먹어 가면서 휴가 떠나는 것이 반갑지만은 않다.
형제 모임에 총무를 맡아 보면서 휴가의 모든 계획을 세우고 또한 준비하고 하는 것이 영 부담스럽고 귀찮기도 하며 신경 쓰이는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닌지라 벌써부터 마음만 급하고 분주하면서도 왠지 모르게 허전하기도하다.
몇 일전부터 필요한 물건을 챙기고 구입할 물건을 체크했지만 그래도 무엇인가 빠뜨린 것만 갔고 마음 한 구석이 편치가 않다.
우리들이 묵게 될 숙소를 임양균 사장을 통하여 얻었는데 그 숙소는 다른 사람이 살고 있는 아파트를 통째로 빌려 준다고 하는데 그것도 임사장이 알고 있는 사람의 것이 아니고 임사장의 후배를 통하여 그 후배의 친구 아파트라고 하니 알지도 못하는 사람의 아파트를 빌려 쓴다는 것이 몹시도 신경이 쓰이고 특히 사용료도 받지 않는다고 하니 선물이나 사다 주라고 하는 임사장의 말이 아마도 더욱 신경이 쓰여 그런 마음이 드는 것이었다.
암튼 숙소는 가기로 했는데 선물은 무엇을 사다 주어야 하는가?
내가 원래 생각이 많은 사람인지라 벌써부터 그런 걱정에 사로잡혀있는 것이다.
나는 아침부터 서둘 루기 시작했다.
모든 짐을 챙겨서 차에 싫어 놓고 아내와 아이들에게도 빨리빨리 행동할 것을 재촉하니 나 혼자서만 마음이 급하여 동동거리는 듯싶다.
출발 10분전
하지만 아내는 잠깐 어데 갔다 온다고 하고서는 오지를 않는다.
외출을 하거나 어디 먼 곳을 가려고 하면 아내는 늘 출발 직전에 딴청을 피운다.
딴청을 피운다기보다는 중요한 것을 미리 준비하지 않고 출발할 시간에 그것을 하려고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은행에 가는 일, 시장을 보는 일, 물건을 맡기는 일 등을 차에 올라타고는 그곳을 먼저 가자고 한다든가 필요한 물건을 미리 준비하지 않고 그 시간에 가서 사가지고 가자고 하는 것이다.
나는 그것이 늘 못마땅하다.
무엇을 하든지 미리 생각하고 준비하며 사전에 여러 번 체크를 하면서 보완하고 또 보완을 한다. 하지만 그러한 나의 행동에 아내는 오히려 불편해 하는 눈치다.
그렇지만 그런 습관은 공무원 생활을 하면서 생긴 것이다.
공무원은 실수를 용납하지 않는다.
실수하여 시민에게 불편이나 손해를 끼쳤다면 그것은 곧바로 책임을 져야하고 또한 경쟁사회에서 도태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안성에 도착하니 13시가 넘었고 형은 보이지가 않는다.
휴가에 필요한 물품을 사놓아야 모든 휴가 준비가 끝나고 그러고는 좀 쉬고 싶어 마음만 서두르고 있는데 다른 사람들은 그런 나의 마음을 알 리가 없다.
그래도 내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은 바로 어머님이시다.
“형은 어디 가서 안 오냐?”
“전화한번 해보지 그래?”
어머님께서는 여름휴가를 온 가족이 떠나는 것이 그리도 좋으신 모양이다.
작년에도 온 가족이 함께 휴가를 다녀오셔서는 그리도 기분이 좋으셨던 모양이다.
그 중에서도 가족 게임에 대하여는 특히 기억에 남으시는지 그 게임이 참으로 재미있었다는 이야기를 종종 하시곤 했었다.
8월 15일
아침에 일어나니 새벽 4시이다.
전날부터 새벽 5시에 출발한다고 선언은 해 놓았지만 모두들 오밤중인지라 나 혼자만 뒤척이고 있으며 몇 시 쯤 깨울까 망설이는 중에 어머니께서 읽어 나셔서는 부엌에서 무엇인가 준비를 하시는 듯싶다.
4시 50분이 되어 형한테 전화를 하니 아직도 오밤중인지 형수가 잠결에 전화를 받는 것으로 보인다.
“5시에 출발하려하는데 아직도 안 읽어났어요?”
늘 격어 보는 일이지만 여러 사람이 행동할 때는 정해진 시간에 계획대로 진행되는 법이 없는지라 그렇게 서둘렀는데도 5시 50분에야 출발할 수가 있었다.
사실 조금 더 일직 출발할 수가 있었는데 아버님의 준비가 덜 되여 20여분 이상 지연되게 되었다. 모든 사람 준비가 다 되여 출발하려 하는데 아버지께서는 그제서 준비 중이시며 내가 빨리 서두르시라고 재촉하자 아버지께서는 “나는 누가 뭐라고 해도 내가 필요한 준비를 다 해야 하니까 나 떼어놓고 가던지 마음대로 해라.” 하시면서 슬로우 모션이다.
아버지의 그러한 언행은 처음 격어 보는 일이다.
예전과 다르게 행동하는 것이다.
나이가 먹으면 어린애가 된다고 하더니 아주 많이 어려지신 모습니다.
형수께서는 “아버님에 대해서 잘 알고 있느냐?”고 물어보면서 아버지의 그런 모습들에 대하여 아무렇지도 않은 듯 이야기 하지만 그 순간 내가 느끼는 아버지의 행동과 말씀하시는 모습들은 이제 저물어 가고 있는 한 인생의 뒷모습으로 보이며 언젠가는 준비해야할 그 시간으로 한 발짝씩 다가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들고 있었다.
아버님 춘추 이제 76세이시다.
남으신 여생 편안히 잘 지내시기를 바라며 또한 우리들의 가장 큰 소망이기도 한 것이다.
5시 50분 상큼한 아침공기를 가르며 출발이다.
내 차에는 아내와 어머님 그리고 송희 정현이가 타고 아버님은 병국이 차에 타시게 했다.
그것은 형수의 제안에 의하여 그렇게 했는데 두 분이 평소에 너무도 다투시기 때문에 함께 타고 가시는 것 보다는 따로따로 타고 가시는 것이 편한 여행이 될 것이라는 설명이다.
평상시 아버님은 잔소리가 심하시고 어머님께서는 그것을 잘 받아 넘기시기 못하시고는 그 즉시에서 쏘아 버리기 때문에 늘 사소한 일로 티격태격 다투신다.
형님은 그러한 어머님을 보시고 “어머님은 땡삐십니다. 좀 참으시면 될 것을 매번 즉시 쏘아 버리시는 어머님도 좀 고치셔야합니다.”하시며 한 말씀 하신다.
차는 일죽 IC를 통과하여 중부 고속도로를 들어서니 상행선 차량이 한산하여 최고 속력으로 달려 호법에 도착하니 역시 생각한대로다.
영동고속도로는 거산거해(車山車海)를 이루고 있다.
“이거 큰일 났네.”
“어디까지 막힌 것인가.”
“네이트 검색을 한번 해 볼까요.”하면서 송희가 제안을 한다.
나는 핸드폰 인터넷인 네이트는 한번도 사용해 본 적이 없다.
방법을 모르기도 하지만 핸폰 요금 외에 별도의 사용료를 내야하기 때문에 아예 사용할 생각조차 해본 적이 없다.
검색결과 원주까지 조금 막히고 원주 지나면 뚫리는 것 갔다.
아버님의 아침 식사 시간은 7시이며 그 시간을 넘기면 못 견디신다고 하시면서 어머님께서는 그래도 아버님 식사 걱정이시다.
병국에게 전화 걸어 7시 전에 휴게소에 들려 아버지 아침 드시도록 하라고 전화하고는 우리들은 차안에서 요기를 할 참으로 빵도 꺼내먹고 복숭아도 깎아 먹으면서 쉬지도 않고 주문진을 행해 달려보지만 꽉 막혀있는 고속도로는 좀처럼 뚫릴 생각을 하지 않는다.
빵은 어머님께서 손수 만드신 것이다.
밀가루 이스트 반죽에 팥 앙금을 넣어 만드신 이 빵은 내가 어렸을 때도 가끔 만들어 먹던 음식이다.
우리 집은 과수원을 하면서 빵을 만들어 먹는 날이 있었다.
과수 농사 중에 가장 어렵고 힘든 일이 봉지 씌우는 일이며 초벌(작은) 봉지와 본(큰) 봉지 두 번을 씌우는데 초벌 봉지 씌우기가 끝나는 날과 본 봉지 씌우기가 끝나는 날이면 빵을 만들어 파티를 한다.
그 때의 그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하시여 요즘도 가끔 빵을 만드시는데 오늘도 그때의 그 추억이 깃들어 있는 빵을 먹는 것이다.
7시가 조금 지나 문막휴게소에 도착했는데 차들이 초만원이라 주차하기 조차 힘들다.
승복이는 4시 30분에 출발하여 조금 전에 도착했다고 한다.
그곳에서 많이 지체할 시간이 없다.
휴게실 안 음식점 테이블 역시 앉을 자리가 없기도 하지만 길이 막히기 전에 빨리 목적지에 도착해야하기 때문이다.
아버지께서는 김밥을 사서 각 차마다 나누어 주면서 먹으라고 하는데 우준네 애들은 그 틈에도 국수 한 그릇씩을 먹었다고 한다.
나는 마음이 급하다.
혼자서만 동동거리며 재촉하는 듯싶다.
문막에서부터 차량 흐름이 좀 나아져 도착지 주문진까지 막힘없이 달릴 수가 있었다.
주문진 도착 시간은 9시 30분경 먼저 오늘 하루 피서를 보낼 장소를 잡아야 하므로 몇 년 전 한번 와 보았던 소돌 해수욕장으로 정하고는 그곳에 도착하니 초만원이다.
입구까지 차량이 꽉 차있어 들어 갈 수가 없다.
입구 옆에 개인들이 사설 주차장을 이용하며 그 곳을 이용하라고 호객행위를 하는데 그 사설주차장에서 해안가 까지는 약 500미터 이상으로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라 다른 곳을 찾아보기로 하고는 뒤로 돌아섰다.
소돌해수욕장은 주문진 해수욕장과 붙어있는 곳인데 몇 년 전과는 다르게 이제는 주문진 해수욕장과 한 덩어리가 되어있었고 또한 유명 해수욕장의 명성 값을 톡톡히 하고 있었다.
주문진해수욕장에서 양양 쪽으로 약 5분여 올라가는데 해안가 옆에 한적한 주차장이 보이고 주차장 입구에 장경리공원해수욕장이라는 플래카드가 붙어있어 일단 그곳에 주차를 하고는 주변 환경을 둘러보니 해안은 한적하면서도 깨끗하며 특히 해안가 옆 소나무 숲이 한나절 휴식장소로 제격으로 보여 그곳에서 머물기로 하고는 짐을 풀었다.
먼저 소나무 밑에 돗자리를 깔아 일행들이 편하게 머물 수 있는 자리를 확보했고 텐트로 그늘 막도 만들어 놓으니 모두들 마음에 들어 하는 눈치다.
아이들은 벌써 해안가로 뛰어가고 해수욕장은 역시 아이들 여름 피서지로 인기 으뜸임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자 이제 자리를 잡았으면 점심 걱정을 해야지.”
“점심은 무엇으로 하나.”
“찌개거리 준비해 왔는데 밥해서 먹으면 되지요 뭐.”
하지만 사방에서 고기 굽는 냄새가 요동을 치고 우리들의 후각을 자극하며 침샘에서는 군침이 저절로 흘러나온다.
야외에서 삼겹살 구워먹는 맛이야 말로 역시 최고다.
왠지 삼겹살 생각이 절로 나기 시작하면서 오늘의 점심은 삼겹살로 하자는 제안이 들어오고 나는 주문진으로 시장 보러 출발이다.
주문진에 시장 보러 간 김에 이번에 묵게 될 숙소를 먼저 알아보아야 하겠다하는 생각에 약속되어 있는 전화번호에 다이얼을 돌리고는 집주인이 운영하는 제과점(김성수베이커리)에 도착했다.
“주문진에 가서 김성수베이커리 찾으면 모르는 사람이 없습니다.”
주문진 중앙로 한복판 농협 앞에 자리 잡은 제과점은 역시 임사장이 이야기하던 바로 그 모습이었다.
또한 “94년 경진대회 대상” 95년 대상“이라는 간판 구호로 보아 이곳 김성수씨의 제과 기술이 상당 수준임일 짐작할 수가 있었다.
김성수씨는 우람한 체격이며 말과 행동에서도 무게가 있어 보였고 특히 요즘 유행하는 SBS드라마 야인시대의 구마적과도 같은 보스와 의리로 똘똘 뭉쳐진 사람으로 보였다.
자기 집을 다른 사람에게 빌려 준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돈을 받고 빌려 주는 것도 아니고 그냥 무상으로 빌려주는 것이다.
올 여름 우리가 그 아파트에 네 번째 묵고 가는 피서객이란다.
아파트에 들어가 보니 32평정도 넓이데 살림살이는 거의 보이지 않고 식탁의자에는 입다가 벗어놓은 옷이 올려져 있고 거실장위에는 재떨이와 피우다 만 담뱃갑 등 몇 가지 물건만 보일뿐이므로 언뜻 보기에도 살림을 하지 않는 집으로 보인다.
집안을 대충 둘러보고 아파트 열쇠를 받아들고는 제과점으로 가서 팥빙수까지 한 그릇 얻어 먹고 나니 시간이 꾀나 흘러간 모양이다.
삼겹살을 사러간 사람들이 오지를 않으니 궁금하기도 하고 또한 배도 고팠던지 전화가 걸려온다.
삼겹살에 상추 등 시장을 보아가지고 해수욕장에 도착하니 모두들 목을 길게 늘어뜨리고 기다리고 있다.
배는고프고 옆 텐트에서는 고기 굽는 냄새를 풍기고 아마도 굶주린 야생동물로 변해있는 듯이 고기를 구워 내기가 무섭게 모두들 뚝딱이다.
“왜 너는 안 먹느냐?”
어머님께서 바싹 다가앉아 먹으라고 하지만 영 내키지가 않는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 같이 갔다 온 병국이도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아까 그 과자점에서 한 그릇 수북이 갈아서 말아준 팥빙수가 식욕을 빼앗아 간 것이다.
점심시간이 다 되여 먹고 싶은 생각은 없었으나 김사장이 손수 만들어 주는 팥빙수를 남기기도 무엇하여 몽땅 먹고 나니 배가 부른 것이다.
평상시 나는 팥빙수를 잘 먹지 않지만 그 팥빙수는 녹차엑기스를 넣어 만들어 맛이 좀 색다를 뿐만 아니라 옆에서 먹던 손님들도 “이집 녹차팥빙수 참 맛있다.”하면서 먹는 것을 보면 다른 제품과 좀 차별화되는 것으로 보인다.
“축구공 없어요.”
아이들은 지난해 축구시합을 기억하는 듯 축구공을 찾으나 금년에는 준비하지 못했다.
준비하지 못한 것이 아니가 가지고 오려고 준비하는데 막상 찾으니 보이지를 않아 꿩 대신 닭이라고 눈에 보이는 배구공만 가지고 왔다.
모래사장에서는 신을 신고 뛰는 것 보다는 맨발이 훨씬 났다.
그래서 백사장 축구는 축구공 보다는 배구공이 더욱 제격이다.
하느님께서 그런 상황을 미리 아시고 축구공은 감추어 놓으시고 배구공만 눈에 띄게 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휴가를 끝내고 집에 왔을 때 제일 먼저 보이는 것이 축구공인데 준비할 때는 왜 그것이 보이지 않았는지 참으로 알다 가도 모를 일이다.
모래밭에서의 축구는 역시 힘들다.
조금만 뛰어도 핵핵...
공격 한번 하고는 골키퍼를 자청하고 애들만 나가서 공격하라고 재촉하는데 역시 나이가 먹어가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축구 시합 채 10분도 지나지 않아 모두들 기진맥진
아이들 보다는 어른들이 더 기진맥진하며 휴식을 청한다.
휴식은 바닷물이 최고다.
바닷물에 발을 담그니 역시 시원하다.
저 파도 속으로 뛰어들고 싶은 충동이 생긴다.
이상하게도 아이들은 바닷물로 뛰어 들 생각을 하지 않는다.
경훈이는 그동안 머리가 컸다고 뒤로 빼고 다른 아이들은 눈치를 보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 눈치를 알아 차렸는지 형님께서 명원이를 안고는 바닷물로 뛰어들어 파도를 가르며 물놀이를 자청하니 명원이도 처음에는 빼는 듯싶었으나 이내 금방 바닷물에 익숙해져 마냥 즐거워한다.
나도 뒤로 빼며 보채는 우석이를 강제로 안고는 바닷물로 뛰어들었다.
우석이 역시 처음에는 파도를 무서워하다가 금방 익숙해져서는 좋아 죽는다고 날뛴다.
동해안은 8월 5일만 지나면 물이 차가워서 물에 들어 갈 수가 없다고 하는데 이상하게도 차갑지가 않고 바닷물에 몸을 푹 담그어도 차갑기는커녕 따듯하고 포근한 느낌이 든다.
바닷물도 우리들의 피서를 반겨주고 있는 것이다.
동해안의 피서를 선호하는 데는 드넓은 백사장과 깨끗한 물 그리고 파도이기 때문이다.
12일 날 가족들과 영흥도 장경리해수욕장에 가 보았지만 역시 지저분한 모래와 바닷물 그리고 해수면이 얕고 간만의 차가 커서 해수욕하기에 영 재미를 느낄 수가 없어 보였다.
“야 해먹 탄 사람들 1인당 5,000원씩 내라.”
지난해 오정구청 이재정씨가 해먹을 사가지고 가서 참 잘 써먹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소형 해먹을 하나 사가지고 갔는데 역시 인기가 짱이다.
등산용품 판매점에 해먹 가격을 알아본즉 1인용은 1만2천원 2인용은 3만 5천원이라고 하는데 1인용은 품절이라고 하여 사지 못하고 이마트에 가보니 소형해먹으로 가격은 8천 원씩 판매되는 제품을 샀더니 역시 싼 것이 비지떡이다.
처음에 설치하고 어른이 올라타니 한쪽이 쑥 빠진다.
해먹이 보기에도 약해 보이므로 영 불안했지만 제품 설명에 200킬로그램까지 견딘다는 말만 믿고 괜찮겠지 했는데 역시 나다.
빠진 부분을 끈으로 다시 묶어서 임시방편으로 사용하니 이제는 너도 나도 한번씩 타보자고 야단들이다.
오늘의 가장 히트 상품이다.
“.....아흔여덜, 아흔아홉, 백”
몇 년 전 조직력 강화 훈련 때 그룹게임 했던 “그룹 널빤지 공치기”
합판을 직경 50㎠ 원판으로 만들어 8군데 끈을 매달고 끈 하나에 한명씩 잡고 테니스공을 치는 것인데 처음에는 한두 개 하기가 힘들지만 연습을 거듭 할수록 요령도생기고 또한 게임을 리드하는 사람의 구령에 맞추어 호흡을 맞추다보면 금방 50개 이상 할 수가 있게 되는데 한 팀에서 100개를 한 것이다.
우리는 두 팀으로 나누었는데 약속이나 한 듯이 소장파와 노장파로 나누어졌다.
소장파 : 형수, 명원엄마, 병국, 송희, 우준, 우석, 명원, 철원
노장파 : 아버지, 형, 이서방, 수연, 승복, 송희엄마, 정현, 경훈
처음에는 두 팀 모두 5개를 넘기기가 힘들었는데 역시 노장파의 노련미가 돋보이기 시작한다.
소장파는 우석이가 천방지축이다.
차라리 없는 편이 낫다고 한다.
선수교체 : 우석 아웃 대신 사회자인 내가 대신한다.
선수 교체를 하였어도 노련한 노장파를 당해낼 도리가 없다.
1회전은 노장파 승리
2회전 시작
노장파가 실수로 10여개 박에 못하고 끝내니 소장파 승리다.
원래 규칙은 총 3회전을 실시하며 매 회전 2회씩 실시하여 그중 많이 한 회수를 기록으로 인정하기로 하였으니 2회전은 사회자의 농간으로 1회씩 실시한 결과 소장파가 이겼으므로 사회자 직권으로 규칙 수정 2회전은 단 게임으로 실시 소장파가 이기도록 농간을 부린 것이다.
마지막 3회전이 남았다.
마지막 3회전도 단 게임으로 실시하자는 노장파의 제안이 들어왔다.
좋습니다.
게임결과 노장파 54회 소장파 65회
소장파의 승리다.
이번 게임에는 1인당 5,000원씩 돈을 걸고 시작을 했고 이기는 팀에 주기로 내기를 하고 시작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명원이는 자기 아빠에게 압력도 가하는 모습이 보였다.
그 이유는 명원이 아빠만 노장파이고 나머지 3명은 소장파이므로 가족 전체적으로 볼 때 소장파가 이겨야 이익이라는 논리이다.
소원이 이루어진 명원네 가족이 제일 좋아하는 눈치다.
하지만 아버지는 승부를 도둑맞았다고 불만이 이만저만이 아니시다.
역시 나이가 드시면서 어린애로 변하신 것이 틀림이 없다.
돈을 걸고 한 이번 게임이 처음에는 승부욕을 북돋우고 재미를 더하기 위하여 생각해낸 방법인데 이긴 팀에 돈을 나누워 주고 난 다음 조금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돈은 어른들 주머니에서 나온 것이지만 어차피 재미로 한 것이고 또한 온 가족이 함께 즐겼으니 애들에게만 나누어 주었으면 더욱 보기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돈을 나누어주고 난 다음에야 생각이 났다.
서운해 하는 것은 아버지뿐만 아니라 경훈이와 정현이도 포함되어 있다.
돈을 받아 들고 제일 신나는 것은 아이들이다.
소장파가 잘해서 이긴 것이 아니라는 것은 아이들도 다 알고 있기에 미안한 마음이 들었던지 아니면 서로의 나눔에 필요성 혹은 같이 재미있게 휴가를 보내기 위하여 경훈이가 필요했는지는 몰라도 자기들끼리 경훈이에게 조금씩 떼어 주기로 결의했다는 이야기도 들려왔다.
실제로 그날 저녁 주문진 피씨방에 가서 경훈이의 게임비 까지 내주었다고 한다.
그런 이야기를 듣고 난 다음 형은 경훈이에게 10,000원을 주었고 나는 정현이에게 20,000원을 주었다.
해수욕장에서의 생활은 시원하기는 하지만 모래가 날려 불편하고 바닷물을 만지고 나면 온 몸이 끈적이는 것 같은 느낌으로 개운하지가 않다.
숙소인 아파트에 와서 저녁을 해 먹고 기도시간을 가졌다.
그날은 8월 15일 성모승천대축일로 미사 참례 의무가 있는 날이지만 성당에를 자기 못했으니 온 가족이 모여 기도로서 축일 의무를 하기로 했다.
어머님께서는 아침 6시 미사를 드리고 출발했으면 하셨으나 출발시간이 늦어지면 길이 막혀 많은 고생이 예상되므로 나의 의견을 따르기로 승낙하셨고 나는 공소예절을 준비하려는 생각은 하고 있었으나 이것저것 준비하다 보니 미처 준비를 못하여 묵주기도 5단으로 대체하기로 하고 기도를 마쳤다.
기도 후 간단한 회의를 하였다.
약식 결산보고 : 약 200만원 정립 되여 있습니다.
앞으로 일정보고 : 오늘은 해수욕장에서 보냈고 내일계획은?
여러 사람들의 의견을 들은 결과 소금강으로 가기로 결정
아파트 사용료는 사가지고 온 화장품에 양주를 사서 주기로 결정
화장품(남,여) 80,000원 양주(발렌타인17년산) : 118,000원
8월 16일
아침에 일어나니 5시가 조금 넘었다.
읽어나 앉아 조금 있으니 형수와 수연이가 읽어났다.
전날 아버지께서 주신 특별회비(500,000원)도 있고 하여 주문진 아침시장에 가보니 역시 대낮이다.
주로 산 오징어 시장이 형성되고 있다.
오징어 10마리에 10,000원
죽은 오징어는 20마리에 15,000원
죽은 오징어라고는 하나 금방 죽은 것이므로 산 것이나 다름이 없다고 살 것을 부추긴다.
실제로 큰 다라에 오징어가 살아서 움직이는데 연신 죽어 자빠지므로 그 즉시 건져 놓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오징어는 성질이 급하여 활어로 오래 보관할 수가 없다고 한다.
하지만 요즘은 도심에서도 산 오징어가 지천이다.
오징어를 운반하는 기술이 발달했다고는 하지만 약품을 타서 활어의 활동력을 둔화시키는 방법을 쓴다고 하니 약물로 오염된 식품을 섭취하므로 오히려 건강을 해치지나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오징어 판매상 옆에는 회를 떠주는 아줌마가 수수료를 받고 회를 썰어주고 있는데 20마리에 3000원씩 받고 있어 우리들은 산 오징어 20마리와 죽은 것 20마리에 6천원을 주었다.
“모두들 일어나 오징어 회 먹으세요.”
산 오징어 회는 꼬돌꼬돌한 맛이 일품인데 사온지 1시간 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이상하게도 육질이 풀어져 제 맛이 나지를 않을 뿐만 아니라 아침이라 그런지 모두들 영 내키지가 않는 눈치다.
이서방만이 맛있다고 하면서 연신 먹어대는데 역시 식성은 체구와 일치함을 느낄 수가 있다.
소금강
결혼하기 전 와보고는 처음 오는 것 갔다.
그때도 지금의 아내와 왔었는데 그때가 82년 8월 말경으로 기억된다.
깊은 산 맑은 물의 계곡은 그때나 지금이나 변한 것이 없는데 사람만 변하여 꼭 21년 만에 다시 찾아온 기분이 정말 새롭다.
계곡 물가에 짐을 풀고 보니 “야영과 취사 금지”라는 플래카드가 걸려있어 우리들이 생각한 현장 취사에 문제가 생겼는데 바로 위를 올라가 보니 오토캠프장으로 취사가 허용된 지역이었다.
오토캠프장 안에는 주차와 캠핑 그리고 취사가 허용되며 수세식 화장실과 설거지할 수 있는 취사장이 있고 바로 밑에 계곡으로 내려가는 문이 있어 물놀이에도 제격이다.
일기예보에 의하면 비올 확률이 60%란다.
갑자기 비가 오면 급히 대피할 수 있는 텐트도 쳐놓고 그 옆에 취사하는 자리 그리고 계곡아래 휴식하는 돗자리를 깔아놓아 서로 기호에 맞는 자리에 자리 잡고는 세상에서 가장 편한 자세로 휴식
인기는 역시 물가 옆이 최고이다.
“야! 참 맛있다.”
아침 새벽 주문진 시장에서 사온 오징어회가 남아 그 재료를 이용하여 부침개를 만들었는데 역시 입에서 살살 녹는다.
음식은 신선한 재료가 맛을 좌우하는데다 야외에서 동동주와 함께 먹는 이 맛이야 말로 일미요 특식이요 그야말로 인기 짱이다.
밑에서는 빨라 더 가져오라고 야단들이며 형수는 부쳐대기가 바쁘다.
아이들은 이런 맛도 모르고 어디에 갔는지 보이지를 않는다. 아마도 어저께 게임 해서 받은 돈으로 군것질과 피씨 게임 등을 즐기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오! 성당이 참 아름답구나.”
주문진 성당은 우리들이 묵고 있던 아파트에서 약 1킬로미터쯤 떨어진 곳에 위치해있다.
성당은 조그마하지만 됫박을 엎어놓은 것 같은 언덕위에 자리 잡고 있어 전망도 좋고 운치도 있어 보인다.
성당에 찾아간 것은 내일 미사시간을 알아보기 위하여 소금강에서 오는 길에 들렸는데 그곳에서 성체 조배도하고 성전 앞 성모상 앞에서 기도하고 나니 역시 마음이 가벼워진다.
성모상 앞에서 아버지와 어머니 두 분께서 장배하시고 기도하시는 모습은 정말로 다정해 보였지만 실제 살아가시는 모습은 늘 다람쥐와 땡삐관계이시니 그러한 모습이 두 분께서 이제껏 살아오신 방법이요 그동안 몸에 배시여 자연스러운 행동으로 나타내시는지도 모르겠다.
성당을 내려오려는 중에 어떤 남자분이 부르더니 옥수수를 한 아름 가져가라고 하면서 주는데 그분들은 수사님이셨으며 손수 농사지으신 것으로서 저녁 미사 후 신자들에게 판매하고 있었다고 한다.
8월 17일
연휴 마지막 날 아침부터 서두르지 않으면 길이 막혀 많은 시간이 걸린다.
평상시 주말 10시에 출발하면 막히고 9시에 출발하면 괜찮은데 오늘은 연휴에 여름휴가 까지 겹쳐 그보다도 더 빨리 서둘러야 할 것 같다.
아침 일직부터 서둘러 짐을 챙기고는 8시 40분에 출발
그동안 고맙게 보낼 수 있었던 아파트를 뒤로하고 2003년 여름휴가도 마감하며 각자 집을 향하여 출발이다.
나는 아파트 키를 반납하기위하여 김성수베이커리에 찾아가니 김사장이 벌써 매장에 나와 있다.
그동안 고맙게 사용한 아파트 키를 직접 만나 반납하는 것이 도리라고 생각되어 어저께 미리 전화를 했는데 가게 문은 7시에 열고 김사장은 9시에 나온다고 하여 어쩌나 망설이다가 일단 가게로 가보자고 하고는 와보니 김사장이 가게에 있어 정말 다행이 아니다.
키와 함께 준비해간 선물을 전하니 오히려 무척 미안해하는 눈치다.
김사장에 손맛이 곁들여있는 치즈케익까지 한 판을 선물로 받아가지고 나오니 이것은 주객이 전도된 것과도 같다.
우리나라의 경제계와 시장의 상권을 보면 이북사람들이 많이 가지고 있는데 6.25이후 홀로 단신 내려와서 손자병법의 배수진과도 같은 전략으로 생활하고 또 사업을 했기 때문에 대부분이 성공하지 않았나 생각되며 이곳 김사장의 선친께서도 이북분이셨다고 하며 김사장은 주문진에서 태어나고 15년 넘게 제과업에 종사하고 있다고 한다.
특히 중요한 대목은 교도소에 가서 수감자들에게 교육과 봉사를 하고 있으며 출감자들이 사회에 정착할 수 있도록 돌보아주는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고 한다.
참으로 훌륭한 사람이다.
아침의 시원한 공기를 가르며 차는 전 속력으로 고속도로를 질주한다.
앞서 출발한 병국이가 횡성휴게소에서 휴식하자고 한다.
횡성휴게소 처음 들어보는 휴게소인데 소사휴게소가 이름이 바뀐 것이다.
횡성휴게소에 도착하기 직전부터 비가 오기 시작했으며 도착했을 때는 빗방울이 제법 굴게 내리기 시작한다.
원래 계획은 모든 공식 일정을 끝내고 각자 집으로 돌아가기로 하였으나 형님은 그냥 헤어지기가 섭섭했던지 또한 모임의 회장으로서의 이번 여름휴가의 종료선언을 멋있게 하고 싶으셨던지 아니면 휴가의 마지막을 멋있게 장식하고 싶으셨던지 모두들 안성으로 가서 점심을 먹고 헤어지자고 제안한다.
물론 점심 값은 형님께서 부담하시겠다는 제안이다.
모두들 OK하고는 다시 안성을 향하여 출발
원주IC에 도착하니 이건 장난이 아니다.
아마도 이곳부터 막히기 시작인가보다.
길이 막히는 것을 보자 어머님께서는 쓸데없이 안성까지 끌고 가는 것이 아니냐고 끌탕이시다.
차라리 이곳부터 국도를 이용할 까도 생각해 보았으나 그곳의 막힘이 구간정체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 인터넷 네이트 검색을 해보니 평균시속 50 - 60킬로는 되는 것으로 검색된다.
실제 구간별로 정체 되는 곳도 있고 풀리는 지역도 있고 그런대로 잘 빠지는 편으로 일죽IC까지 별 문제없이 달릴 수가 있었고 안성 대천동 성당 옆 버섯 칼국수 집에서 점심을 함께 먹고 2003년 여름휴가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 아쉬웠던 점(보완해야 할 점) ☀
1. 온 가족이 함께 기도할 준비 부족(공소예절기도문, 매일미사책, 성가집)
2. 모임 운영 평가 및 결산을 하지 못함(활동 및 회비 결산, 앞으로 운영될
모임방향 토의 부족)
3. 각자 밑반찬을 준비했는데 별로 먹지를 않았음(앞으로 간단하게 준비)
4. 아버님께서 흥미를 느끼지 못함(잠자리 불편 등으로 다음부터는 참여하
지 않으신다고 하셨음)
5. 여름휴가 때만 만날 것이 아니라 생일 등을 파악하여 최소한 격월제로
모임을 갖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됨
6. 준비물을 혼자 준비하기 보다는 각자에게 할당을 주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도 있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