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하나의 나뭇잎이라면,
그 나뭇잎은 혼자입니까?
그는 나뭇가지 끝에 여러 잎들과 함께 달려 있습니다.
다른 나뭇잎이 너무 많아 내가 그들에 가려 그늘에 있다고 불평합니까?
다른 나뭇잎은 다 떨어지고 나 혼자만 있기를 원합니까?
그는 처음 그를 움트게 하여 이 세상에 내보내 주고,
지금도 그를 달고 있는 그 나뭇가지에 대해 고마워합니까?
그 가지로부터 떨어지면 훨훨 날아갈 듯이 자유로와진다고 생각합니까?
그는 잎이 달려 있기 위해 가지가 있고,
가지가 있기 위해 줄기가 있으며
줄기가 있기 위해 뿌리가 있고,
뿌리가 있기 위해 땅이 있으며,
땅 속에는 물과 거름이 있고
하늘에는 공기와 햇볕이 있어서,
이런 덕택으로 그가 지금까지 파랗고 싱그럽게 살아 있다는 것에 대해 생각하고 있습니까?
땅은 뿌리를 위해,
뿌리는 줄기를 위해,
줄기는 가지를 위해,
가지는 잎을 위해,
잎은 꽃을 위해,
꽃은 열매를 위해,
열매는 많은 중생을 이롭게 하면서도 다음에 심어질 씨앗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치고 있는 것에 대하여 생각해 보았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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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날처럼 골안개가 자욱히 내려 깔린 봄날 아침입니다.
그리움이라는 것,
그것은 내게 없는데 가지고 싶은 것입니다.
보고 싶은데 보이지 않고,
듣고 싶은데 들리지 않고,
내지, 만지고 싶은데 만질 수 없는 것...
그러나 그 아름다운 그리움도 그리움으로 남아 있을 때가 더 아름답습니다.
사람들은 소원이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지만,
그 소원이 이루어진 뒤에는 또 다른 소원이 생기게 되므로 끝이 없습니다.
나도 전에는 그랬습니다.
청소년 포교 분야에 냉담해 하는 주지스님들,
파라미타라는 이름으로 전국 청소년 불자를 묶으려고 하면서도 보이스카웃 방식을 도입하여 스님과 법사를 뒷전으로 하는 포교원,
전국 교사불자회가 있고 지방마다 지역 교사불자회도 있으면서 겨우 불교 배우기에도 못 미쳐 정작 청소년 포교는 엄두도 못내고 있는 현실,
초청법사로 나가면 어느 대학 나왔느냐고 묻는 사람들....
그런 등등의 사유로 나도 전에는 많이 힘들어하고 울분도 가지곤 했었습니다.
지금은 그 모든 울분을 졸업했습니다.
나는 이 세상 한 모퉁이에 살면서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일에 기쁨을 찾으리라고.
내가 하는 작은 일이 누군가 몇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고 도움이 된다면 기꺼이 그 일을 하리라고.
세상이 어떻고 환경이 어떻고 조건이 어떻다는 것은 나에게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미국-중국-일본-북한이 어떻거나,
대통령-정당-국회의원-읍장이 어떻거나,
종단-포교원-교구본사-말사-스님들이 어떻더라도 나는 그러려니 하고 봅니다.
그것으로 나는 가슴 아파하지 않습니다.
내가 그것을 부수거나 고치거나 새로 만들어 놓으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인터넷-한메일카페-종교분야 2만7천여 건 중에서 기독교가 2만1천여로 80%,
불교가 8백여개로 3%를 차지하더라도 그나마 전혀 없는 것보다 다행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2001년 6월 6일 현재)
※ (2007.8.18.현재 다음-카페는 종교분야 (169,185) 건 중에서 기독교(129,996)건으로 77%, 불교(9,102)건으로 5% 가톨릭(14,299) 건으로 8%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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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한 일 하시는 보살이 원력이라는 게 있기에 그렇게 "가슴 아프고 힘 들고" 하지만,
그게 집념이 되면 나를 해치게 되고(나처럼 오래 위장병도 앓게 되고)
그게 아집, 아상으로까지 자라나게 되어
"내가 하고 있는 일과 관계되는 일"이라고 생각하게 된다면
그 장애에 내 발이 걸리고 내 손이 묶이게 된다는 것을 나는 늦게사 알게 되었습니다.
조절한다는 게 말처럼 쉽지는 않습니다.
너무 팽팽해도, 너무 느슨해도 못쓴다 하였습니다.
보살님은 아직도 굉장한 애착으로 팽팽하게 긴장되어 있습니다.
좀 느슨하게, 약간은 풀어 두세요.
법보 일하면서도 위장병으로 58킬로를 유지하던 환자 정완석이가 지금은 30킬로가 불어나 88킬로에 육박하고 있습니다.
애착을 버리면 체중이 믈고 체중이 늘면 애착도 미련할 정도가 됩니다.
미운 놈은 미운대로,
못난 놈은 못난대로,
모자란 놈은 모자란대로 그냥 두세요.
난 원래부터 교사 체질이어서 그런 꼴을 두고 보지 못하고 교정하여 바로잡아 주고 싶어했습니다.
지금 쓰는 이 편지도 그렇지요?
그러나 이제는 그런 나의 교육방침을 바꾸었습니다.
당장 고쳐지지 않더라도 교사 자신이 절대로 괴로워하거나 자학하지는 말자는 것입니다.
물이 흘러가면서 주변의 것들을 같이 가자 하지만 안 가려는 것은 두고 가듯,
바람 지나가면서 그가 가는 방향으로 같이 가자 하면서도 안 가는 건 두고 가듯,
그렇게 흘러갑시다.
세상은 원칙과 이상만 있는 건 아니잖아요?
그 반대쪽의 것도 반드시 있어야 할 이유가 있기에 존재하는 것인데,
인간이 제 뜻대로 고쳐 놓으려고 하면 되나요?
법(法)이란 곧 자연(自然)의 이치이거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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