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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제록 주해 1
(이 주해는 일지스님이 번역하고 고려원에서 출판한 임제록의 주해입니다. 그러므로 단락을 표시한 숫자는 약간 다를 수도 있으니 참고하시기를 바랍니다.)
마방(馬防)의 서(序)
≪주해≫
* 1) 진주(鎭州) : 현재의 하북성 석가장시(河北省石家莊市)의 북동쪽 가까이에 있는 성시(城市). 옛날에는 상산(常山), 항산(恒山), 항주(恒州)라 불렀다. 당(唐)의 원화(元和) 15년(820)에는 진주(鎭州)로, 오대(五代) 후당(後唐) 때에는 진정부(眞定府)로 개칭하여 송(宋) 이후에는 이를 따랐다. 주변에는 수(隋) 개황(開皇) 6년(586)에 창건된 대불사(大佛寺)를 비롯하여 목탑사(木塔寺), 개원사(開元寺) 등 많은 고찰(古刹)이 있다. 중당(中唐) 이후 북지(北地)의 행정이 어지러워지자 이 지방은 성덕부 절도사(成德府節度使)의 독재적인 실권(實權) 아래 있었다.
* 2) 임제(臨濟) : 임제의현 선사가 주석하던 소원(小院)의 명칭. 임제원(臨濟院) 가까이 호타하(滹沱河)가 흐르고 있었다.
* 3) 혜조 선사(慧照禪師) : 당(唐) 제 17대 의종(懿宗)이 임제 선사에게 내린 시호(諡號).
* 4) 어록(語錄) : 선승(禪僧)의 설법과 일대기(一代記)를 기록한 언행록, 선불교(禪佛敎) 특유의 문헌. 송대(宋代) 이후에는 유가(儒家)에서도 선종의 영향을 받아 유가 독자의 언행록을 만들었다.
* 5) 서(序) : 마방(馬防)이 쓴 이 서문은《임제록》 전체의 조감도 역할을 한다. 이 서문은 전편(全篇) 4언(言) 58구(句)로 이루어져 있으며, 끝부분의「원각로연(圓覺老演)」이하 본록의 유통(流通)에 관한 8구를 제외한, 제1구의「황벽산두(黃檗山頭)」에서 제50구의「할로변멸(瞎驢邊滅」은, 강남의 황벽산에서 수행하던 임제 선사의 대오(大悟)와 관련된 주요 사건과 하북의 임제원에 주석한 이후 다수의 제자들을 훈도하면서 세운 독자적인 가풍을 정리하고 있다. 특히 이 서문은 임제선사의 법문과 일대기를 사언대구(四言對句)의 미문(美文)으로 간결하게 표현하고 있는 명(名) 서문이다. 원래 송(宋), 원(元) 이후 네 가지의《임제록》서문이 씌어졌는데 이 서문이 가장 잘 알려졌다.
* 6) 연강전학사(延康殿學士) : 관명(官名), 한림원(翰林院)에 소속되었으며, 사방에서 올라오는 문서들을 진독(進讀)하는 직책. 오대(五代) 후당(後唐)의 시기에 설치된 관직으로서 단명전학사(端明殿學士)라고 부르기도 했으며, 송(宋)에 들어와 몇 번 이름이 바뀌었다가 정화(政和) 4년(1114)에 이르러 연강전학사라고 부르게 됨.
* 7) 금자광록대부(金紫光祿大夫) : 금인자수(金印紫綬)를 매는 궁중고문. 주로 사선관(司膳官)을 가리킨다.
8) 진정부로(眞定府路) : 진주(鎭州). 로(路)는 송대(宋代)의 지방 행정구역으로서 전국을 24 로(路)로 나누었다.
* 9) 안무사(安撫使) : 중앙정부에서 파견된 지방순찰관으로 병사(兵事)와 민사(民事)를 겸하여 통괄하는 지방장관.
* 10) 마보군도총관(馬步軍都總管) : 금위최고무관(禁衛最高武官)으로서 마군(馬軍)과 보군(步軍)을 총괄하는 고위 사령관.
* 11) 지성덕군부사(知成德軍府事) : 진주(鎭州)에 주재하는 문무(文武) 겸임의 지방장관.《용재수필(容齋隨筆)》4, 부명군액(府名軍額) 조(條)에 의하면 성덕군부사는 진정부로안무사(眞定府路安撫使)를 겸한다고 되어 있다.
* 12) 마방(馬防) : 그의 전기는 자세하지 않다. 오정섭(吳廷燮)의《북송경무년표(北宋經撫年表)》제 2권에서는 당시 이곳의 장관을 지낸 조율(趙矞), 주방언(周邦彦), 성장(盛章) 등의 인물이 실려 있으나 마방(馬防)이라는 이름은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당시 마방은 중요한 관직을 겸임한 것으로 보아 난세를 살다 간 사람이었다고 생각된다. 또한 당시 위협적이던 금(金)과 정치적 교섭을 해야만 했던 송의 입장으로서는 이름을 남기지 어려웠던 사람으로 보인다.
* 13) 황벽산두(黃檗山頭) : 임제 선사가 대오(大悟)를 가리킨다. 행록(行錄)〈38-1〉을 보라.「임제 스님은 황벽 스님의 방망이를 아프게 얻어맞고 비로소 대우(大愚) 스님의 옆구리를 주먹으로 쥐어박을 수 있었다」는 이 구절은 임제 선사의 진인정신(眞人精神)의 출발을 알리는 유명한 이야기. 이 구절은《전등록》․《천성광등록(天聖廣燈錄)》과 내용상 일치하지만《조당집》은 임제의 어록이 공식적인 형태로 정착되기 이전, 대오(大悟)를 향해 각고분투하는 젊은 임제의 모습을 생생하게 그리고 있다.
* 14) 이풍전한(這風顚漢) : 행록〈39-3〉을 참조. 이(這)는「저」로도 읽는다.
* 15) 암곡재송(巖谷栽松) : 행록〈40〉를 참조.
* 16) 곽두촉지(钁頭斸地) : 행록〈42〉을 참조. 촉(斸)은「착」으로도 읽는다.
* 17) 긍개후생(肯箇後生) 운운 : 행록〈43〉를 참조.
* 18) 긍개후생(辭焚机案) 운운 : 행록〈48〉을 참조.
* 19) 원임고도(院臨古渡) 운운 : 행록〈60-1〉을 참조.「벽립만린」은 똑바로 솟은 절벽으로서 쉽게 오를 수 없는 것.「파정요진」은 항상 제일의(第一義)로써 사람을 이끎.
* 20) 탈인탈경(奪人奪境) : 만참(晩參).〈10-1〉을 참조. 삼요삼현은〈9-2〉를 참조.
* 21) 도주(陶鑄) : 도주는 도공이 가마에서 그릇을 만들어 내는 것. 인물을 육성하는 것을 비유. 검추(鈐鎚)는 옥돌을 깎아 다듬다는 뜻. 단련(鍛鍊)의 뜻. 납자(衲子)는 선승(禪僧)을 가리킨다. 다 떨어진 옷을 입고 수도하는 선승의 일반적 호칭.
* 22) 선타(仙陀) : 선타파(仙陀婆, Saindhava)의 줄임말.《열반경(涅槃經)》 제9권에 나오는 이야기로서, 왕이 선타파를 부르면 현명한 신하 선타파는 왕의 의중을 살펴서 일상용품인 소금․그릇․물․말의 네가지 중 어느 하나를 골라서 드렸다고 한다. 여기서는 훌륭한 제자의 비유로 쓰인다.
* 23) 상재가사(常在家舍) : 상당〈8〉을 참조.
* 24) 양당제할(兩堂齋喝) : 상당〈43〉를 참조.
* 25) 조용동시(照用同時) : 이 말은 본문 중에는 보이지 않으나 임제의 사조용(四照用)이라고 부른다.《인천안목(人天眼目)》과 고존숙(古尊宿)《임제록》에는 다음과 같이 실려 있다.
「나는 어느 때는 먼저 비추고 뒤에 작용하며, 어느 때는 먼저 작용하고 뒤에 비추며, 어느 때는 비춤과 작용을 동시에 하며, 어느 때는 비춤과 작용을 동시에 하지 않는다. 먼저 비추고 뒤에 작용하는 것은 사람에게 있음이요, 먼저 작용하고 뒤에 비추는 것은 법(法)에 있는 것이다. 비춤과 작용을 동시에 할 때는 밭 가는 농부가 소를 몰아서 굶주린 사람의 밥을 빼앗고 뼈를 쳐서 골수를 취하여 아프게 침으로 찌르는 것이니라. 비춤과 작용이 같지 않을 때는 물음이 있고 답이 있으며 손님과 주인을 세워서 물과 흙을 섞어서 근기에 따라 중생을 제접함이니라. 만약 이것을 지나는 사람일진대 아직 들추지 아니한 것을 행하여 다스려서 일으켜 문득 가게 하나니 어린아이와 같이 하나니라.」
* 26) 능화대상(菱花對像) 운운 : 능화(菱花)는 바르게 蔆花 라고 쓰며, 겨울의 다른 이름. 고대의 거울은 능화 모양이었다고 한다.
* 27) 불의남매(拂衣南邁) 운운 : 임제의 제자 흥화존장(興化存獎 830~888)의 탑비(塔碑)에 의하면 임제는 함통(咸通) 2년경「포상장공(蒲相蔣公)」이라는 사람의 배웅을 받으면서 남방(南方)으로 행화(行化)하여 얼마 후 위부(魏府)의「태위하공(太尉何公)의 초청을 받고 위부의 관음사강서선원(觀音寺江西禪院)에 입주했다고 한다. 자세한 것은 행록〈60-2〉를 참조하라.
* 28) 흥화사승(興化師承) 운운 : 흥화(興化)와 임제의 고제(高第) 존장. 동당(東堂)은 사원의 은거소(隱居所). 전대(前代)의 주지(住持)를 가리키기도 한다.
* 29) 동병철발(銅鐵鉢) 운운 : 구리로 만든 물병과 철로 만든 그릇. 승려의 생활도구. 엄실두사(掩室杜詞)는 문을 닫고 사람을 만나지 않음. 승조(僧肇)의《조론(肇論)》에「석가는 마갈타(Magadha)에서 문을 닫고 유마는 바이살리(Vaiśāli)에서 입을 닫았다〔所以釋迦掩室於摩竭. 淨名杜口於毘耶〕」라는 구절이 있다. 송로운한(松老雲閑)은 은거생활의 광연자적(曠然自適)함을 나타내는 비유.
* 30) 면벽미기(面壁未幾) 운운 : 달마가 소림사(小林寺)에 9년간 면벽한 끝에 드디어 혜가(慧可)에게 법을 전했다는 고사(故事)에 근거하여 임제가 말후(末後)에 삼성(三聖)에게 법을 전했다는 사실을 서술하고 있음. 밀부장종(密付將終)은 생애의 중대사를 천천히 끝맺었다는 뜻. 풍혈연소(風穴延沼 896~973)는 임제와 삼성의 문답에 대한 평어(評語)를 남기고 있다.《선림승보전(禪林僧寶傳)》3에 보인다. 정법수전할로변멸(正法誰傳瞎驢邊滅)은 행록〈58〉을 참조하라.
* 31) 원각로연(圓覺老演) 운운 : 원각로연은 복주(福州) 고산(鼓山)의 원각종연(圓覺宗演) 선사로서 운문종(雲門宗)의 제 8세. 그는 雲門文偃一香林澄遠-智門光祚-雪竇重顯-天衣義懷-天鉢重元-元豊濟滿-圓覺宗演으로 이어지는 사람이며,《운문광록(雲門廣錄)》의 중간자(重刊者)이기도 하다. 그의 전기를 싣고 있는《보속고승전(補續高僧傳)》24에 의하면 그는 하북(河北) 은주(恩州)의 사람. 성(姓)은 최(崔) 씨. 선화년중(宣和年中)에 휘종(徽宗)의 칙명(勅命)을 받고 궁중에서 설법〔入內說法〕했으며, 전후(前後) 13원(院)에 칙명을 받고 주석하여 제자 1,200여 명을 두었다고 전해지는, 당시 제일류의 명승(名僧)이었다.
* 32) 점검장래(點檢將來) 운운 : 종연의 교정(校訂)이 엄밀하여 틀림이 없으며, 이 책은 임제의 참정신을 전하기에 손색이 없다는 신뢰의 뜻.
* 33) 유여일할(唯餘一喝) 운운 : 본서는 교정에 만전을 기했으나 임제의 할은 문자로 전해질 수 없으므로 문자를 떠나 상량(商量)해야 한다는 뜻.
* 34) 선화경자(宣和庚子) 운운 : 북송(北宋) 휘종(徽宗)의 선화(宣和) 2년(1120). 임제의 입적(入寂) 후 254년 되는 해이다.
* 35) 삼성(三聖) : 진주(鎭州)에 있으며, 임제 문하의 상족(上足)인 혜연(慧然)이 주하던 절의 명칭
* 36) 사법(嗣法) : 스승의 인가를 받았다는 뜻으로써 이 말 속에는 법계(法系) 의식이 강하게 담겨 있다.
* 37) 혜연집(慧然集) : 혜연은 임제의 입적 직전에 정법안장(正法眼藏)을 부촉받은 고제(高弟). 《임제록》의 행록과《전등록(傳燈錄)》12,《조당집(祖堂集)》17잠(岑) 화상의 장(章)에 그에 관한 기사가 실려 있다. 고래로 선종의 어록은 문하에서 가장 뛰어난 제자나 거사(居士)가 고관(高官)의 청(請)을 받아 편집하였는데 《육조단경》의 법해(法海), 《전심법요(傳心法要)》의 배휴(裴休) 등이 그 사례를 보여 준다.《임제록》도 이와 같은 어록 편집의 양식을 따르고 있다.
첫댓글 큰스님의 사려깊으심에 거듭 감사를 드립니다. 오늘도 Dynamic Buddha로 現身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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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게시물이네요. 스크랩 해갈게요~^^
큰스님 감사드립니다.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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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공부되겠습니다. 스크랩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