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규하 [崔圭夏, 1919.7.16~2006.10.22]
최규하 (전직) 대통령
- 생몰1919년 7월 16일 ~ 2006년 10월 22일
- 출생지대한민국 강원 원주시
- 신체키 178cm, 체중 75kg | A형
- 경력제10대 대한민국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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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치가, 외교관. 호는 현석(玄石), 자는 서옥(瑞玉). 원주에서 태어났다. 1941년 일본 도쿄고등사범학교 영문학과를, 1943년 7월 만주 국립대동학원을 졸업하였으며, 미군정 보고서에 따르면 대동학원을 졸업한 뒤 광복 때까지 만주국 관리를 지냈다. 1945년 광복 후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교수가 되었으나 1946년 중앙식량행정처 기획과장으로 옮기면서 농림행정에 종사, 1951년 농림부 농지관리국장 서리를 거쳐 외무부 통상국장이 되면서 외교관의 길을 걷기 시작하였다.
- 1952년 주일대표부 총영사, 1959년 주일대표부 공사로 승진, 그해 외무부 차관이 되었고, 1963년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 외교담당 고문이 되었으며, 1964년 말레이시아 대사, 1967년 외무부장관에 발탁되었다. 1971년 대통령 외교담당 특별보좌관에 취임, 1972년 남북조절위원회 위원이 되어 평양에 다녀왔으며, 1975년 국무총리에 발탁되었다.
국무총리 재임 중인 1979년 10.26사건을 맞아 대통령권한대행이 되었고, 같은해 12월 6일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다. 그러나 12월 12일 신군부 세력이 12·12사태를 일으켜 권력을 장악하고 1980년 5월 광주민주화운동을 무력진압하는 과정에서 대통령으로서의 통치권을 행사하지 못하였다. 결국 8월 16일에 사임함으로써 역대 최단기 대통령이 되었다. 이 때문에 그가 이끈 정부는 '과도정부' 또는 '위기관리정부'라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사임 뒤 1981년 4월부터 1988년까지 국정자문회의 의장, 1991년부터 1993년까지 민족사바로찾기국민회의 의장을 지냈다. 2006년 10월 22일 자택에서 노환으로 타계했다.
1967년 제22차 유엔총회 수석대표를 비롯하여 30여 회에 이르는 국제회의에 참석하였으며, 1970년 한국외국어대학으로부터 명예문학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밖에 서훈으로는 1970년 일등수교훈장, 1971년 수교훈장 광화대장, 1979년 무궁화대훈장, 1980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 등 국내훈장과 타이 정부로부터 받은 백상최고훈장 기사대장 등 10여 종의 외국훈장을 받았다.
최규하 대통령 묘역 (대전국립현충원)
[ 생전 서교동 가옥 ]
서교동 최규하대통령 가옥(등록문화재 제413호, 2008년 10월 10일 지정)
* 서울특별시 마포구 서교동 467-5 *
1972년 최규하 전 대통령이 직접 건축하여 거주한 가옥으로 생전의 검소했던 생활상과
유품들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지하1층, 지상2층, 조적조 시멘트 기와지붕으로
1970년대에 유행한 복층 복열형 도시주택이다.
1976년 제12대 국무총리로 부임하기 전까지, 그리고 1980년 신군부의 쿠데타로
대통령직을 사임한 이후부터 2006년 서거할 때까지 가족들과 함께 이 집에서 거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