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부운하에 대하여
삼가 한 말씀 올리겠습니다.(2)
“미래를 함부로 개발하지 말라! 재난과 재앙은 아직 입도 열지 않고 있다” (유역주민께 올리는 두 번째의 글)
#1)
저는 어제와 오늘(2007. 6/2~6/3) 낙동강의 대지류인 남강 집수역을 구석구석 훑고 다니다가 작금에 국민적 화두로 작동되고 있는 “경부운하”를 근심하면서 우리의 소중한 핏줄․젖줄인 이 땅의 江을 뚫어지게 쳐다보았습니다. 또, 江과 함께 길을 가는 크고 작은 도로들을 유심히 쳐다봅니다. 그래서인지 저의 뇌리엔 우리의 낙동강과 바늘과 실처럼 함께 가는 이 도로들(3번 국도, 35번 국도 등)의 모습이 깊게 박혀 있습니다. 한때 낙동강의 대동맥으로 활발하게 소통되었던 이 도로는 마치 버려진 어떤 것들처럼 침묵의 표정으로 길들여져 있었습니다.
통영 대전고속도로, 중부 내륙고속도로, 중앙 고속도로, 대구부산민자고속도로 등엔 차들이 쌩쌩 달리고, 그들에게 모두 모두 빼앗겨버렸습니다. 그래서 고요하고 침묵으로, 마치 지극히 소외된 우리시대의 할아버지 할머니처럼 그 표정이 무표정으로 변해버렸습니다.
그래서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이 땅에 4만불 시대가 오고, 그래서 물류소통의 생산성과 경제성이 그리도 중요하다면 지금처럼 거미줄처럼 건설되어 있는 각처의 고속도로와 기존의 국도․주요 지방도로를 네트워크로 계발시키는 노력과 그에 따르는 대안들은 과연 없는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며칠 전 문경-상주-구미-대구 순회답사를 하면서도 똑같은 생각이었습니다.
활발하게 움직이는 고속도로들에 비해 텅텅 비어있는 주요 국도들에 시간당, 일 일간 과연 몇 대의 차량들이 소통되는 것인가? 구체적으로 상황을(현장상태) 살펴보았는지 묻고 싶습니다.
제가 몇 년 전에 「그대 피울음 내는 강을 보았습니까?」란 글을 쓰고 이것을 여기저기에 보낸 적이 있습니다. 잘 살아 보겠다는 우리의 희망과 의욕에 군말 없이 도와주었던, 마치 우리의 어머니 같은 마음이 이 강과 저 강에 있었음에도 그것들을 제대로 우리의 지혜 속에 거두어들이지 못하고 끝내는 강의 육신을 갈갈이 찢어버렸고, 젖가슴 가득한 온정 넘치는 어머니의 따뜻한 양식을, 생명을, 마음을 바닥내어 버렸습니다. 그래서인지 이 땅의 강과 물결은, 마치 우리 어머니의 그것처럼, 옷고름․옷자락은 바람이 불어도 펄럭이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들만의 필요를 위해 와르르 달려들었던 자식들이 더럽혀놓은 콧물․땟물이 절어절어 굳어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뒤늦게나마 우리는 자각하고 반성하고 참회의 행동으로 모두가, 많은 국민들이 강을 살려내는데 온 힘을 쏟았고, 이제 2000년대 들어서서야 우리의 어머니 같은 江은 비로소 오랫동안 숨겨왔던 엷은 미소를 띠며 제 몸속 물결을 어루만지고 그의, 님의 사랑을 나눠주고 있습니다. 지금 다시 살아나는 “물”도 “갈대”도 “버드나무”도 그런 것들입니다.
우리들이 열심히 살았었고, 어느 정도 경제적인 기반을 갖춘 뒷자리에서 빼앗겨버린, 아니 양보와 배려해주신 님의 상실이 다시 찾아 돌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를 지켜보고 있는 것입니다. 대한민국의 새로운 경제를 생각해봅니다. 경제는 잘은 몰라도 그것을 만들어 가는 사람들과 그 사람들의 마음․정․의욕이 합쳐질 때 가능한 것입니다.
모처럼 찾아 올 우리나라의 재도약․재창조는 우리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마음먹기」와 「마음 모으기」가 자리를 잃는다면 국민적 추동력은 생기지 않을 것입니다.
아무리 훌륭한 비전을 계획하더라도 그것을 향해가는 길이 갈등과 대립과 주장뿐이라면 하나를 얻을지는 몰라도 우리 민족 깊숙이 지니고 있는 진정한 의미는 씨앗을 내리지 못할 것이고, 여기에 따라 다니는 악순환 원귀는 우리와 우리의 후손들과 참 아름답고 소중한 우리 국토를 쫓아다니며 괴롭힐 것입니다.
#2)
江의 생명은 흐름이지 소통입니다. 우리는 지난 시절 우리가 처한 어려움들을 찾아내기 위해 江의 본성을 너무 많이 뺏었습니다. 이제는 그것들을 되찾아주고 되찾아진 그것들을 통해 국민의 힘을, 국민의 능력을 모아야 할 때입니다.
아시다시피 중국의 경제가 빠른 속도로 쫓아오고, 이에 반해 중국 민친현 쪽에서 쉼 없이 불어오는 황사바람은 옛날의 그것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우리를 괴롭히고, - 중국의 경제와 환경이 옛 인해전술처럼 되살아나고, 일본의 발걸음은 우리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빨라지는데 - 우리의 경제를 재생산하려면 우리의 무한한 가능성 현장이자 뿌리인 이 땅 자연생명력을 함부로 버리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미래의 경쟁력이기 때문입니다.
江으로부터 본 받는 “흐름”의 동기를 「마음먹기」와 「마음 모으기」로 찾아야 할 것입니다.
「경부운하건설」의 논리와 수치들을 이야기하기 전에 우리들 옛 성현들이 염려하였던 민족적 지혜와 안목을 생각하고, 이 시대 우리가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과 필히 모든 이들에게 물어, 물어보고 해야 되는 일을 함께 생각하는 것이 우선순위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만약 「우리가 꼭 해야 할 일」이라면 우리 모두가 힘을 합쳐 행동으로 옮겨가야 합니다.
우리의, 어쩌면 우리보다 뛰어남을 가질 수 있는 후손들도 그렇게 생각할 것입니다.
#3)
Ⅰ. 안타깝습니다. 뭐 눈엔 뭣만 보인다란 말이 있습니다. 좋은 뜻으로는 장인 정신일 수는 있지만 나쁜 뜻으로는 편견과 아집의 뜻입니다.
더 중요한 것은 그것에 부화뇌동하는 모습들입니다. 우리가 쉽게 알 수 있는 몇몇 정치인들은 정치인이 되기 전에 이런 현상을 경계했지만, 이제는 스스로가 앞장 서 자신의 정체성을 포기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 예견되었던 “먹이사슬”의 관행입니다.
부산만 하더라도 낙동강에 94%정도가 목을 매달고 있고, 낙동강의 구체적인 이해관계인 “수질 문제”에 극도로 민감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이 곳의 정치인들은 이 상황에 동의하면서 어떤 사람은 변호사로서, 어떤 사람은 시민운동가로서, 어떤 사람은 의사로서 또 어떤 사람은 시민정신을 존중했던 학자로서 부산사람들이 처한 환경적․생태적 위기의식을 대변해줘야 함에도 그들은 그것을 포기하여 온갖 엉뚱한 논리를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나랏일과 제일과 이 땅 국토의 일”을 혼란시키고 있습니다.
Ⅱ. 낙동강의 평균 강 깊이는 1.5m~1.8m입니다. 또 낙동강의 하천 생명력 뿌리는 우리나라 4대강에서도 너무나 특별한 「모래와 그 작용」입니다.
약 5m정도 깊이의 운하 로를 만들려면 최소한 강바닥을 5m이상 긁어내어야 할 것이고, 여기서 파내어진 모래는 「모래와 그 작용」과 함께 사라져 버립니다. 그 누구도 책임지지 못하였던 모래의 하천 자정력은 누가 보상할 것입니까?
만드는 사람은 그것에서 경제적 기반을 찾고, 아주 단위적인 사업을 완수 할 수 있겠지만 그들이 떠난 뒤의 낙동강의 호흡과 맥박과 받아들임과 나눔은 어디서 찾습니까?
왜? 이곳에 살아가는 주민과 전체 유역주민에게 끊임없이 닥칠 악순환과 그 피해에 대한 설명은 없습니까?
Ⅲ. 「로드킬」이라는 불상사가 있습니다. 낙동강을 쪼개어 뱃길과 자연물길을 양존시킨다는 것은 생태계의 「라이프 킬」이며, 끝내는 「리버 킬」이 될 것입니다.
심각한 가뭄기에서도, 낙동강에 가끔씩이지만 어김없이 찾아오는 대홍수기 때에 이런 현상들이 나타날 것 같아 벌써부터 불안하기 그지없습니다.
지난 35년 간 낙동강 현장을 생활처럼 다닌 사람으로서, 현재로 민감한 지점을 골라 「237포스트 생명 찾기」운동에 혈안(?)이 된 본인으로서 만의 염려가 아닐 것입니다. 한림대홍수, 김천철교 붕괴, 구포다리 붕괴, 고려제방 붕괴, 성주제방 붕괴 등 그간 현장에서 지켜본 셀 수 없는 자연과 물의 대반란을 생각할 때, 그냥 생태계 교란과 생태력 차단 말고도 대재난과 재앙은 우리도 모르게 잠복할 것입니다.
그의 잠복은 먼 훗날 우리 아이들 세상에서도 숨어 있을 겁니다.
Ⅳ. 기타 운하물류 이동시간의 착시현상(24시간↔40~60시간), 운하 폭의 결정(50m~70m), 건설예산(17조 전후??)등 물리적으로 계산된 수치 뒤에 도사리고 있는 함정의 가해자는 누구이며, 피해의 수혜자는 누구입니까?
간단한 이야기로 江의 체질에서 낙동강은 한강과 판이하게 다릅니다.
수량․수질․하상구조․하폭․유속․수변이해구조․생태특성 등이 전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다름에 대하여, 어떤 피해와 치유에 관한 계산서가 다를 수밖에 없을 겁니다. 江관련 특별법에서도 이에 대한 다름이 확인 되었고, 구체적 사례로 하천으로 일어나는 이해와 인식이 다르고, 갈등과 대립의 진도가 다르지 않습니까?
Ⅴ. 상수원 문제, 안전사고문제, 수량과 수질 문제 등이 너무나 함부로 이곳의 유역주민들과 의논 없이 생산되어지고 있습니다. 만일 그들이 여러 가지 우려가 있으며, 예측한 재난이 일어났을 때 그들은 이곳의 유역주민과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입니까?
문경의 강가에서 농사짓는 사람, 구미에서 공장을 운영하는 사람, 왜관에서 장터를 꾸리고 있는 사람 등등, 하루하루 살아가는 대부분의 주민들과 함께 살아가는 사람일 때 최소한의 미래를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Ⅵ. 여러 가지 대안들이 필요해서 그 대안들을 위해서라도 유역주민들이 참여하는 “국민계산서”가 필요합니다. 경부운하로서 얻어지는 국가 생산성과 국민이 직접 이해관계자로 참여하는 국민계산서가 그것입니다. 집행자 쪽에서 계상한 내용과 국민들의 생존권, 환경권, 생태 향유권, 교육 자원권, 강으로부터 생성․발전되는 문화권과 문명권이 그것입니다.
운하구조에서 예측되는 악순환(경제적 부담, 문화적 상실, 생태계 교란, 각종 환경 부화현상 속출 등)부담을 유역주민에게 떠맡겨 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 단군 이래 최대의 토목공사 등 양비론에 참여할 뜻이 없습니다. 江은 이 땅 모든 것의 핏줄이자 젖줄이기 때문입니다.
운하를 통한 상실은 오늘의 문제뿐만 아니라 미래의 또 다른 선택과 가능성 차단이기 때문입니다. 퇴계 선생은 성리학을 이끌어 낸 가느다란 풀 청려장과 최치원 선생께서 그토록 예찬하고 염려했던 ‘임경대’와 연암 박지원선생과 상촌 신흠 선생이 염려했던 ‘물아교융’이 생각납니다.
이 강의 주인인 유역주민들은 이 결정에 무한한 책임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2007년 6월 12일
김상화
(사)낙동강공동체 대표/낙동강네트워크 상임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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