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모야마 시대
일본 모모야마 시대(1573-1615)는 쇼쿠호 정권에서 도쿠가와 막부의 강력한 권력에 의해 근세로 진입한 시기로, 고대·중세적인 권위의 몰락을 반영한 강렬한 표현과 호화로운 장식을 보여주는 현세주의적 인간 중심의 문화적 경향을 볼 수 있다.
전국을 통일한 여력은 장대한 성을 구축하고, 미술의 제 분야를 동원하여 장대한 장식 미술을 창출했다. 평화로운 현세를 반영한 의장(意匠) 감각과 고전 문화의 부흥을 의도한 공공연한 결집 등의 기운도 이 시기의 특색이다.
또 하나의 특징으로 센리큐의 '와비차'는 간소하고 한적한 미의식을 추구하여 당시의 호화로운 미의식에 대응했다. 여기에서 일본화적인 독자적 화풍이 싹트기 시작한다.
무가의 초상화, 부처와 부인상, 유아상등 풍속화가 확립되었고 쇼헤이(障屛) 그림의 황금시대를 이루었다. 금·은을 사용한 금벽화가 유행하였다. 소서원(小書院)등의 사적인 곳에서는 수묵화를 선호했다.
이 시대의 화가들은 중국 그림을 일본화하고 다각적인 표현으로 유파를 형성했는데 카노오파가 대표적이다.
성화(聖畵)의 모사와 서양 판화의 제재를 이용한 인물도, 세계도 등을 제작한 풍속도 있었다.
에도 시대
에도 시대(1603-1867)에는 막번체제 확립에 의한 봉건 사회가 완성되고 사농공상의 신분제와 쇄국 등의 정책으로 국내 평화가 유지된 시기였다. 상공업의 발달과 민중 계급이 형성되고 봉건제와의 갈등이 표출된 갖가지 문화가 이루어졌다.
초기에는 모모야마 양식이 남아있는 웅장한 금벽장 벽화가 묘사되어 화조화, 풍속화 등이 주제가 되었다. 전통적인 미술이 보급되었고, 주자학을 관학으로 한 무가의 미적 선호 경향이 나타났다. 소타즈는 민중을 기반으로 하여 야마토에의 전통을 장식적이고 독특한 양식으로 창조했는데 이것은 린파로 계승되었다. 또 신흥계급의 성장으로 사치스런 속세의 향락을 추구하는 미술이 전개되었다.
중기 이후에는 나가사키를 통하여 수용된 청나라와 네덜란드의 지식에 의해 서양화가 탄생했다. 후기에는 막번의 모순이 심화되어 퇴폐적인 풍조가 가득했고 도시 대중들 사이에는 가부키등 상징적인 미의식이 유행했다. 나가사키를 통해 들어온 유리공예는 병, 그릇, 잔등으로 실용화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