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치올림픽의 데니스텐
소치 올림픽이 드디어 폐막 되었다. 역대 동계올림픽중 많은 사연을 남겼던 소치 올림픽
피겨의 여왕 김연아가 있어서 국민들이 행복한 시절을 보냈으며 은메달로 그친 안타까움과
여왕을 영원히 볼수 없다는데 아쉬움이 국민들의 누선을 자극하여 눈물을 흘린분들도 계실것이다. 마지막 갈라쇼에서 보여준 “Imagine”곡을 배경으로 보여준 평화의 메시지를보면서 다시 한번 분쟁과 전쟁이 없는 평화를 갈망하는 세계인들의 가슴속에 뜨거운 메시지를 남겼을 것이다.
한편으로 러시아로 귀화하여 올림픽 영웅으로 등극한 “안현수”선수를 바라보는 국민들의 착잡한 심경을 공감하며 ,광복회회원으로써 피겨의 휘날레를 장식하기 위해 모인 갈라쇼에서 세 번째인가 나왔던 카자흐스탄 국적의 동메달리스트 테니스 텐을 보면서 우리는 잊혀져 가는 기억의 저편 일제강점기에 겪었던 한민족의 “디아스포라”를 기억해야만 할것이다.
그는 구한말 의병장으로 활약했던 의병장 閔肯鎬선생의 高孫子였다는 사실은 신문지상을 통하여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대한민국 어느곳에서 만날 수 있는 친근하며 앳된 미소의 얼굴을 T.V에서 처음본 순간 중국,일본선수인 줄 만 알았는데 카자흐스탄의 문양이 새겨진 유니폼을 입은 모습을 통해 지금으로부터 77년전 한반도가 아닌 이역땅에서 고난의 슬픔의 역사로 가슴속에 묻어버린 한민족의 중앙아시아 강제이주를 기억나게 하였다.
일본이 침탈하기전부터 그 곳 연해주는 비교적 넓은 평원과 수자원을 끼고 있어 농사에 비교적 좋은 조건을 갖춘 곳이었다. 그러나 19세기 중엽까지 청(淸)의 봉금령(封禁令)으로 무인지경 미개척지 였던 곳인데 1860년대부터 지배층의 가혹한 수탈을 피해 굶주린 함경도일대 주민들이 남부여대(男負女戴)하며 정착한 곳이다. 뒤이어서
망국 이전 이주한 농민들과 달리 1905년 을사늑약으로 국내에서 의병전쟁과 구국계몽운동에 참여했던 애국지사들의 “망명이주”가 줄이었다. 연해주는 만주의 용정(龍井)과 함께 항일독립무장투쟁을 지원하는 유인석,이범석,최재형,이상설,이동휘,홍범도,신채호등 명망있는 애국지사들이 지도부로 있는 권업회,대한광복군정부,대한국민의회등 독립무장투쟁에 적극지원하며 신한촌(新韓村)을 건설하여 타국에서 3.1절 기념식,한일병합 반대운동등이 일어났던 민족투쟁의 본거지이며 독립운동의 전진기지였다.
일제가 우리 민족에게 저지른 3대 살육전을 들자면 첫째 청산리 전투에 패배한 일제는 독립군기지들을 초토화하기 위해 3만명의 우리 민족들을 무참히 살해한 “간도 참변(경신참변)”과 관동지방 지진으로 불안정한 정국을 전환코자 조선인 6천여명을 학살한 “관동대학살”과 더불어 1920년 러일전쟁후 포츠머스조약에 따라 남부 사할린을 점령한 일본군들은 일본군 4개사단은 하바롭스크와 연해주 일대를 장악하고 블라디보스토크 일대 조선인 독립운동가의 항일 열기에 일격을 가하고자 신한촌에서 일어나는 반일 성향을 제거하기위해 ”신한촌 4월참변“을 일으켜 300여명의 고려인들이 학살되고 최재형,김이직,황주필등 독립운동가들을 재판도 없이 총살을 했다.
이후 1922년 일본은 이 지역을 철수하고 소비에트 내전에 승리한 적위군들이 이지역을
러시아공화국으로 편입 지배를 함으로써 10년간 우리 민족들은 소비에트 주권의 혜택을
받아 이 지역 20만 우리 민족들은 정치,경제,문화의 “황금기”를 이루었다.
“기억하라! 다시는 이 세상에 이런 괴물이 나타나게 해서는 안된다”반세기 넘게 극비에 붙였던 강제이주관련자료를 발굴,폭로한 우즈베키스탄 고려인 변호사 김 블라디미르의 외침이다. 괴물은 “인종학살의 帝國”소련이다.
우리민족에 대한 강제이주는 계획된 것이다. 일본제국주의에 반대해 싸워온 독립운동가들을 일본스파이로 몰아 체포와 처형과 공포분위기를 조성한뒤 사유재산을 일체 가져가지 못한 점들과 각종 동산과 부동산에 대한 보상도 없이 오로지“일본첩자 침투방지”라는 말도 되지 않는 구실을 붙여 스탈린의 지시로 탄압과 공포속에 1937년부터 강제이주가 실시되었다.
1937년9월9일 이주민을 태운 첫열차가 블라디보스토크를 출발하였다. “검은상자”라고 불리운 이 기차는 안에서 밖을 볼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밖에서도 사람이 실려가는지 안을 볼수 없도록 철저히 위장한 채로 밤낮없이 달렸다. 목적지 먼길을 가는 동안 많은 사람들이 죽어 갔다. 죽은이들을 철길 옆에 시신을 묻고 4주를 걸려 9월말 카자흐스탄 우슈토베에 도착하였다. 그 이후 그들은 초원과 바람 말고는 아무것도 없는 허허벌판에 황무지에 이들을 버려 놓고 가 버렸다. 그들은 이곳에서 토굴을 파고 움막 생활했으며 굶주린 그들을 중앙아시아 현지인들의 도움으로 끈질긴 목숨을 연명하여 지금껏 살아 왔다.
우리 민족을 태운 비극의 수송열차가 달려간 거리는 장장 6,600km에 이주민 총수는 3만6,442가구 17만1781명에 달한다. 그 중 2만가구 9만명은 카자흐공화국에, 1만6천가구 7만6천여명은 우즈베크공화국에 각각 짐을 풀었다. 여기에 그 이후 수송된 4,700명의 인원을 포함하면 강제이주민 총수는 대략 18만명에 달한다. 강제이주를 전후하여 얼마나 많은 우리민족들이 죽었을까 이상 정확하지는 않치만 숙청,기근,질병등으로 최소 9,500명~최대 2만5천명 사망설도 있다. “디아스포라” 그들은 저 멀고먼 내륙에 갇힌 포로와도 같은 정치적 탄압과 차별대우를 받아 왔다.
(김호준 著 유라시아 고려인 150년 에서)
그들을 다시 만나기 까지는 많은 세월이 흐른 뒤인 1991년도 소련연방이 해체된 부터이다.
강제이주된 流民들의 증손자 고손자들이 고려인이란 이름으로 우리들 앞에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CIS 라고 부르는 우즈베키스탄,카자흐스탄 기타 중앙아시아국가에 남겨진 그들은 민족의 정체성을 잊지 않고 색동저고리와 한복들 그리고 변형은 되었지만 우리 고유 명절을 지키고자 애쓰고 있다.
역사의 미아가 되어버린 그들의 후손인 “데니스 텐”이 중앙아시아 민속음악을 배경으로
사뿐히 빙판 위를 날아 다니면서 춤사위를 벌일때 아름다운 모습 뒤로 고난과 슬픔의 역사가 기억됨은 삼일절이 곧 다가옴 만이 아닐것이다.
광복회 대구광역시지부 사무국장 오상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