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淸) 나라 중엽(中葉) 경전의서(經典醫書)를 주석(註釋)하는 학자들이 많았다. 또 경전학파 의가들을 받들어 존중하는 의학계의 풍조가 있었다. 경전학파 학자들 중에는 경전만 존중하고 경전에 의한 틀에 박힌대로 처방하는 학자들이 있었다. 그들은 경전만 이해하려 했으며 경전을 널리 보급시키려고 노력하였다. 경전 이외의 각가(各家)의 방론(方論)은 경멸했다. 다시 말하면 철저한 경전 위주의 경전학파인데 가장 대표적인 인물이 황원어이었다.
한편 경전을 존중하면서 경전 이외의 방제(方劑)는 경시하지만 참작하여 흡수하는 태도를 가진 경전학파가 있었는데 대표적인 학자는 진염조(陳念祖)이었다.
황원어는 소문현해(素問懸解) 13 권(卷), 영추현해(靈樞懸解) 9 권(卷), 난경현해(難經懸解) 2 권(卷), 상한현해(傷寒懸解) 15 권(卷), 상한설의(傷寒說意) 11 권(卷), 금궤현해(金匮懸解) 22 권(卷)(서기1748년), 장사약해(長沙藥解) 4 권(卷)(서기1753년), 사성심원(四聖心源) 10권(卷), 사성현추(四聖懸樞) 4 권(卷)(서기1752년), 소영미온(素靈微蘊) 4 권(卷), 옥추약해(玉楸藥解) 4 권(卷)(서기1754년) 등 10여 권(卷)의 의서(醫書)와 기타 서적을 편찬하였다.
황원어의 저서들을 읽어 보면 심혈을 기울여 정성을 들여 논했고 후학들을 쉽게 이해시키려고 상당히 노력했음을 엿볼 수 있다. 그리고 소문(素問), 영추(靈樞), 난경(難經), 상한론(傷寒論) 등을 비롯하여 기타 경전의서 중 편(篇), 장(章)의 순서가 잘못된 것을 바로잡고 간추려 간소화했다.
그래서 황원어를 ”착간대가(錯簡大家)” 라고도 칭한다. 다시 말하면 ”틀린 것은 수정하고 번잡한 것을 버리고 간략하게 설명하는데 특출한 재주를 지닌 학자” 라는 뜻이다.
또 한편에서는 황원어가 스스로 매우 고명한 척 함에 대하여 ”다고입이동(多故立異同), 이긍독해(以矜獨解)” 라고 말했다. 다시 말하면 ”각 사람의 견해가 다른 점도 있고 같은 점도 있지만 황원어는 대단한 자부심을 가지고 주석했다.” 는 뜻이다.
심지어 황원어는 ”이전을위패료(以錢乙爲悖了), 이이고위혼몽(以李杲爲昏蒙), 이유완소(以劉完素), 주진형위죄얼심중(朱震亨爲罪孼深重), 탁발난수(擢發難數). 우시(于是), 자황제,기백,진월인,장기외(自黃帝,歧伯,秦越人,張機外), 한능면기저가자(罕能免其詆訶者).” 라고 비난했다.
다시 말하면 ”전을은 상식을 벗어났고 이고는 우매하며 유완소와 주진형의 죄과는 무겁고 그들의 죄악은 말로 이루 다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 그리하여 황제와 기백과 진월인과 장기를 제외하고는 질책 받지 않을 사람은 드물다” 는 뜻이다. 황원어는 경전학파 중 가장 완강한 인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