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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시학>, 2008년 여름호.
집중조명
관화(觀火) 외 4편
성선경
남원의 복효근 시인과 천변을 걷다 잘 자란 갈대숲에 들었습니다. 때는 늦가을 너도 나도 가을걷이를 해야 할 마음이어서 저절로 고개가 숙여지는 날이었습니다. 나는 발자국마다 서걱서걱 마음을 베는 갈잎소리에 잔뜩 웅크리고 걷는데요. 갑자기 복효근 시인이 “형 갈대밭에서 해봤어요” 물어왔는데요. 나는 그저 뭐 뭐 웅얼거리며 갈대밭이 갈대밭이 낯을 붉혔는데요.
복효근 시인이 아! 그 갈대밭에서 해를 보았냐고요? 다시 물어오는데요. 나는 짠하고 저는 껄껄 웃고 갈대밭이 갑자기 뭉실뭉실 어깨를 숙이고 낄낄거렸습니다. 함께 간 친구 두 놈도 한 편이 되어 뭉실뭉실 웃는데요. 갈대밭 키가 갑자기 낮아졌습니다. 아주 잠깐 낮아졌습니다. 내 속이 그만 확 다 보였습니다.
내 고향 화왕산 억새밭은 이태에 한 번
달집을 사루 듯 불을 지르는데요
그러면 그 속에서 저질렀던 내 젊은 날의
속곳도 다 타는 줄 알았는데요
이렇게 남원 와서 환하게 보일 줄이야
참 누가 알았겠어요.
심장
내 속에는 섬돌이 하나 놓여있다. 늘 밟히는 돌. 수많은 발자국들의 기억을 갖고 있는 섬돌이 하나 있다. 누구나 밟고 가는 돌. 발자국의 기억에 의해 살아있는 돌. 늘 기억에 아픈 돌. 자주 한숨을 쉬는 돌.
섬돌 아래엔 참 잘 우는 귀뚜라미가 산다. 첩부지 예닐곱 살 먹은 머슴애도 아니고 열여섯 단발머리 계집애도 아닌 것이 귀뚤귀뚤 참 잘 우는 귀뚜라미가 산다. 울음을 멈추려고 섬돌을 쿵쿵 굴리면 불에 덴 듯 더 시끄러운 귀뚜라미가 산다.
그쳐라 울음
그쳐라 울음
네 영혼에도 파스 한 장 붙여줄까?
삭월(朔月)
내가 무너지지 않은 것은 꿋꿋한 가난이었다고 깨어진 접시조각같이 날카로운 방에서 한 세월을 보내며 빼빼 야위게 우는 샛별을 보며 그믐 같은 지갑을 내어 사글세를 내었습니다.
겨우 옷걸이만한 희망에 목을 매고 방패같이 빛나는 윗도리를 척 걸며 적금도 부어보았으나 떠내려 온 빙산같이 대출을 받으러 은행을 찾는 일이 더 많았습니다.
감나무 가지 끝에 걸린 저 조각보 하나 고것이 이제 다 자란 꿈이란 걸 아직도 모르고 또 한 조각 밥상보를 깁는 다 늙은 월남치마 하나와 허리 가는 개미 한 마리.
거꾸로 자라는 고드름 빙산을
면장갑 하나 없이 꿋꿋이 오르는
참 찹찹한 등반
자꾸자꾸 작아지는 가슴을 봅니다.
청어(靑魚)
한참을 묻어둬도 대쪽같이 푸른 사랑도 있는 법. 제 눈을 스스로 찔러 관목(貫目). 그늘에서 삐득삐득 말라가는 저 청어. 겨울 한 철을 다 보내고도 그 눈빛 아직 비리다.
누가 비루먹은 당나귀같이 여윈 선비라도 사랑한 적이 있었던가?
놋그릇같이 시렁 위에 얹어 둔 마음도 아닌데 파랗게 녹이 난 네 사랑이 한 입에 덥석 물기엔 너무 비리다.
쪽파를 얹고 초장을 찍고 미역으로 싸도 아직 비린 사랑
너도 잊고 네 웃음도 잊고 네 사랑도 잊고
그 봄도 잊고 바람도 잊고 꽃그늘도 잊고
이제는 모두 다 잊었는데도 아직 못 잊는
놋제기같이 청청한 네 눈빛.
아직 한참 비리다.
호박밭
비 오는 날은 공일이라고 민화투라도 치는지 늙은 엉덩짝들이 모여 앉았네. 아주 평상에라도 나앉았다는 듯 군입거리를 다시 듯 쩝쩝거리며 엉덩짝들이 모여 앉았네. 며느리 흉이라도 보는가 저희들끼리만 소곤소곤 아주 귀엣말 하듯 모여 앉았네.
웬 할머니들이 단체로 오줌을 누는가? 추적추적 비 내리는 날 다 찌그러진 우산을 쓴 듯 안 쓴 듯 언덕배기에 엉덩짝을 까고 오줌을 누는가? 이젠 아주 부끄러움도 없다고 엉덩짝을 툭 까고 히히거리는가? 손 안대고 누가 멀리 가는가 오줌발 시합이라도 하시는가?
아이쿠! 민망도 하시지
아들 딸 다 키우고
손자 손녀도 다 봤다고
인젠 얼굴도 가슴도 볼품없다고
아예 엉덩짝까지 다 보이시는가
할머니도 참.
성선경 1960년 경남 창녕에서 출생. 1988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널뛰는 직녀에게』『옛사랑을 읽다』『서른 살의 박봉씨』『몽유도원을 사다』가 있다. 현재 마산무학여고 교사이며 『서정과 현실』 편집주간이다.
대담
성선경․맹문재
맹문재 선배님, 안녕하세요. 어느 해인가 진해에서 열린 한 문학 행사장에서 스쳐가듯 본 적이 있는데, 그동안 잘 지내셨는지요. 근황은 어떠신지요?
성선경 김달진문학제에서였지요. 너무 많은 사람들로 정신이 없어 긴 얘기를 나누지 못해 아주 아쉬웠습니다. 저는 2003년부터 『서정과 현실』이라는 시전문지를 맡고 있습니다. 우리 지역 시인들과 전국의 시인들이 교류하는 문학의 장으로 역할을 해보고자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맹문재 제가 선배님을 처음 만난 것은 작품을 통해서였지요. 선배님께서 2004년 상반기의 『서정과 현실』에 발표한 「장진주사(將進酒辭)」를 읽다가 흥미로워 같은 해 5월호 『현대시학』에 작품론을 쓴 적이 있습니다. 그 후 선배님께서 작품을 발표할 때마다 관심을 갖고 보고 있는데, 일상과 전통적인 것들을 제재로 삼고 열심히 쓰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장진주사」가 오랜 전통이 있는 술이란 제재를 인유했다는 점에서 흥미를 가졌고, 소외된 현대인들의 삶을 되돌아보게 하는 점에서 큰 의미를 부여했습니다. 작품을 쓰게 된 동기를 들려주실 수 있는지요.
성선경 저는 「장진주사」를 쓰면서 이런 생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 즉자적(卽自的) 관계와 대자적(對者的) 관계에 대한 소통의 어긋남이라 할까요. 나의 일상(日常)이 다른 사람에게 비춰질 때에는 다르게 해석되어 <너는 너, 나는 나>식의 소통두절을 자주 경험하게 되는데, 여기에서 나 자신이 소시민으로 점차 소외되고 왜소해집니다. 이런 관계를 24절후에 맞춰 노래해본 것인데 맹 시인께서 아주 고맙게 읽어주셔서 빛이 났던 것 같습니다. 참 감사했습니다.
맹문재 앞에서 여쭤본 것을 좀더 이어보겠습니다. 선배님께서는 작품을 쓸 때 일상뿐만 아니라 전통적인 것들도 제재로 많이 삼고 있는데 의도가 있는지요?
성선경 저는 스무 살까지 전통적인 농촌 공동체에서 가난한 농부의 장남, 장손으로 자랐습니다. 이것이 저의 밑바닥에 깔려 있는 정서입니다. 법고창신(法古創新)이랄까요. 저는 농촌 공동체에서 인간이 지향하는 이상향의 모습을 많이 보았습니다. 이런 것들을 제대로 살려내는 것 또한 시인의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잘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사람살이의 큰 원형이 이 농촌 공동체에 담겨져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 시의 지향은 사람살이의 원형을 찾아내는 것입니다.
맹문재 선배님의 세대는 저와 마찬가지로 베이비붐 세대로서 가난과 경쟁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지요. 「쭈글쭈글한 길」 같은 작품을 보면 봉급날 라면 한 상자를 샀는데도 부자가 된 듯한 마음을 나타내고 있어 가슴이 뭉클합니다. 자라온 환경과 가족관계에 대해서 듣고 싶네요.
성선경 저는 경상남도 창녕군 고암면 억만리 청학동에서 할아버지, 할머니 그리고 부모님, 삼촌 두 분, 고모 두 분의 대가족 속에서 장손으로 태어났습니다. 할아버지께서는 인근동에 아주 호가 난 엄한 분이셨고, 할머니는 세상에 둘도 없이 다정다감하신 분이셨습니다. 할머니께 저는 세상천지에 가장 소중한 손자였고, 그만큼 사랑도 많이 받았습니다. 그런 할아버지 할머니께서는 증손자와 증손녀를 보시고 몇 해 전에 돌아가셨습니다. 할아버지께서는 1905년 을사생(乙巳生) 이셨는데 아흔 두해를 사셨습니다. 아버지와 어머니께서는 지금도 고향 마을 청학제에서 농토를 지키고 계십니다. 저는 육남매의 맏이인데 동생들만 있어서 늘 누님이 한 분이 계셨으면 세상살이가 좀 덜 외롭지 않았겠는가 하고 생각합니다.
맹문재 시를 쓰게 된 계기가 있는지요. 영향 받은 인물이나 서적 등에 대해서도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성선경 저는 그 흔한 김소월 시집도 구경해본 적이 없는 농촌에서 살았는데 어느 날 새로 오신 국어 선생님께서 매주 한 편씩 시를 칠판에 적어주셨습니다. 고등학교 때였는데 간단한 설명과 함께 낭송도 직접 해주시는데 이게 아주 가슴을 때렸습니다. 결혼을 하지 않은 선생님이셨는데 그 시간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야 시 라는 게 이런 거구나 했지요. 그리고 습작을 시작했습니다. 처음 폐부를 찌른 시가 윤동주 시인의 「참회록」이었고, 그리고는 신경림 선생님의 『농무』였습니다. 지난하면서도 신명나고 애잔하면서도 그리운 그 세계가 저를 시인으로 만든 것 같습니다.
맹문재 선배님께서는 1988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바둑론」이 당선되어 등단하셨습니다. 등단작과 관계된 이야기를 듣고 싶네요.
성선경 별 재미없는 이야기인데 인터뷰에는 꼭 감초같이 들어 있는 질문이네요. 세상살이가 언제 막다른 골목이 아닌 적이 있었던가, 라는 어느 시인의 말처럼 저는 그때 지방대 4학년이었습니다. 바로 아래 아우가 군 복무를 하고 있었는데 휴가를 받아 찾아왔습니다. 누구나 군대를 가보지만 군생활 중 휴가라는 게 얼마나 귀하고 소중한 시간입니까? 저는 지갑이 텅 빈 4학년이었고 동생에게 휴가 기분을 내줄 형편이 못되었습니다. 3일을 있다가 갔는데 3일 내내 바둑만 두었습니다. 그게 계기가 되어 민족의 문제, 통일문제 등을 생각하며 「바둑론」을 썼습니다. 이게 민족의 해원사상과 관계가 된다는 것은 그 이후에 알게 되었습니다.
맹문재 이야기의 방향을 돌려보지요. ‘서정시학’에서 선배님의 시집이 곧 출간 예정에 있습니다. 좋은 시집으로 한국 시단의 지형도를 새롭게 그리고자 하는 ‘서정시학’을 도와주셔서 고맙습니다. 이번 시집에서는 문어, 북어, 청어, 성게, 숭어 등등 어물(魚物)을 제재로 한 작품이 많이 등장하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요?
성선경 앞에서 말한 것처럼 저는 농촌에서 태어나 농촌에서 자랐습니다. 제 뼈의 근골은 그곳에서 다 만들어진 것 같습니다. 저는 마산이라는 항구도시에서 이십 여 년을 살고 있는데도 전혀 바다 냄새가 나질 않습니다. 그래서 바다 생물을 소재로 시를 한 번 써보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영 바다 냄새가 나질 않아요. 고등어를 그리면 간고등어가 되어 나오고, 문어를 그리면 건어물, 마른 문어가 되어 꽃무늬를 그립니다. 아마 태생적 한계인 것 같습니다. 마산이라는 도시가 바다를 안고 있지만 바다가 너무 호수처럼 잔잔해서 그런지 바다 냄새가 살아 있지 못하고 바다 고린내만 풍깁니다. 짠물이나 짠내는 해안가 사람들에게는 바다 냄새를 의미하지만, 내륙의 사람들에게는 삶의 비루함을 뜻할 때가 많습니다. 제게 아직 바다는 그렇습니다. 내 어릴 적 스무 해가 그 뒤의 서른 해보다 더 큰 영향을 미친다고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맹문재 이번 시집에는 또한 「여기 모란」「모란을 그리다」「모란은 있다」「모란으로 가는 길」「모란에 들다」「모란 그늘」「모란 이후」 등 모란을 제재로 한 연작시가 수록되어 흥미롭습니다. 시집 제목도 이들 작품 중 「모란으로 가는 길」로 정했습니다. 이 작품은 모란에 이르는 길을 추구하지만 결코 도달할 수 없음을 깨닫고 있는 사색 깊은 명편이라고 생각합니다. 모란을 제재로 삼고 쓰신 의도가 있는지요?
성선경 먼저 시집 출간을 맡아주신 ‘서정시학’사에 감사를 드립니다. ‘모란’은 내가 가 닿아야 할 세계이기도 하지만 내 안에 몰입되어 있는 세계, 즉 ‘몰안’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가끔 신기루처럼 일어났다 사라지는 세계. 시인들은 자주 느끼겠지만 세상의 이치가 한눈에 확 들어왔다 사라져버리는 일이 있지 않습니까. 나비가 꽃향기를 스치고 지나가듯 분명히 보았는데 순식간의 일이라 자취도 남아 있지 않고 다시 잡으려야 잡을 수 없는 그런 경험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 순간, 그곳이 모란이겠지요. 내게서 ‘모란’은 가장 아름다운 것이며, 가장 소중한 것이고, 내가 꼭 가닿아야 하는 곳입니다. 좋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맹문재 선배님께서는 이번 시집에서 중점을 두고 있는 점이 있는지요? 그동안 선배님께서는 『널뛰는 직녀에게』『옛사랑을 읽다』『서른 살의 박봉씨』『몽유도원을 사다』 등 4권의 시집을 간행했습니다. 시집마다 중점을 둔 것이 있을 것이고, 사정이 있을 테지요. 각 시집에 대한 간단한 소개와 아울러 이번 시집은 어떤 연계성 혹은 차별성이 있는지요? 선배님의 시세계를 고찰하는 연구자들에게 나침반에 될 것 같은데요.
성선경 첫 시집 『널뛰는 직녀에게』에게는 우리민족의 신화와 원형을 탐구하는 것이 중심이었으며, 『옛사랑을 읽다』는 사람들의 속에 내재된 수성(獸性) 혹은 짐승들 속에서 내재된 도덕성을 알레고리로 풍자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서른 살의 박봉씨』는 시집 제목처럼 빈농의 아들로 태어나 자라나서 도시 소시민으로 살아가는 우리 시대의 박봉 씨의 삶을 그려내고자 했습니다. 그리고『몽유도원을 사다』는 중년이 된 불혹(不惑)의 사십대 삶을 그려내고자 했습니다. 이렇게 보면 제 시집들은 나이를 먹어가면서 느끼는 삶의 태도와 관계가 많은 것 같습니다. 새 시집 『모란으로 가는 길』은 이러한 연장선상에서 만들어졌지만 나이에서 느끼는 허무감이나 세속의 삶에서 느끼는 아픔과 괴로움을 넘어보고자 하는 마음이 많이 들어 있습니다.
맹문재 요즘의 시단에 대해 하시고 싶은 말씀이 있는지요? 실험성을 추구하는 시인들이 시단에서 대거 등장해 움직이고 있는데 어떻게 바라보는지요?
성선경 모든 예술이 그러하겠지만 새로운 개성은 존중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실험적인 시도들이 새로운 시세계를 열 것이라고 나는 믿습니다. 그러나 지나치게 새로움만을 추구하다가 정작 중요한 우리 시대의 보편적 정서를 놓친다면 아쉬움이 있겠죠. 그러나 저는 대체로 긍정적으로 여깁니다.
맹문재 좋은 시란 어떤 것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다소 어려운 질문일 수도 있지만 시에 대한 선배님의 세계관을 집약시켜 보여주는 것이기에 듣고 싶네요.
성선경 글쎄요. 제가 좋아하는 시를 말씀드려야겠네요. 제가 좋아하는 시는 삶의 원형을 보여주는 시를 좋아합니다. 어떤 한 사람의 삶이나 깨달음이 보편적인 세계로 확장되는 시. 나아가서 삶의 전부를 꿰뚫어주는 시를 좋아합니다. 저는 사십을 넘기고, 내 고향을 되돌아보게 되면서 ‘청학재 시편’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경험하고 보아온 청학재의 삶에서 우리 민족 전체의 삶과 애환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내 부모의 삶과 내 이웃들의 삶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제 시가 변화하기 시작한 기점인 셈인데 저는 삶의 원형을 툭 잘라서 보여주는 시를 좋아합니다. 순간적이든 총체적이든 한 삶의 원형을 보여주는 시를 좋아합니다.
맹문재 앞으로 어떤 계획을 갖고 있는지 소개를 좀 부탁드릴까요.
성선경 글쎄요. 무슨 대단한 계획 같은 것은 없고, 뚜벅뚜벅 살아가겠다, 정도입니다. 조금 더 말씀드리면 지금 하고 있는 『서정과 현실』을 꾸준히 해나가는 것과, 좀더 깊이 있는 시를 쓰는 것, 조용히 나이를 먹어가는 것입니다. 뚜벅뚜벅 살아가겠습니다.
맹문재 여러 말씀들 감사드립니다. 내내 건강하시고, 건필하세요. 언제 한번 만나 술 한잔하지요.
맹문재(시인, 안양대 교수)
첫댓글 남쪽에 이렇게 관심있게 하는 분들이 있다는 것이 갑자기 뿌듯해지고 즐거워지네요 이렇게 오고가는 말과 말 사이에서 뚝뚝 떨어지는 것들을 주워 담습니다 앞으로 계속 하나하나 읽어가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