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mo Häyhä
이름을 읽기가 곤란하신가? 솔직히 당 기자도 뭐라 읽어야 하는지 모른다. 왜냐, 이 분은 핀란드 분이시기 때문이다. 이 이름도 읽기 힘든 분이 바로 역사상 스나이퍼계의 최고 대빵 되시겠다. 스나이퍼계의 대빵은 당근 kill한 숫자로 결정되는 법. 이분이 kill한 숫자가 자그마치 542다. 것도 단 100일 동안 말이다. 못 믿겠다구? 요기를 누질러보면 역사상 누가 가장 많이 kill했나 순위가 좌라락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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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넘도 소련넘도 아닌 핀란드분이 어떻게 스나이퍼계를 평정하셨냐구?
너거덜 혹시 Winter War라고 알란가 몰겄다. 2차대전 초기에 소련이 핀란드에게 상호원조와 항구의 조차를 청했다가 개무시당하자 당시 수상 스탈린이 일방적으로 핀란드로 탱크 몰고 들어간 전쟁이 바로 Winter War 되겠다. 왜 겨울전쟁이냐구? 딱 겨울 한 시즌동안 벌어졌으니까. 이 전쟁은 1939년 11월 30일 개전되어 1940년 3월 13일까지 스키타기 딱 좋은 계절에 벌어진 105일 동안의 전쟁이었단 얘기다.
스키 얘기 하니까 월남전 스키부대 얘기 하는 넘, 말 잘했다. 이 전쟁은 그야말로 스키부대가 승패를 결정지은 전쟁이었다. 소련은 이 전쟁에 26개 사단 120만명, 1500대의 전차와 3000대의 항공기를 투입한다. 당시 핀란드의 전력은 16만명, 총 인구라야 3백60만이었으니까 이건 뭐 보나마나한 게임이었을거 같지? |
요분이 바로 스나이퍼계의 神 Simo Häyhä 되겠다. |
근데 스토리가 그렇지 않았단 말씀. 원래 소련의 계획은 졸라 밀어부쳐서 그 해가 가기 전에 헬싱키에서 사열식을 하는 것이었는데 핀란드에는 바로 람보 뺨치는 스키부대와 아줌마들이 만든 화염병이 있었던 거다. 여기서 또 잼난 얘기 하나.
몰로토프 칵테일이라고 들어봤는지 몰겠지만 하여간 화염병을 지칭하는 말이야. 화염병이 왜 몰로토프 칵테일이냐구? 겨울 전쟁이 시작되자 소련은 헬싱키의 민간인 거주지역에 소이탄과 고폭탄을 졸라 퍼부었거덩. 그러자 서방에서는 당장 "씨바 그만해" 말렸겠지. 그러자 당시 소련의 외상 몰로토프는 "우리는 핀란드 인민을 위해 빵을 공중에서 투하했다!"라고 씨부렸단 말야. 이 소이탄은 탄과 껍데기가 분리되는 모자소이탄이었거덩. 그래서 그때 투하했던 소이탄 껍데기는 '몰로토프 빵바구니'란 웃기지도 않는 이름을 얻었단 말이쥐. molotovbreadbasket 로 사전 찾아봐. 다 나와. 그러자 핀란드 군은 잽싸게 화염병에다 몰로토프 칵테일이라는 멋진 이름을 붙여줬단 얘기.
잼없다구? 없음 말구. 하여간 핀란드 군은 지형과 기후조건을 절묘하게 이용해 스키 타고 숲을 누비며 일당백으로 총질하고 밤이면 화염병으로 전차를 까부수며 소련군의 진입을 막는데 성공한다. 더 자세한 스토리는 요기나 요기를 누질러봐. 이 전쟁에서 결정적인 전투는 유럽 최대의 호수 Ladoga호를 둘러싸고 벌어지는데 우리의 주인공은 바로 이곳 Ladoga호 인근의 Kollaa강에서 맹활약하시게 된다. 원래 시민군이었던 Simo는 당시에 Uiluo Tuompo장군 휘하에 배속되어 소련군 9연대, 14연대와 대치하고 있었다. 그리고 여기에서 나중에 "Killer hill"이라 불리게 되는 유명한 킬러고지 전투가 벌어진다. Simo가 속한 중대원은 고작 32명, 소련군은 무려 4000명. 이 전투가 얼마나 치열했었는지는 전투에서 살아남은 핀란드 군이 Simo를 포함해 단 4명이었다는 사실만으로 짐작할 수 있다. 소련군은 무려 400명의 사상자를 내고 퇴각했다. 뒷날 역사가들은 이곳을 Simo의 사냥터였다고 기록한다. 더욱 놀라운 것은 Simo가 사용한 총이 망원스코프 하나 달려있지 않은 Mosin Nagant M28 라이플이었다는 사실.
비록 그가 Suomi K31이라는 기관총에도 능숙했었고 곧잘 이를 사용했었지만 그렇다고 그의 놀라운 전과가 평가절하되는 건 아닐 터. 이때의 전투가 얼마나 대단했는지 지금도 핀란드 사람들은 영웅적인 행동을 일컬어 "The miracle of Kollaa"라고 한단다.
기적은 비단 Kollaa에만 그친 것이 아니었다. 1940년 3월 13일 모스크바 조약에 의해 전쟁이 끝날 때까지 소련군은 무려 20만명의 사상자를 냈다. 그에 비해 핀란드군의 손실은 25,000명. 조약에 의해 소련은 상당한 크기의 핀란드 영토를 얻었지만 손익계산을 따져보면 소련의 완전한 패배였던 것이다. 이 전쟁을 두고 소련의 한 장군이 졸라 멋진 한마디를 했다. " We gained 22,000 miles of new territory . Just enough to bury our dead " .
1940년 3월 6일 소련병의 총탄이 턱에 맞고 폭발, 코마 상태에 빠졌다. 그러나 그가 죽었다는 소문과는 달리 정확히 1주일 뒤인 3월 13일, 소련의 패배로 종전과 함께 그는 병상에서 깨어나 승전보를 듣게 되었다.(나중에 알고보니 총탄이 아닌 폭탄 파편이 었다고 한다.)
전후 한달 뒤 시모 하이하는 핀란드 육군의 매너하임 원수로부터 표창과 함께 중위로 특진하게 되었으나, 중태로 인한 코마 상태에서 깨어난 이후 신경계에 무리가 와 더 이상의 참전은 불가능해진다. 그는 영예 속에서 전역했고, 이후 2002년 4월 1일의 아침에 97세를 일기로 평온히 숨을 거둘 때까지 평범하고 조용하게 살았다.
아래는 1998년 핀란드 한 잡지와의 인터뷰 내용
Q: 어떻게 그런 명사수가 되셨습니까? (How did you become such a good shot?)
A: 연습했지요. (Practice.)
Q: 그런 놀라운 기록은 그럼 어떻게 달성하셨죠? (And about your morbid records?)
A: 까라고 해서 깠지요. (I did what I was told to as well as I could)
만약 이분에게 M82A1을 쥐어주면 어떻게 되었을까??
첫댓글 M82A1을 줬으면, 소련군을 2,3배 더많이도 죽였을것이고, 덤으로 소련군 전차나 장갑차 군용트럭도 잡았을지도, 그러면 이분은 먼치킨대열에 올라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