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은 떨어져도 전통의 맛을 잃어서는 안된다.”
충남 공주시 봉정동에 400년동안 전통술의 맛을 이어오는 종가가 있다.
명인 지복남씨(공주시 봉정동·무형문화재 국가지정 명인 제4호)가 ‘계룡백일주’의 맥을 계승하고 있는 곳이다.
지씨의 남편 이황씨(88)는 조선시대 인조로부터 술의 비법을 하사받은 이귀(李貴·연안 이씨·충정공)의 14대 손이다.
백일주의 원조는 ‘궁중술’이다. 궁중에서 전해졌고 궁중으로 진상했던 술인 것이다.
1623년 반정에 성공한 인조는 일등공신 중 한 명인 이귀에게 왕실 대대로 내려온 궁중술과 이 술의 양조비법을 하사했다. 이때문에 다른 이들은 백일주 맛을 흉내내지 못한다.
이때부터 이 술은 연안 이씨 가문의 자손들과 며느리들을 통해 오늘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며느리에서 며느리를 통해 ‘가문의 술’로 전수됐기 때문에 술을 빚는 방법은 문헌 등에 나와있지 않다.
기능보유자 지씨의 백일주 인연은 24살에 연안 이씨 가문에 시집을 오면서부터 시작됐다.
이후 60년 가까운 세월을 백일주와 함께 하며 많은 인내의 시간을 보냈다.
일반인들이 맛보아선 차이를 느끼지 못할 정도여도 지씨의 고집에 맞추지 못하는 술은 그대로 버려졌다.
술 맛의 전통을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며 그 많은 양의 술을 그대로 버린 적이 부지기수다.
끼니 걱정을 해야할 만큼 형편이 어려울 때도 있었지만 백일주의 전통을 지켜내기 위해 온몸으로 노력했다.
지씨의 노력으로 가문의 정신과 혼이 담겨 있는 백일주는 예전 그 맛을 그대로 담고 있다.
1989년에는 충남도로부터 무형문화재 제7호로, 1994년에는 농림수산부로부터 전통식품 명인 제4호로 각각 지정받는 등 술의 맛과 혼을 인정받았다.
이후 우리농림수산식품 품평회 민속주 부문 대상을 차지하는 등 계룡백일주를 전국에서 손꼽히는 ‘명주(名酒)’로 키워냈다.
2001년에는 민속주 가운데 최초로 한국관광공사로부터 ‘한국관광명품’으로 선정되기도 했고 2005년에는 청와대의 설 선물용 으로 선정되는 등 지씨의 노력이 하나둘씩 결실을 맺었다.
예전에는 에어컨 등 전기용품이 없어 술을 숙성시킬때 필요한 15도의 온도를 유지하는 것이 매우 힘들었다.
이로 인해 온도 변화가 심한 날에는 술이 변질될까 밤잠을 설치기 일쑤였다.
지씨는 “백일주를 만들기 위해서는 100일간 단하루도 게으름을 피울 수 없다”며 “밑술을 한달간 만들고 두달넘게 각종 재료를 넣고 덧술을 숙성시키는 과정은 인내의 연속”이라고 털어놨다.
계룡백일주는 제조과정이 까다롭고 대량으로 생산하지 않아 늘 귀한 술이었다.
조금씩만 만들어 제사상에 올리고 귀한 손님에게나 내놓는 술이어서 공주에서도 백일주 맛을 본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하지만 한 번 맛을 본 사람들의 입을 통해 최고의 술이라는 말이 저절로 나올 만큼 맛은 오래전부터 정평이 나 있었다.
이 같이 술의 맛은 인정을 받았지만 소비자들의 손으로 가기까지 판로에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양주가 즐비한 기존의 매장에 전통주를 원하는 유통매장이 그리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난 95년부터 한 유통매장에 백일주가 입성한뒤, 술을 맛본 소비자들의 입소문을 타고 유명세가 이어지기 시작해 이제는 백화점을 비롯 공항 면세점, 할인매장 등 전국에서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지금은 두 아들과 며느리들이 지씨가 이어온 계룡백일주의 맥을 이어가고 있다.
셋째 성우씨(47)와 넷째 진우씨(41) 등 아들들은 계룡백일주를 전국적인 브랜드로 키워내기 위해 서울 등을 오가며 갖은 애를 쓰고 있다.
성우씨는 “요즘은 명절이 되면 꼬박 한달반 정도 밤을 새워야 하기 때문에 매우 힘들기도 하다”면서 “하지만 소비자들에게 대를이어 빚고 있는 백일주가 전해질 것을 생각하면 즐겁기만 하다”고 웃어 보였다.
두 며느리는 시어머니의 호된 가르침속에 백일주 비법을 하나하나 익히느라 여념이 없다.
셋째 며느리 박은주씨(38·여)는 “백일주 전통의 맛을 살리며 새로이 출시되고 있는 고려홍삼주의 맛을 끌어올리는 것에도 모든 열정을 쏟을 것”이라며 “2남 2녀의 아이들이 있는데 이 가운데 꼭 대를 이을 아이가 생겼으면 좋겠다”고 미소 지었다.<公州=吉相勳·孟泰勳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