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9년 1월15일
군문에 입대하여 해가 바뀌고 700 특임 부대원으로 첫날을 맞았다.
아직 중대보직을 받지 않고 경비중대 콘크리트 신막사의 30평 내무반에서 달랑 나혼자
밤을 맞이 하였다. 난 이 기괴한 부대에 기상시간보다 일찍일어나 전투복을 입고 있었다.
이윽고 어제 보았던 중사 하나가 나를 깨우러 왔다.
“기상! 어~이새끼 일찍 일어났네, 야이 xx야! 누가 너보고 기상시간 전에 일어나라 그랬어?”
“이놈 개념없는 넘 일세. 일단 머리 박고 시작 해볼까!”
“빨리 연병장에 집합!”
중사의 이상한 채근에 난 연병장 ‘경비중대’라는 대오 후미에 섰다.
겨울이라 그런지 어둠이 아직가시지 않는 연병장에는 2개중대 병력쯤 보이는 병력이 서 있었다.
“연대 차렷”
일조점호가 시작되고 난 어안이 벙벙 했다.
중대 병력인데 ‘연대’라니?.........
아침식사시간에는 더욱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무슨날도 아닌데 쇠고기국에 꽁치튀김, 잡채, 김치, 우유 등이 나와있고 거기다 삶은계란1개까지..
식사를 마치고 연병장을 바라 보고 있으려니 더욱 놀라운 광경이 펼쳐졌다.
주위는 온통 산이고 위병소 옆에 커다란 콘크리트 2층막사 하나! 연병장 끝으로 역시 콘크리트
2층막사 하나! 산중턱에 보일 듯 말듯한 슬라브 막사 하나의 전경이 펼쳐져 있다.
더욱이 큰내무반에는 덜렁 나혼자 나두고 지나가는 경비중대원들은 서로 말조차 하지 않으며
나역시 본척 만척 하는 것 이다. 또한 경비중대원의 복장은 신교대에서 지급 받은 군복과 동일한데
저멀리 즉, 연병장 끝의 막사에서 쏟아져 나오는 소수의 군인은 지금에서야 볼수 있는 얼룩무늬
위장 군복을 입고 있었다. 정말 도통 이해가 가지 않았다.
10시 무렵 아무도 없는 나혼자 있는 내무반 문이 덜컹 열리며 20여명 군인이 쏟아져 들어왔다.
이들은 이등병 계급장에서부터 일병계급 까지 다양했으며 군번 앞번 번호조차 제각각 이었다..
이들 뒤에 상사계급장을 단 하사관 하나가 소리를 질렀다.
“지금부터 모든 개인 소지품은 반납하고 여기에다가 ‘나의성장기’를 빽빽하게 쓴다. 실시!”
모두앞에 갱지10장과 볼펜 한자루가 지급되고 모두들 알몸으로 엎드려 글을 써나갔다.
상사계급장을 단 하사관은 우리가 써내려간 ‘나의성장기’를 꼼꼼히 살피며 빽빽하게 쓰지 않은넘
에게 비명소리가 나게끔 주먹세례를 퍼부어 주었으며 다시 쓰게 한 것은 물론 이었다.
12시 점심시간이 되자 상사는 소리를 질렀다.
“자· 신체검사와 관물반납은 끝났다. 행정실에서 곧 피복을 지급받고 점심을 먹고 이 자리에 모인
다. 실시!“
점심식사 역시 푸짐한 반찬에 다들 눈이 휘둥그레지며 내무반에 모여 조심스러운 이야기가 오갔
다. “이기 뭐 하는 부대고?” “시방 특공대 아닌가벼!” “허벌나게 고생해 어쩌쓰까!”
하지만 누구도 대답하지 못한채 내무반에서 제각각 통성명이 오갔다.
“우리 통성명 이나 하자! 나 88년 9월 군번으로 논산에서 포병 하반기교육 받고 온 정성수 이다”
“증평군번으로 11월 군번 이구먼. 사격잘해서 청와대 102여단 간다고 했는디 여기 왔구먼”
“으따 의정부 11월군번으로 사격 잘해서 여까장 와불었어야”
결국 여기 모인 사람들은 크게 두가지 부류로 구분되었다.
신교대에서 사격을 잘 하거나 포사격 하반기 교육을 받고 온 부류로 팔도 병력이었고 공통점은
운전면허가 있고 신병교육대에서 교육 우수자 인 것 이었다.
곧이어 낯익은 중사와 상사가 오더니 신원조회가 있을 예정이고 보안대에서 나올 예정이니
입조심 하라며 당부 하였다.
그날 저녁역시 푸짐한 식사를 마치고 나오는데 짬통 옆에서 앞치마를 두르고 담배 피는 낯익은
얼굴을 만났다. 그는 같은 학교 대학 같은과 후배녀석으로 내가 학교3학년때 군에 입대한 녀석
이었다. 내가 아는척 하자 그는 놀라면서 주위를 살피며 내손을 끌고 부식창고로 데려갔다.
“창화야 오랜만 이다. 벌써 상병 이네” 내눈에서 알 수 없는 눈물이 나왔다
“형 오랜만이야 근데 어쩌다 여기까지 왔어” 그의 눈에도 눈물이 맺혀져 있었다.
난 창화로부터 700특임부대에 대한 정보를 소상히 들을수 있었다.
설수산부대는 말로만 전해져 오는 HID교육 훈련 후발부대로 1970년대 사라졌다가 버어마 아웅산
테러사건이 일어나자 다시 창설되고 교육내용이 변질 되었다. 즉, 처음 여기부대에 선발된 인원은
무술 유단자로서 하사관 체제의 특임 공수 타격 임무가 주어졋으나 86년 아시안게임 이후 부터는
일반병체제로 전환 되면서 경비중대, 호송대대로 구분되었다.
즉, 위병소 옆의 건물은 경비중대로 부대시설을 경호와 관리를 할 뿐 별다른 훈련없이 잘먹고 지
내고 있으며 연병장 끝의 건물 막사는 호송대대 건물로 4개중대 병력으로 이루어져 있다.
하지만 1개중대병력은 24명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교대로 2개중대씩 교대로 1년에 6개월씩 전방
교대근무에 들어가고 있으며 산속에 허름한 슬라브 건물은 폐건물로 옛날 HID 건물과 아직도 북
파 공작원이 부정기적으로 상주한다는 소문이 있다는 것이다.
창화는 여기온 이유를 잘 모르겠으며 다만 논산에서 포병 후반기 교육에서 독도법 최우수 사병으
로 1주일 포상휴가를 다녀온후 이부대로 배치 받았다고 한다.
그리고 이부대에 배치된후 부대배치 동기들과 체력측정을 다시 받았으며 신원조회에서 과거 데모
전력이 문제가 된듯하여 호송대대에서 탈락하여 경비중대로 보직을 옮겨오고 근무가 따분하던차
에 취사병이 부족하여 지원 했다는 것 이다.
참고로 이부대의 부식은 자기가 알기에는 대한민국 최고 라는 자랑이 배어 있었다.
또한 호송대대 부대원과는 말 한마디 못 나누는 것이 부대 전통이며 가급적 안 마주칠려고 노력
한다는 것이다. 경비중대원들도 각자 맡은 근무만 할뿐 구타등의 가혹행위가 거의 없다고 했다.
끝으로 창화는 내손을 잡고 내무반으로 돌아가려는 나에게 당부를 하였다.
“형! 군생활 고생 하지마 좇도 명예심에 특수 임무 입네 하고 떠들지만 군에서 고생한거 나가면
알아주기나 하는 줄 알어. 형! 호송대대 선발되면 아프다고 우겨 그리고 학교에서 데모 존나게 했
다고 우겨 그래도 않통하면 난 자꾸 하늘을 보면 집생각에 잠못이룬다고 해! “
창화의 말을 뒤로 하고 난 내무반에 돌아와 깊은 생각에 빠져 버렸다.
일석점호를 마치고 막 잠이들려는 오후10시 40분경 갑자기 내무반 문이 벌컥 열렸다.
“야 시키들 기상! 어쭈구리 동작보지! 한손엔 판쵸우의! 한손엔 탄띠! 왼발에 슬리퍼! 오른발에 전
투화! 전원 팬티 바람에 연병장 집합!!“
중사 하나가 들어와 악다구니를 쓰고 있었다. 다들 기괴한 몰골로 연병장에 집합을 하니 엄숙할
자리가 오히려 웃음바다를 이루었다. 하지만 이들의 웃음은 오래 가지 못했다. 강원도 산골 영하
15도 겨울추위가 이들을 얼어붙게 하고 있었다.
이윽고 연병장 연단 중앙에 소령 하나가 올라와 일장 훈시를 늘어놓고 있었다.
“반갑다. 나는 호송대대 측정관으로 여러분들과 일주일간 훈련의 성과를 측정한다. 훈련에 이의가
있거나 체력에 문제가 된다면 즉각 조교에 말해라. 체력에 약한놈 호송대대에 들어올 자격없다.
“남자로 태어나 이왕 군생활 할거면 멋지고 당당하게, 사회에 나가서 군대 이야기 한가락 할려면
우리대대 부대원으로 거듭 태어나길 바란다“
제4화 - 호송대대
지금 생각 해보면 여느 평상시 일반부대 훈련과 다름 없었지만 그당시는 지옥같은 훈련 이었다.
오전엔 정지 20발 사격과 자동 탄창4개들이 60발 사격측정을 받았고 곧바로 점심식사후 20km
산악행군으로 이어지고 저녁식사후에는 야간교육이라고 해서 공용화기 및 개인화기를 분해조립
숙지 훈련을 하고 p77이라 불리는 무전기 사용교육, 포사격에 관련한 독도법, 항공지원 요령등을
교육 했다. 물론 못하는 병사는 무수한 얼차려와 구타가 이어 졌다. 교육 6일째는 전체교육 측정
이라 해서 100km 산악행군이 이어졌다. 24시간 이내에 주파해야 피말리는 산악 강행군이 이루어
져 몇 명의 낙오자가 발생 하기도 하였다. 난 훈련병도 훈련병 이지만
조교 또한 대단 하다고 행각 했다. 조교들은 군장만 않들었지 우리와 똑같이 걷고 교육을 받고 잠도 안잤으니까!
7일째 우리는 호송대대 간부 및 경비중대 간부 앞에서 간단한
측정 면접을 보고 자대배치를 받았다. 측정면접은 아주 단순했다. ‘너, 측정결과가 좋다, 호송대대 들어오라’ 였다.
내차례가 되자 난 창화가 일러준 대사를 읖조리기 시작했다.
“제가 학교 다닐때 학생회 간부를 했는데...” 순간 면접관들의 인상이 찌그러들었다.
“그래서 뭐야! 수배당했어?”
“그건 아닌데요...”
“그럼 뭐야 너 이시키 나랑 장난해?”
대위 계급장을 단 경비중대 간부의 고함에 순간 난 얼어 붙었다.
곧이어 간부들 사이에 수군거림이 있고
“나가봐”
난 나오면서 제발 호송대대만 걸리지마라 하고 빌었다.
결국 호송대대에서 탈락한 일부병 몇 명과 나는 경비중대에서 보직을 받게 되었다.
경비중대에서 소총수 막내로 근무한지 3일째 나는 행정반으로 불려갔다.
“너, 전출이다. 관물대는 그대로 놔두고 소총만 챙겨서 호송대대 행정반으로 가!
청천 같은 벽력에 힘이 빠져 호송대대 행정반으로 불려갈 즈음 주위에서 수군거림이
들려 왔다 “호송대대 신병이 의가사 제대 한다며........”
을씨년스러운 호송대대의 행정반에서 간단한 전출신고를 하고 소대로 배치를 받기전
중대 행정반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식어빠진 커피를 난로 옆에서 홀짝 홀짝 들이키며
나를 힐끗힐끗 쳐다보는 중위가 있었다. ‘어딘가 안면이 있는데.. 어디서 봤드라...’
곧이어 중대장 전입신고를 마치고 소대장과 면담 시간이 있었다.
나를 쳐다보던 그 중위가 배속 소대장이 되었다
담배 한개피를 빼어문 중위는 나에게 담배를 권하며
“ 나, 본적 없냐? 너 인천 부평 살았지?” 하며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나는 고개를 빼어들어 소대장을 자세히 본 순간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대천이 형!’ 살던 동네 형이었다.
이형은 전문대를 나와 현역에 입대를 원 했으나 체중과다로 방위판정을 받자 3군사관학교에
지원하여 기어코 현역을 이루어낸 ‘폼에죽고 폼에사는 형’ 이었다. 다이어트를 했던 건 말할 필
요도 없고.
“너 내가 뽑았다. 먼저 한놈을 뽑았는데 시골에 계신 부모님이 암에 걸려 오늘 내일 한다더군!
전방에 가면 인원차출이 힘드니까 말이야. 간부회의에서 어제 다른 연대로 배속 시켜 버렸지..
“ 아참 너 학교 다닐때 데모 했다며?”
순간 난 말이 없었다.
“ 내가 네 신원보증 했다. 무슨 문제가 있으면 내가 책임지겠다고.. 하긴 마땅한 신병도 없고,,
그렇다고 다시 신병을 받자고 군단에 건의 하기가 그렇잖아....."
" 경비중대 이등병 명단의 신상명세에서 널 발견 한건 우연한 아니 하늘이 내려준 기회고,,,,,“
“ 할 말 있냐?”
난 호송대대는 가기 싫다고 이야기 하려는 결심이 나를 위해 보증 섰다는 대천이 형에게 아니
안 중위에게 할 말 이 없었다.
“ 쨔샤! 군생활 다똑같애! 여기 부대 소문이 좀 험하게 나서 그렇지, 편하게 군생활 할 수 있어!
게다가 넌 내 전령 이잖아“
할 말을 잃어버린 난 묵묵히 나의 신임 소대장 안중위 말을 듣고 있었다.
‘전령 이라고 쳇 나는 스나이퍼인데...’
제5화 - 특임
1989년 5월
드디어 난 일병계급장을 달게 되었다.
시간이 약 일까?
군대에서 그리운 여자친구에게 연락 할 방법은 오로지 편지뿐인데,
부대 특성상 편지검열 문제로 많은 제제를 당하고(보안검열-부대특성등) 검열을통과 한다고 해도
전달기간이 장기간 소요(10~15일)걸리는 군사우편 때문에 이용에 어려움이 있었다.
더욱이 부대에 갓들어간 신병이 편지쓸 시간이 허락되지 않았고 편지 쓴다는 것 자체가 군기
가 빠졌다고 생각하는 고참때문에 편지 쓴다는 자체가 불가능 했다.
하지만, 불가능한 일이 가능하게 된 것은 바로 소대장 때문이었다.
신병의 어려움을 잘 알고 있는 소대장은 개인일이라며 나를 자주 소대장 막사에 불러 편지쓸
시간도 주고 군사우편이 아닌 일반편지로 갈 수 있도록 도움을 주었다.
군생활 4개월 쯤 드디어 미미에게서 답장이 왔다.
분홍색 편지봉투가 시선을 자극하듯 편지가 내손에 전달되는 감촉은 전기에 감전된듯 마구떨려
왔고 말 못할 기쁨이 넘쳐왔지만 이내 눈시울은 뜨거워졌다.
내용은 단순히 안부를 묻는 내용이지만 나는 글귀 하나라도 놓칠세라 읽고 또 읽고
나중에는 외울 정도가 되고 너무 펼쳐 보아서 편지지가 헤어졌지만 누가 볼세라 소총 개머리판
청소도구함에 깊숙히 숨겨두었다.
휴가때 꼭 한번 만나 보리라. 시간이 너무 더디게 흘러갔다.
그동안 군생활을 통해서,
부대상황을 대략 알았지만 전방에 투입되지 않았기 때문에 아직은 잘 모르는 부분이 더
많다고 느껴졌다.
지금까지 알고 있는 호송대대 정보는
12명이 1개 소대로 이루지고 다시 6명 단위로 2개팀으로 이루어지고 각 팀장은 소대장과 선임하사
(중사계급)로 이루어지며 조원들은 단풍하사 1명과 병장 상병 일병 이등병 순로 구성되어졋다.
또한 중대는 2개소대와 1개의 지원소대(행정,보급,구조)로 이루어졌다.
결국 중대3개가 하나의 대대를 구성하게 된 것이다.
현재까지 파악된 평시임무는 동부전선에 걸쳐진 DMZ(비무장지대) 의 GP를 기점으로 북방
한계선 근처 매복 및 수색 적 동향 사진수집,등이었고 전시 임무는 포격 및 항공 지원 요청이 주임무
가 설정 되었다. 물론 동해함대의 화력지원 요청도 포함되어 있었다.
전방아닌 후방의 호송대대 군생활은 이외로 간단 하였다.
오전에 주특기훈련, 오후엔 포병독도법 및 생존 훈련을 반복하고 평일 야간에 비디오장비에 의한
소리 음탐훈련(피아간 전차.항공기,야포,소총)을 기본으로 하였다. 거기에다 토요일은 전투 구보라
해서 20KM 산악구보를 했다. 그리고 가끔씩은 실제 북한군복을 입고 AK소총을 분해 결합 및 실제
사격을 했는데 기분이 묘했다
그리고 특이사항으로는 부대내 위계질서가 없는 듯 구타 및 심한 얼차려가 없고 심지어 소대원
사이에서도 하루종일 말없이 지낸 경우가 많았다. 부대원 평균신장이 172CM로 비교적 키가 작았
다. 단, 나와 소대장과 둘이 있을때는 엄청 수다를 떨었는데...(사회에서 뭐가 가장 맛있더라..)
그리고 아직도 모르는 단 두가지!
호송대대의 명칭이 왜 생긴건지와 우리대대가 군단직할 인지 육본직할 인지 구분이 않갔다.
1989년6월
드디어 전방으로 가게 되었다.
야음을 틈타 이름모를 산을 넘어 휴전선 넘어 6개월 전방생활 전초기지인 GP로 들어갔다.
경계운용되는 GP가 있지만 6.25때 썼다던 폐GP(벙커수준)에 주로 전초기지로 삼으며
여기서 2일을 쉬고 각자 배속받은 북방한계선 근처까지 가서 소대 및 팀별로 비트생활에 들어
갔다. 여기서 6개월을 생활 해야 하다니...... 정말 따분하고 그지 없는 생활이었다.
눈앞에 펼쳐진 금강산의 전경은 금상첨화 이지만 적GP의 동태와 적 민경수색대 현황을 사진찍고
군단 모처로 통신 날리는 일에 지쳐갈 무렵 우리가 왜 “호송대대”라 불리는 이유를 알수 있는 사
건이 터졌다.
1989년7월
비가 자주왔던 7월에 우리팀은 이중고에 시달렸다.
빗물에 녹아드는 육체 보다도 한발짝 움직일때 마다 따라 다닌다는 지뢰가 더 무섭기 때문이었다.
산기슭에 6.25때 심어놓은 지뢰가 빗물에 휩쓰려 아래로 굴러오고 흙이 패어 6.5때 전사한 군인
의 유골이 가끔씩 발 밑에서 걸리적 거리는 경우 이다.
금강산 시계가 맑은 어느날 오전 비상이 걸렸다.
“설중매, 귀소 여름 준비하라! 반복한다! 귀소 여름준비한다 이상!”
저격수인 나는 소대전령이므로 통신,의무도 겸하고 있었다.
통신을 받고 소대장과 암구호를 해석한 나는 덜덜떨고 있었다.
“소대장님! 전쟁 입니까?” 소대장은 애써 당황한 빛을 감추며
“현시간부터 GP로 철수하여 준비한다”
폐GP에 도착한 우리는 선임하사팀과 조우하여 각자 특임에 들어갔다.
“현시간 부로 개인 장비를 풀고 군단 포병 화력지점을 유도한다”
“우리는 죽어도 현위치를 벗어날 수 없으며 자신의 위치에서 움직이는 물체는 모조리 사살한다”
각자 능숙한 솜씨로 군장을 풀기 했다.
크레모어 2발, 러시아제 야간스코프가 달린 7.11mm구아노브스키1정, 표찰없는 황색위장군복,
체코제 슈류탄2발...........
다음날 아침 우리소대는 각팀의 얼굴을 부비면서(호송대대전통) 각자 화력지점으로 들어갔다.
오전 10시가 지나서 일까?
예의 북한에서 나오는 대남방송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대남방송의 목소리는?..................
그랬다.
‘임수경’ 이었다.
우리나라에서 여학생 처음으로 독일을 거쳐 북한의 평양축전에 참가한 대학생 이었던 것 이었다.
대남방송에서는 20살의 앳된 임수경의 목소리가 흘러 나오고 있었다.
“ 안녕하십니까? 저는 남한에서 전대협 대표자격으로 평양축전에 참가한 임수경 입니다!.....”
“소대장님! 저년때문 인 것 같군요... 18! 저런년 때문에 우리가 목숨을 건다니까....”
말년병장 최규식이 침을 뱉어가며 상소리로 투덜거리고 있었다. 그는 이번 전방에서 생활만 끝나면 고향에
갈 말년 이었다. 소대장은 아무말 없이 전방만 응시 했다.
그때였다.
진동 무전이 날라왔다. 이건 굉장히 다급을 요하고 중요할 때 쓰는 무전 인데!
“귀소 갈마우지가 날아간다 갈마우지를 환영해라 이상”
순간 소대장은 얼굴이 굳어졌다.
천천히 일어나며 DMZ의 금칙인 담배를 꺼내어 물고는 다소 상기된 어투로
“가자 GP로 돌아가 작전한다! 야 이시키야 빨리 움직여”
첫댓글 good good good^^
너무 재미있어서 다음편을 기다리고 있읍니다 잭니콜님^^
소설 안써요?^^
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