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려와 사원의 사회적 지위와 역할
태국 사회에서 승려는 절대적인 지위를 갖고 있다. 국왕을 비롯한 왕실에 있는 사람들이 무릎을 꿇고 절하는 사람은 승려밖에 없다. 승려는 국왕앞에서도 절하지 않는다.
승려가 엎드려 절해야 하는 대상은 부처님뿐이다. 이러한 승려와 승려가 거처하는 사원은 태국 사회에서 일반 대중에게 다음과 같은 다양한 역할을 하고 있다.
1. 교육기관 : 종교에서 경전은 대개 번역하지를 않는다. 일반 다른 언어로 번역하게 되면 가르침의 참뜻이 얼마간은 변하거나 소실되기 때문이다. 한자로 번역된 경전을 통해 불교를 받아들인 우리나라와는 달리 태국의 불교는 아직까지 팔리(Pali)를 쓰고 있다. 태국어에는 우리말의 한자어 수만큼이나 팔리어와 싼스크릿트어가 섞여 있다. 따라서 글을 잘 아는 사람은 승려였다. 태국에서 승려는 훈장이고 승려가 있는 절은 서당과 같은 곳이었다. 태국어에서 학교라는 의미를 지닌 "롱리얀"이란 말은 근대에 들어와 서구식 학교가 설립되면서 생겨난 신조어이다. 옛날에는 학교라는 단어가 아예 없었다. 절이 곧 학교이고 승려가 선생님이었다. 우리가 이름을 대개는 한자어로 짓듯이 태국사람들도 이름을 대개는 팔리어나 싼스크릿트어로 짓는다. 따라서 글을 모르는 주민들이 작명을 청해오면 이름을 지어주는 것이 승려의 일이기도 했다. 태국에서는 아직까지도 절에서 공부를 할 수 있다. 주로 승려들이 일반 학문을 하지 않고 정해 놓은 과정에 따라 불교를 공부하는 경우가 있는데 시험에 합격할 경우에 나름대로 속세에서 배우는 일반 학문의 학위에 버금가는 증서를 받고 그 학위를 인정받을 수 있다.
2. 의료기관 : 태국에서 사원은 곧 병원이기도 했다. 오늘날처럼 병원이 많지 않던 시절에 글자를 아는 승려들이 주로 민간요법에 관한 서적을 읽고 의학 지식을 습득한 후에 이를 바탕으로 주민들의 질병을 치료하고 위생과 보건을 돌보기도 했다. 따라서 누가 아프면 먼저 절에 와서 승려를 찾았고 승려에게서 적절한 치료를 받았다. 오늘날까지도 태국의 승려들은 민간요법에 의한 의학지식을 갖고 있는 경우가 있다.
3. 사회복지기관 : 불타의 가르침에 따라 자비를 베푸는 승려와 사원은 그 자체가 사회복지기관이기도 했다. 부모를 잃은 고아들은 절에 기거하면서 승려의 심부름을 하거나 절의 잔일을 하면서 공부도 할 수 있었다. 이들은 태국어로 "데카와트" 또는 "아람버이"라 부르는데 오늘날에도 태국 전역의 사원에 적지않은 아이들이 기거하고 있다. 또 사원은 먹을 것을 구하는 사람들에게 음식을 주고 잠자리를 청하는 사람들에게는 잠자리를 제공해 준다. 오늘날까지도 태국을 여행하면서 절에서 밥 한 그릇 얻어먹고 하룻밤 자고 가는 것은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밖에도 태국 사회에서 승려와 사원은 많은 의미를 지니고 있다. 불교 국가인 까닭에 불교명절을 중심으로 한 태국의 축제나 큰 행사는 대개가 절에서 열려서 마을 사람들이 모여 이야기하고 화합과 단결을 이루는 장소이기도 하다. 또 마을의 대소사를 의논하여 일을 처리하는 곳이기도 하다. 가정문제나 주민들간의 불화가 있을 때에도 주민들이 찾아와 의논하고 이를 중재하여 처리해 주는 곳도 승려가 있는 사원이다. 이처럼 사원은 태국인들에게 공간적으로나 심리적으로 가장 가까운 곳이다. 사원은 태국인들에게 없어서는 않될 정신적 구심점이며 마음의 안식처이다. 무슨일이 있으면 가장 먼저 찾는 곳이 바로 사원이다. 또 태국인들은 죽으면 승려를 모셔와 염불을 하고 장례를 치른 뒤에는 절에서 화장을 한다. 그러한 까닭에 사원은 태국인의 생의 종착지이며 승려는 삶의 최후의 동반자이기도 하다.
승려수업
승려수업이란 일정기간 머리를 깎고 출가하여 승려로 불법을 익히고 가르침대로 행하는 것으로 오래 전부터 내려오는 태국의 불교적 전통이다. 태국의 건장한 남자라면 결혼하기 전에는 누구나 한 번 승려수업을 해야만 하는데 이를 "부엇껀비얏"이라고 한다. 또 승려수업을 하지 않은 사람을 "콘팁"이라 해서 '익지 않은 사람' 즉, 아직 선악이나 사리를 판단할 줄 모르는 미숙한 사람으로 취급한다. 그러나 성인 남자라 해서 누구나가 승려수업을 받는 것은 아니며 한쎈씨병, 나병, 간질병, 부채가 있는지, 자유인인지 등등 8가지를 심사해서 통과를 해야만 한다. 또한 태국의 승려들은 227가지의 계율을 지키며 생활하는데 이것을 "파라지카"라 하며 그 중 '살생의 죄', '여자를 범하는 죄', '훔치는 죄', '거짓말의 죄' 등 이 4가지("파티목카"라 칭함)를 범하면 교단에서 추방을 당하고 승적을 박탈 당한다. 태국에는 비구니들이 없는 것이 특징인데 옛날에는 332가지의 계율을 지켰다는데 세월이 흐르면서 너무 어려워 자동으로 없어졌다고 한다. 일단 승려가 되면 아침에 눈을 뜨면서 부터 저녁에 잠자리에 들기까지 모든 생활이 계율에 따라 행해져야 한다. 아침 6시 전에 일어나게 되면 모두가 침소에서 나와 목욕을 하고 정해진 장소에 모이게 된다. 승려들이 모두 모이게 되면 마을에 탁발을 나가게 되는데 마을 전체를 구역별로 분류하여 거기에 따른 조를 편성하여 나누어 가게 된다. 따라서 어느 한 집도 승려가 다녀가지 않는 집이 없다.
태국인들의 불교에 대한 믿음은 독실하여 스님에게 공양하기 전에는 아침식사를 하지 않는다. 탁발을 마치고 돌아오면 지정된 장소에서 식사를 하게 되는데 절대로 자신의 밥을 퍼서 먹을 수 없다. 절에서 일하는 소년들이 밥과 반찬을 떠서 바쳐야 비로소 먹을 수 있다. 이를 "빡껜"이라 한다. 이는 승려는 남이 주는 밥만을 먹어야 한다는 불타의 가르침에 따른 것이다.
불교와 태국인
부모로 부터 신앙을 물려받은 이른바 모태신앙으로 불교가 태국인들에게 수천 년을 내려오는 동안 태국인들의 정신적, 물질적 불교문화가 다양하게 형성되었다. 태국에는 현재 2만 9천 여개의 사원이 있으며 이 사원은 태국인들이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수시로 찾는 곳으로 정신적인 안식처로 또 하나의 집이라 할 수 있다. 태국인들은 절교하는 것을 "시주그릇을 엎는다"고 한다. 태국인들은 하루를 시작하기에 앞서 승려에게 시주하며 1년을 시작하는 새해 첫날에도 시주로 한 해를 시작한다. 태국인들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목에 걸고 다니는 것은 단순한 목걸이가 아니라 스님상이다. 태국인들에게는 어느 스님은 질병을 걸리지 않게 하는 영험이 있으며 어느 스님은 재물을 가져다주는 영험이 있고 어떤 스님은 화를 입지 않게 하는 영험이 있다는 등의 믿음이 있다.
심지어 어떤 사람이 총에 맞았는데 총알이 옷만을 뚫었을 뿐 살갗 하나 다치지 않았는데 그것이 다 그사람 목에 걸고 있는 스님의 영험 때문이라고 한다. 이러한 스님들은 사고 팔기도 하는데 스님상 중에 어느 것이 영험이 좋다고 알려지면 그 가격이 엄청나게 올라간다. 일부 절에서는 사진을 곁들여 신문에 판매 광고를 내기도 한다.
태국인들은 태어날 때는 집에서 태어나지만 죽어서는 모두가 절로 간다. 태국의 절 안에는 화장터가 있어 업을 다한 사람의 육신을 화장하고 영혼을 받아들여 쉬게 한다. 태국인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태국의 불교를 이해하지 않으면 않된다.
태국여행에 안내자가 없으면 식사문제가 상당히 어려울 수가 있으나 안내자가 있으면 전혀 문제가 되지 않겠다. 그러나 한국에서 식사에 어려움이 있는 사람은 고추장 등 자신이 좋아하는 밑반찬을 가져오면 도움은 될 것이다. 태국에서의 식사를 수준별로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1. 짜장면 수준의 간단한 식사($1-2)
이 수준의 식사는 길거리나 일반 식당을 이용하는 것인데 한국인들이 일하다 짜장면 사먹는 식으로 생각하면 된다. 이 수준의 식사는 돈이 별로 들지 않으나 음식은 맛있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음식값이 싼 대신 량이 적어서 한국인들은 2그릇은 먹어야 어느 정도 식사가 될 것이다. 가격은 1그릇에 $1 수준이다. 여기에 콜라나 물을 사먹으면 된다. 그러나 좀 부족한 느낌을 받을 것이다.
이런 음식들은 "꾸웨이띠아오"집을 가야 한다. 이 음식 이름이 보통 "꿰떼오"로 들린다. 그리고 이 꿰떼오는 "꾸웨이띠아오 쎈렉 나암"이 제 음식 이름이다. "쎈렉"의 쎈은 쌀 국수가닥을 말하는 것이며 "렉"은 얇은 것을 말하고 "야이"는 넓은 것을 말한다. 원래 꾸웨이띠아오는 음식 만드는 사람이 기본 양념을 해 오지만 먹는 사람이 양념을 다시 치지 않으면 무맛일 수 있는데 이는 음식 먹는 사람이 고춧가루, 간장, 설탕, 식초 등으로 자신의 입에 맞게 조리하여 먹는 것이기 때문이다.
물이 없는 국수를 먹으려면 "팟타이"를 권한다. 쎈렉 조류의 쌀 국수를 볶은 것이다. 또한 "팟씨이유"는 간장에 볶았다는 말로 쌀 국수 가닥이 한국의 당면이나 마찬가지이다.
밥과 함께 먹을 수 있는 국으로 "까우라우"라는 것이 있는데 되지 고기와 내장과 채소로 만든 국인데 역시 고추가루, 간장, 설탕 등으로 맛을 맞추어 먹으면 한국인의 입에 잘 맞는다.
또한 한국인은 "카우팟" 종류가 입에 맞는데 이는 볶음밥 종류이다. "카우"는 쌀밥이고 "팟"은 볶는다는 말이다. 카우팟에는 돼지(무우), 닭(까이), 소(느아), 새우(꿍), 게살(뿌) 등을 넣어 만드는데 자신이 좋아하는 고기류를 넣으라고 하면 된다. 예를 들면 "카우팟 뿌"를 시키면 게살을 넣은 볶음밥이다. 이때 또한 상에 놓여 있는 조미료("나암프릭" 등)를 가미해야 음식의 제 맛이 나는 것을 기억하여야한다.
이 종류 중에 "팟무쌉 바이깝파오"라는 음식은 매운 음식을 좋아하는 사람의 음식으로 되지 고기에 태국 박하 향이 나는 풀잎을 넣은 것으로 일반 밥에 덮밥으로 나온다.
한국인의 입에 맞는 찹쌀밥 셋트를 소개하면 찹쌀밥 한 봉지에 닭고기 날개쭉지(빅까이/5밧), 소나 돼지고기 꼬치(무싸떼/3밧), 내장 구이(3밧)를 하나나 둘씩 사서 먹으면 일품이다.
죽 종류는 "쪼옥"이란 것이 있다. 죽으로 돼지 살과 내장 등을 넣고 고은 것인데 "빠땅꼬"라는 뛰김을 찢어 넣어서 먹으면 그만이 라고 할 것이다. 쪼옥은 20밧 빠땅꼬는 5밧이면 족하다.
이런 음식은 현지 선교 훈련 차 방문한 젊은이들이 이용할 수 있는 수준이며 태국을 경험하기 위한 모든 팀들이 잠시 이용할 수 있겠다. 그러나 페케지 여행에 따라오면 이런 음식은 맛볼 기회가 전혀 없게 된다. 그리고 일반 여행사는 음식비가 저렴하면서도 싸지 않게 보이는 한국 음식 종류를 주로 택하고 있다.
2. 일반 음식점 이용($5-10)
일반 태국 음식점에서의 음식값은 1인당 $5 수준을 잡고 있는데 MK 수끼($5), 다이도몬 구이식, 팍이산 음식 전문집 등을 들 수 있다.
비싸지 않는 중국 음식점에서는 1인당 $10 수준이면 되는데 페킹덕 쎗트에 몇 가지 음식을 첨부한 것이다. 이 값은 태국의 일반 호텔의 뷔페 음식값이나 동일하며 태국의 유명한 체인 음식점의 가격과 동일하다. 또한 라차다피섹에 있는 짜우프라야 파크 호텔의 수끼 부페나 죽 뷔페도 비슷하며 피자핫 등 외국산 체인음식점과 비슷하다.
이 음식은 보통 한국에서 오시는 목회자 등 어른들이 이용하는 수준이다.
3. 쓸만한 음식 이용($15-20)
특식을 생각 할 때 이용 할만한 음식으로는 고급호텔의 뷔페나 "오이씨"(500밧) "씨후드"(500-1,000밧)를 생각할 수 있다.
태국의 음식문화
태국의 재래식 식사 관습은 준비한 음식을 반상 또는 대나무나 원목으로 만든 마루 바닦에 모두 차려놓고 빙 둘러앉아 손으로 먹는다. 이러한 관습은 "랏타나꼬신" 시대부터 이어져 오다가 1900년대 초 "출라롱컨" 대왕의 현대화 개혁과 1932년의 입헌혁명 등으로 서구 문화가 유입되면서부터 점차 손으로 먹는 습관에서 숟가락이나 포크를 사용하는 식사 습관으로 변화하였다. 그러나 아직도 일부 농촌의 노년층은 손으로 먹는 습관을 쉽게 바꾸지 못하고 있다. 태국을 비롯한 각국, 서남아 그리고 중동의 전지역의 사람들이 과거처럼 손으로 먹는 습관을 가졌었는데, 이러한 습관의 가장 큰 이유중의 하나는 기후 때문일 것이다. 즉 사람들은 열대의 기후에서 살기 때문에 모든 음식을 뜨거운 상태에서 먹지 않고 식혀서 먹어야만 했고 따라서 뜨거운 음식을 즐겨 먹는 추운 지방에서 처럼 숟가락의 사용이 불필요했을 것이다.
오늘날 대체로 도시에서는 식탁을 사용하고 식기는 납작한 접시와 우묵한 대접들을 사용한다. 원래 태국 음식의 조리 방법이 식품 재료들을 잘게 썰어서 조리하는 것이기 때문에 식사할 때에 나이프를 사용하지 않으며 두 손으로 숟가락과 포크만을 사용한다. 그리고 이러한 숟가락과 포크는 개인의 접시에 담겨있는 음식을 떠먹을 때만 사용하며 다른 그릇에 담겨있는 음식을 먹을 때는 개인이 사용하는 숟가락으로 직접 떠먹지 않고 "천끌랑" 이라고 하는 "중앙공동스푼"을 사용해서 각자의 식기에 덜어 온 다음 개인의 숟가락으로 먹는다.
그 밖의 태국인들의 식사 예절로는 음식을 먹을 때는 빨리 먹지 말 것, 소리내지 말 것, 음식을 씹을 때는 입술을 오무리고 씹을 것, 음식이 입안에 있을 때는 말을 하지 말 것, 국물있는 음식을 먹을 때는 들이 마시지 말고 숟가락으로 떠먹을 것 등을 가르친다.
태국 음식맛의 특징은 음식에 따라 다르지만 대체로 고소하고 맵고 신맛이 나는 편이다. 거기에 다양한 향신료가 첨가됨으로 독특한 향미가 난다. 고소한 맛의 음식은 주로 야자즙의 맛이며, 야자를 사용하는 음식류는 과자와 떡 종류를 포함해서 백여 종류가 있다. 그리고 신맛을 내는 재료는 '레몬', '타마린드' 열매의 과육, 식초 등이다. 특히 '타마린드(Tamarind)'는 태국어로 '마캄삐약' 이라고 하는데 피를 깨끗하는 효과가 있어서 산후조리하는 임산부에게 그 과육을 물에 개서 3, 4일간 마시게 한다.
한편, 북부지방과 동북부 지방은 찹쌀밥이 주식이므로 세끼 모두 찹쌀밥을 먹는다. 이 두 지역이 고원지대이고 토양이 찹쌀 경작에 더 적합하기 때문에 다른 지역보다 찹쌀을 더 선호한다. 이 찹쌀밥은 대나무 시루에 쪄서 익힌 꼬들꼬들한 꼬드밥이기 때문에 손이나 용기에 붙지 않고 오래두고 먹을 수 있다. 이 찹쌀밥을 손으로 조금씩 떼어서 다른 반찬과 함께 먹는다. 반찬으로는 닭고기 구이, '랍' 이라는 소고기 무침, '쏨땀' 이라는 '파파야' 생채무침, '냄' 이라는 돼지고기 발효 음식, '남프릭 엉' 이라고 하는 쌈장과 각종 채소, '느어 켐' 육포, '깽헷' 이라는 버섯국, '캡무' 돼지가죽 튀김 등 그 고장의 토속 음식들을 잘 먹는다.
태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단백질 식품은 물고기이다. 태국인들의 단백질 섭취량의 50% 이상이 각종 물고기에서 비롯된다고 한다. 태국은 특히 '쁠라천(가물치)', 과 '쁠라둑(메기)'이 매우 흔하다
그러나 가격면에서 가장 부담없이 먹을 수 있는 물고기는 바다고기로서 '쁠라투'라는 것이 있다.
그외의 단백질 식품으로 계란과 오리알을 많이 먹는데 태국인들은 계란보다는 오리알을 더 선호한다. 그외의 태국음식을 논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남찜(쏘스)'이다. 태국의 '남찜'은 매우 발달하여 음식 종류에 따라 곁들여 먹는 '남찜'의 종류가 각각 다르다. 어림잡아 30여종은 될 것이다. 그런데 대도시의 젊은 세대들의 식관습이 변해가고 있다. 태국인들은 본래부터 가족 단위로 외식을 즐기는 경향이 있지만, 젊은 세대들 중에 외식을 즐기는 인구가 늘어나고 있다. 신세대들은 미국에서 들어온 fast-food 회사인 Mc. Donald, KFC, Pizza Hut 등의 음식들을 꽤 즐기는 편이다.
일부 젊은 맞벌이 부부들은 집에서 음식을 조리 할 시간적 여유가 없기 때문에 저녁에 부부가 밖에서 만나 외식을 하고 집으로 들어가거나 아니면 완전 조리된 비닐봉지 포장음식을 사서 집으로 가지고가 전자렌지나 가스렌지에 비닐봉지 포장음식(반찬)을 데우고 밥만 새로 지어서 먹는게 보통이다. 주말이 되어야만 비로소 각자 취향과 구미에 맞는 음식을 집에서 조리하게 된다. 그들이 즐겨 사가지고 가는 음식들은 대부분 각종 '깽(찌개)' 종류이며 이러한 포장음식을 파는 음식점들은 각 시장이나 백화점, 큰 버스 정류장 그리고 사람들이 많이 밀집해 있는 장소에는 어디든지 있다. 이런 비닐봉지 문화를 "싸이 플라스틱"이라 한다. 길거리의 상점에서 콜라같은 청량음료를 사서 그 자리에서 마시지 않고 가지고 가면 병값을 따로 지불하는 곳이 태국이다. 그럴 때 "싸이 플라스틱 너이 캅"이라 말하면 비닐봉지에 얼음을 넣고 음료수를 좔~~좔 따라 넣고 빨대를 꽂은 다음 고무줄로 눈깜짝 할 사이에 묶어준다. 이 고무줄 묶는 솜씨는 태국인이라면 누구나가 손쉽게 하는 일이다. 그리고, 그 비닐봉지를 손가락에 끼고 다니며 음료수를 마신 다음 남아있는 얼음이 들어있는 비닐봉지는 휴지통에 버리지 않고 주차되어 있는 승용차의 지붕이나 오토바이의 손잡이, 또는 가로수 나무가지 등에 태연하게 걸어놓고 가는 것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세시풍속중에 "쏭끄란" 이라고 하는 우리나라의 민속의 날 같은 명절이 있는데 방콕 인근의 '프라쁘라댕'이라는 곳에서는 "카우쏭끄란"이라는 향기나는 쌀로 밥을 지어 만든 우리나라의 감주 또는 식혜와 비슷한, 물기가 거의 없는 일종의 발효음식을 절의 승려에게 보시하고 주민들도 먹는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송편을 빚거나 가래떡 먹듯이 "까라메"라고 하는 달콤하고 야자 향이 짙게 풍기는 태국 고유의 과자를 만들어 손님을 대접하는 관습이 있다. '부엇낙' 의례, 혼례, 집들이 그리고 기타 경사스러운 민속의례시에는 특별한 음식들을 푸짐하게 만들어 먹는 관습이 있지만 그 중에서도 빼 놓을 수 없는 가장 중요한 음식은 "카놈찐 남야"이다. 이 "카놈찐 남야"는 멥쌀로 만든 길고 희고 가느다란 국수인데 가물치젓, 삶은 생 가물치살, 야자즙, 각종 향신료를 재료로 해서 조리한 소스와 함께 먹는 음식이다. 이 음식을 경사스러운 날 반드시 먹는 이유는 그것이 맛있는 음식이기도 하지만 국수의 색상이 흰색이므로 맑고 밝음을 상징하고 면발의 길이가 길기 때문에 수명과 모든 인간관계와 길한 일들이 오래 지속됨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상례 때는 이 음식을 먹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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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구조와 가치관
불교국가이자 농업국가인 태국은 국왕을 정점으로 하는 입헌군주국으로 국가의 존립이래 외세에게 독립을 잃은적이 없는 국가로 알려져 있다. 국가 존립이 위기에 처할 때마다 태국인들은 왕을 중심으로 지혜를 다하여 극복하였으며
일찍부터 들어온 서양의 문명과 문화에 대하여도 결코 배척하지 않고 수용하였다. 그리고 이 이질적인 외래 문화를 태국인들은 자신들의 고유하고 독특한 정신문화로 태국화하여 발전시켜 오고 있다.
한 나라, 한 민족의 의식구조, 또는 가치관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는 사실에서 보면 태국인의 대다수를 이루는 타이족의 고유문화와 불교문화, 농경문화 그리고 1932년까지 지속된 전제군주제의 영향-싹디나 제도-을 간과하여 태국인의 의식을 설명할 수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이러한 배경속에서 태국인이 어떠한 상황에서 어떠한 생각을 어떻게 하며 어떠한 행위를 할 것인가 하는, 또는 일상생활에서 태국인들이 보편적으로 취하는 선택, 취향, 관심의 방향, 언행, 사고, 희망, 기호 등으로 표현되는 결정이 바로 태국인의 의식이자 가치관이기 때문이다.
미국의 사회학자인 엠브리(John F. Embree)에 의하면 일반적으로 태국 사회는 '느슨하고 완만하게 구조화된 사회' 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것은 엄격히 조직화된 집단들이 결여되어 있고 자발성이라는 의미에서 자신들의 행동을 규제받기 보다는 여러 가지 측면에서 자유롭게 개인간의 관계를 형성해 나가려는 경향을 나타내고 있다. 그런 가운데서도 개인간의 상. 하 관계가 강하게 작용하고 있는 것이 태국 사회구조의 특징이다. 이러한 것은 옛부터 국왕이 절대적인 권한을 갖는 전제군주국이었고, 따라서 국왕을 정점으로 한 사회내의 위계적 신분질서가 근래 태국사회에로 계속 이어져 온 것에 기인된다고 볼 수 있다. 또한 태국은 비옥한 토지와 풍부한 천연자원의 혜택은 태국 사회내에서 집단의 필요성을 약화시키고 평화와 자유를 사랑하는 성향을 갖도록 했으며, 한편 태국인과 태국사회의 정신적인 면을 지배해 온 불교는 종교의 차원을 넘어선 하나의 "생활철학"으로써 태국인의 가치관을 형성해 오는데 큰 역할을 담당했다.
타이족의 "타이"라는 단어는 "자유"를 의미한다. 엄격한 형식이나 남에게 예속되지 않고 무엇이든 하고 싶을 때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자유를 선호한다. 태국인들은 농업을 생업으로 하면서 자유스럽게 자연과 혼연일체가 되어 살고 있다. "진짜 태국인은 농민이다"라는 말이 회자될 정도로 태국인은 농업을 천직으로 알고 있다. 전인구의 약 80% 이상이 농업, 수산업, 목축업, 삼림업에 종사하고 있다. 땅을 중심으로 살고있는 이들은 농사를 중심으로 공동체적 모임이나 행사, 축제가 발달하였으며, 따라서 온 동네사람들은 마치 한 집안 식구처럼 친숙한 관계를 맺고 있어 공동체 의식이 강하고 낙천적이다. 땅이 생활의 원천인 이들은 별로 이사를 하지 않고 사회적 신분의 변화도 거의 없다. 대신 토지에 대한 애착이 강하고 가족을 중심으로한 응집력이 강하며, 전통적으로 가족중심의 자급자족을 위한 경제활동을 하고 있어 소비자와 생산자의 기능을 동시에 갖는다. 농민들은 보수적이고 배타적이어서 인습이나 관습에 집착하며 변화에 스스로 적응하거나 새로운 사실을 받아들이는데 도시인보다 느리고 소극적이다. 따라서 태국인들은 깊은 사고를 하거나 창조적 고통을 기피하고, 무슨 일이든 빨리 끝내기를 바라며 일의 결과가 좋던 나쁘던 상관하려 하지 않고 다만 최선을 다했다는데서 그 의의를 찾고 있다. 영국인들은 연구하는데 재미를 느끼고 미국인들은 일을 하는데 즐거움을 느낀다고 하면, 태국인들은 일을 보는 것 그 자체에서 재미를 느낀다고 할 수 있다. 인간관계도 개인의 감정, 느낌, 관습에 의존하는 성향이 비교적 강하며, 원칙이나 이념보다는 자유를 선호하고 개인간의 관계를 더 중시한다. 인과응보라는 원칙에 입각하여 부모에게 효도함은 물론 대인관계에서 은혜를 알고 보답할 줄 알아야 한다. 은혜를 모를 때에는 "아까딴유"라고 비난받는다. 그러므로 의식이나 체면을 중시하여 결혼, 장례식, 각종 잔치, 보시 등의 일상 생활상의 체면을 지키기 위한 낭비도 서슴치 않는다.
또한 태국은 권위주의 사회이며 신분사회이다. 건국이래 태국은 왕을 정점으로한 통치형태를 고수하고 있다. 13세기에 인도차이나 반도에 정착하여 쑤코타이 왕국을 건립한 이래 1932년에 입헌혁명에 의해 민주주의 제도가 들어올 때까지 태국은 전제군주인 왕을 최고의 통치자로 한 절대왕국이었다. 쑤코타이 왕국에서 아유타야 왕국, 톤부리 왕국, 그리고 랏타나꼬신 왕조(현 짝끄리 왕조)에 이르면서 왕의 성격은 만백성의 아버지이자 스승으로 사랑과 자비, 불교적 윤리성에 입각한 통치자, 즉 탐마라차(Thammaracha, Dhammaraja, 정의로운 왕, 법왕)의 성격과 신왕(Thevaraja), 생명의 주인 (Lord of Life), 그리고 전 영토의 주인 (Lord of Land)의 성격을 지닌 카리스마적 성격을 갖게 되었다. 싹디나 제도에 따르면 태국인들은, 특히 평민은 누구나 상전을 섬기게 되어 있다. 평민은 왕이나 왕족, 또는 관료를 상전으로 모시고, 매년 일정기간씩(처음에는 6개월이었으나 아유타야 왕국 말기에는 4개월, 짝끄리 왕조 초기에는 3개월로 단축 됨) 상전을 위하여 경작하고 건설공사에 참여하는 등 봉사하고 부역을 하여야 했다. 상전들은 사법권이 없는 평민을 대신하여 법적인 문제를 해결해 주었다. 이러한 상전과 평민과의 관계를 흔히 후견인 관계(Patron-Client Relationship)라고 하고 있다. 이 후견인 관계는 태국인의 의식속에 자리잡아 아직도 인간관계를 비롯한 생활 여러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전통적 사회는 1932년 6월 24일에 입헌혁명이 일어나기 전까지 잘 유지되어 공적인 면에서는 권위적이고 수직적인 관계가 엄격히 강조되는 사회였지만 사적인 인간관계는 극히 개인적이며 자유롭고 평화롭고도 낙천적이다. 왕실 및 고위 관료사회를 중심으로 서양의 신문화가 도입되고 독립유지를 위한 근대화가 시작되면서 평민의 부역제가 폐지되고 노예제도 해방되었다.
태국인들의 의식은 윤회와 업보에 대한 사상이 지배하고 있다. "선업은 선과를 낳고 악업은 악과를 낳는다"라는 의식을 굳게 믿는다. 특히 악과는 피할 수 없는 것으로 당사자가 아니면 후손이 받는다고 믿어 공덕쌓는 일에 정성을 다 한다. 아침마다 탁발나온 승려에게 음식을 바치거나 절의 사업, 예를 들어 불상을 조성하거나 사원을 수리하거나 승려의 여행, 승려에게 일용품을 지원하는 일 등등은 "탐분(make merit)의 일환으로 이루어지고 행해진다. 어려움에 처한 다른사람이나 동물에 대해 불쌍히 여기는 마음, 즉 자비심을 갖고 도와주는 것을 인간의 도리로 여긴다.
엣부터 사원은 태국인에게 있어 생활의 중심지이며, 승려는 생활의 스승이자 안내자였다. 그러므로 학교, 병원, 재판소, 오락장, 놀이터, 여행객을 위한 여관, 복지관, 집회장, 박물관, 양로원, 고아원, 창고, 장례식장 등의 기능을 하며, 승려는 종교적인 역할외에 스승, 상담자, 신문물 전달자, 재판관, 의료인, 정부와 국민의 가교 역할 등의 역할을 한다. 이러한 기능은 시골일수록 강하다. 한마디로 불교와 사원, 승려는 태국 사회의 보수성과 일체감의 상징이며, 정신적 총체가 되고 지도자가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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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 사회 문화의 특징
태국 사회문화
가. 민족성 및 사회관습
1) 국왕에 대한 높은 존경심
입헌군주국으로 국왕은 정치에 초연하나 모든 국민이 국왕을 존경
2) 민족 및 국가에 대한 사랑과 헌신
오랜 세월동안 주변국의 침략과 지배를 받으면서 독립을 지켜 온 민족으로서 국가와 자국민에 대한 사랑과 애착이 강함.
국민은 비교적 정직한 편이며 자유주의 사상하에 항상 유괘하 게 웃는 인상을 소지
3) 불교에 의한 가치관
불교의 자비심 및 관용성이 일상생활에 반영
4) 주요관습
두손을 이마에 올려 사례하는 태국식 경례의식은 태국의 국교 화된 불교의식에서 도입하여 생활화된 것
결혼을 위하여 신랑측은 신부측 부모에게 `Sin Sod'라고 하는 일정금액 지불습관이 아직도 전래
불교의 영향으로 20세기 초반까지 성씨제도가 없었음(1913년 처음도입)
- 현재도 사람을 부를 때 성보다는 이름을 부름
- 일례로 Suchinda Kraprayoon 총리의 경우 Suchinda 총리 또 는 Gen. Suchinda로 호칭
나. 종 교
1) 종교별 인구
불 교 : 5,736만명(91.8%)
회 교 : 298만명( 4.8%)
기독교(천주교 포함) : 101만명(1.6%)
기 타 : Hindu, Sikh, Brahmin
2) 종교정책
종교의 자유를 인정하나 실제적으로는 불교이외 종교의 교세 확 장을 바람직하지 않게 보는 정책을 펴고있음.(기독교 선교사 수 의 제한등)
3) 태국 불교의 특징
태국불교는 소승불교로서 규율이 매우 엄격
(대처승이 없고, 정오부터 다음날 아침까지 금식)
남자는 일생에 한번 승적을 보유(원칙적으로는 최소 3개월)하는 것이 사회적 관행
태국은 3만여곳의 사원과 18만명 이상의 승려가 있으며 사원· 가정·사무실·상점까지도 불상을 모셔놓을 정도
불상은 신성한 존재이며 불상 모독은 금물. 일반 승려들도 경 의와 숭앙을 받는 곳이 바로 태국임.
매일 아침 6시 30분전 승려들의 탁발로 국민의 생활이 시작된다 고 말할수 있을 정도이며 시민가정의 공양 모습을 항상 보게됨
다. 언 론
1) 공보·언론 행정체제
공보행정 : 총리실 공보담당장관
- Public Relations Department(PRD)
- Mass Communications Organization of Thailand(MCOT)
언론행정 : 내무부장관(언론매체등록, 대외관계업무 등)
2) 주요 신문
영자지
- Bangkok Post (중립·보수, 약 8.0만)
- The Nation (중립·진보, 약 7.0만)
- Business Day (중립·경제지, 약 2.5만)
태국어지
- Matichon (약 40만부, 지식인 구독)
- Siam Rath (약 15만부, 지식인 구독)
- Thai Rath (대중지·약 100만부)
- Daily News (대중지·약 80만부)
- Naew Na, Manager Daily, Krungthep Turakij, Siam Sports등
중국어지
- Sing Sian Yit Pao(성산일보, 보수, 약 5.5만)등 4개지
3) 통신사
Thai National News Agency
- MCOT가 운영하는 국영통신이나, 각 언론사의 활용도는 낮음
4) 방송 및 TV
방송 : PRD산하 국영 Radio Thailand(전국 네트웍)외에 전국에 491개 방송국 및 지국(AM, FM)
TV : Channel 3, 5, 7, 9, 11 및 iTV(CH 5는 군운영 TV)
Cable TV는 UBC가 26개 채널로 뉴스·영화·오락·스포츠 등을 24시간 방영
5) 언론보도 정책
대부분의 TV는 정부·군에서 소유 또는 운영하며, 여론 형성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음.
순수한 의미의 민영 TV인 I-TV가 96.7월 설립됨.
- 군자체 보도기관 운영(CH 5 TV)
신문·잡지등 기타 언론매체 운영 및 출판은 매우 자유로움.
라. 문화·예술
1) 문화예술 행정관청
국가문화위원회(Office of the National Culture Commission, 교 육부산하)
- 문화발전정책의 개념화, 국가문화정책의 집행, 민족문화특성 의 진작
교육부 예술국(Fine Arts Department)
- 문화유산의 복원·보존 및 보급
2) 문화정책 기조
문화유산 보존, 예술창작 진흥, 민족문화에 대한 자긍심 고취
3) 방콕소재 주요 문화관계 국제기구
UNESCO 아·태지역 본부
SEAMEO(동남아 교육장관기구)
SPAFA(동남아 고고미술센터)
4) 타이어
공용어는 Sino-Tibet어계에 속하는 타이어
- 1286년 수코타이 시대의 람캄행대왕이 고대 크메르 문자를 모 방 제정
- 44개의 기본자음과 32개의 기본모음 및 4개의 성조 부호가 있 으며, 10자의 타이 고유 숫자가 있음.
5) 태국 문화의 특징
태국문화의 기조는 인도·버마·크메르문화가 융합된 것이며 불 교문화는 스리랑카로부터 도입됨.
태국 종족은 11세기경 중국 서남단에서 현재의 태국땅으로 이민 왔다는 것이 일반정설이나, 말레이 반도에서 북상을 했다는 설 과 선사시대이후 주변종족들이 계속 이주해 들어와 구성되었다 는 설들이 대립하고 있어, 장래의 연구 과제가 되어있음.
태국의 각종 건축·사원·미술·무용등은 불교문화에서 비롯된 것임.
불력 사용(서기 + 543) : AD 1995 = B.E 2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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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의 교통수단
택시
타기 전에 목적지에 따라 가격을 흥정하는 택시와 미터제 택시 2종류가 있다. 최근에는 TAXI METER 라고 쓴 간판을 부착한 미터제 택시가 많고 기본요금은 35바트이며 미터당 3바트씩 추가된다. 예를 들어 씨암스퀘어에서 오리엔탈 방콕호텔까지 미터택시는 50~60바트 정도이고 흥정하는 택시는 약 100바트 정도가 보통요금으로 정해져 있다. 가능하면 여행자들은 초록색과 노란색이 칠해진 개인 미터택시를 이용하는 편이 좋다. 승차방법은 한국과는 반대방향이다. 저녁 무렵 교통체증은 한국보다 더 심하다
툭툭과 쏭태우
삼륜 택시란 경삼륜차의 화물칸을 객석으로 개조한 것으로 방콕의 명물중 하나다. 짧은거리를 이동할때, 정체가 심한 경우에 툭툭을 이용하는 것이 편리하고 빠르다. 이용방법은 택시와 비슷하지만 요금미터가 없기 때문에 목적지에 따라 흥정해야 한다. 시내에서의 이동은 30~80바트정도이지만 여행자인 경우는 더많이 요구하기 때문에 반드시 사전에 요금을 확인하고 목적지에 도착한 후 지불해야 한다. 또 운전수 중에는 영어를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별로 없기 때문에 호텔등에서 써준 태국어 메모나 지도를 이용하는 것이 좋다. 특히 '툭툭'은 바가지가 심하므로 가능한 이용하지 않는 것이 좋다.'쏭태우'는 뒤 화물칸에 나란히 2열로 긴의자가 있는 작은 픽업용 트럭으로 인도네시아의 베모와 필리핀의 지프니와 유사하다. 쏭태우는 때때로 버스처럼 일정한 노선을 정해놓고 운영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때는 차비도 저렴하다. 그러나 대부분이 택시처럼 특정한 장소를 갈 때 흔히 사용한다. 쏭태우는 소위 택시와 같지만 방콕에서는 찾아볼 수 없으며 택시가 다니지 않는 지역에서 볼 수 있다. 가격은 툭툭처럼 타기전에 흥정을 해야한다.외국인들은 대체로 20바트 정도로 내국인에 비해 비싸다
스카이 트레인
거리제이다 작년 국왕 탄생일에 개통된 세계 최대 규모의 경전철이다. 아직 시내 주요 지역만 운행된다.
버스
그 수가 많고 가격이 저렴하다. 호텔이나 서점, 태국관광청 사무소에서는 버스 노선지도를 구입할 수 있다.거리에 따라 다르나 보통 3바트(에어컨 버스 7바트)정도이다. 버스는 시내에서 가장 중요한 대중교통 수단으로 노선망은 꽤 발달되어 있다. 에어콘이 없는 빨간버스, 에어콘이 있는 버스, 마이크로 버스등 3종류가 있다. 버스의 운행시간 오전 4시30분부터 밤 11시이후까지 5~10분 간격으로 운행된다. 다만 행선지 등의 표시는 태국어로 되어 있어 여행자들은 버스정면과 측면에 쓰여 있는 노선번호를 보고 타야 한다. 버스를 타면 안내양 혹은 요금수납 아저시가 필통모양의 둥근 깡통을 들고 요금을 받으러 온다
고속버스
방콕을 기점으로 전국 각지의 노선망이 발달되어 있다. 공영으로 운영되는 것도 있지만 여행자가 이용하기에 편리한 것은 주요도시를 직접 연결하는 시영 투어버스다. 북쪽지방으로 가는편은 머칫 북부 버스터미날, 남쪽지방으로 가는편은 싸이따이 남부 버스터미날, 동쪽지방으로 가는편은 에까마이 동부 버스터미날을 이용하면 된다. 전차량은 에어콘이 완비되어 있고 전좌석이 지정석이며 요금은 철도의 2등석 요금과 비슷하다. 예약은 각 버스터미널에 서 당일 가능하지만 파타야,치앙마이등 승객이 많은 곳은 미리 예약하는 것이 좋다.
기차
태국에는 저렴한 요금에 깨끗하고 믿을만한 철도망이 거의 전역에 골고루 발달되어 있다. 기차로 싱가폴과 말레이시아까지 연결되어 있고, Express Rakyat 이나 International Express는 매일 파당 바사르와 싱가폴에 있는 세관과 이민국을 통과해서 승객들을 양방향으로 실어 나르고 있다. 승객들은 버터워쓰에서 말레이시아나 혹은 태국으로 향하는 기차로 갈아 탈 수 있다.
태국에서 기차는 중부 평야지역을 거쳐 북부, 북동부, 남부로 이어진다. 대부분의 기차에는 냉방시설이 없는 3등석부터 냉방시설과 취침시설을 갖추고 있는 1등석까지 있다. 1등석에는 두개의 침대칸이 있다. 가족들이 동반한 경우 문으로 연결된 칸을 사용할 수 있다.
장거리를 운행하는 기차에는 부페 식당칸이 있거나 승무원들이 기차안 숙소까지 식사를 가져다 주고 있다. 식사는 일품요리와 코스요리를 선택할 수 있다. 침대차인 경우 화장실과 샤워시설이 되어 있다. 2등석 냉방 침대칸은 객실의 길이를 조정하는 2층침대가 구비되어 있으며 필요한 경우 승무원이 침대칸으로 좌석을 옮겨주기도 한다. VIP기차는 모두 냉방시설을 갖추고 있으며 취침에 편하도록 기울기를 조절할 수 있는 좌석도 특별히 마련해 두고 있다.
▶ 이스턴 오리엔탈 익스프레스
오리엔트-익스프레스 호텔에서 운영하는 이스턴 오리엔탈 특급은 1993년말부터 태국에서 말레이시아를 통과해서 싱가폴까지 운행하고 있다. 승객들은 도중에 관광지나 휴양지로 가기 위해 주요 정거장에서 타고 내릴수 있다.
이 열차는 버터워쓰에 정차하며 (이곳에서는폐낭까지 하루 여행이 가능하다.),싱가포르에 정차해서 말라카로 여행할 수도 있고 방콕에 정차해서는태국북부의 거대도시인 수코타이까지 갈 수도 있다. 또한 푸켓과 후아힌까지 연장여행도 가능하다. 냉방시설을 갖춘 이 호화열차는 본래 뉴질랜드 철도회사용으로 22칸으로 제작한 것이다. 이 열차는 프랑스 디자이너 '제라르 갈레'가 다시 제작하였고「샹하이 특급」이라는 영화에서도 사용되었다. 이 열차는 세 개의 레스토랑 차량과 두개의 바 차량, 관망 전용차량과 다섯개의 서비스-화물차량으로 이루어져 있다. 3등급으로 나눠진 침실칸이 있다.
▶ 장기열차
사무이 섬은 열차나 특급 여객선을 이용할 수 있다. 방콕에서 수랏타니까지 특급열차가 운영된다.(오후 6시30분 출발, 다음날 아침 6시30분 도착). 돈삭부두까지는 버스로 가고 배편으로는 오전10시 30분에 사무이에 도착한다. 정오에 돌아오면 방콕에는 다음날 오전 5시 50분에 도착한다. 사무이 섬과 파난섬까지는 방콕에서 기차로 오후 5시 30분 출발하거나 오후 6시 30분에 버스로 출발하여 사무이까지는 여객선을 타고 들어갈 수가 있다. 정오나 오후 3시에 사무이에서 출발하면 다음날 아침 일찍 방콕에 도착한다.
춤폰, 사이리 해변섬과 동굴은 매주 금요일 방콕에서 출발하여 월요일 오전 5시 50분에 돌아온다. 춤폰 카바나 리조트에 머무른다. 퉁 울란 해변, 자라케섬, 남노이, 남야이, 탈루섬 등을 방문하고 스노클링과 유적지 관광을 즐긴다. 수랏타니, 사무이, 앙통 군도까지는 방콕에서 매 두번째 목요일마다 오전 6시 30분에 출발하고 월요일 오전 5시 50분에 돌아온다. 나나롯지에 머무른다. 반돈시장, 라마이 해변 힌타힌야이,팡섬 등을 거친다.
▶ 카오프라비안
태국국립 철도청에서는 캄보디아에 있는 카오프라비안 사원을 포함해서 여러 관광지를 잇는 철도여행 어드벤쳐를 제공하기 시작했다. 주말과 공휴일에 카오프라비안까지의 여행이 실시된다.
기차는 방콕에서 오전 9시 25분에 출발해서 우본 라차타니에 오후 5시 50분에 도착하고 승객들은 그곳에서 밤을 보내게 된다. 다음날 아침 냉방시설이 된 버스를 타고 관광가이드의 안내를 받으며 카오프라비안과 부근의 유적지와 사원들을 둘러보게 된다. 저녁에 우본 라차타니를 떠나 다음날 아침 5시 35분에 방콕에 도착한다.
▶ 보행자안전수칙
항상 인도나 도로의 인도쪽 변두리로 통행한다.
만약 문제가 생기거나 그렇지 않을 경우에도 다가오는 차를 볼 수 있도록 항상 도로의 오른쪽으로 통행한다.
항상 도로를 건널 때는 안전하다고 생각할 때 건너는 것이 좋다.
특히 방콕에서는 때때로 신호등을 무시하는 차량들이 있기 때문에 버스차선이나 버스를 확인한다. 굳이 건널목을 건너지 않아도 되며, 차량이 뜸할 때 좌우를 살핀 후 길을 건너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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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 선교 현황
1. 태국은 어떤 나라인가?
(1) 일반적 상황
인도차이나 반도의 중앙에 자리잡고 있으며 '불교의 나라' '미소의 나라'로 알려져 있다.
서쪽으로 미얀마(버어마), 북쪽으로 라오스, 동쪽으로 캄보디아, 남쪽으로 말레이지아와 국경을 맞대고 있다.
국제교통의 요지이며 신비한 불교문화로 '동양의 베니스'라고 불리울 만큼 관광자원이 풍부하다. 또한 불교와 더불어 다신종교로 악한 영의 세력이 강하게 자리잡은 사탄의 '유토피아'이기도 하다.
(2) 기후
열대 몬순 기후로 방콕을 포함한 북부, 북동부, 중부지역은 뚜렷한 세 개의 계절을 가지고 있다. 즉 6월 ~ 10월은 우기, 11월 ~ 2월은 냉기, 3월 ~ 5월은 고온의 여름철이다.
수도 방콕의 평균기온은 30℃로 세계에서 가장 더운 지역이며, 강수량은 월평균 1,250mm 이다.
(3) 각 분야별 개황
① 위치: 북위 5 ~ 21。, 동경97 ~ 106。
② 면적: 51만 4천 평방키로미터
③ 인구: 6천5백만명 인구증가율 2.0%
④ 수도: 방콕 - 인구: 1,200만명 (1996년 통계)
면적: 1,565 평방미터 (서울의 2배)
⑤ 종족: 타이족 54%, 타이라오계 28%, 중국계 14%, 기타 4% (말레이, 캄보디아, 인도계 등)
⑥ 언어: 태국어
⑦ 시차: 서울 기준 - 2시간 (늦음)
⑧ 산업: 농업 80%, 공업이 급속도로 발달되고 있음
⑨ 종교: 소승불교 94%, 회교 4%, 중국종교 1.6%, 개신교 0.2%
2. 태국의 선교역사
① 1656년: 프랑스 황제 루이16세가 군대와 기술자와 함께 카톨릭 선교사를 파송. 태국의 '나라이' 국왕이 선교사를 우호적으로 대우
② 1688년: 카톨릭 선교사 콘스탄틴 풀콘의 내란음모 사건으로 카톨릭신자 선교사 투옥. 처형당함. 150년간 쇄국정책
③ 1828년: 개신교 선교사 후레드릭 구츠랍프(독일인. 의사), 톱 링(영국인)이 화란선교협회의 파송으로 태국선교시작. 개신교 선교의 효시.
④ 1878년: 종교관습법이 선포되어 종교의 자유가 인정됨
⑤ 현재 6,500만 인구중 개신교 성도는 10만명 정도의 0.2%에 불과하다. 전체 선교사수 1,300명, 한국인 선교사수 100여 가정.
170년의 선교역사를 가졌지만 선교결과로 볼 때 세계에서 가장 선교하기 어려운 나라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