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발해 멸망의 원인을 백두산의 폭발이라고 하는 설에 대해서는 현재 학계의 대세는 부정하는 추세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일본학자가 20세기 초에 처음 이야기 한 것인데 연변지역이 화산재로 덮힌 지역이고 백두산의 화산활동이 대개 발해 멸망과 근접한 시점이라고 보고서 주장한 설입니다. 발해의 멸망을 자연재해로 설명한 것은 발해의 급격한 멸망의 원인을 설명하는데 있어서 상당한 설득력을 지녔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자연재해가 있었다는 주변국의 기록이 없으며, 상경용천부 궁궐유지에 화산재가 덮였다는 증거가 없는 등 단점이 많은 설입니다.
물론 화산폭발로 농업 생산력이 떨어지거나 민심이 흉흉해지는 등의 문제로 국가의 통치기반이 흔들렸을 가능성도 있기는 합니다.
그러나 현재는 이 설은 대부분의 연구자들이 부정하고 있습니다.
발해가 멸망기에 정치적 혼란이 있었다는 것은 자세한 기록이 없으므로 정황증거로 추정을 하게 됩니다. 첫번째 증거는 왕위계승에 관한 것인데 10대 선왕 이후 왕위에 오른 사람들이 대개 단명에 그쳤고, 정당한 혈통이 아닌 사람들에 의해 왕위가 계승되었다고 보여지기 때문에 왕위 계승을 둘러싼 지배계급 내부의 갈등이 심각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는 것입니다.
두번째는 지방통치제제의 붕괴를 들 수 있는데 구체적인 자료로는 신라와 국경지대에 지방할거세력들이 득세함에도 발해에서 이를 제대로 통제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왕건의 부하인 유금필에게 복종한 북방 야인들은 실상 발해에 속했던 부족들입니다. 또 발해의 중앙정부와 상관없이 신라를 공격한 작은 부족들도 역시 발해의 통치가 느슨해졌음을 알려주는 사례가 됩니다.
세번째는 거란의 침략에 대처하는 발해의 대응이 지나칠 정도로 느슨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중앙정계에 혼란으로 인해 강력한 정책을 추진하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졌음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 밖에도 문관과 무관간의 대립, 고구려 전통고수파와 당 등 주변문화에 심취한 자들간의 대립,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간의 갈등이 발해 후기에 와서 한층 심해졌던 것으로 보는 견해도 많습니다.
이와 같이 혼란한 상황에서 거란이 쳐들어왔기 때문에 발해가 쉽게 멸망했다고 보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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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님께서 거란에 대해 쓰신 글을 읽어 보았는데요.
정치적 불안정으로 발해가 멸망했다고 하셨습니다.
어떤 정치적 불안을 겪었는지 구체적으로 알고 싶습니다.
그리고 매스컴에서 발해의 멸망이 백두산의 폭발로 인해 멸망했다고 하는 주장을 들은 적이 있는데요.
이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