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정리편지? 제목만 봐서는 선뜻 무슨 내용일까 짐작이 가지 않는다. 그래서 표지그림을 자세히 보니 현대 아이들의 이야기는 아니구나 하는 짐작이 갈 뿐이다.
두툼한 게 고학년은 되어야겠네 하면서 책을 휘리릭 훑어보니 삽화가 꽤 마음에 들어 우선 첫 장이 어떻게 시작될까 하는 호기심으로 표지를 넘겼다. 흔한 머리말이나 작가인사말이 나오지 않고 바로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장운은 짚신을 꿰어 신고 마당으로 내려섰다. 상쾌한 아침바람이 얼굴을 스쳤다. 마당가에 서니 마을이 내려다보였다. 아래쪽에 양반들이 사는 기와집이 몇 채 있고, 그 뒤로 스무 채 남짓한 초가들이 작은 개울을 끼고 옹기종기 앉아 있다. 마을은 아침 햇살을 받으며 군데군데 연기를 피워 올리고 있었다.
장운은 이 시간이 가장 좋았다. 조금씩 깨어나고 있는 마을을 보노라면 오늘은 어제보다 나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오늘은 평소보다 일찍 눈을 떠서 마당을 쓸어놓고 보리죽으로 간단히 요기까지 마쳤다.
“누이야, 나무하러 갔다 올게.”
“조심해서 다녀와. 오늘은 나도 밭일하러 간다.”
장운은 지겟작대기로 길가 풀들을 툭툭 쳐가며 걸었다.
떡해먹자 부엉,
양식없다 부엉,
꿔다하지 부엉,
언제 갚을래 부엉.
이야기가 술술 읽혔다. 제목을 들었을 때 딱 풍기는 고서냄새는 전혀 나지 않고 오히려 읽을수록 신선한 느낌이 들어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읽다 보니 어느새 단숨에 한권을 다 읽어버렸다.
다 읽고 난 첫 느낌은 ‘인간에게 상상할 수 있는 힘이 있어 참으로 행복하다’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이 이야기는 작가 배유안씨가 세종대왕이 시집간 딸에게 한글을 시험해 보았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렇다면 백성 중 누군가에게도 시험해보고 한글에 대해 자신감을 얻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이다. 단 한 줄의 역사적인 사실을 바탕으로 쓴 역사 동화이다. 그러니깐 충북 청원군 초정 약수터에 세종대왕이 한글 창제 후 눈병으로 요양 왔을 때를 잡아 초정리에 사는 장운이라는 가상의 아이의 성장통과 맞물리게 하여 감동적이고 재미나게 이야기를 풀어 놓았다.
한글이 어떻게 만들어졌으며 하층민인 백성들의 삶에 어떻게 파고들었는지 실감나게 보여준다. 작가의 탄탄한 구성력과 깔끔한 문장표현으로 같은 이야기라도 아주 구성지게 말 잘하는 사람을 만난 듯 글 속으로 쏘~옥 빨려든다.
빚을 받으려고 누이를 남의집살이로 보내게 한 약재영감과의 갈등, 석수장이로써의 꿈을 키워 가는데 있어 상수의 질투와 방해, 빨간눈 할아버지에게서 배운 글로 누이와 편지를 주고 받으며 느끼는 흥분, 그리고 빨간눈 할아버지... .
무엇보다도 위의 문제들을 잘 엮어서 최고의 갈등에 닿았을 때 솜씨 좋게 결말을 지은 부분이 맘에 든다. 이것은 아마도 아이들에게 국어와 글쓰기를 가르치며 동화를 써온 50대에 들어선 작가의 내공이 아닐까 여겨진다. 한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주인공 장운이와 누이가 어른들이 바라는 너무도 반듯한 아이들이라는 점이다. 물론 그래서 더 좋아하는 학부모님들도 계시겠지만.
겨울방학이 끝나기 전에 우리아이들이 <초정리편지>를 만나면서 새로운 접근 방식의 신선한 충격을 맛보고 또, 좋아하는 일에 정성을 다하며 하나씩 하나씩 이루어나가는 장운이를 만나 가슴속 깊은 곳에서부터 켜켜이 쌓이는 뿌듯함을 같이 느껴보길 바란다.
첫댓글 대구에서 퍼 왔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