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세계화된 국제적으로 공인된 스포츠로 2000년 제27회 시드니올림픽경기대회 때부터 정식종목으로 채택되었다. 태권도는 전신운동으로서 상대편에게서 공격을 받았을 때 맨손과 맨발로 인체의 관절을 무기화하여 자신을 방어하고 공격하는 무도이다.
또한 수련을 통하여 심신단련을 꾀하고 강인한 체력과 굳은 의지로 정확한 판단력과 자신감을 길러 강자에게 강(强)하고 약자에게 유(柔)하며, 예절바른 태도로 자신의 덕(德)을 닦는 행동 철학이다. 태권도의 정신은 수련으로 얻어지는 기술의 소산(所産)이다.
고구려 태권도
고구려의 문화는 말할 것도 없이 한민족문화의 여명기로서 독창적인 내용을 지니고 있다. 태권도의 가장 오래된 실증(實證)은 고구려의 고분벽화에 그려진 풍속도에서 찾아볼 수 있다. 즉, 고구려가 도읍으로 정했던 국내성(國內城:3∼209년)과 환도성(丸都城:209∼427년)이 있었던 지금의 중국 둥베이[東北:滿洲] 퉁화성 지안현 퉁거우[通化省輯安縣通溝] 지방에 있는 고구려시대의 고분 중 하나인 무용총(舞踊塚) 널방[玄室]의 천장지송부(天障持送部)에 두 사나이가 서로 마주 서서 겨루는 그림이 그려져 있고, 또 삼실총(三室塚:퉁거우 지방에서 발굴된 고분)의 삼실 동벽과 서벽에 품세의 자세가 그려져 있다.
그리고 황해도 지방의 고분인 동수묘(冬壽墓:황해도 안악군 유설리에서 발굴된 고분)는 요동(遼東)에서 고구려로 귀순한 연(燕)의 장군묘로서 357년에 봉분(封墳)된 것으로 판명되었으며, 앞방[前室] 동벽에 태권도 겨루기의 자세가 그려져 있다. 이와 같은 사실로 미루어 태권도가 많은 고구려인들에 의해 수련되었음이 입증되고 있다.
신라 백제 태권도
태권도는 고구려 ·신라 ·백제 삼국의 정립시대(鼎立時代)로 들어가 상충적대(相衝敵對)하게 되자, 자연히 무예진흥을 서두르게 되었고, 특히 진홍왕(24대:534∼576) 때 편제를 개편하여 범국가적인 청소년 수양단체가 되었던 화랑(花郞)들의 무예수업을 빼놓을 수 없다. 신라의 무예는 화랑도의 수련기술을 대표적으로 꼽는다. 그들은 학문을 닦는 한편 신체를 단련하고 무술의 하나로서 수박(手搏)을 행하였다. 그들은 유 ·불 ·선(儒 ·佛 ·仙) 사상을 바탕으로 하였고, 그 중에서도 불교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경주 불국사의 석굴암에 부조(浮彫)된 금강역사보살상이 태권도의 막기 자세를 취하고 있는 것은 석가모니의 호위장으로 역사(力士)를 표현한 것이나, 이 상(像)으로 인하여 당시 화랑들에게 미친 태권도의 영향이 대단히 컸을 것으로 본다.
또 그런가 하면, 고려 고종 때 이승휴(李承休)가 지은 《제왕운기》에 나오는 신라 무술의 대목에서 탁견술(托肩術)을 기술한 것이 있는데, 그 중 비각술(飛脚術)의 신비한 기술을 묘사한 시구(詩句)가 있다. 태권도의 옛말인 ‘태껸’도 이 탁견에서 유래한다.
백제에서는 태껸, 즉 태권도가 행해졌다는 기록이나 유적을 볼 수 없으나, 《제왕운기》에 의하면 백제의 무술로 수벽타(手擘打)의 오묘한 기술을 묘사한 시구가 전해지고있다.
고려 태권도
고구려 ·신라 때 어느 정도 틀을 갖춘 태껸이 더욱 체계화된 것은 고려시대에 이르러서이다. 특히 무인들의 사회에서 무술연마의 일환으로 독특한 한 분야를 차지하고 있었던 사실은 여러 사실(史實)에 의해 알 수 있다. 고려사에서는 태권도를 수박(手搏) 또는 수박희(手搏戱)라고 기록했으며, 무예로 권장했기 때문에 그 수준도 상당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나라에서도 수박희를 잘하는 사람에게 벼슬을 내리기도 했다는 기록도 많이 볼 수 있다.
이를테면, 의종(毅宗)은 이의민(李義旼)의 수박희를 가상하게 여겨 벼슬을 올려 주었고, 그 밖에 두경승(杜景升) ·최충헌(崔忠獻) 등이 수박희를 매우 잘함으로써 많은 일화를 남겼다.
조선 태권도
태권도는 무인들의 사회에서 주로 돋보였던 고려시대의 수박희와는 달리 조선시대에서 일반화되어 대중의 수련과 겨루기 등 일반 백성들의 생활영역에까지 크게 파고들었다. 《태종실록(太宗實錄)》 권21, 권32, 《단종실록(端宗實錄)》 권14 <속악유희(俗樂遊戱)> 탁견(托肩)의 조(條)에 의하면 수박을 잘하는 사람을 특채할 정도로 수박희가 보편화되었고, 나라에서도 그 실기를 높이 평가했음을 입증해 주고 있다.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에 의하면 충청 은진현(恩津縣) 경계에 있는 작지(鵲旨) 마을에서는 해마다 백중날(음력 7월 15일)이면 근방 충청과 전라 두 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모여 수박희를 겨룬다 하였다. 이 때는 수박희가 이미 무예의 영역에서 벗어나 스포츠로까지 확대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조선왕조실록》에는 병조 의흥부(兵曹義興府)에서 수박희로 인재를 시험하여 방패군(防牌軍)으로 뽑되 세 사람을 이긴 자를 채용했다는 기록이 있고, 나라에서 수박희로 시험을 보아 군사를 뽑는다는 소문을 듣고 이방 향리(鄕吏)의 관노(官奴)들이 모여 수박희의 경기를 가졌다고도 했다. 《무예도보통지(武藝圖普通志)》는 정조(正祖) 14년 왕명에 의해 이덕무(李德懋)와 박제가(朴齊家) 두 사람이 출간했는데, 이 서지(書誌)는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병법서로서 권4 첫머리에 권법이라는 이름으로 태권도의 동작이 실려 있다.
대한민국 국기 태권도
여러 문헌을 통해 태권도는 2000년 전인 삼국시대부터 이미 행해졌음이 입증되었고, 한국의 국기로서 당당하게 자랑할 수 있는 역사와 내용이 담긴 무예적 스포츠이다. 중국 권법은 1500년 전 소림사(少林寺)에서 시작되었고, 일본 가라테[空手:唐手]는 500년 전 오키나와[沖繩]에서 시작되었음을 볼 때, 태권도는 동양무술 가운데 가장 오랜 역사와 전통을 지닌 무술임을 확증할 수 있다.
한민족의 얼과 생활 속에 맥맥이 이어내려온 태권도는 조선 후기에 이르러 침체되는 듯하다가 끝내 일본의 침략으로 자취를 감추게 되었는데, 일본의 속박에서도 민족적 기개를 꺾이지 않고 독립운동의 수단이나 민족적 울분을 태권도의 수련으로 승화한 사실은 비일비재하다.
8·15광복과 더불어 비전(秘傳)되어 오던 태권도는 소수의 이 방면 지도자들에 의해 태권도의 재건과 진흥을 위해 각각 도장을 차려 후배 육성에 임하였는데, 청도관(靑濤館)·지도관(智道館)·송무관(松武館)·창무관(彰武館)·무덕관(武德館) 등이었으며, 이때부터 태권도의 저변확대가 활기를 띠게 되었다. 1961년 9월 16일 태권도의 국내 통합체로서 대한태권도협회(Korea Taekwondo Association:KTA)가 창립되면서부터 무도에서 스포츠화하였으며 경기화의 서장을 열게 되었다.
1962년 6월 20일 대한체육회(Korea Sports Council:KSC)에 경기단체로 가맹하였고, 1962년 11월 11일 제1회 전국승단심사대회를 개최하였으며, 1963년 10월 4일 전주에서 열린 제44회 전국체육대회에 정식종목이 되었다. 1966년 10월 28일 제1회 대통령 하사기쟁탈 전국단체대항 태권도대회가 개최되었고, 1967년 11월 30일 제정 품세를 심의공포하였으며, 1971년 3월 15일 태권도 계간지를 발간하였다.
1972년 4월 4일 제1기 지도자 교육을 개최하였고, 그해 11월 30일 국기원을 건립(초대원장 김운용)하였으며, 12월 1일 태권도교본(품세편)을 발간하였다. 1973년 5월 25일 서울에서 제1회 세계태권도선수권대회를 개최하였고, 1973년 5월 28일 세계태권도연맹(The World Taekwondo Federation:WTF)를 창립(초대총재 김운용)하였으며, 1974년 10월 18일 제1회 아시아태권도선수권대회를 개최하였다.
1975년 10월 5일 국제경기연맹(International Sports Federation:ISF)에 WTF가 가맹하였고, 1976년 4월 9일 국제군인선수권대회에서 태권도를 정식종목으로 채택하였으며, 1978년 10월 5일 각 관을 폐쇄하고 KTA 중심으로 단일화하였다. 1980년 7월 17일, 모스크바(Moskva)에서 열린 제83차 IOC(International Olympic Committee:국제올림픽위원회) 정기총회에서 WTF를 공식승인하였으며, 1980년 11월 1일 서울 국제군인선수권대회에서 태권도경기를 개최하였다.
1981년 7월 24일 미국 산타클라라(Santa Clara)에서 제1회 월드컵태권도대회가 개최되었고, 1983년 8월 13일 팬암게임에서 태권도를 정식종목으로 채택하였다. 1986년 제10회 서울 아시아경기대회에서 정식종목으로 채택하였고, 1988년 제24회 서울 올림픽경기대회에서 시범종목으로 선정되었으며, 2000년 제27회 시드니(Sydney) 올림픽경기대회에서 정식종목으로 채택되었다.
태권도 기술
↑ 태권도의 앞차기 / 차기는 태권도 기술의 근간을 이루는 손과 발을 이용한 역학적 요소를 지닌 기술이다.
수련방법은 기본동작으로부터 품세·겨루기·격파·호신술 등으로 구분한다. 기본동작은 태권도 기술의 근간을 이루는 손과 발을 이용한 역학적 요소를 지닌 기술로 주먹과 손날을 이용한 막기·지르기·찌르기·치기와 발을 이용한 차기를 각종 서기[立]의 자세에서 취하는 것이다.
품세는 혼자서 상대를 가상하여 연무선을 통해 합리적이고 효과적으로 한 자리에서 두 동작 이상을 순간적으로 행하여 속력과 힘, 유연성 및 중심이동, 그리고 호흡 및 동작의 완급 등을 발전시키는 것이다. 품세의 체계는 단순하여 쉬운 것부터 복잡하고 어려운 것으로 점진적으로 배워 나간다. 유급자의 품세로 태극 1∼8장, 팔괘 1∼8장이 있고, 유단자의 품세로 고려(高麗)·금강(金剛)·태백(太白)·평원(平原)·십진(十進)·지태(地跆)·천권(天拳)·한수(漢水)·일여(一如) 등이 있다.
겨루기는 품세를 통해 익힌 공격·방어의 기술을 응용하여 실제로 상대편과 대결하는 기술로, 두 사람이 일정한 틀에 맞추어 연습하는 맞추어 겨루기와 기술의 제한이 없이 연습하는 겨루기 등이 있다. 맞추어 겨루기는 상호 주어진 공격과 방어를 맞추어 연습하는 겨루기이고, 겨루기는 자유자재로 실전에 임한 자세로 상대의 급소를 겨루고 방어하는 기술을 숙달시키는 기술이다.
격파는 손과 발 등의 공격 및 방어의 부위를 각종 보조기구를 통하여 강화·단련함으로써 파괴력을 기르는 것으로, 품새·겨루기와 함께 태권도의 3대 기본 구성요소이다. 손발의 기술체계를 숙달하고 심사 또는 시연 때 실제의 위력으로 단단한 물체인 송판·기와·벽돌 등을 깨뜨려 보이는 기술을 말한다. 주먹, 등주먹, 손날, 손끝 또는 손날등을 사용하고 발도 마찬가지로 앞축, 뒤축, 발날 부위를 사용하며 그 격파 기술이 다양하다. 격파는 위력 격파와 고난도 격파로 구분된다. 초급자에게는 가르치지 않으며, 고급자나 유단(품)자가 연습한다. 호신술은 이와 같은 여러 가지 태권도 기술을 종합·응용한 것으로, 접근전에서 시도하는 상대의 공격을 제압하고 역공격을 연마하는 기술이다.
태권도 경기
태권도는 체급별 경기를 원칙으로 하며, 한국이 태권도의 종주국이므로 경기에 사용하는 모든 구령은 한국어로 한다. 경기시간은 3분 3회전, 휴식은 각 회 사이 1분으로 한다. 단, 어린이부 및 여자부는 2분 3회전, 또는 1분 30초 3회전으로 한다.
경기장은 목재 또는 탄력이 있는 매트로 된 수평면 위에 장애물이 없는 너비와 길이가 각각 12m인 정사각형 중앙부에 너비와 길이가 각각 8m인 경기지역으로 되어 있으며 그 외곽지역을 경계지역이라 한다. 경기지역과 경계지역은 바닥면의 색상을 달리하여 구분해야 하며, 같은 색상일 경우 너비 5㎝의 흰 선으로 한다. 경기지역과 경계지역의 구분선을 경계선이라 하고 경기장 끝선을 한계선이라 한다.
경기자를 보호하기 위하여 머리보호대를 비롯해 도복 위에 몸통보호대, 샅보대, 그리고 팔·다리보호대 등을 착용한다. 심판원은 주심 1명, 부심 4명, 배심 2명(단, 경우에 따라 주심 1명, 부심 2명, 배심 1명)이다. 유효공격으로는 주먹기술에 의한 몸통부위의 공격, 발기술에 의한 몸통부위 및 얼굴부위의 공격이 있다.
감점 및 경고 사항으로는 넘어진 상대를 공격하는 행위, 얼굴을 손 또는 주먹으로 공격하는 행위, 머리로 박치기하는 행위, 주심의 ‘갈려’ 선언 후 고의적인 공격행위, 선수 및 코치가 바람직하지 못한 언동을 하는 행위, 상대를 잡는 행위, 잡아 넘기는 행위, 무릎으로 공격하는 행위, 낭심을 공격하는 행위, 등을 보이고 피하는 행위, 고의로 넘어지는 행위, 경계선 밖으로 고의적으로 나가는 행위, 어깨·몸·손으로 미는 행위 등이다.
시합날 대전선수는 경기시작 1시간 전까지 계체를 받아야 하며, 계체로 인한 실격방지를 위해 경기시작 1일 전부터 본 계체기와 같은 계기를 협회가 정한 장소에 설치하여 예비계체하게 되어 있다.
태권도 단급 제도
세계 전역 태권도장에서 수련하는 태권도인의 통일된 정신 및 기술의 배양을 기하고 평준화된 기술과 정신의 종합적인 계층을 정하는 제도이다. 무급에서부터 시작하여 유급자·유단자로 올라간다. 유급자는 10급에서부터 역으로 1급까지이며, 유단자는 1단에서부터 시작하여 순에 의해 2단, 3단, 4단…9단으로 승단하게 된다.
단, 유단 칭호는 만 15세 이상자에게 주어지며, 만 15세 미만인 어린이는 단의 칭호 대신 품의 칭호를 부여한다. 사범의 자격은 4단 이상자로서 국기원(國技院)에서 실시하는 지도자 교육을 필하고 자격시험에 합격한 사람에 한하여 사범이라는 칭호를 부여받는다.
도복에 두르는 띠는 단·급에 따라 분류하지만 국기원에서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것은 아니며, 체육관에서 임의로 부여하는 것이다. 무급은 흰색, 10∼9급은 노랑, 8∼7급은 초록, 6∼5급은 파랑, 4∼3급은 밤색(또는 자주색), 2∼1급은 빨강, 국기원 심사를 통해 인정받은 유단자 이상은 검은색(단, 유품자는 빨강과 검은색을 가로로 반분한 배색)이다.
태권도 용어
KTA(Korea Taekwondo Association:대한태권도협회)가 제정한 용어를 들면 다음과 같다. 주먹 관련 용어로는 주먹[正拳], 등주먹[裏拳], 맨주먹[槌拳], 편주먹[平拳], 밤주먹[中指一本拳], 인지주먹[人指一本拳]이 있고, 찌르기(貫手) 관련 용어로는 한손끝[一本貫手], 두손끝, 선손끝[縱貫手], 엎은손끝[下平貫手], 제친손끝[上平貫手]이 있다.
장칼[手刀] 관련 용어로는 장칼, 옆장칼[橫手刀], 엎은장칼[逆手刀]이 있고, 팔 관련 용어로는 팔굽[肘], 안팔목[內小手], 바깥팔목[外小手], 등팔목[上小手], 밑팔목[下小手], 곰배손[孤手]이 있다. 손 관련 용어로는 집게손[指鋏], 갈퀴손[搔手], 손끝쪼기[鶴觜], 아금손, 장칼바닥[掌底]이 있고, 발 관련 용어로는 발앞바닥[上足底], 뒤꿈치[後踵], 뒤축[足軸], 발목[足首], 발끝[足先], 옆발바닥[橫足底], 발등[上足部], 발모서리[足刀]가 있다.
차기 관련 용어로는 앞차기[前蹴], 뒤차기[後蹴], 옆차기[橫蹴], 돌려차기[廻蹴], 연속차기[連續蹴], 잡고차기[抱蹴], 반달차기[橫廻蹴], 뛰며높이차기[一段高飛蹴], 뛰며앞차기[一段前蹴], 뛰며옆차기[一段橫蹴], 뛰며돌려차기[一段廻蹴], 두발당상[二段蹴], 모듬발차기[結足蹴], 뛰어넘어차기[走越蹴], 몸돌려차기[身返蹴], 몸돌려뛰어차기[身返高飛蹴], 뛰며두발옆차기[二段橫蹴], 차밟기[踏蹴], 후려차기[掛蹴], 비틀어차기[身曲蹴], 차올리기[直線足伸]가 있다.
발동작 관련 용어로는 옮겨딛기[動作變足], 잦은발[千鳥足], 한걸음[一步], 세걸음[三步], 돌기[身廻], 무릎치기[膝蹴], 모듬발[寄足], 미끄럼발[滑足]이 있다. 지르기 관련 용어로는 상체지르기[上段攻擊], 중체지르기[中段攻擊], 하체지르기[下段攻擊], 세워지르기[縱突], 바로지르기[正面攻擊], 재쳐지르기[上手正面突], 옆지르기[橫身突], 치치기[突上], 내리지르기[下突], 돌려지르기[廻突], 안으로치기[內突], 밖으로치기[外突], 내리치기[拂落], ㄷ자지르기[二段突]가 있다.
서기 관련 용어로는 차렷서기[氣着], 팔자서기[八字立], 안쫑서기[內八字立], 꼬아서기[結立], 주춤서기[四股立], 무릎서기[騎馬立], 모아서기[閉立勢], 앞굽히기[前屈勢], 뒤굽히기[後屈勢], 외발서기[一足立], 준비서기[準備姿勢], 편히서기[休], 고양이서기[猫足立]가 있다.
막기 관련 용어로는 상체막기[上段受], 중체막기[中段受], 하체막기[下段受], 앞막기[前受], 옆막기[橫受], 안막기[內受], 바깥막기[外受], 올려막기[推受], 내리막기[拂受], 눌러막기[抑手], 걸쳐막기[掛手受], 헤쳐막기[搔手受], 붙잡아막기[抱手受], 밀어막기[追受], 홀쳐막기[廻手受], 들어막기[受手], 쌍장칼막기[兩手刀], 돌려막기[廻外受], 산틀막기[山構], 몽둥이막기[棒受], 몽둥이잡기[棒摑], 팔목막기[小手受], 맞겨루기[對鍊]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