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사의 유년 시절 소풍을 따라가 봅시다>
추사는 유학자로서는 드물게 불교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으며, 또한 학문적으로 높은 경지에 다다라 전남 대흥사의 초의선사와도 차와 불교를 매개로 특별한 우정을 맺는다. 이것은 추사의 어린 시절 용산의 한 봉우리 오석산 밑에 위치하였던 화암사의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월성위 때부터 추사 집안의 원찰(願刹)이었다. 추사가 직접 화암사 대웅전 뒤편의 암벽에 남긴 ‘천축고선생택(天竺古先生宅)’과 ‘시경(詩境)’이라는 글자와 제주도 유배시절에도 특별한 관심을 표했다고 한다. 천축(天竺)은 서역의 인도를 말하고 고선생(古先生)은 부처를 유교식으로 표현한 것이다. 불교 사찰을 유교식으로 번역하면 바로 ‘천축고선생택’이 된다. 추사의 친필 글씨가 암각되어 있는 화암사 지세를 면밀히 살피면서 글씨가 새겨진 암벽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암벽은 대웅전 뒤편에 병풍처럼 서 있는데, 가로가 30m 세로는 3∼4m 정도의 크기다. 이 바위를 병풍암이라 부르고 추사는 어린 시절 이곳에 산책 나와 그 나이에 바라본 바위의 모습을 금강산에 비유하여 소봉래라 하였다.
필자가 어린 시절 소풍을 갈 때면 추사고택을 지나 화암사 병풍바위 아래 참나무 숲에서 놀고 오곤 했던 기억이 난다. 추사 역시 그렇게 소풍을 다녔을 것이다. 또한 오석산에서 앵무봉으로 올라보면 인위적인 바위 무더기가 있다. 이것은 선돌이 아닌가 ? 추측되는데 추사고택 앞 연못 건너편에 산봉우리는 음곡산이라 하였으며 이곳에서 돌 화살촉, 청동 숟가락, 청동 그릇 등 다양한 청동기 시대의 유물들이 발견되었다. 필자가 어린 시절 이것이 중요한 것 인줄 모르고 가지고 놀았던 기억이 생생하다. 뿐만 아니라, 종종 도굴꾼들이 탐침봉을 들고 나니며 여기저기 도굴할 때 흥미롭게 쫓아 다녔던 기억도 난다. 이것으로 미루어 앵무봉의 돌 무더기는 선돌이라 생각된다. 좀 더 깊이 있는 조사와 연구가 병행 되어야 하며 추사의 어린 시절 소풍을 다니던 산책로를 개발해야 된다. 더불어 주변에 많은 공장들이 들어서면서 산성비에 의해 훼손 될 염려가 있는 추사의 암각 글을 보존할 수 있는 대책도 마련해야 된다. 추사의 길(가칭)을 따라가 보면 비록 작은 산이지만 주변에 높은 산이 없어 멀리 서해바다가 보이고 넓은 들판이 보여 마음이 넓어지는 느낌을 받는다. 지금 용산은 소나무 숲이 잘 가꾸어지고 있는데 작은 산책로를 만들어 산림욕을 즐길 수 있도록 하는 것도 바람직한 관광자원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