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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사형제 존폐 논쟁이 다시 한번 우리 사회의 화두가 되고 있다. 지난 22일, 열린우리당 유인태 의원이 사형제 폐지 특별법안에 대해 여야 의원 151명의 서명을 받음에 따라 다음주 국회에 제출키 로 한 것이다. 이 법안은 형법 및 기타 법률에서 규정하는 형벌 중 사형을 폐지하고 가석방이나 감 형을 할 수 없는 종신형으로 대체토록 하고 있다. 현재 형법에는 살인․내란․간첩죄 등 19가지 범 죄, 국가보안법 6개 특별법에 84가지 범죄 등 모두 103가지 범죄에 사형이 가능한데, 특별법안이 통 과되면 모든 법에서 사형이 종신형으로 대체된다. 정치권에서 사형폐지특별법안이 제출되기는 15대, 16대에 이어 이번이 세 번째로, 그동안 번번이 자동 폐기 되었다. - 2004.11.22 국민일보 기사 중에서 |
사형(Todesstrafe)이란 이른바 범죄자의 생명을 박탈함으로써 그를 사회로부터 영원히 격리시키는 국가의 형벌을 말한다. 형법이 규정한 형벌 가운데 가장 중한 것이라 하여 극형이라고도 한다. 사형제도가 그 존폐 여부를 둘러싸고 지금껏 격렬한 논쟁의 대상이 되고 있는 대표적인 이유는 형벌로서의 사형이 차지하는 특별한 지위에 기인한다. 즉 기타의 형벌과는 달리 사형은 단지 범죄자의 일부 법익만을 제한, 침해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실존의 토대인 생명 자체를 완전히 멸절시켜 버린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는 것이다.1) 따라서 사형을 형벌로 계속 유지할 것인가 하는 문제에 관해서는 신중에 신중을 기해도 결코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흔히 사형은 한 국가의 형사사법과 법문화의 수준을 가늠하는 바로미터라고 한다. 사형제도에 대한 각국의 실정을 보자면, 전 세계적으로는 이미 118개국이 사형제를 폐지한 바이고, 매년 2개국 정도가 폐지하고 있는 추세다. 또한 사형제도는 있지만 집행하지 않고 있는 나라도 23개국에 이르며, 유럽연합은 사형제 폐지를 가입조건으로 삼을 정도이다. 반면 미국과 일본 등 78개국은 사형제도를 채택하고 있고, 이로 인해 2003년 한 해 동안 28개국에서 1146명이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한국의 경우, 정부 수립 이후 최근 마지막 사형집행이 있었던 1997년까지 총 902명에 대한 사형이 집행되었고 현재 사형집행 대기자도 59명에 이르고 있지만, 1998년 김대중 정부 출범 이후 사형을 집행하지 않음으로써 사실상 사형 폐지 국가를 지향하고 있다.2) 따라서 이번 17대 국회가 이러한 흐름에 동조해 줄 지에 대해서는 주목할 만한 일이다.
이 글에서는 현재 우리나라에서 합법적으로 존재하고 있는 사형제도에 대하여 명백한 이의제기를 하면서, 윤리적 근거를 중심으로 그 부당성을 밝혀 폐지의 당위성을 논해보고자 한다. 공리주의 윤리설에서는 사형존치론의 가장 설득력 있는 근거인 범죄억지력 주장에 대한 허구성을 파헤쳐 존치론을 반박하는 동시에 존폐론의 다양한 주장들을 제시하여 그 효용성을 제고하고, 의무론적 윤리설의 적용을 통해 그 가치규범적인 특성을 입증하며, 또한 정의론의 관점에서는 교정적 정의개념을 논거로 하는 주장에 대한 반박과 사형이 롤즈의 정의원리에 위배되는 측면이 있음을 보일 것이다. 나아가 이러한 논의를 통해 사형폐지론의 정당성이 입증된다면, 그 사형제도를 어떻게 폐지해갈 것인가에 대한 전략적 논의 또한 병행되어야 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궁극적으로, 이 글의 목적은 사형을 살아있는 제도로부터 역사적 유물로 만드는 데 있다.
Ⅱ. 본론
ⅰ. 존치론과 존폐론
일단 존치론과 존폐론의 다양한 근거들은 그 내용이 다양하고 복잡하여 본격적인 윤리설의 적용에 앞서 미리 그 내용들을 알아 둘 필요가 있다. 그리고 사형제도에 관한 찬반 논의를 전개하는 데에 상반된 두가지 입장이 똑같이 전제하고 있는 것은 인간 생명의 가치 또는 생명권을 인정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형제도 정당화의 부담은 인간의 생명권이 어느 경우에나 존중되어야 한다고 보는 사형 폐지론자보다는 그것이 때로는 박탈될 수도 있음을 주장하는 사형 존치론자가 짊어진다고 보아야 한다. 3)
이 점을 상기하면서, 존치론과 존폐론의 주요 핵심적인 내용을 살펴보도록 하겠다.
․ 존치론 ․ 존폐론
① 위하력(범죄억지력)을 지닌다. ① 인간의 생명 존중 (인도주의적 견지)
② 사회계약을 이유로 한다. (사회방위) ② 오판가능성 (회복불가능한 형벌)
③ 정의개념에 부합. (동해보복의 응보성) ③ 정치적 악용의 가능성
④ 국민들의 응보4)적 법감정. (찬성론 우세) ( ④ 사형주체의 문제 (국가권력의 폭력)
⑤ 아직은 시기상조. . ⑤ 형벌의 본질에 위배
⑥ 평등한 생명권 추구를 지향
ⅱ. 윤리적 근거의 적용
1) 목적론의 관점 : 공리주의 윤리설
공리주의는 어떤 행위가 관련당사자들에게 최대의 효용성 또는 행복을 가져다 줄 때 옳고, 그렇지 않을 때에는 그르다고 보는 윤리학적 이론이다. 또한 그것은 그 행위에 의해 영향을 받는 모든 사람들에게 미칠 수 있는 결과를 고려하여 결정된다.5)
그렇다면 사형제도의 존치는 공리주의 윤리설에 비추어 옳은가? 사형제도의 타당성이 공리주의 윤리설에 의하여 입증되려면, 생명 가치의 전락, 오판, 정치적 남용, 국가적 폭력, 보복적 성격 등등 존폐론의 많은 주장들에 대하여 존치론의 근거가 이를 극복할 수 있을 정도의 공리성을 지녀야 한다. 존치론에도 여러 근거가 있겠지만 최대의 효용성에 초점을 두어 생각해 볼 때, 가장 핵심적이고 설득력있는 근거는 역시 사형의 위하력, 즉 범죄억지력(일반예방론적 관념6))이라 하겠다. 따라서 범죄억지력의 허구성이 밝혀질 때, 사형제도는 그 효용성을 크게 침해받는 결과를 얻게 된다. 그렇다면 먼저 폐지론 측에서 주장하는 범죄억지력의 실태를 살펴보도록 하겠다.
흔히 존치론자들은 인간은 본능적으로 생명에 대하여 가장 애착을 가지므로 이를 박탈하는 형벌의 예고는 범죄자에게 최대의 위하가 될 것은 자명한 사실이어서 범죄에 대한 강한 억지력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고 본다. 그렇지만 사형은 그 잔혹성에 비하여 일반인이 기대하는 것과 같은 위하력이 없다. 먼저 범죄의 특성과 원인을 고려하여 볼 때 대부분 사형수는 정치, 사상범 혹은 살인범의 두 부류로 나뉘는데, 첫째로 살인행위자 중에는 정신적 이상자가 많아 이러한 정신이상자의 행위는 범죄성립요건에서 책임의 제한으로 인해 형벌을 과할 수 없는 경우가 생기므로, 사형이란 형벌 자체가 무의미해진다. 둘째, 살인은 대개가 순간적인 흥분에 못 이겨서 우발적으로 행하거나 혹은 이미 각오를 하고 사전에 계획적으로 행하기 때문에 이러한 경우, 어느 범죄인을 막론하고 자신의 범죄에 대한 제재로서의 형벌에 대하여는 대게 조금의 고려나 사색도 하지 않기 때문에 위하력은 부정된다. (우발적인 경우에는 그 위하력을 순간적으로 망각하게 되고, 계획적인 경우에는 자신이 잡히지 않을 것으로 믿거나 아예 형벌에 개의치 않는 경우가 많다.) 셋째, 살인행위자의 경우에는 형벌이 있기 전에 자살자가 많고, 자기의 생명처럼 다른 자의 생명 역시 존중하지 않는 자가 많다. 넷째, 정치범에 관하여는 스스로를 혁명자로 간주하는 당사자에게는 오히려 그것이 위하가 아닌 순교자의 영광이 된다. 또한 이 외에도 사형존치론의 가장 유력한 논거가 되는 위하력에 대하여 여러 실증적인 연구결과는 위하력에 의한 일반 예방적 효과가 다른 형벌에 비하여 큰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이는 사회문화적 배경이 비슷한 사형폐지국과 존치국의 살인사건 발생률을 비교하거나, 동일주․국가에서 사형을 폐기하기 전과 후의 살인사건의 발생률을 비교하거나, 사형집행 사실을 공개하기 전과 후의 범죄(살인사건) 발생률을 비교하여 보는 등의 방법인데 실제적인 통계의 결과(물론 경제 대란 등의 특수한 사회적 상황까지 고려하여)7)를 보았을 때, 대다수의 학자들은 사형제도의 존폐와 살인사건 발생률 간에는 결정적인 관계가 없다고 결론지었다.8) 유엔에서도 사형 제도와 살인 사건 발생률의 관계에 대해 1988년, 1996년 두 차례 연구보고서를 통해 ‘사형이 종신형보다 더 효과적이라는 어떠한 증명도 실패했다. 그러한 증명은 아마 앞으로도 불가능할 것’ 이라고 결론짓고 있다.
한편 다수의 효용성과 관계된다고 볼 수 있는 또 하나의 근거인 사회계약설은 어떠한가? 이 문제는 국가가 사형의 주체일 수 있는가, 과연 사형을 집행할 수 있는 권한이 있는가 하는 물음과도 같은 맥락에 있는데 이를 자세히 고찰해보면 오히려 사형은 그 합법성에 있어서 의문점을 가지게 한다. 사형 존치론자들은 사회계약설을 들어 공공의 사회방위 목적 달성을 이유로 사형을 정당화시키려 하지만, 베카리아의 사회계약설에 의하면 형벌은 그 합법성의 근거를 사회계약에서 구할 수 있는데, 사형은 그에 반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는 “어떻게 각자가 양보한 최소한의 자유 속에 생명의 자유도 포함된다고 해석할 수 있었을까?”라고 반문하면서 사회는 각자의 권리의 최소한을 의탁한 것이지 자신의 생명까지 박탈하는 기능까지 사회에 부여한 것은 아니라고 주장하였다. 즉, 사형은 계약의 내용이 될 수 없으며, 사회방위 목적을 달성하는데 불필요하며 오히려 그 잘못 해석되어진 계약에 근거한 권력행사를 경계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반론들과 더불어 사형의 악영향은 또 어떠한가? 사형은 법의 이름으로 저질러지는 살인으로, 그 범죄억지력이 없다면 공리주의적인 윤리설의 특성에 기인하여 생각해 볼 때 그 폐단이 심히 상당하다.
우리나라 헌법 제 10조는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 라고 명시하고 있다. 그런데 사형은 일단 국가가 범죄인의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존중하고 보호하여야 할 의무를 져버리는 것이며, 관용적 태도보다는 엄격한 처벌의 보복성에 기대고 있다. 이는 생명권 존중의 모범을 보여야 할 사회적 주체가 많은 사람들에게 생명 경시의 풍토를 조장하는 동시에, 국민의 응보적 법감정에 호응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동해보복적 사고는 시대착오적인 것이며, 형식적 응보로는 아무런 효용성도 기대할 수 없다.9) 또한 모든 법적 집행은 법에 의한다는 법치주의에 의거하므로 당연히 형사 처벌에 있어서도 사적 보복은 금지되어있는 바이다. 따라서 피해자 가족들이 원한다고 해서 그것이 사형제도의 효용성으로 이어질 수는 없다.10)
오히려 국민들은 사형제도의 존치를 통해 국가와 법의 권한을 필요 이상으로 높이는 결과를 스스로 초래하고 있으며, 그 엄청난 폭력은 때로는 정치적, 사회적 이유로 악용되기도 한다. 한 예로, 정부 수립 이후 사형 집행이 가장 잦았던 시기가 박정희 정권 때였다는 통계는 지난 사형제도의 특수성을 증거하고 있다.
또한 사형에 있어서는 오판(사법살인)의 여지가 항상 깃들어 있다는 점을 좌시할 수 없다. 국제인권옹호 한국연맹의 조사에 따르면 한국의 전체 법관 중 35%가 한 번 이상의 오판 경험을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시 말해 사형 선고는 한 인간인 법관의 판단에 의하여 전적으로 결정되므로 때로는 불완전한 인간의 오판을 면할 수가 없는데, 사형은 한번 집행되면 일단 돌이킬 수 없는 회복불가능형(irrevocable penalty)이므로 그 불합리성은 명백한 것이다. 게다가 사형은 “양심에 반하여 직무상 어쩔 수 없이 사형의 집행에 관여하는 자들의 양심의 자유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침해하는 비인간적인 형벌제도11)"로서 사형집행인의 인권 역시 침해하고 있다.
더욱이 형벌의 본질이 교정과 개선, 즉 죄를 범한 범죄인을 교육하고 교화하여 건전한 사회인으로 재사회화시키는 데 있음을 고려하여 볼 때, 범죄인의 생명을 박탈하는 사형은 이러한 형벌의 본질에 반하는 제도이므로, 공리를 근거로 한 지나친 국가의 권력 행사는 허용될 수 없다. 오히려 사형이 다른 형벌보다 범죄예방효과 면에서 우월하다는 그 어떠한 과학적인 근거도 뚜렷이 없는 상황에서, 범죄의 예방과 억제, 범죄인의 교정과 교육, 피해자의 분노 등 모든 과제를 달성할 수 있는 형벌은 무기형으로도 충족될 수 있으므로, 사형은 폐지되어야 마땅하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2) 의무론의 관점 : 황금률과 정언명법
의무론적 윤리설은 어떤 행위가 옳거나 그른 것은 그 행위 자체가 갖고 있는 어떤 속성 때문이라고 보는 입장이다.12)
먼저, 황금률(golden rule)은“자신이 대접받고자 하는대로 행위하라”는 형식으로 표현된다. 즉, 행위자에게 역지사지(易地思之)의 마음을 가질 것을 요구한다. 그렇다면 이렇게 물을 수 있다. “당신은 죄의 유무를 떠나, 아니 혹은 자신만이 당당히 무고함을 호소할 수 있는 억울한 상황에서, 단지 판사 한명의 재량에 따라 국가와 법의 이름으로 생명의 권리를 박탈당해도 좋습니까?” 이러한 질문에 자신의 생명의 권리를 쉽게 포기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두 번째로, 정언명법은 목적이나 결과의 성취를 전제하지 않고 단정적으로 어떻게 행위하라고 명령하는 형식이다. “당신의 행위 준칙이 보편적 법칙이 되기를 바랄 수 있도록 그렇게 행위하라”라는 제 1형식에 관련하여 생각해 보면,ꡒ어떠한 가치보다도 생명의 가치는 우선된다ꡓ고 말할 수 있겠다. 이는 보편적인 법칙으로 바랄 수 있고, 명백한 살인을 저지른 살인범에 대하여 온 국민이 강력한 응보적 처벌을 국가에 기대할 때도 마찬가지이다. 국가는 법을 통해 살인을 금지하고 있으면서도 그 자신은 정의와 법이라는 미명 아래 또다른 살인을 저지르는 것은 명백한 자기모순이다. 따라서 살인금지를 요구하기 이전에 먼저 생명존중의 모범을 보여야 할 것이다. 또한“당신 자신을 포함한 모든 사람의 인격을 단순한 수단으로서가 아니라 목적으로서 대우하라“는 제 2형식은 특히 인간의 존엄성을 강조하는 형식이다. 국가에서 범죄자를 무기한 격리한다면 얻게 되는 통제의 효과에도 불구하고 굳이 죽이는 것은 사형의 범죄억지력의 효과와 국민적 응보 감정에 대한 호응과 사회공공의 안녕질서 등과 같은 목적에 대한 기대가 있기 때문이다. 이는 불가침적인 사형수의 인격이나 생명을 다른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대하는 것이므로 윤리적으로 옳지 못하다.
3) 정의론의 관점 : 롤즈의 정의원리
먼저 사형옹호론자들은 사형이 정의관념에 부합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확실히 교정적 정의의 경우, 정의란 어떤 행위자가 타인이나 사회에 대해 피해를 가했을 때 그것이 처벌이든 보상이든 ‘응당 받을 것을 받음’으로써 이해되어질 수 있다. 그렇다면 과연 정의의 이름으로 살인자를 사형에 처할 수 있는가?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고 하는 동해보복의 형식적인 응보에 따르면 ‘살인에는 사형’이라는 태도가 일견 타당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사형을 완고하게 고집했던 칸트는 그의 ‘도덕형이상학’에서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응보의 법(Wiedervergeltungsrecht)만이 형벌의 질과 양을 명시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 외의 모든 것은 변덕스러우며, 순수하고 엄격한 정의의 요청에 부합되지 않기 때문이다. … 행위자가 사람을 죽이면 자기도 죽임을 당해야 한다. 정의를 만족시킬 수 있는 길은 이 방법밖에는 없다. 고통은 많아도 종신형에 복역하는 것과 죽는다는 것은 결코 동일하지 않다.”
그렇지만 형식적인 응보의 개념이 교정적 정의의 원리에 어느 정도 부합할지는 몰라도 그 수단은 사형이 아닌 다른 어떤 것이 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첫째로, 형식적 응보는 많은 경우에 전혀 실현될 수 없으며 둘째로 어떠한 경우에도 입은 손해와 동등한 가치의 회복을 실현할 수 없다. 또한 형식적 응보는 정의 일반에 의해 요구되는 것도 아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바와 같이 정당한 응보는 형식적인 동등함에 있지 않고 형벌의 비례성에 있다. 따라서 범행의 경중과 비례관계에 있고 행위자의 책임의 정도와 정당한 비례관계에 있는 형벌만이 정당하며, 형식적 응보가 형벌의 종류와 체계를 결정하는 절대적 기준이 될 수는 없다. 나아가 사형제도는 형벌이 본질이 교정과 교화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범죄자에게 개선가능성의 여지를 허락하지 않는다. 이는 순전히 형식적 응보만을 추구하는 사형이란 형벌이 갖는 잔혹한 성격이다. 실제 사형이 확정된 범죄인들의 경우 대다수가 자신의 과오를 뉘우치고 회심을 한다고 한다. 하지만 그러한 회심은 결국 무용지물로 끝나고, 이러한 점에서도 사형이 정의의 완성이 사랑이나 관용의 이념에 배치된다는 것은 여실히 드러난다.13)
오히려 우리는 사고를 전환시켜 롤즈의 정의원리에 입각한 사형제도의 부당성을 주목해 볼 필요성이 있다. 니콜라스 레셔가 제시한 분배적 정의의 7가지 기준 중 하나인 평등의 기준에 입각해 볼 때, 언론의 자유나 사상의 자유, 신체의 자유, 생명권 등 인간의 기본적인 자유나 권리는 모든 사람들이 똑같이 누려야 할 기본적 가치이다. 모든 사람은 인간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이 기본적 자유와 권리의 평등을 주장할 수 있으며, 여기에는 그 어떤 차등도 있어서는 안된다. 이와 연결하여 롤즈의 ‘동등한 자유의 원리’를 본격적으로 적용하여 보면 ‘각자는 상호 조화를 이루는 기본적 자유를 최대한으로 그리고 모두가 똑같이 가져야 한다’ 고 할 수 있겠다. 원초적 입장에서 이 정의원리를 선택하게 되면 그 정의원리에 따라 특정 사회에 적합한 헌법을 선택하고 이 단계에서 정부의 권력과 시민들의 기본권 보장을 위한 체제가 구성된다. 그런데 이에 대하여, 우리는 오히려 사형을 특정 사회계급의 생명권을 침해하는 도구로 생각해 볼 수 있다.14) 사형 폐지론의 근거 중 하나로 그 불평등성을 드는 주장이 있는데, 사형수에 대한 연구와 분석에 의하면 사형수는 대부분이 ‘약자’라고 한다. 즉 사형이 전세계적으로 사회적 약자들, 예컨대, 빈곤한 자, 정신 장애자, 또는 인종적, 종교적, 윤리적 소수 집단에 속하는 자들에게 가장 많이 적용된다는 것이다. 미국의 진보적인 한 인권 단체에 의하면, 미국 내에서는 백인보다 흑인이 약 5배 이상 사형에 처해질 확률이 높다고 한다. 특히 법원에 배석한 배심원 대다수가 백인이고, 동시에 피해자가 백인, 가해자가 흑인이라면 사형 언도는 거의 확실하다는 조사 결과도 있었다. 사형수 대부분이 하류계층에 속하여 변호인의 조력을 충분히 받지 못하고, 학력이 매우 낮아 법적인 자기 방어능력이 없다는 점도 눈여겨 볼만한 점이다. 따라서 같은 살인을 하였어도 강자보다는 약자가 사형에 의해 희생됨으로써, 이는 정의도 공평도 아닌 엄연한 차별이라는 것이다. 또한 사형이 정치적 반대세력, 소수민족, 종족, 종교 및 소외집단에 대한 탄압도구로도 빈번히 악용되어 왔음은 앞서 지적한 바이기도 하다.15) 따라서 모든 사람이 동등한 생명권을 누리지 못하고 있음은 분명한 현상적 사실이며, 이는 사회구조적인 측면에서의 불평등이기도 하지만 생명의 박탈이라는 사형제도의 치명적인 결과를 생각해 보았을 때, 사형은 반드시 폐지되어야 한다.
Ⅲ. 결론
지금까지 다양한 윤리설에 입각한 근거들을 들어 사형제도 존폐 논쟁에 대한 윤리적 고찰을 시도해 보았다. 대체적으로 존치론의 핵심적인 근거들은 앞서 제시한 논지들에 의해 부정되었고, 존폐론의 근거들은 다시금 입증된 바, 이제 이 논쟁에 있어서 시비(是非)의 향방은 어느 정도 뚜렷해졌으리라 생각된다.
마지막으로 사형제 폐지를 위한 실질적인 방안과 폐지 뒤의 대안에 대해서 언급할 차례이지만, 사실상 이 문제에 있어서 완벽한 폐지가 선행되지 못한다면 이상적인 지향점은 없다. 사형제도는 반드시 완벽한 폐지를 지향해야 하며, 그것이 정말 어렵다면 부차적으로 점진적 폐지라도 고려해야 할 것이다.
먼저 사형제도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우선 현행 형법과 특별법에서 매우 넓게 규정하고 있는 사형 범죄를 축소시키거나, 사상범이나 정치범에 대해 사형을 폐지해 보는 것도 고려해 볼 만 하다. 특히 과거 사형집행 건수가 높았던 우리나라에서 사형의 시험적 폐지는 도입해 볼만한 단계라고 생각된다. 또한 여러 사형폐지국가들의 선례를 비교, 검토하여 우리나라에 맞는 대체형을 연구하여 적용하는 것도 바람직한 방향이라 생각한다. 현재 사형을 폐지한 나라에서 채택되고 있는 대체형은 가석방을 수반한 무기형과 수반하지 않는 종신형이 있다. 그러나 종신형은 일생동안 형무소에 구금하는 것으로 비인도적이며, 개선이나 교화의 정도를 참작할 수 있는 길이 없으므로 가석방을 수반한 무기형이 더 적합하다 하겠다. 가석방을 수반한 무기형의 경우에는 구체적으로 20년을 구금한 후에 피해자의 용서를 전제로 하여, 본인의 갱생의 결과가 명확함을 요구하는 등의 신중을 기하기 위해 가석방심사위원회를 두어 이 위원회에서 가석방을 결정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이 외에도 중국에서 채택하고 있는 사형집행유예제도가 있는데, 이 제도에 대해서는 찬반양론으로 나누어져 있다. 그러나 오판에 의한 집행을 막을 수 있고, 정치적 남용으로부터도 견제하는 장치가 될 수 있으므로 우리나라에서 고려해 볼 만한 정책이다.16) 또한 사형은 일차적으로는 국가제도의 문제이지만, 궁극적으로 국민 전체의 문제이므로, 엠네스티 한국위원회 등의 다양한 인권단체간의 연계를 통하여 사형폐지운동의 지평을 넓히는 실천적인 방안도 수반되어야 할 것이다. 물론 흉악범죄가 발생하지 않도록 원천적으로 사형의 여지를 제거하는 사회적 환경 조성의 추구는 당연한 이야기이다.
아직까지 우리나라의 대법원과 헌법재판소는 사형제 폐지에 대하여 아직까지도 전형적인 시기상조론의 입장을 들고 있다. 그들은 사형제도에 대한 합헌 판결을 내리면서 “한 나라의 문화가 고도로 발전하고 인지가 발달하여 평화롭고 안정된 사회가 실현되는 등 시대상황이 바뀌어 생명을 빼앗는 사형이 가진 위하에 의한 범죄예방의 필요성이 거의 없게 된다거나 국민의 법감정이 그렇다고 인식하는 시기”가 사형 폐지에 가장 적합한 때라고 하였다. 그렇지만 이는 정말 우스운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일단 그런 이상사회는 앞으로도 도래하지 않을 것이고, 일반적으로 사형을 폐지한 선진국의 경우를 보아도 흉악범죄율이 타 나라에 비해 낮지는 않다. 즉, 이러한 표현들은 단지 사형은 바람직한 것이고, 영구히 이를 폐지하지 않겠다는 보수적인 입장의 우회적 표현일 뿐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어느 사회, 어느 시대에서나 사형제가 폐지될 당시에는 지지 여론보다는 반대 여론이 훨씬 높았다. 우리나라의 현재 역시 이와 다르지 않다. 그럼에도 소수 선각자들의 부단한 노력과 투쟁에 의해서, 그리고 대의 민주주의를 실시하고 있는 국가에서는 입법자의 결단에 의해 사형폐지가 이루어져 왔다는 것이 세계 역사의 공통된 실례이다.
지난 22일, 그 자신이 사형수였던 열린우리당 유인태 의원이 ‘사형제도 폐지 특별법안’을 냄으로 인해 우리에게도 다시 한번의 기회가 왔다. 이 나라에는 유 의원이나 김지하 시인처럼 지난날 사형선고를 받았다가 살아난 많은 이들이 사회 각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다. 대부분이 분단시대를 내세운 독재정권에 의해 사상범으로 몰린 이들로, 정적을 없애는 정치적 살인의 아가리에서 살아 돌아온 셈이다. 그렇지만 이와는 반대로 75년 4월 9일 새벽, 대법원에서 사형을 확정한 지 19시간 만에 죽임을 당한 인혁당(인민혁명당) 관련자 8명처럼 살아 돌아오지 못한 이도 많다. 이 엄청난 과오의 책임은 과연 누가 질 것인가? 환원불가능한 과거의 역사는 어쩔 수 없지만, 이제는 사형을 폐지함으로써 ‘합법적이었던’ 살인의 역사도 종식시켜야 한다. 폐지 이상의 이상(理想)은 없다. 우리는 사형제도라는 이 부당한 존재의 해결을 미래로 미루지 말고, 바로 지금의 현재를 약속해야 한다. 우리는 모두 사형제도가 지속되는 한, 국가가 저지르는 제도살인의 공범이다. 과연 존치론자들이 주장하는 그 모든 가치들이, 죄의 유무를 떠나 한 개인의 생명에 앞설 수 있는지, 우리는 항상 이 물음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 참고문헌 및 사이트 ❋
국제사면위원회 한국연락위원회 편, 사형제도의 이론과 실제, 1989, 까치
진중권, 폭력과 상스러움, 2002, 푸른숲
박영신, 사형존폐론에 관한 연구, 2000, 인천대학교 교육대학원 석사학위 논문
변종필, 사형폐지의 정당성과 필요성, 1998, 인제대학교 인제총론 14권 1호
조성민, 기업윤리 확립을 위한 윤리이론적 기초, 1997, 한국교원대학교 사회과학연구소
사형, 이제는 그만 : http://jus.snu.ac.kr/~ishan/bbs/zboard.php?id=sub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