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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부(崔溥)의 본관(本貫)은 나주(羅州)가 아니고 탐진(耽津)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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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 문헌이나 인터넷(Internet)상에서 『최부의 표해록』이 소개될 때, 최부의 본관을 〈나주〉로 표기한 경우가 있는데, 이를 바로잡고자 한다. 본관은 성씨 가문 중에 국가에 대한 특출한 공헌이나, 또는 가문을 빛내는 일을 하여, 그 가문을 중흥시킨 시조(始祖)가 태어난 지역(지방)의 명칭으로 관(冠)하여지는 것이 보통이다. 예를들어, 호적과 같은 공식문헌에 어떤 분을 〈안동 김씨〉라고 한다면, 그 분은 출생지를 〈안동〉으로 한 어떤 분을 시조로 모신 가문의 김○○라는 의미이다. 즉 어떤 분의 본관이〈안동〉이라 함은 그 분 자신은 안동에서 태어났던 혹은 다른 지방에서 태어났던지 간에 상관없이 그의 시조가 안동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그들 가문의 본관이〈안동〉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이같은 분명한 해석에 혼돈을 가져올 소지가 있는 표현을 과거문헌에서 종종 접할 수 있다. 즉 그 사람의 본관을 파악하여 기록하는 것이 아니고, 단지 편의에 의하여 그 사람 출생지만을 성명과 함께 기록하는 경우가 있다. 그런 이유로 일부가 최부의 본관을〈나주〉로 잘못 생각하고 있으리라 짐작이 되는데, 이러한 단순한 출생지 표기는 가문을 중흥시킨 시조의 발상지를 그 후손들이 본관으로 사용하는 본관제도와는 아무런 관련성이 없으며, 이는 오직 그 사람 개인의 출생지 이외에는 다른 어떠한 의미가 있지 않다. 이처럼 단순한 의미로 출생지를 표현한 기록을 가지고, 이를 본관으로 생각한다면, 크게 잘못된 생각이라 아니할 수 없다. 최부의 본관이 탐진(耽津)이라는 사실을 입증하기 위해서, 다음의 공식기록과 방목(榜目)을 열거한다. 조선조 성종 13년(壬寅, 1482) 10월 19일에 발표된 공식문서인 알성문과(謁聖文科) 시험의 합격자 명단인 방목(榜目)에서, “최부(崔溥), 자(字) 연년(淵淵), 갑술생, 본탐진(本耽津), 거나주(居羅州)…”로 기록, 그 분의 본관과 출생지를 분명하게 구별하여 기술하고 있으며, 성종 17년(成化 29, 1486) 10월 26일에 발표된 공식문서인 중시문과(重試文科)의 합격자 명단인 방목에서도 그 분의 본관, 거주지 등을, “수찬(修撰), 최부 자 연년, 갑술생, 본탐진(本耽津), 거나주(居羅州), 임인 알성급제, 부(父) 성균진사 택(澤)”이라고 분명히 기술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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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목(榜目)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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