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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약사 > 양녕대군은 태종대왕의 제1남으로 10남 15녀를 두었다. 장남 순성군(順城君)의 휘는 애(言豈), 시호는 희안(僖安)이다. 지중추(知中樞) 평산신씨 자경(自敬)의 딸과 혼인하였으나 후사가 없었으며, 참의(參議) 영일정씨 종성(宗誠)의 딸과 재혼하여 오천군(烏川君) 사종(嗣宗) · 헌양군(獻陽君) 사조(嗣祖) · 포산부정(苞山副正) 사원(嗣源) · 이산부정(伊山副正) 사성(嗣盛) 등 4남 4녀을 두었다. 오천군의 자는 희적(希籍), 호는 둔재(鈍齋)이다. 집의(執義) 전의이씨 소(紹)의 딸과 혼인하여 석릉수(石陵守) 철강(鐵崗) · 도양수(道壤守) 철숭(鐵崇) · 반월수(半月守) 철봉(鐵峯) · 임성수(任城守) 철곤(鐵崑) · 봉령군(鳳嶺君) 철암(鐵巖)의 5남 3녀를 두었다. 헌양군(獻陽君)은 판관(判官) 진주강씨 우(遇)의 딸과 혼인하여 반성수(班城守) 희인(希仁) · 극포군(極浦君) 희남(希男) · 완구정(完丘正) 소남(小男)의 3남을 두었다. 포산부정(苞山副正)은 진주류씨 혼(渾)의 딸과 혼인하였으나 후사가 없다. 이산부정(伊山副正) 사성(嗣盛)은 홍주송씨 평(枰)의 딸과 혼인하여 진성수(珍城守) 면(綿) · 하원수(河源守) 찬(纘) · 추성수(秋城守) 서(緖)의 3남 4녀를 두었다. 차남 함양군(咸陽君)의 휘는 포(言布), 시호는 이안(夷安)이다. 중추원부사(中樞院府使) 고 성이씨 대(臺)의 딸과 혼인하여 부원군(富原君) 진(鎭) · 호산군(湖山君) 현(鉉)의 2남을 낳았다. 또 제주양씨와의 사이에 봉양수(鳳陽守) 종남(終南) · 파징수(波澄守) 종암(終巖) · 관산수(管山守) 종석(終石) · 화천군(和川君) 종근(終瑾)의 4남 등 6남을 두었다. 부원군의 시호는 양평(良平)이며 하음봉씨 극화(克和)의 딸과 혼인하여 외아들 구산군(龜山君) 계남(繼男)을 두었다. 호산군의 시호는 소평(昭平)이며 보안부정(保安副正) 수남(壽男) · 진안부정(鎭安副正) 영남(永男) · 안음부수(安陰副守) 순정(順鼎) · 강음부수(江陰副守) 순손(順孫)의 4남을 두었다. 봉양수는 진주류씨 벽(闢)의 딸과 순흥안씨 눌(訥)의 딸과 혼인하여 육창부수(陸昌副守) 언박(彦博) · 영천부수(靈川副守) 언륜(彦倫) · 빈양정(濱陽正) 언수(彦修) · 비옥령(比屋令) 언광(彦光) · 무창령(茂昌令) 언신(彦伸)의 5남을 두었다. 파징수의 시호는 경신(敬信)이며, 파평윤씨 자선(孜善)의 딸과 혼인하여 빈양부수(濱陽副守) 세번(世蕃) · 무성부수(武城副守) 세영(世榮) · 청성부수(淸城副守) 세함(世王咸) · 금산부수(錦山副守) 세창(世昌)의 4남을 두었다. 관산수는 여산송씨 수장(壽長)의 딸과 혼인하여 고산부수(高山副守) 세인(世仁) · 임성부수(任城副守) 세의(世義)의 형제를 두었다. 화천군은 창녕조씨 징(澄)의 딸과 혼인하여 무림부수(茂林副守) 언성(彦誠) · 예천부수(醴川副守) 언형(彦亨) · 선성부수(宣城副守) 언수(彦修) · 의성부수(宜城副守) 언규(彦奎)의 4남을 두었다. 3남 서산군(瑞山君)의 휘는 혜이며, 안산군(安山君) 김개(金漑)의 딸과 혼인하여, 학림군(鶴林君) 이, 취성군(鷲城君) 경 2남을 두었다. 학림군은 안동권씨 준의 딸과 혼인하여 외아들 조양부정(兆陽副正) 환(環)을 두고, 취성군은 성주이씨 철근(鐵根)의 딸과 혼인하여 외아들 계림군(鷄林君) 탄(坦)을 두었다. 4남 고정부정(古丁副正)의 휘는 겸(謙)이며, 함평노씨 길창(吉昌)의 딸과 혼인하여 외아들 구성수(駒城守) 정(靖)을 두었으며, 구성수는 경주이씨 순(恂)의 딸과 혼인하여 창녕부수(昌寧副守) 적(勣) · 금마부수(金馬副守) 면(勉) 등 2남 2녀를 두었다. 5남 장평도정(長平都正)의 휘는 흔(?)이며, 파평윤씨와 진주강씨 위(偉)의 딸과 혼인하였으며, 파평윤씨는 딸 둘을 두고, 진주강씨는 부림령(富林令) 순(順) · 우성령(牛城令) 석(碩)의 2남과 3녀를 두었다. 부림령의 시호는 정숙(靖肅)이며, 원주변씨 처관(處寬)의 딸과 혼인하여 수주정(樹州正) 윤인(允仁) · 유제도정(楡梯都正) 윤의(允義) · 덕풍부령(德豊副令) 윤례(允禮)의 3남을 두었다. 우성령은 안동권씨 종손(從孫)의 딸과 혼인하여 덕창부령(德昌副令) 자인(自仁) · 시천부령(矢川副令) 자의(自義) · 해평부령(海平副令) 자례(自禮) · 화성부령(化城副令) 자지(自智) · 가조부령(加祚副令) 자신(自信)의 5남을 두었다. 6남 계천도정(溪川都正)의 휘는 성(誠)이며 의령남씨 척(倜)의 딸과 혼인하여 1녀를 두었는데 고성박씨 욱(頊)에게 출가하였다. 7남 봉산부정(蓬山副正)의 휘는 순(諄)이다. 전주최씨 윤형(允衡)의 딸과 혼인하여 외딸을 두었는데 문화류씨 인유(仁濡)에게 출가하였다. 8남 안창정(安昌正)의 휘는 심(諶)이다. 진주강씨 처정(處貞)의 딸과 혼인하여 임회수(臨淮守) 수(樹) · 사천수(沙川守) 식(植) · 서천수(舒川守)의 3남을 두었다. 임회수는 강릉김씨 상간(尙侃)의 딸과 혼인하여 이아령(利阿令) 영손(永孫) · 한남령(漢南令) 경손(敬孫) · 풍양령(豊壤令) 효손(孝孫)의 3남을 두었는데 후사가 없다. 사천수는 진주류씨 의습(義濕)의 딸과 혼인하여 외아들 용천부수(龍川副守) 지손(智孫)을 두었다. 9남 돌산부정(突山副正)의 휘는 광석(廣石)이다. 여흥민씨 담(憺)의 딸과 혼인하여 영덕수(盈德守) · 익안수(翼安守) 신손(信孫) · 금사수(金沙守) · 금주부수(錦州副守) · 가연부수(加淵副守) 인손(仁孫) · 장림령(長臨令) 진손(眞孫)의 6남을 두었다. 장림령만 후사가 있고 그 외는 무후이다. 장림령은 김해정씨 석강(石剛)의 딸과 혼인하여 옥계부령(玉溪副令) 숙손(淑孫) · 은계부령(銀溪副令) 숙령(淑齡) · 헌산부령(탧山副令) 숙근(淑根)의 3남을 두 었다. 10남 금지부정(金池副正)의 휘는 광근(廣根)이며 현풍곽씨 항(恒)의 딸과 혼인하여 외아들 광산수(光山守)와 1녀를 두었는데 딸은 창원공씨 승조(承祖)에게 출가하였다. 광산수의 후사는 기록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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