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상 <영화음악>이라고 써놓고 보니 수많은 영화음악들 가운데서 어떤 것을 먼저 언급해야 할지 참 난감하군요. 하지만 제일 기억에 남는 음악을 중심으로 말하는 것이 현명하겠습니다. 뭐 이것 저것 아는체 할게 아니라(그다지 아는 것도 없습니다만) 감동의 울림이 컸던 음악을 중심으로 떠올리는 것이 좋을 것 같군요.
역시 영화음악의 아름다움은 배경음악, 주제음악 할 것 없이 영화 자체의 내용과 완벽하게 조화될 때 최고조에 달합니다. 함 꼽아볼까요. 프렌시스 레이 악단의 <남과 여>의 주제음악, <닥터 지바고>의 '라라의 테마', 페데리코 펠리니의 감동적인 영화 <길>에 나오는 니니 로소의 트럼펫 선율, 뭐 그뿐이 아니지요. 좀 가볍과 유쾌한 영화음악으로 조이 로이 힐 감독의 영화 <스팅>의 주제음악인 <엔티테인먼트>는 또 어떻습니까.
흑인 피아니스트였던 스코트 조플린이 작곡한 주제곡으로, 원래 피아노로만 연주되는 이 곡은 후에 오케스트라, 혹은 소규모 캄보 형태로 많이 연주되기도 했지요. <스팅>은 <내일을 향해 쏴라>에서 명콤비를 이뤘던 폴 뉴먼과 로버트 레드포드가 열연했던 유명한 영화입니다. 그런데 사기꾼이긴 하지만 무척 인간적이기도 한 이들의 모습과 조플린의 주제곡은 너무도 잘 어울리는 것 같습니다.
제가 평소 이 곡을 너무 좋아해서 취미삼아 만든 비디오 다큐 배경음악으로 사용한 적이 있습니다. 참고로 <엔티테인먼트>는 재즈의 초기형태인 1890년대의 '래그타임'의 대표적인 곡이기도 합니다. 래그타임은 이후, 뉴올리언즈 재즈로 변화되었고 이어서 여러분도 잘 아시는 명 트럼펫 연주자인 루이 암스트롱, 클라리넷의 베니 굿맨으로 대표되는 1930년대의 스윙재즈 시대로 가게 됩니다.
재즈사를 통털어 보통 모던재즈와 고전재즈로 대별할 때 고전재즈는 바로 이 스윙재즈를 의미합니다. 스윙이란 보통 그네가 흔들리듯이 흔들 흔들 하는 그런 느낌을 의미하는데요, 이 스윙재즈는 1920년대 후반 미국 사회가 처한 경제공항 시절, 그 칙칙하고 어두운 선술집에서 뒷골목 깽들이 씨거를 입에 물고 연기 자욱한, 영화적으로 말한다면 필름 느와르적인 분위기가 그대로 반영된 음악이지요.
셀지오 레오네의 <원스 어폰 어 타임인 아메리카>나 마틴 스콜세지의 <좋은 친구들>에 나오는 분위기가 바로 이 스윙 재즈시대의 어두운 사회적 분위기라 보면 틀림없겠습니다. 기왕 재즈를 언급했으니 간단하게나마 재즈의 변천사를 약술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이후 재즈는 모던 재즈의 초기격인 1940년대의 비밥(찰리 파커, 신경숙의 소설 <외딴방>에 잠깐 언급되기도 하는 디지 길레스피, 그리고 델로니어스 뭉크)을 거쳐 1950년대의 쿨재즈 시대(길 에반스, 쳇 베이커, 마일스 데이비스)로 진입하게 됩니다.
이어서 1960년대의 모던재즈 시대(빌 에반즈, 오넷 콜먼)로 진입하게 되는데, 40년대의 비밥으로부터 60년대의 모던 재즈까지의 전체를 30년대의 스윙재즈(고전재즈)와 구별해서 일반적으로 모던재즈 시대로 통칭하게 됩니다. 이 정도로 저의 재즈 지식은 이미 바닥을 드러내고 말았습니다. 하기야 뭐, 제가 재즈매니어가 아닐뿐더러 이 글은 역시 영화음악을 주제로 하기 때문에 일단 그 복잡하기 짝이 없는 재즈의 계보에 대해서는 이 정도로 마치겠습니다.
참~ 어데서 이 글이 옆길로 샜지요? 아, <스팅>이었군요. 그러면 또 계속해 볼까요? 제가 앞에서 잠깐 <스팅>을 언급할 때 폴 뉴먼과 로버트 레드포드를 말한 바 있습니다만, 아무래도 <내일을 향해 쏴라>(*원제/Butch Cassidy and the Sundance Kid를 말하지 않을 수 없군요. 이 영화의 주제곡인 <내 머리에 떨어지는 빗방울> 기억나십니까?
은행털이 전문깽인 폴 뉴먼이 로버트 레드포드의 연인이던 캐서린 로스를 자전거에 태우고 빙글 빙글 돌 때 들려오던 이 경쾌한 주제곡인 <Raindrops keep falling on my head>. 참 아름답고 슬픈 영화 음악이지요. 로버트 레드포드는 후에 이 영화를 기념하기 위해서 '선덴스 영화제'를 창시하게 되었고 영화제를 해마다 열게 됩니다.
이 영화제는 저예산 영화를 주로 만드는 작가주의 예술파 영화감독들을 발굴하기 위해 열리는 유명한 영화제이기도 합니다. 여러분, <펄프픽션>과 <저수지의 개들>로 유명한 쿠엔틴 타란티노 기억하시지요? 물론 <펄프픽션>이야 칸느 영화제 수상작이지만 타란티노는 처음에 이 선덴스 영화제로 이름을 알린 감독입니다. 영화 이야기를 꺼내다 보니 어느새 음악은 또 뒷전으로 밀려나고 마는군요.
자, 다시 음악으로 돌아가 볼까요? 제가 워낙 영화를 좋아하다 보니 나도 모르게 자꾸 그 쪽으로 발걸음이 가는군요. 어쩔 수 없는 일이지요. 사이먼 앤 가펑클의 화음이 기막히게 어우러진 영화 <졸업>에서의 <사운드 오브 사일런스> <미세스 로빈슨>. 전쟁중의 병사들이 총을 던져 버린 채 엉뚱하게 시를 쓰질 않나, 술집 여자와 연애에 빠지질 않나.
가브리엘 살바토레의 <지중해>는 무료한 일상에서 일탈을 꿈꾸는 우리에게 서정적인 아름다움은 물론이고, 주제음악을 통해서 한층 더 우리의 정서를 촉촉하게 적셔줍니다. 특히 독특한 키타 선율과 오케스트레이션이 잘 어울린 주제음악을 듣다보면, 누구나 시인이 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군요. 어느날 강태공이 오매불망 대어를 낚은 후, 사투 끝에 대어를 겨우 끌어 올리다 그만 놓치고 마는 식의, 결국 완전범죄가 마지막에 무위로 끝나고 마는 르네 끌레망의 <태양은 가득히>.
이 영화가 우리에게 전하려는 메시지는 허망한 인간조건을 말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 어느 것에도 마음을 주지 못하고 마치 허공을 바라보듯 뻥 뚤린듯한 공허로움이 가득한주인공의 모습. 그래서 뭔가 중심을 잃어버린듯한 알랑 드롱의 모습은 우리의 고독한 모습에 다름 아닐 터입니다. 그러한 공허감을 멋진 트럼펫 선율로 조화시킨 니니 로소(펠리니의 <길>의 주제가도 그의 트럼펫 연주다)의 주제 음악은 영화팬들의 기억에 오래도록 남아있을 불멸의 영화음악 가운데 하나입니다.
자, 이제 마지막으로 라이 쿠더의 일렉키타의 선율이 우리의 폐부를 뒤흔드는 영화, 빔 밴더스의 <파리, 텍사스>를 언급하고 이 글을 마치기로 하겠습니다. 오프닝 신. 왠 헙수룩한 중년 남자 한 사람이 낡은 모자를 쓴 채, 초점잃은 퀭한 눈빛으로 막막한 황야를 걸어갑니다. 말 그대로 무작정 앞만 보고 걷는 식이지요. 작렬하는 오후의 뜨거운 태양빛.
저 멀리 철조망 위에 앉아 있는 독수리 한 마리. 오로지 사위는 적막감 뿐입니다. 어떻습니까. 이 정도 분위기만으로도 감이 잡히지 않습니까? 한마디로 목적지가 없는, 나그네의 정처없는 발걸음인 셈이지요. 가정을 버린 남자. 그래서 이제 아내와 자식을 떠나 의지할 곳이 더 이상없는 가련한 남자. 그는 지금 어데로 향하는 것일까요.
이 영화는 현대 미국사회를 통렬하게 해부하는 내용으로 이뤄진 영화입니다. 최신 첨단 문명과 자기 중심주의, 극단의 개인주의, 오로지 앞만 보고 정처없이 나아가는 미국의 현재 모습에 예리하게 매스를 들이대는 문명 비판적인 영화라는 거지요. 이 영화의 도입부는 거의 5분여에 이르는 기나긴 롱 테이크 신입니다. 주인공 헤리 딘 스텐튼은 앞에서 말한대로 무작정 앞만 보고 걸어가고 있습니다. 이때, 묘한 선율의 전자 키타가 단음으로 길게 울려옵니다.
이 기타 소리는 참으로 공허하기 이를데 없는 선율이지요. 라이 쿠더의 주제음악은 너무 비장해서 오래도록 우리의 폐부를 찌를 뿐 아니라 현대인의 고독함을 강렬하게, 아주 강렬하게 상기시킵니다. 제가 연전에 군산의 어느 극장에선가 이 영화를 관람했을 때의 에피소드를 잠깐 소개하겠습니다.
이날 저는 무슨 일인가로 아내와 크게 다투고 나서, 그만 집에서 쫒겨난 신세가 되어 어데 갈데가 마땅찮던 차 우연히 이 영화를 보게 되었지요. 이때만 해도 나는 빔 밴더스가 누군지, 또, <파리, 텍사스>가 어떤 영화인지 전혀 정보가 없었던 터라, 마침 영화 속의 주인공의 처지와 내 처지가 너무 흡사했기에(다소 아전인수격입니다만) 라이 쿠더의 주제 음악은 너무 감동적이었습니다.
저는 이 영화가 끝난 후에도 한 참이나 자리에 앉아 있었던 기억이 나는군요. 만약 누군가가 나에게 가장 인상적인 영화음악 한 편을 말해보라 한다면 나는 지금도 주저없이 이 라이 쿠더의 <파리, 텍사스>의 주제곡을 말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