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애만록(枯崖漫錄)」은 남송대(南宋代) 임제종 양기파 선승(禪僧)들의 삶을 기록한 책이다. 저자 고애 원오(枯崖圓悟, 생몰연대 미상)스님은 복주(福州) 복청(福淸) 사람으로 대혜 종고(大慧宗 )-졸암 덕광(拙庵德光)-절옹 여염(浙翁如琰)-언계 광문(偃溪廣聞)으로 내려오는 양기파의 한 맥을 잇는 분이다. 그는 원래 유학을 익히다가 발심출가하였고, 경산사(徑山寺)에서 서기소임을 본 일이 있으며 가정(嘉定, 1208∼1224) 연간에는 보령사(保寧寺)에 머물다가 1263년 경산사로 돌아와 이 책을 썼다. 북산(北山) 소융(紹隆)스님의 서(序)에 의하면, 고애스님은 석계(石溪)스님의 유지를 받들어 1263년에 이 책을 탈고했고, 그 후 스승 언계스님의 감수를 거쳐 약 10년 후인 1272년 소융스님과 진숙진(陳叔震)의 서문을 붙여 상·중·하 3권으로 간행되었음을 알 수 있다. 저자는 오등록(五燈錄)에 수록되지 못한 것을 모아 펴 낸다고 하면서 겸손하게 '만록(漫錄)'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있으나 이 책은 완성되자마자 스승과 주위 사람들로부터 전등사서(傳燈史書)로서 대단한 평가를 받았다. 선승들의 수행이나 법문을 기록하는 전등사서와 어록의 편찬은 송대 불교사(宋代佛敎史)의 가장 큰 특징으로 꼽히고 있는데, 이 사서(史書)의 중심 인물인 임제종 양기파 선승들은 남송(南宋)불교에서 커다란 위치를 점한다. 알려진 대로 여진족이 세운 금나라의 핍박을 받아오던 12C 초 한족(漢族)은 1127년 소위 '정강(靖康)의 변(變)'을 계기로 북송시대를 마감하고 남경(南京)으로 천도하여 남송시대를 열었다. 북송 때부터 정부 상층부의 귀의를 얻고 있던 불교계는 이를 계기로 해서 강남(江南)지역을 중심으로 새로운 발전을 보이는데, 이때 중심 인물이 바로 대혜 종고(大慧宗 )스님이다. 대혜스님은 금(金)이 송(宋)을 침범하였을 때, 사람들의 의견이 주화(主和)와 주전(主戰)으로 갈리자 유배당하면서까지 주전파의 입장에 서서 한족의 자존심을 지키려 했던 인물이다. 이 밑으로 많은 선승들이 배출되었는데, 고애스님은 자신이 이 시기(12C 중∼13C 중)를 살면서 보고 들었던 선배들, 즉 대혜스님의 제자들과 양기파의 또다른 맥인 호구 소융(虎丘紹隆)스님 제자들의 올곧은 삶을 주로 다루고 있다.(이 책에 등장하는 스님들의 계보는 별표 참조) 이 책 중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내용은 화두참선에 관한 이야기로서 당시 선풍을 짐작케 해준다. 또한 불탄절, 열반절 등 불교기념일이나 동지, 개로일(開爐日:화로 피는 날), 안거 결제해제일, 개당법회 등 선법회가 상당히 성행했고, 이런 법회에서 옛 기연에 대해 묻고 대답하며 염(拈)하거나 송(頌)하는 등 선법(禪法)을 거량하는 격식이 정형화되고 있음을 잘 보여준다. 저자는 이 책에서 불교 제일의제인 생사문제를 끊임없이 확인하는 한편, 수행이나 대중살림, 학인지도, 큰스님 시봉 등을 잘한 것은 잘한대로 못한대로 드러내고 비판하면서 사건이나 인물에 짤막한 평을 붙임으로써 선승(禪僧)이자 사가(史家)로서의 인물을 발휘하고 있다. 임제의 후손이라는 뚜렷한 법맥의식을 가지고 화두선이라는 일관된 주제를 통해 선불교계의 이야기와 인물을 정리했다는 점에서 이 책은 남송대(南宋代) 선풍을 짐작케 하는 저술로 그 가치를 평가받을 만하다 하겠다.
|
첫댓글 lniTArBIodKfrJpubaLSeRhFOmWkjBHhuGeASQlMRgAQHvMzrJ