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I. 창시자 최광조 총재
최광조 총재는 일제 말기인 1942년 경북 대구에서 출생하였다.
12세부터 당수, 권법, 유도, 권투, 태권도를 배우기 시작하였는데 또래의 아이들보다 키가 작고 몸집이 왜소하여 혼란기에 살아남으려면 무술을 익혀야 한다는 아버지의 권유에 따라 도장을 찾은 것이다. 그의 첫 스승은 이동주 사범과 조정득 사범이었다.
대구 대륜 중․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한국외국어대학교 영어과에 입학, 재학중 군에 입대하여 육군 보병20사단에 배정되면서 그의 태권도 실력은 두각을 나타내게 되었다. 육군 보병 20사단 태권도 사범단의 교관으로 활약하였으며, 군복무를 마치고는 치안국 경찰과 공군 제 11전투비행단에서 태권도를 수련시키는 사범으로 활약하였다.
1967년에는 한국 최고의 태권도 사범 여섯 명이 선발되어 동남아시아(말레이시아, 홍콩, 태국, 인도네시아 등)를 순회하며 100여회의 태권도 시범을 보이며 한국 태권도를 최초로 소개한 주인공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는 무리한 동작으로 말미암아 관절과 근육에 이상이 발생하여 운동은 물론 일상생활까지 지장을 줄 정도의 심각한 증세를 얻어 시달리게 된다. 한번 상해를 입은 그의 몸은 전혀 회복될 기미가 보이지 않아 치료차 1970년 캐나다로 건너가 여러 의사들로부터 진단과 물리 치료를 받았으나 아무 효과가 없었다. 결국 의사들은 수술을 권했으며 수술후엔 무술 운동을 할 수 없다고 하여 쉽게 수술 권유를 받아드릴 수 없었다.
1974년 그는 미국으로 건너가게 되었는데 수술을 받지 않고 자신의 신체조건에 맞는 운동을 통해서 어떻게든 회복하려는 결심으로 물리적 치료방법에 관해 관심을 가졌다. 인체해부학, 운동역학, 운동생리학 등을 공부하며 자가 치료에 적용하였고 그러면서 인간의 동작이 신체에 미치는 영향과 이상적인 움직임에 대한 과학적 원리를 연구하게 된다.
1978년부터 1987년까지 그러는 동안 9년에 걸쳐 그의 몸은 완전히 회복되어 정상상태를 되찾았다. 이 기간 동안 그는 그의 운동 동작을 바로 그의 새로운 무술 동작에 접목 활용하는 실험을 거듭하게 되었으며 이것이 바로 최광도를 탄생시킨 결과를 가져온 것이다. 이제 그가 개발 창안한 최광도는 무술인 동시에 신체적 정신적 건강 증진의 웰빙(Well-being) 운동으로 인정받아 미국에 이은 영국, 호주를 비롯하여 세계로 보급되어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다.
최총재는 지금도 전 세계 여러 나라에서 정기적으로 기술 세미나를 수행하면서 직접 지도하고 있는데 고령임에도 그는 건강함은 물론 동작의 위력과 속도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나이의 한계를 뛰어 넘어 최광도의 수련 결과를 생생하게 보여주는 살아있는 증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총재가 한 말 중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있다.
‘무술이란 자기를 방어하는 능력을 갖춤과 동시에 건강에도 유익함을 주는 기본적인 인체 과학에 그 기초를 두어야 한다. 나는 나 스스로 개발한 최광도로 말미암아 나의 건강, 그리고 나의 인생의 질(質)과 의미가 극적으로 변화 향상되었다. 내가 개발한 이 무술이 내게 이 같은 증진을 초래하고 있음은 곧 그 어느 누구에게도 같은 증진이 초래된다고 나는 단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