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 황지우
한국예술종합학교의 2007학년도와 2009학년도 입학식 총장 축사를 소개합니다.
황지우 총장은 1952년 전남 해남에서 태어났으며,광주일고을 졸업했습니다. 서울대 미학과를 졸업하고 한신대 문예창작과 교수를 거쳐 1997년부터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극작과 교수와 그 후 연극원장을 맡았습니다. 2006년에는 교수들의 직접 선거로 임기 4년의 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에 선출되었습니다.
하지만 황지우 총장은 지난 5월 19일 학교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총장직의 사퇴를 선언했습니다.
유명한 시인인 황지우 총장은 시집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 ‘어느날 나는 흐린 주점에 앉아 있을 거다’ 등을 냈으며 ,그동안 김수영문학상, 현대문학상, 소월시문학상, 백석문학상, 대산문학상 등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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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예술종합학교 2007학년도 입학식 축사
和而不同 -2007학년도 입학식에 부쳐
내가 시에 처음 ‘눈 떴던’ 때라고 할까요, 파블로 네루다식으로 표현해서 “시가 나를 찾아왔을 때”가 중3 때였던 것 같습니다. 뜬금없이 누군가가 그리워지고, 방학 때 시골 친구집 가서 곁눈으로 힐끗 보았던 친구 누나가 무장무장 보고 싶어지고, 사타구니에서 이상한 털이 나기 시작하면서 생의 비린내를 느꼈다고 할까요, 어느 날 갑자기 산다는게 시시하게 느껴지고, 가을날의 신작로 앞에서 어디론가 멀리 훌쩍 떠나버리고 싶던 이른바 사춘기 징후 속에서 문학이라는 열병에 감염되고 말았습니다. 그 무렵 김소월의 ‘초혼’이나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고독’이라는 시를 접하고는 그만 내 가슴이 무너져버렸습니다. 그때부터 나는 자주 가슴이 무너져내렸는데, 심지어는 최희준의 ‘하숙생’이라는 유행가만 들어도 그랬습니다.
요즘 문학 강연 같은 데 가면 나는 반드시 이 이야기를 합니다: “가슴이 무너진 적이 없는 사람은 시를 쓸 수 없다.”고요. 그 가슴 저리고, 애리고, 물클한 것 때문에 사람들은 뭔가를 씁니다. 이 흉곽내과적인 증세야말로 말하자면 시의 센서 같은 것입니다. 그것이 먼저 가슴 속에 내장되어 있어야 살아가면서 지각하고 경험하는 어떤 일이나 오브제들이 시가 될 만한 것인지 아닌지 감지되며, 그 가운데 딱 시가 될 만한 것이면 부저가 뚜뚜 울리면서 문이 열리는 것이지요.
사실 그 시절 나는 시가 뭐라는 걸 전혀 알지 못한 채 그냥 ‘견딜 수 없어서’ 시 비스무리한 뭔가를 마구 썼습니다. 그 가운데 몇 편을 골라 그 당시 중고삐리들이 많이 보던 ‘학원’이라는 잡지에 투고해 보았습니다. 그게 어떻게 당선되는 바람에 오늘날 내 인생이 이 지경 이 신세가 되어버렸습니다만, 정작 당선작품이 발표된 잡지를 받아보았을 때는 기쁘기는커녕 실망을 금할 수 없었습니다. 국어 교과서에도 나와 있는 박목월 선생이 심사평을 쓰셨는데 아주아주 혹평이었기 때문입니다. “황군의 감수성은 소년답지 못하고 병적이다.” 그 당시 얼마나 충격 먹었으면 이 나이 되도록 그 문구를 또렷이 기억하겠습니까?
시에 정나미가 딱 떨어져버렸는데, 또 고등학교 진학하자 왠 불양배 같은 문예반 선배들이 소문 듣고 와서 포섭하는 통에 그 당시 학내 조폭 써클 이름인 ‘들장미’, ‘진’, ‘아카시아’와 동격인 ‘원시림’이라는 문학동인지 활동을 했습니다. 물론 우리 동인들 중에는 천변 너머에 있는 여학교에 주로 포커스를 두고서 숫컷들의 깃털세우기의 일종으로서 문학을 사칭하는 자들도 있었지만, 그 당시에는 다들 ‘나는 천재가 아닐까’ 하는 망상 속에서 랭보나 이상을 흉내 내면서 고등학생이라는 게 너무 갑갑하고 억울한 문호 행세를 했드랬습니다. 모자도 일부러 찢어서 재봉틀로 박은 걸 쓰고 호크도 한두 개쯤 풀고, 인생의 쓴맛을 이미 다 본 것처럼 최대한 불우한 표정을 지으면서 생담배를 길게 내뿜으며, 대학가겠다고 공부한 졸라 하는 범생이들을 가련하게 여기며, 카프카가 어쩌구 사르트르가 어쩌구 저 혼자 잘난 체하는 데카당을 연출하고 다녔죠.
2007학년도 한국예술종합학교 신입생 여러분!
예술가가 되기 위한 험난한 도정에서 그 문지방을 막 넘어온 여러분에게 오늘 내가 별로 아름답지 않은 나의 ‘호밀밭의 파수꾼’ 시절을 먼저 이야기한 이유가 있습니다. 나의 시행착오, 나의 낭비와 방황을 통해 여러분에게 조언을 해주고 싶은 것이 있어서입니다.
그 학교 들어가기 어렵다는 걸 알만 한 사람은 다 아는 한국예술종합학교를 치열한 경쟁률을 뚫고 합격한 여러분은 이미 주위 친구나 지인들로부터 여러 번 축하를 받았을 겁니다. 또 마땅히 그럴 만합니다. 예술영재 교육을 목표로 정원을 다 뽑지 않는 소수정예주의를 표방하고 있는 이 학교에 입학했다는 것만으로도 여러분은 전국 예술계 대학에서 상위 3% 이내에 속한다고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마 여기에 앉아 잇는 여러분 가운데 ‘난 천재야, 천재임에 틀립없어!’라고 확신하는 사람도 있을 거고 ‘난 천재인가 봐.’라고 조심스럽게 위안하거나 ‘최소한 영재는 되겠지’라고 다행스러워 하는 사람도 있을 거고 ‘내가 천재나 영재가 아니면 어떡허지’라고 불안해 하는 사람, 아니면 ‘난 이도 저도 아닌데’ 하고 절망하고 앉아 있는 사람도 있을 겁니다.
여러분을 앞으로 교육해야 하는 입장에서 상당히 우려스럽고 걱정되는 분이 첫 번째 부류의 그 천재 확신범들입니다. 누가 봐도 전재인 자가 그렇게 확신하는 데에야 할 말은 없지요. 근데 그게 아닌 것 같은데 그렇게 확신하거나 그렇게 자기 연출하는 자들, 이것 정말 난치병 환자들입니다. 말도 안 되는 작품을 해가지고 와서는 교수한테 대든 학생들 있어요. “선생님 후회하실 거에요. 이건 1세기 뒤에나 그 진가를 알아볼 불후의 명작입니다.” 라고까지는 말하지 않더라도 불만 내지는 항의에 가득 찬 그 눈빛을 보면 거의 그런 의미에서 교수의 지적에 승복하지 않는 경우가 더러 있습니다. 물론 1세기는 아니더라도 10년 뒤에는 알아줄 예술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지금 내가 못 보고 있는 건 아닐까 하고 나도 나의 기준을 재점검하기도 합니다. 내 곧ㅇ학교 때 지방 문단의 시인이기도 했던 문예반 지도 국어 선생님께 똑 같은 감정을 가진 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런 부류의 학생들이 졸업하고도 10년 가까이 되는데 아무 소식이 없는 걸 보면, 적어도 예술가 수업 시대에 천재 연출자들은 아무 득이 없다고 말해도 무방한 듯합니다.
내가 싫어하는 학생은 눈만 높아가지고 아무것도 못하거나 안 하는 년/놈들입니다. 이 년/놈들은 수업시간에 교수 강의를 팔장끼고 삐딱한 시선으로 노려보면서 감상만 하는 자들입니다. 이들은 머리 속에 뭐가 좀 들어 있다고 혹은 미리서 발랑 까져가지고 남이 해 놓은 것에 대해서는 혹독하게 평할 줄은 아는 데 저더러 하라고 하면 그 만큼 못하거나 안 되는 자들입니다. 그러니까 안 합니다. 안 하고 못하니까 더 까탈스럽고 사람이 비비 꼬여 있습니다. 이들은 결국 잘 해봤자 조금은 세련된 딜레탕트이거나 문화소비자밖에 안 되는데, 내가 왕년에 그래봤기 때문에 제일 경멸하는 부류들입니다.
영향받기를 꺼려하거나 거부하는 자는 난장이가 됩니다. 우리 학교 교수님들은 대부분 각 장르 분야에서 국내 최고 예술가들, 마에스트로, 명인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예술 입문자인 여러분은 그 분들로부터 유보 없이 영향을 받으십시오. 어린 새가 어미 입 속에 든 먹이를 꺼내어 먹듯이 여러분 선생님 속에 든 것을 꺼내 먹으십시오. 그것은 반쯤 소화된 것이기 때문에 여러분을 빨리 자라게 할 것입니다. 선생님이 속에 숨겨놓은 것까지 훔쳐내십시오. 13세 된 미켈란젤로는 그의 스승 기를란다이요가 숨겨놓은 뎃상을 서랍에서 몰래 훔쳐내어 임모하고는 가짜를 그럴 듯하게 조작해서 갖다놓습니다.
예술의 긴 역사를 보면, 예술 창조는 일종의 관습으로부터 시작한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14세기에서 16세기에 이르는 찬란한 르네상스 예술의 명작들은 다 보테가(공방, Workshop)에서 스승(마에스트로)과 제자(도제) 사이에서 영향을 주고받는 하나의 관습에 의해 만들어진 것들입니다. 그 대표적인 관습이 중앙선원근법인데, 이것이 이 시대 사람들이 세계를 바라보는 하나의 동일한 시형식See Form이었으며 그들은 세계를 그렇게 밖에 볼 수 없었습니다. 이런, 모든 것이 가능하지 않는 그 시대만의 양식 속에서 보티첼리, 다빈치, 라파엘로는 그 스승들에게서 영향받거나 훔쳐낸 모방을 통해 종이 한 장만 한 차이를 예술사에 남겨놓았던 것입니다. 다만 그 차이는 작은 것이었으나 결정적인 차이였던 거죠. 예술사는 그것을 기억한 것이고요.
천재론에서 모차르트 현상처럼 전무후무한 경우가 아직도 없다 하겠습니다. 그러나 모차르트처럼 소름끼치게 신비스러운 천재마저도 그 이전에 이태리 양식, 프랑스 양식, 만하임 양식 등 기존의 음악적 관습을 두려워 하지 않고 거리낌 없이 받아들인 결과입니다. 창조는 무에서 유를 만들어내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유에서 무를, 즉 주어진 것으로부터 주어지지 않은 것을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닮되 차이를 만들어내는 것이죠.
오늘 2007학년도 한국예술종합학교 신입생을 맞이하고 또 여러분을 환영하는 이 자리의 화두로서 나는 공자 논어 자로편에 나오는 “군자는 화이부동하고 소인은 동이불화한다.” 어록을 되새기고 싶습니다. 군자라는 말을 예술가란 말로 대체한다면 무릇 예술가는 같이 어울리되 결코 같아지지는 않는다 하겠습니다.
신입생 여러분! 그러므로, 자신이 천재인가 아닌가 고민하지 말고 무조건 저지르십시오! 세잔느는 자신과 가장 친한 친구인 에밀 졸라의 소설 속에서 실패한 지방 화가의 전형으로 묘사됩니다. 고흐도 유일하게 그를 이해해 주었던 동생 테오에게마저 어찌 해볼 도리가 없는 실패자였습니다. 이 불행한 예술가들은 그런 처절한 고립 속에서 미친 듯이 그렸습니다.
여러분 가슴 속에 끓고 있는 것, 치밀어 오르는 것, 그 뭉클한 것, 소위 미학자들이 '예술의욕'(Kunstwollen)이라 부르는 것을 존중하고 그것을 따라가십시오. 여러분의 본능을 믿고 자신의 표현 충동에 이끌려 가십시오. 이것을 하지 않으면 나는 잠이 안 온다, 이것이라도 하지 않으면 나는 사는 재미가 없다, 이것을 하지 않으면 나는 죽을 것만 같다는 내적 필연성을 가지고 여러분 자신의 '예술에의 의지'에 복종하십시오. 아니, 차라리 예술을 가지고 노십시오! 예술을 너무 무겁게 생각하지 말고 가볍게 장난감처럼가지고 노세요. 여러분 전공의 도구들, 피아노든 해금이든 HD 카메라, 컴퓨터, 무대 또는 혼합매체든, 이것들이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닳아뜨리십시오. 이런 유희 정신이 중요합니다. 재미나게 가지고 놀다보면 어느 날 문득 깨달음이 올 것입니다. 결국 예술이란 '유희'로부터 '발견'에 이르게 되는 것이니까요.
남극이 바라다 보이는 파타고니아 빙벽 위에 알바트로스라는 새가 알에서 부화하여 깨어납니다. 새끼 새들은 어미의 부리를 마구 쪼아 불룩한 목에서 먹이를 꺼내어 먹습니다. 다 자란 새끼는 첫 비상을 위해 몸보다 훨씬 커진 날개를 질질 끌면서 뒤뚱뒤뚱 벼랑을 향해 질주합니다. 그렇습니다. 이 새들은 날기 위해 온몸을 바다에 던집니다. 그야말로 투신한 겁니다. 어떤 새들은 그대로 바다에 곤두박질쳐 죽어버립니다. 그러나 어떤 새들은 수면 위에서 가까스로 허공을 차고 날아오릅니다. 마침내 해벽을 지나가는 바람을 만나 구름을 뚫고 올라간 그 놈들은 지상에서 가장 높이 나는 새, 알바트로스가 됩니다.
2007학년도 신입생 여러분! 여러분이 이 학교를 졸업한 후 저 창공 너머 공기마저 희박한 드높은 곳에까지 여러분을 날게 할 자신의 날개를 이 학교에서 만드십시오. 입학을 축하합니다.
2007년 3월 2일
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 황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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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예술종합학교 2009학년도 입학식 축사
1만 시간의 몰입
2009학년도 한국예술종합학교 신입생 여러분! 지금 여러분과 여기 무대 오른쪽에 서 계신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님들과 더불어 저는, 1817년 3월 17일 순조의 맏아들 효명세자의 성균관 입학식을 그린 의궤, <왕세자입학도첩>의 한 폭 속에 들어와 있습니다.
지난 백년 동안 숨가쁘게 휘몰아친 우리의 근대의 시간 속에서 우리는 우리의 삶과 문화를 감싸주었던 의식, Ritual을 양가죽 벗기듯 다 벗겨버렸습니다. 물론 의례의식이 공허한 허장성세요 진실을 감춘 가식일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잘 보면, 그것은 우리의 덧없는 삶과 헐벗은 세상에 대해 우리가 견딜 수 있도록 하고, 삶의 어떤 순간들을 의미 있고 소중한 것으로 간직할 수 있게 겹을 대주는, 인류학적인 큐션 장치입니다. 그런 점에서 오늘 이 입학식은 비록 약식으로 대충 꾸린 것일지라도, 스스로를 존엄스럽게 하는, 아름다운 의식 속에 2009학년도 한국예술종합학교, K'ARTS 새내기 여러분을 학교가 정중하게 맞이하고 싶다는 걸 보여주는 거라 하겠습니다. 적어도 오늘 이 순간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은 왕세자만큼이나 귀하고 소중한 존재라는 것을 이 학교는 명심하고자 합니다.
조선조 누대에 걸쳐 내려온 세자의 입학례는 크게 두 가지 중심 장면으로 이뤄져 있습니다. 먼저 酌獻?로 입학자가 성균관 대성전에 모셔진 공자 神位에 술잔을 올려 예를 표합니다. 공자는 여러분 아다시피, 앞뒤 꽁 막힌 도학자가 아닙니다. 술과 고기를 좋아하고 특히 시를 좋아했으며 좋은 음악을 들으면 그 좋아하던 고기를 석 달간 잊어먹을 정도로 예술 狂팬이자 멋쟁이였습니다. 그는 BC 6세기 춘추전국시대, 인간이 모두 조폭 망나니처럼 형편없는 존재로 전락한 시절에 음악이야말로 사람들이 그런 짐승의 상태로 떨어지지 않는 禮의 중요한 방편이라 생각했을 정도입니다. 아까 여러분을 대표한 입학자는 그 ‘예술의 신위’ 앞에 향을 피우고 술을 올렸습니다. 그 향기와 연기와 취기는 금방 공기 속에 사라져버렸을까요? 여러분이 올린 작헌례는 연기와 취기가 사라져서 들어간 공기 저편의 어떤 초월적 존재, 예술의 신이라 할까, 뮤즈라 할까, 그 무엇과의 약속, 다시는 취소할 수 없는 어떤 언약에 다름 아닙니다. “저, 김 아무개, 이 아무개는 이제 예술에 목숨 걸었습니다. 부디 저를 소유해 주세요.” 라는 다짐과 부탁, 기도, 아니 자기 주문을 여러분 스스로 걸었습니다. 뮤즈라는 강력한 여신에게 여러분의 자아소유권을 이양한 순간입니다. 여러분은 이제 들렸습니다. You Are Possessed. 그러므로 이제부터, 만약 여러분이 이 뮤즈에게 배신을 때린다면, 뮤즈는 여러분에게 가혹한 복수를 내릴 것입니다. 예술을 안 하면 사는 것 같지가 않고, 살맛이 안 나고, 만사가 덧없고 허무하고, 미칠 것 같고, 곧 죽을 것 같은...., 그래서 예술, 너 아니면 난 죽을 수밖에 없는가 하는 광적인 필연성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도록 할 것입니다.
두 번째 장면은 束脩禮로, 작헌례를 마친 입학자가 박사에게 예물을 바치고 가르침을 청하는 예식입니다. 본디 속수란 다발 束, 마른고기 脩로 열 다발의 육포를 뜻하는 것이라는데, 그게 요즘 같은 쥐포라면 모를까, 먹을 것 귀했던 공자시대 사슴고기 육포 열 다발은 스승에게 드리는 최소의 예물 치고는 좀 심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 어쨌든 <논어> ‘述而’편에서 공자는 “속수를 행한 자인 한, 내가 가르쳐주지 않은 적이 없다”(子曰, 自行束脩以上은 吾未嘗無誨焉이로다)라고 쓰고 있습니다. 군대 제대 말년 전방에서 한문 공부 좀 해 보겠다고 논어를 읽다가 공자의 이런 사교육 현장을 목격하고는 좀 의아해 한 적이 있지만, 그 뒤로 나는 내가 진정으로 존경하는 은사님에게는 명절 전에 작은 굴비 꼴랑지 한 속을 들고 찾아가 그 동안 입은 學恩에 빈약한 예를 표하곤 했습니다. 평소 시니컬하고 지적인 선생님 성격으로 보아, 촌스럽게 뭘 냄새나는 이런 걸 들고 왔냐고 힐난할 것 같았는데 선생은 의외로 그렇지 않고 적이 흐믓해 하는 표정이었습니다. 속수의 행위 배후에 있는 동양 지식인들 사이의 모럴 코드랄까, 사제간의 정과 예를 간파하셨던 거죠. 그 진정한 존경심 말입니다. 속수례란 바로 그 존경심이라는 전도체를 통해 스승과 제자 사이에 가르침과 깨우침의 전류를 흐르게 합니다 .
각설하고, 오늘 제가 여기 2009학년도 케이아츠, 예술의 왕세자들과 함께 음미하고 싶은 속수례의 의미는 다음과 같은 것입니다. 아까 왕세자는 박사에게 세 번 가르침을 청하였고, 박사는 그걸 두 번 사양하다가 세 번째에 마지못해, 겨우 수락하더군요. 선생은 자꾸만, “난 그대를 가르치기에는 덕도 모자라고 사실 실력도 시원치 않으니 그만 돌아가 달라”고 뿌리치는데, 학생은 또 자꾸만, “그렇지 아니 하옵니다, 싸아푸! 사푸, 가르쳐주세요, 가르쳐주세요!” 하고 떼를 씁니다. 물론 이거는 이미 정해진 프로토콜이고, 짜고 치는 고스톱이며, 조선왕조를 갈갈이 찢어놓은 유림 특유의, 짐짓 서로 겸양 떠는 위선의 세리모니라고 일갈해 버릴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저는 이들의 프로토콜에는 전혀 다른 맥락에서 우리가 함께 공유했으면 하는 심오한 함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즉 가르치고 배우는 교육에 임하는 태도에 있어서 학생의 적극성, 능동성과 선생의 수동성이 유난히 부각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특히 예술가를 길러내는 한국예술종합학교는 학생이든 교수든 바로 이점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음악, 연극, 영상, 미술, 무용, 전통예술 등 예술 전 장르를 망라하고 있는 국내 유일의 국립예술대학인 본교는 그 교육목표를, “창의적 전문예술가를 육성”하는 것으로 설치령에 밝히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술가를 ‘육성한다’, ‘양성한다’는 말에는 아직까지 저는 거부감을 느낍니다. 예술은 가르쳐서 되는 것도 아니고 예술가는 누가 길러주는 게 아니라 스스로 태어나는 자라는 낭만주의 이상이 여전히 나를 사로잡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저는, 예술교육에 있어서는 선생이 학생들에게 너무 많이 가르치는 것은 좋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예술을 가르치는 선생은 의도적으로 조금 덜 가르치는 것, 아니면 겨우 가르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다 가르치지 않고 얼마간 비워두어야 학생이 스스로 자라서 뚫고 나올 여지가 있기 때문입니다. 교수가 자기 작업만 하고 학교에는 나오지도 않고 학생들 만나주고 가르치는 일을 거의 하지 않는다면 그것도 큰 문제이지만, 선생이 자기가 알고 있는 모든 것을 학생에게 다 가르쳐 주려고 한다거나,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을 모두 학생에게 채워주려 한다면, 그것은 학생을 자기복제하는 것이 되고 맙니다. 차리리 학생은 얼마간 배고픈 상태, 아니 상당 정도 결핍된 상태에 놓여 있는 게 더 낫다 하겠습니다. 저는 우리 케이아츠, 한국예술종합학교가 영양과잉 상태에서 우리 학생들을 병들게 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러울 때가 있습니다. 이것은 제 자신에 대한 뼈저린 자기반성이기도 합니다. 저에게도, 목수가 좋은 나무를 보면 쩝쩝 입을 다시며 탐을 내듯이, 좋은 학생을 보면, 으그, 이걸 대패로 이리 밀고 저리 다듬어 보고 싶은 탐심이 많습니다. 연극원 극작과 ‘명작읽기’라는, 내가 맡은 과목은 ‘9 hour class’라고 학생들에게 아주 악명이 높았습니다. 3학점, 3시간짜리 과목을 밤 9시, 10시까지 끌면서 학생들을 무지막지하게 학대했습니다. 지금 제가 후회하는 것은, 인류 불후의 고전 텍스트들을 놓고 학생들이 직접 실감토록 하자는 취지에서 수많은 질문들을 퍼부었는데 결국은 내가 원하는 답, 내가 이미 가지고 있는 답 쪽으로 그들을 유도했다는 점입니다.
오늘 입학례에서 보여준, 스승의 의도적인 수동성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자못 심대하다 하겠습니다. 반대로 학생들은 의도적으로 가르침이 부족한 선생에게 끊임없이 껄떡대고 게걸스럽게 간청해야 합니다. 먹어도 먹어도 뭔가 채워지지 않는 결핍 상태, 끝없이 목마르고 배고픈 상태가 학생 스스로 자신의 창의성의 불꽃을 점화시키는 지점이며, 스스로 문제를 해결해 내는 자기발견적 학습(heuristic learning)이 일어나는 지점입니다. 무릇 예술가는 궁극적으로 독학자입니다.
근래 저는 예술과 과학 분야에서 위대한 업적을 남긴 이른바 천재들의 창의성에 관한 이런 저런 책들을 일별한 바 있습니다. 우선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고 있는 것이 이런 천재급 사람들은 IQ가 180, 적어도 150 이상은 되는, 스티븐 호킹 박사처럼 휠체어 앉아 눈만 껌벅거려도 온 우주를 통달하는 신비스러운 존재가 아닐까 하는 거죠. 그러나 심리학자들의 연구보고서에 의하면, 창의성과 지능지수는 아무런 상관관계가 없다는 것입니다. 물론 침팬지 지능지수에 가까운 아이큐 100 미만인 자들이 창의적인 일을 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하는데요, 보통 120 이상이면 창의적인 일을 할 수 있다고 합니다. 아이큐가 120을 넘는다면, 그 이상의 아이큐 지수는 실제 창의적인 활동에서 곧장 성공으로 연결되지 않는다는 얘기죠. 아더 젠슨의 <지능검사의 편견>에는 이렇게 씌어 있습니다: “상위 레벨의 아이큐지수 차이는 성격이나 인격과 같은 요소보다 훨씬 덜 중요한 역할만 한다.” 영국 심리학자 리암 허드슨은 또 이렇게 말합니다: “아이큐지수가 130인 숙련된 과학자가 노벨상을 탈 가능성은 아이큐 180인 사람과 비슷하다.” 심리학자들 추정에 의하면 모차르트 아이큐 지수는 127로 되어 있더군요.
모차르트,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 이 이름을 평생 절망 속에서 한숨으로 불러냈던 사람이 있으니, 모차르트 당시 가장 잘 나갔던 궁정 작곡가 살리에리죠. 피터 세이퍼의 희곡과 영화 <아마데우스>에서 모차르트에게만 쏟아지는 천재의 빛을 위해 더 어둡게 덧칠해지고 더 처절하게 망가져버린 인물인데, 모차르트의 악보를 받아본 그는 “모차르트, 이 버릇없고 젖비린내 나는 애송이는 지가 작곡을 하는 게 아니라 천상의 멜로디를 한 점 교정도 없이 그냥 받아쓴 것 같다”고 한탄해마지 않습니다. 이는 한껏 부풀려진 모차르트 신화입니다. 물론 서구 음악사에서 유례를 찾기 힘든 모차르트는 다른 많은 예술가들에게 천재의 공포스러운 모델이었습니다. 그러나 모차르트의 위대한 음악은 그냥 하늘에서 뚝 떨어진 신동의 餘技에서 나온 것이 아닙니다. 6살 때부터 작곡을 했다는 그는, 가만히 있는데 신이 천상에서 영감이라는 모바일폰으로 불러주는 대로 받아쓴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심리학자 마이클 하우는 <천재를 말하다 Genius Explained>에서 이렇게 쓰고 있습니다: “숙련된 작곡가 기준으로 볼 때 모차르트의 초기 작품은 놀라운 것이 아니다. 대부분 그의 아버지가 작성했을 것으로 보이며 이후 조금씩 발전한다. 그가 어린 시절 작곡한 초기 7개의 피아노 협주곡들은 다른 작곡가들 작품을 재배열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오늘날 걸작으로 평가받는 진정한 모차르트 협주곡, 9번 KV 271은 스물한 살 때부터 씌어졌는데, 이는 그가 협주곡을 작곡하기 시작한지 10년이 흐른 뒤다.” 음악평론가 헤롤드 쇤버그는 한 술 더 떠, 모차르트의 위대한 작품들이 작곡을 시작한지 20년이 지나서야 나온 것으로 볼 때 그의 재능은 오히려 “늦게 개발되었다”고 평합니다. 모차르트 신화를 한꺼풀 벗겨보면, 거기에는 보통 수준의 지능에 대단히 산만하기 짝이 없는 평범한 아이가 나옵니다. 다만 그는 어린 시절에 일찍 한 분야에 집중적인 자기 교육을 시작했고, 20년이 넘도록 거기에 몰입했을 따름입니다.
2009학년도 케이아츠, 한국예술종합학교 새내기 여러분! 오늘 우리 입학례의 핵심 화두는, 沒入一萬時間, “1만 시간의 몰입”입니다. 신경과학자 Daniel Levitin은 어느 분야에서든 세계 수준의 전문가, 마스터가 되려면 1만 시간, Ten Thousand Hours의 연습이 필요하다는 연구결과를 내놓았습니다: “작곡가, 야구선수, 소설가, 피아니스트, 체스선수, 숙달된 범죄자 등 어느 분야에서든 연구를 거듭하면 할수록 이 수치, 1만 시간을 확인할 수 있다. 왜 그런지는 알 수 없지만 어느 분야에서든 이보다 적은 시간을 연습해 세계 수준의 전문가가 탄생한 경우를 발견하지는 못했다.”는 것입니다. 또 어느 심리학자는 베를린 음악 아카데미 학생들을 대상으로 “처음 바이올린을 집어든 순간부터 얼마나 연습했는가?”에 따라 세 그룹의 학생을 조사했는데, 놀랍게도 엘리트 학생은 1만 시간 연습, 그냥 잘 하는 학생은 모두 8천 시간, 미래의 음악교사는 4천 시간의 연습을 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금년 1월에 출간된 말콤 글래드웰의 <아웃라이어>라는 책은 이처럼 어느 분야에 보통사람의 범위를 뛰어넘는 아웃라이어가 되는 매직 넘버, 1만 시간의 법칙을 여러 분야에서 추적하고 있습니다. 전설적인 컴퓨터 프로그래머 빌 조이, 21세기의 행운아 빌 게이츠, 함부르크 시절의 비틀즈 등등 말입니다. 이들에게 공통된 것은 십대 후반에서 20대 전반까지 자기 분야에 집중적으로 1만 시간을 몰입했다는 것입니다.
케이아츠 새내기 여러분! 여러분은 지금 피 끓는 청춘의 비등점에 들어섰습니다. 청춘은 도취의 시간이며, 몰입의 극치입니다. 여러분 일생 가운데 가장 민감하고 가장 불안하고 가장 크리에티브한 시간입니다. 이 시기에 여러분이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삶을 경험하고 세계를 어떻게 바라보는가가 여러분 일생을 규정할 것입니다. 이 귀중한 시간에 여러분이 가장 하고 싶은 것, 그것을 하면 잠도 안 오고 기분이 좋아지고, 잘 안 되면 미칠 것 같은 여러분의 어떤 것에 몰입하십시오. 여러분만의 몰입, 1만 시간을 잘 설계하고, 주저함이 없이 엔터키를 치십시오. 입학을 축하합니다.
2009년 3월 2일
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 황지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