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년층 위상 높이기와 실천과제
-'일하는 老年相' 정립해야-
김상태<대구 엘더스클럽 회장·구미1대 사회복지과 교수>
차례
1. 들어가며
2. 노년층 위상하락의 현실
3. 연령차별의 문제
4. 노년과 일
5. 국가·사회의 과제
6 노년층 의식전환 있어야
7. 나오며
1. 들어가며
한국 남자는 먹고살기 위해 평균 68세까지 일해야 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는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30개 국가 가운데 네번째로 높은 연령이다. 직장에서의 퇴직은 OECD 평균보다 10년 가량 빠른 35세부터 시작하는 한국 남자가 이처럼 고령이 되어서야 실질적으로 사회생활에서 은퇴하는 것은 국민연금 등 사회보장제도가 미비하기 때문으로, 이들 대부분은 생계를 위해 단순직과 임시직 등에 종사하고 있다.
30일 한국노동연구원에 따르면 OECD 국가 중 은퇴 연령이 가장 높은 나라는 멕시코로 74세이며, 그 다음이 일본·아이슬란드(70세), 그리고 한국이다. 여기서 말하는 은퇴란 일을 그만두고 실업 상태로 있는 것을 뜻한다.
또 한국 여자의 은퇴 연령도 67세로 아이슬란드(68세), 멕시코(67.5세)에 이어 세 번째로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한국 여자의 은퇴 연령이 높은 것은 젊었을 때 육아 등에 전념하다 중년 이후 가계에 도움을 주고 자녀들의 학원비 등을 벌기 위해 다시 일자리를 찾기 때문이다. <조선일보 2003.10.31일자>
우리는 장수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자꾸 오래 산다는 것은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인구의 고령화가 사회의 엄청난 부담이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 사람의 평균 수명이 남자는 72세가 넘고, 여자는 80세가 넘습니다. 평균수명이란 태어난 사람들이 죽을 때까지의 평균 나이를 말합니다. 우리나라의 65세 이상 노인인구는 2000년 말 기준으로 전체인구의 7%를 넘어서 이미 고령화사회에 들어갔습니다. 오는 2019년에는 그 비율이 14%를 넘어 UN이 정한 고령사회에 진입하게 됩니다. 2030년에는 노인인구가 1,000만 명을 넘는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습니다. 가히 노인의 세상이 오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지금 우리에게는 노인문제가 심각한 사회문제로 등장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가임 여성의 출산율이 1.17명 정도인데, 오래 사는 사람들의 수는 점점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 세계에서 가장 빠른 고령화 속도의 원인입니다.
그런데, 우리사회는 50대만 되면 늙은이 대접을 하려들고, 실제로 생산현장에서는 50대 근로자를 찾기 어려운 것이 현실입니다. 이렇게 은퇴한 사람들은 하는 일없이 세월을 허송하며 보내기가 십상이고, 사실 늙은 사람들이 발벗고 나설만한 보람된 일자리를 찾기도 무척 어렵습니다. 그렇다고 직장에서 은퇴한 이후의 그 기나긴 세월을 허송하며 보낸다는 것은 개인적으로 불행한 일이고, 국가·사회로서도 자원의 낭비라고 하겠습니다. 물론 고령자 고용촉진법이 있고, 근자에는 노인들이 나와서 용돈을 벌 수 있도록 정부가 앞장서서 노인들의 일터를 만들어보려고 애쓰는 모습도 없지는 않습니다만, 쉬운 일이 아닌 것 같습니다.
2. 노년층 위상하락의 현실
우리나라의 노인복지법에는 노인의 나이를 몇 세부터라고 규정되어 있지는 않습니다. 다만, 65세 이상이면 노인복지법이 규정한 여러 가지 경로우대혜택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 노인이라 규정할 수 있는 나이는 몇 살부터이겠습니까. 노인이란 '스스로가 늙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는 해석이 상당수 학자들의 의견입니다. 노인의 나이는 호적상의 나이와 기능적인 나이 등 두 가지로 구분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일본의 통계를 보면 60세 넘는 사람들의 경우, 기능연령은 15세정도 차이가 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 노년층에게는 아프고, 돈 없고, 외롭고, 할 일없다는 이른바 4苦가 있습니다. 지금은 옛날 농경사회에서처럼 가만히 있어도 연장자들이 대접받는 시대가 아닙니다. 농경사회의 노년층은 孝라는 사회의 절대가치의 보호막 속에서 재력과 생활의 지혜를 가진 사회의 어른이었습니다. 오늘날의 노년층은 존경의 대상이 아니라, 가정과 사회에서 부담스러운 짐이 되기 십상입니다. 오늘의 노년층은 급변하는 시대조류를 헤쳐나가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컴퓨터로 상징되는 정보사회의 급변하는 상황을 따라잡기도 불가능합니다. 노인의 가치는 그래서 날이 갈수록 떨어집니다. 가난한 시대의 어버이로서 자식들을 위해 온갖 희생을 감내한 나머지 가진 것이 없습니다. 그렇다고 돈을 벌 수단과 방법을 갖지도 못했고, 연금제도 같은 각종 사회보장 혜택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직장의 구조조정에서는 나이가 많다고 제일 먼저 쫓겨 나오고, 고용자고용촉진법은 있다해도 강제조항이 아니기 때문에 노년층의 일자리 기회는 좁기만 합니다. 노년층이 자존심을 유지하고 살기가 무척 어려운 시대에 우리의 노년층은 살고 있습니다.
3. 연령차별의 문제
미국에서는 7천여만 명의 회원과 준회원을 거느린 미국은퇴자협회(AARP)가 권익운동을 벌여 직장의 정년제를 없애고, Medicare라는 의료제도를 만들어 65세 이상의 노인들이 정상 진료비의 절반 값으로 의료서비스를 받도록 했습니다. 이제 선진사회에서는 노인들이 주도하거나 노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분야가 점점 넓어지고 있습니다. 그들은 돈이 있고, 정치적인 결속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서양에서는 이를 Gray power라 부릅니다.
우리나라보다 구조조정이 자유롭고 노동시장이 유연한 선진국도 대부분 연령차별을 제도적으로 금지하고 있습니다. 성(性). 인종. 종교와 마찬가지로 연령을 이유로 인간을 차별대우해선 안 된다는 취지입니다.
미국은 1967년 연령차별금지법을 제정, 연령제한이 필수적인 직종(경찰. 소방 공무원 등)을 제외하고는 40세 이상의 연령을 이유로 고용. 승진. 해고 등에서 차별대우를 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특히 구인광고 등에 연령을 명시하는 행위는 불법으로 간주되고 있습니다.
영국 역시 93년부터 연령을 기준으로 한 해고를 불법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연령을 이유로 해고된 사실이 법원에서 인정돼, 2만7천파운드(약 5천1백30만원)의 위자료를 회사에서 받아낸 사례도 있습니다.
호주는 취업에서는 물론, 상품. 서비스 구매, 입학, 주택 구입, 단체 가입 등에서 연령 때문에 부당하거나 불쾌한 대우를 받을 경우, 이에 대해 손해배상을 제기할 권리가 있다고 연령차별금지법에 규정하고 있습니다.
단군이래 가장 풀이 죽은 우리나라 노인들은 아무런 패기가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근자에 들어 미국은퇴자협회를 본딴 대한은퇴자협회가 생겨, 각종 권익운동에 앞장서고, 심지어 노인권리보호당이라는 정당도 생겼습니다. 대한노인회라는 노인단체도 요즘은 노인권익운동 쪽으로 훨씬 활발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습니다. 대구에서는 '대구 엘더스 클럽'이라는 NGO가 노년층의 의식 전환을 촉구하고 노년층권익운동에 앞장서고 있습니다.
4. 노년과 일
지금의 젊은이들은 다양한 사회보험을 통해 노후의 소득을 보장받을 수 있습니다. OECD가 권장하는 3층 노후소득보장체계-공적연금, 기업연금, 개인보험-는 사회보험에 대한 사회적 인식의 전환과 더불어 이미 우리 사회에서 그 뿌리가 잘 정착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노년층들은 아쉽게도 그런 사회보장 혜택을 받지 못하는 불행한 세대입니다. 의료기술의 발전과 더불어 지금의 노년층들은 오래 살게되는 축복은 누릴 수 있게 되었지만, 노후의 소득보장이라는 은혜는 그들을 비켜가고 있습니다. 사실 일은 존재가치의 확인이라는 점에서 연장자들에게도 절대로 중요합니다. 그에 더해 오늘날 상당수의 노년층에게는 생계의 수단으로서 일을 갖는 다는 것이 절실한 과제가 되고 있습니다. 노년층을 대상으로 하는 각종 사회조사에서 우리나라의 노인들은 일할 기회를 간절히 바라고 있고, 또 생계를 위해서라도 일을 해야하는 처지라는 사실이 입증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고령자 고용확대를 위한 사회적인 인식이 겉돌고 있습니다. 정부의 내년도 고령자 일자리대책이 오늘의 노년층 일자리 대책을 잘 말해줍니다. 정부는 노년층을 위해 내년에 30만개의 일자리를 만들겠다는 구상을 추진하고 있습니다만, 그것이 노년층의 기대에 상응하는 수준이 될 가능성은 별로 없을 듯 합니다.
정부는 또 59세 까지만 지급하는 고용보험을 내년부터 64세까지 지급한다는 방침을 밝히고 있습니다. 정년이 지난 근로자를 계속 고용하거나 퇴직 후 3개월 이내에 재 고용하는 업체에는 30만원씩 6개월 간 보조금을 지급한다는 방안도 추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권장사항에 그치고 있는 고령자고용촉진법을 강화한다거나, 연령차별을 금해야 한다고 주장에 무게를 실어주는 조치나 사회적 공감대는 아직 궤도를 잡을 조짐은 보이지 않습니다.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연령차별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둔한 일본에서는 취업제한 연령이 평균 39세로 높습니다. 또 늦어질 연금수령시기에 맞춰 후생노동성이 법정정년을 현행 60세에서 65세 연장하는 법안을 내년 정기국회에 제출하기도 했다는 소식입니다.
고령자들의 노동력을 활용하고, 고령자들에게 일하는 보람을 제공하기 위한 일본 사회의 노력은 눈부신 바 없지 않습니다. 지역별로 사단법인형태로 운영되고 있는 노인 인력센터가 노년층들의 취업과 재교육을 담당하고 있으며, 노년층 스스로도 'Silver Generation'이라는 호칭 대신 'Gold Generation'이라 칭하면서 '일하는 노년상'을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5. 국가·사회의 과제
고령화사회를 맞아 노년층에게 일자리를 만들어주기 위해 정부는 2001년부터 대구햇빛시니어클럽을 비롯한 전국 20개소의 지역사회시니어클럽(Community Senior Club을 만들어 노인들의 경제활동과 사회참여를 통한 일자리창출과 함께 노권운동을 추진하고 있음은 반가운 일입니다. 그러나 이런 일들은 장수시대에 하루 빨리 해결해나가야 할 과업의 양에 비하면 속도가 너무 느립니다.
대한노인회 지부의 일자리 알선 부서와 서울시 고령자취업알선센터, 노동부 노인인재은행 같은 기구들은 구인·구직자를 연결하는 소극적인 역할에 머물고 있는 실정입니다. 정부는 지난해에 노년층의 일자리 창출에 적극적으로 대처하기 위해 전국 4개 권역별로 노인인력센터를 만든다는 계획을 세운 적 있으나 성공적으로 시행될 기미가 아직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노년층 인력의 재취업과 재교육을 담당할 노년층 일자리 전담기구의 발족이 시급한 실정입니다.
연령차별 관행 때문에 노년층이 불리한 대접을 받지 않도록 법과 제도를 정비하는 일도 시급합니다. 당장 실시하기에는 사회의 여러 가지 여건상 어려운 점이 없지 않습니다만, 인권 차원에서 연령차별을 금하는 법을 만들어야 합니다. 성차별, 장애인 차별, 심지어 외국인 근로자 차별을 금하는 추세에서 왜 유독 연령차별만은 그대로 둬야 합니까. 그리고 노년층 인력 활용을 제도화하는 뜻에서라도 고령자고용촉진법에 강제조항을 두어 능력 있고 건강한 고령자들이 일을 통해 노년의 삶에 보람을 찾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재정경제부 장관은 최근 인구고령화에 따른 노동력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 출산장려와 보육지원 확대대책과 더불어 고령자고용촉진법이 규정하고 있는 정년을 현행의 60세에서 그 이상으로 올려야 한다고 밝힌바 있습니다. 그런 쪽으로 인식의 전환이 이뤄지고 있다는 점에서 반가운 소식이라 하겠습니다.
기업은행 등 우리나라의 일부 금융기관이 시행하고 있는 임금피크제는 얼핏 고령자고용 연장을 위한 대안이 되는 것으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제도가 많은 직장에 걸쳐 보편적으로 시행된다면 이 또한 심각한 연령차별 문제를 야기할 소지가 있을 것으로 우려됩니다.
6. 노년층 의식전환 있어야
장수시대의 라이프 사이클을 설명하는 방법에 30-20-30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30살까지 인생의 기반을 닦고, 20년 일하다가, 인생의 마지막 30년은 은퇴의 생활을 한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건강한 사람이 마지막 30년의 세월을 허송세월 한다는 사고방식은 아무리 생각해도 잘못된 것입니다. 30년의 완숙기 인생은 지난 50년 간의 시간에 쫓기던 시절보다 훨씬 유익하게 보낼 수 있는 황금의 시기일 수 있습니다. 이 마지막 30년에 필생의 큰 업적을 이룩한 선인들은 수없이 많습니다. 『55세부터 꿀맛 인생이어라』같은 노령생활에 관한 많은 책들은 나이 들어서 멋진 삶을 살아가는 방법에 대해 우리에게 많은 교훈을 줍니다. 더욱이 이제는 장수시대이고, 사회가 노령 층의 인력을 필요로 시대로 접어들고 있습니다. 노령 층들은 각자의 능력과 취미에 맞는 일을 통해 자신의 위상을 높이고 사회에 기여하는 방법이야말로 자신과 주위를 위한 최선의 삶이라는 인식을 확고히 할 때입니다.
최근에는 고객 서비스 분야에서 젊은 사람 대신 고령자를 고용함으로써 고객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었다는 직장이 상당히 많습니다. E마트 대구 만촌점은 정년퇴직자들을 쇼핑보조원으로 채용, 상담업무를 보도록 하여 좋은 성과를 얻었다하고, 풀무원 식품, 한국 맥도날드도 부산지역에서 고령자들을 매장요원으로 채용해 좋은 반응을 얻었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습니다. 여러 직장에서 고령자들의 성실한 근무자세가 인정을 받아 고령자인력에 대한 사회의 인식이 바뀌어져 나가야 합니다.
나아가, 미국의 은톼자협회가 뭉쳐서 괄목 할만한 노년층권익 신장의 성과를 거뒀듯이 우리의 노인들도 함께 뭉쳐서 일을 통해 참여하는 삶을 영위함으로써 떨어질 대로 떨어진 노년층의 위상을 바로 세워나가야 할 것입니다.
7. 나오며
최선의 노인복지는 노년층들이 형편대로 그들의 욕구에 상응하는 대접을 받도록 여건을 만들어주는 것입니다. 오늘의 우리나라 현실에서 노인복지의 요체는 소득보장과 의료보장입니다. 아픈 사람은 사회의 발전 수준에 맞는 수발을 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노인요양 서비스의 확충을 위해 민간자본의 유치를 넓히기 위한 보다 적극적인 조치가 요망됩니다.
그리고, 건강하고 일 할 의욕이 있는 노년층은 일로써 헌신과 보람의 삶을 찾을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사람의 가치는 헌신과 참여를 통해 극대화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국가와 사회, 그리고 노년층들은 장수시대의 노년층 복지를 이런 방향으로 확고히 정립할 때입니다. 따라서 노년층 일자리 만들기를 위해 정부가 나서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젊은 사람들의 일자리를 빼앗는 결과를 빚어서는 곤란할 것입니다. 노년층이 각자의 소질에 맞는 다양한 일에 종사할 수 있도록 창의적인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과제가 일자리 창출에 선행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자면 지역사회의 노인관계 단체들이 한데 뭉쳐서 함께 다양한 일자리 창출을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효율적인 방안이 모색될 것입니다. 그런 단체가 주체가 되어 노년층 인력 수급을 위한 연구와 더불어 각종 이벤트를 여는 것도 필요합니다.
서울시가 지난10월 28일과 29일 개최한 실버취업 박람회에는 하루에 2만 명 가까운 연장자들이 몰려 성황을 이뤘습니다. 그러나, 채용하는 직종이 간병인. 파출부. 경비원. 청소원 등 육체노동분야가 대부분이어서 60대 이후 노인들, 특히 여성에겐 버거운 일자리라는 비판이 있었습니다. 우리지역에서도 그러한 취업박람회를 열어, 노년 인력의 활용방안을 모색해보는 광장을 만들어 나가야겠습니다. 시대에 맞는 노년층 문화의 창조는 노년층 스스로의 각성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 이글은 2003년 11월 대구의 노인단체가 주관한 세미나에서 주제발표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