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성으로 본 한일민족의 기원(2000, 김성호, 푸른숲)’을 보면,
탐라(제주)의 세 성씨에 대해 언급한 다음과 같은 재미있는 부분이 있다고 한다.
『 최근 중국 흑룡강성에서 고구려
<고씨가보>를 수장해 온 중국인 고지겸씨의 존재가 알려져 화제가 되었지만, 우리나라에는 고구려 고씨가 전하지 않는다. 고구려 멸망 후
당나라가 평양 일대에서 20여만 명을 납치해 감에 따라 평양 일대의 고씨혈통이 소멸된 듯하다. 현재 우리나라 고씨로는 탐라고씨만이 전해온다.
<동국여지승람> 권38 제주목 건치 연혁 조에 인용된 <고려사 고기>에 의하면 "세 신인이 모흥혈毛興穴에서
나왔다"고 하며, 양을나, 고을나, 부을나의 3신이 양梁, 고高, 부夫 3씨의 시조로 전해 온다. 이들의 뿌리가 전혀 전해지고 있지 않지만, 이
신화가 전승된 <고려사 고기>의 '고려'는 고구려를 지칭한 중국측 용례이므로, 탐라 3씨의 연원은 고구려인이었음이 거의 확실하다.
아울러 땅에서 인간이 태어난 삼성혈 신화는 비단 제주도에 한정된 특수한 신화가 아니다.
<삼국지>에 전하듯, 고구려에도
집안 동쪽의 압록강변에 국동대혈國東大穴이 있었다. 그리고 고구려 고씨족, 즉 한씨족의 뿌리인 중국 "화남지역 묘족들에게도 바위의 이미지는 산의
동굴에 연결되어 있으며, 암혈에서 조상이 탄생했다는 전승이 지극히 많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양-->고-->부 3성의
배열 순서도 우연이 아니었던 것 같다. 최초의 양씨는 고구려 소수맥小水貊 유역에 살던 ‘양맥梁貊’의 ‘양’과 관련된 맥족이고, 고씨는 두번째로
집권한 고씨 시조 태조왕, 그리고 부씨는 세번째 왕성이던 부여씨의 '부'에서 비롯됨에 따라 양-->고-->부의 순서로 배열되었던 것
같다. 만일 그렇다면 고구려 최초의 왕성이던 해씨解氏는 오늘날 소멸됐지만, 이들이 바로 양씨로 개성되었을지도 모른다.
추측컨대
고구려 멸망후 당나라가 평양 일대에서 20여만 명의 고구려인을 중국으로 납치해 갈 때 일단의 고구려 왕족들이 탐라로 피신하여 살면서 나당 두
나라에 대해 고구려의 유민임을 감추려는 생존 본능에 따라 자신들의 국가적 표상이던 천손설天孫說마저 감춘 것이 관습이 되어 오늘날 지난날의 영광이
망각되고 오로지 종족 고유의 삼성혈 신앙만이 남게 되었을 것이다. 즉, 탐라의 양 고 부 3씨족은 고구려 왕족의 마지막 후예였다는 결과가 된다.
』
즉, 이 책에서 얘기하는 고구려의 세 혈통 이야기를 요약하면 고구려는 단일 혈통왕조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고구려 왕중 제6대
태조왕은 특이하게도 개국시조의 묘호인 태조라는 이름을 쓰고 있고, 그 재위기간 또한 100여 년에 이른다. 주몽부터 제5대 왕까지는 해씨성을
쓰다가 태조왕부터 고씨성으로 바뀌게 된다. 고구려 마지막 왕인 보장왕의 후손인 고자高慈의 묘비에 자신의 선조에 대한 얘기가 나오는데, 그의
선조가 주몽을 따라 나라를 세웠다는 점으로 보아 고씨의 선조는 주몽이 아니라고 저자는 말한다. 주몽의 아버지가 해모수인데, 주몽이 고씨일 수가
없다는 것이다.
역사서에서 ‘본성은 해씨지만 스스로 천제의 아들로, 일광을 받고 태어나서 고씨로 삼았다’고 했는데 저자는 일광은
태양 즉 해를 가르키는데 그렇다면 굳이 고씨로 바꿀 이유가 없다고 한다. 훗날 고씨왕조에서 고구려의 정통성을 확보하기 위해 해주몽을 고주몽으로
바꾸었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어쨌든 이 설에 따르면 梁氏는 광활한 만주벌판을 누비던 해주몽의 후예라는 얘기가
된다.
참고로 저자에 따르면 해씨는 맥족으로 유럽계의 스키타이족, 여씨는 동이족, 고씨는 옛조선의 후예로써 한씨족(묘족으로 중원에서
기원한 것으로 추측)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