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 연혁
신평(新平)은 충청남도 홍성군(洪城郡)에 속해 있던 옛 지명이다.
본래 백제 사평현(沙平縣)이었는데 757년(신라 경덕왕 16)에 신평으로 고쳐서 혜성(槥城: 沔川)의
영현으로 삼았다.
고려 초인 태조 대에 이곳에 운주(運州)를 설치하고, 995년(고려 성종 14)에는 도단련사(都團練使)
를 파견하였다. 1018년(현종 9) 홍주(洪州)에 예속되었다.
1356년(공민왕 5)에는 왕사(王師) 보우(普愚)의 고향이라 하여 홍주목으로 승격되었다가,
1368년에 다시 홍주로 강등되었으며, 1371년에 다시 홍주목이 되어 조선시대 말까지 유지되었다.
조선 세종 때 진(鎭)을 두었으며 뒤에 홍양현(洪陽縣)으로 강등되었다가 1914년 홍성군(洪城郡)이
되었다.
1895년(고종 32)에 지방제도 개정으로 면천군에 편입되었고, 1914년 군면 폐합으로 이웃한 면의
일부를 병합하여 신평면으로 개칭하였고 당진군에 편입되었다.
현재는 충청남도 당진군 신평면 지역이 되었다.
성씨의 역사
《신평송씨보(新平宋氏譜)》에 따르면 신평송씨(新平宋氏)의 시조는 송구진(宋丘進)으로 고려
시대 봉익대부(奉翊大夫) 서운관정(書雲觀正) 겸 습사도감판관(習射都監判官)을 지냈다.
이후 조선시대에 들어 판사재감사(判司宰監事)를 지낸 6세손 송희경(宋希璟), 그의 아우 병조참판
(兵曹參判) 송구(宋龜) 등이 가문의 기틀을 세웠다.
원래는 여산(礪山)을 본관으로 하였는데 신평에 세거하면서 바뀌게 되었다.
또한 신평에 세거한 송씨는 이후 계보가 불분명하나 홍주송씨(洪州宋氏)와 신평송씨로 갈라졌고,
이것이 가계의 시작으로 보인다.
분적종 및 분파
여산송씨(礪山宋氏)의 시조 송유익(宋惟翊)의 12세손 송말선(宋末善)이 홍주(洪州)의 신평(新平)에
세거해 여산송씨에서 분적하였다.
그러나 세계를 밝힐 수 없어 또 다시 홍주송씨와 신평송씨로 나뉘게 되었다.
같은 신평송씨도 송구진을 시조로 하는 계파와 송구진의 후손인 송자은(宋自殷)을 시조로 하는
계파로 나뉜다.
주요 세거지
전라남도 담양군 금성면 대곡리
전라남도 담양군 금성면 원율리
전라남도 장성군 삼계면 발산리
전라남도 장성군 삼계면 주산리
전라북도 부안군 내산면 중계리
인구분포
2000년 통계청이 발표한 결과에 의하면 신평송씨는 3,478가구 총 11,185명이 있는 것으로
되어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