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길수 관장
청림회 광명지부장
산다는 것은 사람을 만나는 일이다. 만남엔 대화가 따른다. 그런데 말을 못하는 사람을 만나 본 일이 있는가. 「평면세계」란 책에서 아보트가 말한 2차원 세계에 와 있는 경험을 하게 된다. 마치 외국인을 만났는데, 외국어를 전혀 모르는 이의 상황과 같다. 말은 하는데 소리가 없다. 그러므로 청각장애를 가진 사람이 말하는 사람 쪽을 향하여 보고 있지 않을 때는 어떤 의사소통 방법도 불가능하다. 전화도 안 된다. 말은 무의미해지고 문자 세계로 내려간다. 여기에 필요한 것이 수화, 지화, 필담, 마임이다. 구화법이나 필기법 등을 활용해야 의사소통이 가능하다. 이러한 일이 불편하고, 일상화 되지 않은 만큼 청각장애를 지닌 이들은 정보로부터 멀어진다. 이들과 수화를 통해 의사소통하는 세상을 만드는 일에 헌신하는 이들이 있다. 청림회 회원들이다.
청림회(회장 김재일)는 1982년, 수화보급 및 청각장애인의 사회참여를 돕기 위해 만들어진 한국 최초 수화통역 자원봉사단이다. 청림회는 광명과 인연이 깊다. 초대회장이 현 대한적십자 광명지회장인 이문찬 씨이기 때문이다. 광명지부는 1989년 발족되었다. 현재 광명지부장은 고길수(52세) 씨이다.
청림회 광명지부는 정기모임과 수화통역, 수화기초반 교육, 무언의 등반대회 주최, 수화가두홍보공연, 하루찻집 운영, 청각장애학생 학습지도 등을 실시하고 있다. '무언의 등반대회'는 장애를 지닌 이들과 더불어 살아가려는 일환으로 실시되는 체험 프로그램이다. ‘사랑의 하루 찻집’은 매년 1회 실시해 수익금 전액을 삼성농아학교 학생 2명과 청각장애인 부모를 둔 건청인(비장애인) 학생 1명에게 장학금으로 지급하고 있다. 그 중심에 서서 모임을 이끌어 가는 이가 고길수 지부장이다.
▲ 지난 5월 14일 시내 모 야외식당에서 청각장애를 지닌 이들을 초청하여 잔치를 벌인 고 길수 지부장(사진 오른쪽). 이날 잔치에는 80여 명이 초청되었고, 고려대학교 수화봉사단 소속 학생 20여 명도 참여해 수화로 노래 했다.
광명 6동 동아체육관 관장
“고길수 운영위원은 체육인이시면서, 사회봉사와 지역발전에 열심히 이바지하십니다. 저희 명문고 운영위원으로 최선을 다해 주고 계십니다. 조용한 성품에다가 인간미가 넘쳐서 회의를 원만히 진행하실 뿐만 아니라 협조를 잘 이끌어 내시면서 활력소가 되어 주십니다. 무엇보다 교육을 사랑하고 인간관계를 소중히 하시는 분이시며, 신앙인으로 모범을 보여 주셔서 늘 존경합니다.” 명문 고등학교 장광덕 교장의 말이다. 장 교장의 칭찬에는 고길수 관장의 인생관을 꿰뚫는 혜안이 담겨 있다. 고길수 관장은 광명 6동에 있는 동아체육관 관장이다. 25년 째 운영하고 있다. 태권도 공인 8단으로 광명시태권도협회 · 광명시생활체육태권도연합회 부회장이다.
고 관장은 체육관을 운영하지만 원생들을 가르치는 철학이 남다르다. “태권도는 사회에 필요한 인물 키우는 작업입니다. 체력을 길러 학업의 틀을 잡아 주는 일입니다. 공부는 안하고 운동만 열심히 하면 된다는 생각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고 관장 자신도 이 점을 실천한다. 전주에서 고등학교를 나와 동국대에서 전산학을 전공했다. 여느 체육인들과 다른 이력이다.
현대사회를 다이아몬드컬러 시대라고 규정하고, 5차원전면교육을 창안한 원동연 박사는 지력, 심력, 체력, 자기관리능력, 인간관계능력을 조합하는 전인교육을 해야 한다고 했다. 고 관장은 교육에 있어서 이 점이 중요함을 알고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성실로 이룬 인연 · 인연
고 관장은 초등학교 때부터 당수를 배워 학생 대표로 활동했다. 갈비씨라는 별명을 얻을 만큼 몸이 허약 해, 운동을 시작한 것이 계기가 되었다. 면 소재지에서 부자로 살다가 부친이 빚보증을 선 것이 문제가 되어 고향을 떠난다.
“전주로 이사해서 학교도 쉬고, 길거리 행상부터 시작해 과일장사, 생선, 호떡 장사 하는 부모님의 심부름을 도맡아 했습니다. 그 때 참 고생했습니다. 그러고 있는데, 형 친구 분들이 너는 운동해라고 권해 신설학교에 입학했습니다. 중학교 체육선생님께서 태권도 부를 만드셨는데, 제가 전국체전 예선전에서 모두 1위를 했습니다.”
본격적인 태권도 인생이 시작되었다. 인연은 소중한 것이다. 이종 사촌형 소개로 가수 김세환이 부른 “옛친구”를 작곡한 김우택 씨를 알게 되어 서울에 입성한다. 그의 소개로 당시 톱스타였던 배우 신성일 씨의 메니저인 이종운 씨를 만나 액션 배우가 된다. 액션을 연기하기 위해 한국배우전문학원을 다니면서 퇴계로에 있던 태권도 체육관에 등록한다.
“이런 것이 인연인가 봅니다. 군대를 다녀 온 후 여기서 사범이 된 것입니다. 그리고 관장님께서 열심히 운동하는 저의 성실성을 높게 사시더니 관을 물려 주셨습니다.”
고 관장이 체육관을 맡으면서 놀랍게 부흥한다. 그러던 중 대통령 서거가 나고 체육관 밑으로 지하철 공사가 계획 되는 등 위기가 왔다. 당시 해외에서 태권도 인기가 높아 해외 사범파견 신청을 할까하는 갈등을 하던 중에, 이문찬 씨가 광명으로 올 것을 권유한다. 그와는 국기원에서 만나 아주 친하게 어울리는 사이였다. 그렇게 해서 1981년 광명에 정착하게 된 것이다.
퇴계로 체육관에서 인생을 바꾸는 인연이 또 있었다. 여의도순복음 교회를 다니는 양 집사라는 분을 만나 종교인이 된 것이다. 그는 여의도순복음교회를 처음 나가던 금요철야 예배 때, 기독교인들이 흔히 말하는 은혜를 받았다고 한다. 그리고 총각집사가 될 만큼 열심히 신앙생활 한다. 오산리 기도원에 금식 기도하러 갔다가 너무 배가 고파 하산하려는데 뒤에서 들려오는 음성을 듣고 3일을 채워서 내려왔다고 한다. 거기서 물건을 몽땅 도둑맞아 반바지만 입고 돌아왔지만, 성령체험한 일은 이후 신앙생활에 활력소가 되었다. 고 관장은 하안동에 있는 기독교대한성결교회 광명중앙교회 장로직을 맡아 교회를 섬기고 있다.
가족 이야기
“퇴계로에서 체육관을 운영하고 있을 때, 여의도순복음 교회 구역장을 맡아 봉사하였는데, 아는 분이 여자 분들을 한꺼번에 일곱 명이나 소개 했어요. 그 중 치아가 고른 사람을 보고 한눈에 반해 버렸습니다. 그 여자와 3개월 사귀고 약혼하고, 3개월 후에 결혼했습니다.”
재밌다. 부부의 남다른 사랑의 깊이가 베어나는 일화다. 일사천리로 함께 살게 된 부인은 현재 서울 개웅초등학교 교사로 재직 중이다. 부모는 시골에서 살고 있고, 형은 해병 청룡부대 장병으로 월남전까지 참전 하였다가 고엽제로 추정되는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누나와 여동생이 있고, 슬하엔 두 아들을 두었다. 맏아들은 광명문화원 간사로 있고, 둘째는 군인이다.
지역 봉사에 매진하는 삶
광명에 와서 제일 먼저 한 일이 통장이다. 친목회를 조직해서 총무도 보고, 사회를 도맡으면서 인간관계를 넓혀 나갔다. 아는 분들이 추천하여 재정이 부족한 데도 불구하고, 이사들이 보증을 서서 광남 새마을금고 총무이사가 된다. 성실함을 인정받아 지금은 부이사장이 되어 있다. 자산 350만 원으로 시작한 새마을금고는 고 관장과 헌신적인 일꾼들을 통해 자산 600억 원으로 증액되었다. 그는 궂은일도 마다하지 않고, 열심히 저축 홍보에 심혈을 기울였다. 그래서 얻은 것이 고 관장 만나면 복 받는다는 말이다. 저축에 대한 열정은 고 관장 자신에게도 복을 가져다주었다. 꿈에도 그리던 집과 체육관 건물을 소유하게 된 것이다.
고 관장은 같은 동에 있는 명문 고등학교 운영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또 광명6동 동정자문위원이다. 이명우 동장은 “참 봉사도 많이 하시고, 동네 활동을 많이 하시는 참 좋은 분이십니다. 지난 2년 동안 매월 1-2차례 만나오면서 정신으로나 마음으로 의지가 되는 훌륭한 분이십니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고 관장에게 광명6동은 거대한 자택과 같다. 손금 보듯 환하다. 그런 만큼 애정도 각별하다. 고 관장은 광명6동 지역의 어려운 가정의 자녀들을 건전한 사회인으로 키우려고 무료로 태권도를 가르치고 있다.
말 많은 세상에서 말없이 사는 이들과 어울려 그들에게 벗이 된 사람. 무도 인으로서 바른 인간을 키우기 위해 고군분투하며, 지역에 거주하는 이들에게 따뜻한 이웃으로 살아가는 고 관장의 앞날이, 동터 오르는 햇살처럼 점점 더 빛나기를 바란다.
인터뷰는 2005년 5월 18일 오전, 고길수 관장 자택에서 했다.
2005. 5. 23 / 이재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