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문화 기행 - 마임의 세계
말 없이, 오직 육체만으로
마임은, 오직 가난하지만 절대로 거짓말을 하지 않는 풍부한 신체로써 모든 것을 전달하고자 한다. 꽃을 테크닉으로 묘사하고 설명해서 곧바로 관객이 눈치채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꽃이 되는 것이다. 공 연자와 관객이 상상력으로 공동 창작하는 예술이다.
고대 희랍에서는 마임(mime)이라는 말은 모방자를 뜻했다. 그것은 관객에게 사상과 감정을 전달하기 위해 인생을 모방하는 배우라는 뜻이다. 최근에 와서 공연물이 광범위해지고 화려해지면서, 마임이라는 단어에 전부(all)라는 뜻을 담은 판토스(pantos)라는 말이 더해져 팬터마임(pantomime)이라는 말이 된 것이다.
마임, 또는 팬터마임이 오늘에 와서는, 말없이 오직 육체만으로 생각을 교류한다는 뜻으로 통용된다. 하지만 옛날에 팬터마임은 보통 공연되는 연극을, 마임은 연기하는 배우를 뜻했다. 이 마임이라는 말의 뜻이 오늘날에 와서 훨씬 협소해진 것이다.
관객이 적응해야 하는 극형식
희랍 시대엔 마임이 말을 했다고 하면 여러분은 조금은 이상하게 생각할 것이다. 마임은 곧 배우였고, 배우가 무대에서 말을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옛적의 마임은 생활의 모방자였고 오늘날의 마임은 생활을 무언 속에서 모방하여 발견해내고 새로운 연극 언어를 찾아내는 자이다. 마임은 마치 산소가 우리에게 생명을 주듯이 연기에 생명을 주는 행동 요소가 된다.
팬터마임은 읽기에서 연기를 분리하는 것을 의미할 수도 있다. 배우가 자기의 대사만 말하고 전달하고자 하는 것을 육체로써 역동적으로 표현하지 못한다면 훌륭한 연기자라고 할 수 없다. 팬터마임은 때로는 말로 표현을 하지 못할 때 사용된다. 번잡한 거리에서 교통 순경이 손을 치켜드는 것은 운전자에게 ‘정지’라는 말을 전해 차를 멈추게 하기 위한 것이다. 교통 순경이 팬터마임에 의한 제스처를 쓰는 것은 ‘정지’라는 말을 해봤자 들리지 않기 때문이다. 무성 영화는 팬터마임을 통해 그들 나름의 양식을 발전시켰는데, 그것은 소리를 입힐 수 없다는 순전한 기술적인 이유에서였다.
팬터마임은 단순히 연기나 무용의 일부분이 아닐 뿐만 아니라, 대사가 없다고 해서 그런 것을 팬터마임이라 규정짓지도 않는다. 원래 팬터마임은 하나의 예술 형태이다.
물질적 다양성 밑의 동기, 암시, 문제 등도 다룬다
현재 우리는 마임과 팬터마임을 같은 말로 사용한다. 자기의 사상과 감정을 무언의 동작과 제스처로 전달하는 것이 공통적이라는 점에서 흔히 같은 것으로 생각하지만 엄밀하게 말하면 같은 말이 아니다.
간단히 말하면, 팬터마임은 이야기하고자 하는 대상, 행동, 상황 그리고 사건 등을 정확히 묘사하는 테크닉적인 행동과 함께 표현한다. 반면에 마임은 이야기를 전달할 수도 있지만 자기의 사상과 감정을 연극적인 언어로 만들어 관객이 그 형식에 적응하여 해석하게 한다. 즉 팬터마임은 설명하여 테크닉으로 전달하지만 마임은 설명이나 묘사를 배제하고 그 내면의 깊이를 감지하게 한다.
마임은 암시, 추상, 상징 등을 포함하고 있어 그 본질 해석이 다양성에 있고, 팬터마임은 보는 그 자리에서 글을 읽듯 바로 이해가 된다는 것이다.
단적인 예로 꽃을 표현할 때, 팬터마임은 테크닉으로 묘사하고 설명하여 곧바로 관객이 눈치채게 하지만, 마임은 내가 꽃이 되는 것이다. 팬터마임은 개미로부터 우주에 이르기까지 모든 주제를 관객에게 편안하게 전달할 수 있다. 그러나 마임은 개미에서 우주에 이르기까지의 물질적 다양성을 가지고 표현할 뿐만 아니라 그 밑에 깔려 있는 동기, 의문, 암시, 문제 등을 함께 다룬다.
현재 유럽에서는 연극과 마임과 무용의 구분이 점점 모호해지고 있다. 독일의 유명한 무용가 피나바우위나 프랑스 의 안무가 마기알랭 등의 공연을 보면 무용수가 대사도 하고 아주 춤 같지 않은 연극적 몸짓이 들어 있는 춤을 춘다. 바로 이것이 근래에 흔히 말하는 포스트모던이라는 것이다.
포스트모더니즘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명쾌한 해답을 내리기에는 의견이 분분하다. 하지만 포스트모더니즘은 무엇보다도 종합 지향적이라는 데 그 특징을 둔다. 모더니즘은 보다 세분화하고 개별화하고 개개에 대한 분석에 주력하는 반면 포스트모더니즘은 그것을 다시 종합하려 한다. 모더니즘에서는 전혀 다른 별개의 요소들로 간주했던 것들을 포스트모더니즘에서는 하나로 통합하는 완전성의 비전을 갖는다. 따라서 과거에는 별개로 독립해왔던 예술들이 두 개 이상씩 결합된 예술로 변해간다. 문학과 음악, 또는 문학과 음악과 무용, 또는 문학과 음악과 무용과 마임, 또는 무용, 마임, 문학, 곡예, 요술, 가면, 인형, 광대, 거기에다 대사가 결합된 종합 예술로 발전해가고 있으며, 반면 마임 한 가지 목적만을 고수하는 순수한 마임은 점차 쇠퇴해가고 있다. 이제 와서는 배우, 무용가, 마임, 어릿광대 등과 같은 말의 차이를 구분하기 어려워졌다.
각자의 각인된 느낌이 중요하다
그럼, 마임을 어떻게 감상해야 할까?
일반 연극은 사실적인 무대 장치와 대사, 의상 등이 연극을 쉽게 이해하도록 도와주며 관객은 그 모든 것을 보고 들으면서 그 연극에 대해 평을 하기도 한다. 물론 그렇지 않은 연극도 있지만, 대개의 경우가 그렇고 또 마임보다는 더 관극 훈련이 되어 있는 상태이다.
하지만 마임은 공연 횟수도 드물고 그 인구 또한 적다.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 마임이 어떠한 형태와 만나 새롭게 발전될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고 볼 수 있다. 이 진흙 속에 파묻혀 있는 빙산의 일각과도 같은 마임을 어떻게 감상할 것인가?
마임은 대체로 사실적인 무대 장치와 의상과 언어를 배제하며(물론 때론 필요하면 사용하기도 하지만), 오직 가난하지만 절대로 거짓말을 하지 않는 풍부한 신체로써 모든 것을 전달하고자 한다.
따라서 첫째, 보는 사람의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자세가 필요하다. 마임은 상상력의 산물이다. 적극적으로 상 상력을 동원해야만 그 묘미를 즐길 수 있으며, 또한 각자의 기호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마임은 공연자가 전달하고자 하는 이야기나 사상을 일방적으로 관객에게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관객 개개인의 또 다른 상상력을 각자 그 공연에 대입시켜 자기화시키는, 공연자와 관객의 공동 창작으로 완성되는 예술인 것이다. 관객의 적극적인 참여가 없는 마임은 죽은 마임이다. 또 관객이 늘 어떤 것에 대해 설명하기만을 바라는 것은 죽은 마임을 제조하도록 강요하는 것과 같다. 이미지는 설명하지 않는다. 각자의 각인된 느낌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둘째로, 마임에 대한 자기의 고정 관념을 깨뜨려야 한다. 자신이 막연히 어디서 본 듯한 머리 속의 마임에 대한 미온적인 이미지를 지워버리고 항상 새로운 것을 접하듯이 해야 한다. 마임을 많이 본 사람일수록 이러한 태도가 더 필요하다. 마임 배우 자신이 창조적인 사람이라면 매번 새로운 것으로 관객의 상상력을 유도하려 할 것이다. 매번 같은 종류의 작품을 요구하는 것은 한 가지 반찬만 먹고 살라는 얘기이며, 그것의 파장은 곧 관객에게로 갈 것이다. 마임은 실로 종류가 사실적인 것에서부터 추상적인 것까지 각양각색이다.
셋째로, 그 각양각색의 것을 어떻게 판단하여 볼 것인가? 우리는 음악을 감상할 때에 아주 기초적인 것에서 시작한다. 빠르기와 박자, 그리고 악기의 배열 등을 마음 속으로 머리 속으로 느끼면서 또 세면서 감상을 한 다. 마임도 이와 같다고 생각하면 된다.
즉 음악에서처럼 아름다운 화음을 낼 수 있는 훈련된 신체를 가지고 있는가? 또 그 작품의 박자, 즉 일관된 통일성은 그가 전하려는 주제와 표현하는 신체의 테크닉과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는가? 그리고 음악처럼 잔잔하고 부드럽고 또 작품에 따라서는 폭풍을 몰아치는 다이내믹한 면이 있는가? 즉 그 작품의 구성은 튼튼한가? 만약 무대 장치를, 또는 소품을 사용했다면 음악에서의 즉흥 연주처럼 그 작품과 독특하게 어우러져 생명력을 발휘하고 있는가? 이런 점들을 잘 살펴보아야 한다.
우리는 이와 같은 것들을 생각해보고 또 파악함으로써, 각자 자신의 취향대로만 관극하는 것이 아니라, 보편적인 어떠한 평이 나와 공연자에게 앞으로 보다 더 새롭고 좋은 공연을 가지고 다시 무대에 설 수 있도록 도와주게 되는 것이다.
사실 ‘마임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라는 물음에 대한 정확한 답은 없다. 공연의 결과는, 어쩌면 관객 각자의 몫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글·임도완(마임 배우이며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에서 강의한다)
사진·박보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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