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초량 돼지갈비 골목
매캐한 연기 사이로 비계 섞인 돼지갈비가 구수하게 익어간다. 고된 하루를 마친 부두 노동자들이 둥근 양철판에 둘러앉아 소주잔을 기울인다. 힘든 노역에 지친 노동자들은 한잔 두잔 술기운에 어깨를 짓누르던 피곤을 잊어버린다. 60년대 초량 갈비골목에서 노동자들은 이렇게 하루를 마무리했다.
돼지갈비의 대명사로 통하는 초량. 초량 아닌 곳에도 초량갈비의 간판이 즐비한 것만 봐도 그 명성을 짐작할 수 있다. 돼지고기는 값이 쌀 뿐만 아니라 수은 납 등 중금속을 해독하는 효과가 있어,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에게 인기를 끌었다. 돼지갈비 골목의 원조로, 사람들의 출입이 잦은 부산역 부산항과 인접한 초량 돼지갈비 골목에는 서민들의 웃음과 고단함이 아직도 짙게 배 있다.
1인분에 4천원, 10년째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는 덕분에 한 가족이 먹어도 2만원이면 거뜬할 만큼 서민적인 가격이다. 푸짐하게 올려 놓은 고기에 넉넉한 인심이 있으니 별다른 반찬이 따로 필요없다. 고기를 먹고 난 뒤 김치와 시래기국으로 공기밥 한 그릇을 뚝딱 해치운다.
초량시장을 지나 부산고등학교 쪽으로 돼지갈비 전문점이 20여 곳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예전의 연탄불이 가스불을 거쳐 최근에는 숯불로 바뀌었다. 은하갈비와 남해집은 30년 넘게 이 곳을 지켜 온 터줏대감들.
은하갈비(467-4303)의 메뉴판에는 쇠고기 삼겹살 생갈비 돼지목살 등이 나열되어 있지만 주메뉴는 뭐니뭐니해도 돼지갈비. 은하갈비에서 돼지갈비를 주문하면 넉넉한 양의 갈비와 파절이 마늘 간장 고추장 상추가 한 상 푸짐하게 올라온다. 이 집 돼지갈비는 손으로 직접 썬 뒤 양념을 해 숙성시킨 것이다. 마늘 참기름 간장 등 10여 가지의 양념으로 진하면서도 담백한 맛을 낸다.
주인 정재구(64)씨는 “80년대만 해도 돼지갈비를 먹을 곳이 여기 밖에 없으니 손님들이 줄을 서서 기다릴 정도로 문전성시를 이루었다”고 말했다. 시대가 변함에 따라 손님 부류도 변해 왔다고 한다. 60년대는 술손님이 많았으나 70년대는 부부계가 붐을 이뤘고, 80년대 후반부터는 대부분이 가족단위의 손님이라고 한다. 술손님이 줄어 요즘에는 밤 12시면 문을 닫는다.
남해집(468-3075) 임윤심(74) 할머니는 33년째 이 자리에서 돼지갈비만 팔았다. 임 할머니가 이 곳에 돼지갈비집을 차리기 전에, 돼지국밥집을 하던 어느 할머니가 이미 돼지갈비를 팔고 있었다고 회상한다. 임 할머니 증언에 따르면 그 때 돼지국밥집 할머니가 초량 돼지갈비의 원조가 되는 셈이다.
돼지갈비 골목에서 조금 벗어난 곳에 위치한 평산옥도 돼지수육과 국수, 독특한 장맛으로 유명하다. 은하갈비에서 국토관리청 쪽으로 5분 정도를 걸어가면 허름한 모습의 평산옥이 나타난다. 예닐곱 평 남짓해 초라하게 보여도 이 곳은 100년 가까운 역사와 4대를 대물림한 손맛을 자랑한다. 국수 1천원 돼지수육 3천원, 전국에서 가장 싼 가격이지만 맛은 어디에 내놔도 손색이 없다. 이 집 국수는 우려낸 육수에 말아 주는데, 출출할 때 먹으면 속이 든든하다.
돼지수육이라면 인근 부산식당(441-8616)도 빼놓을 수 없다. 중국인 2세 아주머니의 중화수육(1만~2만원)은 담백하면서도 쫄깃하다. 신선한 삽겹살과 사태를 진한 육수에 삶아 내는데, 삶는 과정에서 지방질이 제거돼 부드러운 육질을 자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