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쌀쌀한 2월의 어느날 필자는 한 주짓수 도장을 찾아갔다.
부산 지하철 2호선 남천역에서 내린 필자는 어렵지 않게 도장 간판을 찾을 수 있었다.
이곳의 이름은 동천백산 쿵후&주짓수 클럽. 얼핏 이름만 봐서는 어째 좀 의심이 드는 것이 사실이었고, 이 때문에 필자는 여러차례 방문 기회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찾아가지 않고 있었다. 그러나 이곳의 관원과 온라인 상으로 연락이 되어 이 도장의 관장님 이하 사범님들의 면모(퍼플벨트1명, 블루벨트 6명)를 알게되자 순식간에 마음이 변하고 말았다. 명성이나 성적면에서 모두 국내 최고수준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였기 때문이었다. 이에 마음이 변한 필자는 바로 취재를 결심하고 방문에 나섰다.
필자는 어떤 도장을 가든 뭐하러 왔는지 절대 먼저 밝히지 않는다. 미리 약속을 잡고 가더라도 일단은 그냥 견학생인 것 처럼 하면서 구경을 한참 한 뒤에 마음이 내켜야 묻기 시작하는게 버릇이라면 버릇이다. (실제로 그런 버릇 때문에 들어갔다가 그냥 나왔던 도장도 몇군데 된다.
그러다보니 필자가 직접 취재를 한 것은 이번이 두번째였다.) 이번에도 역시 그냥 말없이 지켜보던 필자, 노 기(도복 없이) 상태로 지도를 하던 체격 좋은 분의 즐거운 표정을 보자 단번에 마음이 동했다. 그렇게 좋은 얼굴로 지도를 하는 사범님은 그렇게 많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다른 분들의 주짓수 훈련을 보더라도 여기가 [진짜]를 가르치는게 분명해 보였다.(여기서 [진짜]라는 것은 정통성 있는 기술을 가르친다는 의미도 있겠지만 그것보다는 정말 지도자다운 자세로 즐겁게 잘 가르치는 것을 의미한다.)
이에 바로 본격 취재를 하기로 한 필자, 신분을 밝히고 이것 저것 물어보기 시작했다. 필자에게 연락을 했던 관원이 직접 안내를 해 주었고 이것 저것 많은 뒷 이야기 같은 것을 가르쳐 주었다.(유감스럽게도 이름을 물어보지 못했다.) 필자가 예전에 유도와 유술에 관한 칼럼(솔직히 지금 입장에서 보자면 조금 민망한 수준의 칼럼이기는 하다.)을 온라인 까페에 몇번 쓴 일이 있었기 때문인지, 도장의 많은 분들이 필자를 알아보고 반갑게 대해주었다. 일부러 도장 훈련시간인 7시에 방문한 필자는 마침 트레이닝을 끝낸 아까의 그 체격 좋은 분부터 취재하기로 했다.
바로 일본 나고야 주짓수 대회 블루벨트 헤비급 부분 우승자인 성희용 사범님이었다. 1년 2개월만에 퍼플벨트를 취득하는 초 스피드 승급 기록을 세웠고, 예전에는 킥복싱 헤비급 국내 챔피언을 2번이나 지낸적이 있을 정도의 만능 무도가. 국내 주짓수 최고수중 한명으로 평가받고 있으며 현재 퍼플벨트이다. 킥복싱과 복싱까지 익힌 적이 있다는 이야기에 필자는 이것 저것 많은 것을 묻기 시작했다.
장시간의 인터뷰 중에서 몇가지 특이한 이야기들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기술 공개에 관한 이야기였다. 국내의 주짓수 지도자건 외국의 주짓수 지도자이건 제대로 기술 공개를 하지 않는 탓에 그는 이런 저런 도장을 다 돌아다녔고 외국 세미나도 많이 참여하면서 한가지씩 익혔다고 한다.
아부다비 컴뱃에서 준우승을 한 일이 있는 주짓수 테크니션 바렛 요시다에게 개인 트레이닝을 받은 일도 있고, 이번 마르셀로 3단의 세미나에도 참석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어떤 사람이든 기술 공개를 제대로 하려하지 않는다는 것에 대해 상당한 거부감을 느꼈다고 한다. 즉 그런 지도자들은 시연은 해 보이지만 정확한 포인트나 타이밍을 제대로 공개하지 않기 때문에 약간의 포인트만 잘못 잡아도 걸리지 않는 주짓수 기술을 제대로 전수받기가 너무 어렵다는 것이었다.
이 때문에 동천 백산 도장은 모든 기술을 다 공개하는 것을 그 특징으로 하고 있다고 한다. 성사범님 본인도 그간 기술을 공개하지 않았던 적도 있었으나 지금은 주짓수라는 무도의 저변이 확대되어야하는 단계이기 때문에 그런식으로 폐쇄적인 기술 전수는 아무 도움이 안된다고 판단해서 지금은 가르칠 수 있는 것들은 다 가르쳐주는 편이라고. 그리고 주짓수로 강해지는 방법은 이런 저런 화려한 기술을 다 익히는 것보다는 이길 수 있는 몇가지 기술만 확실히 익히는 것이 좋다고 했다.
또한 계파를 나누어 서로간 세력다툼을 하고 있는 국내 주짓수의 세태에 대해서도 굉장한 반감을 표시했다. 지금은 그런식으로 싸울 때가 아니라는 것, 주짓수의 보급에 힘써야할 마당에 그런식으로 얼마 되지 않는 저변을 바탕으로 자기들 자리를 굳히는데만 급급하다보면 [주짓수] 그 자체의 보급은 어렵다는 말이었다. 이 때문인지 그는 요즘에 정통성을 의심받는 일부 도장들(합기도나 유도를 하던 사람들이 주짓수를 자처하고 도장을 차리는 경우가 좀 있는 편이다.)에 관해서도 상당히 관대한 태도를 보였다. "합기도에서 쓰는 테크닉이건 유도에서 쓰던 테크닉이건 어쨌든 유술(주짓수) 아닙니까? 100여년 전에 쓰던 유술이건 지금 브라질에서 쓰는 유술이건 다 같은 유술 테크닉이니 그런 식으로라도 유술을 보급하는 것은 그렇게 나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유술도장이 한 300개쯤 생겼으면 합니다."라며 타 주짓수 단체의 관계자들과는 상당히 다른 견해를 보였다. 또한 기술적으로도 마차도건 그레이시건 어느 쪽의 것이든 좋은 것은 다 배워온다고 했다. 일반적으로 도복시합에서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마차도 계열의 주짓수나 노기시합에 강한 그레이시나 가리지 않는 것이 원칙이라고 한다.
즉 편견 없이 좋은 것은 다 받아들여 또 다른 경지의 주짓수를 추구하는 셈이다. 실제로 메치기와 스탠딩 몸싸움에서 약한 모습을 보이는 주짓수의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유도 전 국가대표의 세미나를 열어 기술을 전수받기도 했다고 한다.
일전에 모 주짓수 사범이 추진했던 씨름 기술의 도입도 상당히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주짓수 최강론을 주장하며 타 단체들로부터 많은 비난을 사고 있는 곳도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실제 온라인 까페에서도 주짓수 최강론을 주장하며 유도나 레슬링, 쿵후등을 깔보는 분이 종종 있다.
이것은 결국 주짓수를 욕먹이는 꼴밖에는 되지 않는다.), 이곳의 체계는 상당히 신선한 것임에 분명했다. 이 쯤에서 최무배 선수의 시합에 관해 잠깐 질문을 했는데 "역시 50대 50으로 봐야겠죠. 그렇지만 이번 싸움은 정말 어려울 겁니다. 그간 최선수는 제대로 된 그래플러와 붙은 일이 없어요. 세르게이는 삼보의 고수입니다.
지금까지 잘 먹혀들었던 레슬링 테크닉이 그에겐 잘 안통할 가능성이 아주 큽니다. 그렇다고 타격전으로 가더라도 세르게이는 노게이라하고 붙었을 때 보여준 바 있듯이 펀치 테크닉도 상당하기 때문에 상대하기 버거운 선수입니다. 그렇지만 이런 운동환경에서 그만한 성과를 낸 최선수라면... 이번에도 꼭 이겨주길 바랍니다."
대화를 열심히 나누던 필자는 호기심이 발동해, 타격기를 그만두고 주짓수를 하게된 동기를 물었는데 이에 성사범님은 " 타격기는 샌드백을 두드리는 것 만으로도 제 몸이 데미지를 입습니다.
킥복싱을 오래하다보니 여기저기 몸에 많은 부상을 입었고, 킥복싱을 한 참 할때는 그만두고나니 그간 쌓였던 데미지 때문에 몸이 서서히 망가져가는 걸 느꼈습니다. 그런데 유술은 한 번 배워보니 힘이 없어도 쓸 수 있을 것 같고, 몸에 데미지를 주지 않고서 즐겁게 익힐 수 있더군요. 그래서 하기로 했습니다."라고 말하면서 다리의 파열된 근육을 만져보게 했다. 몇년전에 얻은 부상인데 근육이 더 이상 재생되지 않는다는 것. 성사범님과의 1시간 30분에 걸친 인터뷰를 마치고 필자는 본격적으로 훈련을 취재하기 시작했다.
2시간의 정규 트레이닝시간 자체도 짧지 않은 시간이지만 관원들 모두가 그 트레이닝을 굉장히 즐기는 편이었으며, 정규 수련시간이 끝난 후에도 서로 서로 스파링을 계속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특히 채인묵 관장님은 직접 관원들과 스파링을 하며 지도를 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는데, 실력도 실력이지만 정말이지 성의를 다해 가르친다는 느낌을 받았다. 원래 태극권을 수련했다는 채관장님은 그 태극권의 원리와 주짓수의 기술들이 정확하게 들어맞는다는 것에 착안 동천백산만의 독특한 주짓수 스타일을 만들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블루벨트임에도 불구하고 보통의 블루벨트와는 좀 다른 레벨의 실력을 지니고 있는 것 같았다.
다른 곳과는 좀 다른 스타일의 주짓수, 여지껏 거의 시도된 적이 없는 주짓수 스타일을 만들어낸 것이다. 또한 이곳은 쿵후도 같이 수련할 수 있는 훈련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필자는 관장님을 취재하기 위해 무던히 노력을 했건만 부끄러움 탓인지 이리 저리 피해다니는 통에 도통 기회를 잡지 못하다가 집에 갈 때 겨우 인터뷰를 할 수 있었다.)
부산의 다른 주짓수 도장과의 관계와 대연동에 도장을 열게된 계기 같은 것을 쭉 설명하던 관장님은 "원래는 쿵후를 수련했습니다. 이미 [천산쿵후]라고 이름도 붙였지요. 사실, 애초에는 쿵후와 주짓수를 같이 가르친다고 하면 분명히 사이비 도장이라는 소리가 나올 것 같아 처음에는 상당히 망설였습니다. 그렇지만 도장에서 수련을 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많았고 태극권의 [신] 즉, 몸을 다루는 방법이 주짓수의 기술들에 정확하게 적응되는 면이 있었기 때문에 둘을 접목시키기로 했습니다."
특히 주짓수에 비해 상당히 오랜 기간 국내에 보급되어온 태극권의 수련 체계와 용어등을 제대로 수련 체계가 잡혀있지 않았던 주짓수에 접목시켜보니 상당히 좋은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고 한다. 또한 채관장님은 주짓수 최강론에 대해서도 반감을 보였는데, 그런식으로 타무도를 비난하는 것은 주짓수의 보급이나 국내 무도계 전체를 보더라도 마이너스효과만 난다는 것. 필자는 채관장님의 나지막한 어투와 예의를 중시하는 듯한 자세에서 범접하기 어려운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또한 그간 도장을 열고 수련을 하면서 있었던 어려웠던 일들을 조금씩 밝히는 모습에서 무술인들만의 진실함이랄까 그런 것을 엿볼 수 있었다. 잠시나마 쿵후와 주짓수를 같이 가르친다는 간판만 보고 도장 자체를 의심했던 경솔한 필자는 이 진정한 무술인의 모습 앞에 고개를 숙일 수 밖에 없었다. 그렇다. 진정한 고수라는 것은 자신이 익히는 무술에 대한 자부심을 마음에 품고, 자신이 자신의 무도에 대해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것만큼 타무도 수련자들도 나름의 자부심을 가지고 있음을 이해할 줄 아는 마음가짐을 갖추고 있어야하는 것이다. 채관장님의 모습에서는이런 고수의 기품을 느낄 수 있었다. (이곳에서는 천산쿵후라는 것을 가르치기도 하는데 이 천산 쿵후는 기존의 국내 쿵후 유파들이 투로와 형을 중시하는 것에서 상당히 많은 변화를 주어 슈퍼 세이프 같은 호구를 착용한 뒤 스파링 등을 실시하여 그 실전 적응력을 높였다는 특징이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또 필자와 30여분간 인터뷰를 했던 박준영 사범님(블루벨트)에게서는 또 다른 필자가 모르던 면에 대한 지식을 얻을 수 있었다. 10여년간 보디빌더를 했다는 박사범님의 경우 주짓수를 수련하면서 근육이 20kg정도 줄었다고 한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도복 너머로 보이는 가슴 근육은 엄청나 보였다.) 필자는 그간 상당히 궁금했던 근력과 주짓수의 상관 관계에 관해 물어볼 수 있는 최고의 대상을 발견했다는 생각에 그에 관한 질문 공세에 나섰다.
그러나 돌아오는 대답은 의외였다. "크게 상관 없습니다. 힘이 필요하다고 해도 주짓수에 필요한 근육만 있으면 되는 것이 기 때문에 보디빌더 스타일의 트레이닝은 큰 상관이 없습니다. 저도 주짓수에 필요한 웨이트 스케쥴을 따로 만들어서 실시하고 있습니다."라고 대답한 박사범님은 "비디오만 보고 주짓수를 가르치는 그런 곳이 아니라면 합기도나 유도 혹은 도 다른 무술을 익힌 분이 주짓수 도장을 차린다고 해서 크게 나쁘다고만은 보지 않습니다. 그런 것으로라도 주짓수에 관한 관심을 늘릴 수 있다면 괜찮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해 전체적으로 개방적인 사고를 가지고 있는 이 도장의 분위기를 대변했다.
평소부터 가장 궁금했던 [도복구입]에 관한 문제에 대해서는 "일단은 유도복을 쓰고 있습니다. 주짓수 도복을 외국에서 구입했다가는 돈이 엄청나게 드니까요. 유도복에 패치를 붙이는 편이 경제적입니다. 연습용 도복은 4만원 정도면 구할 수 있으니까요.(참고, 채관장님은 호이스 그레이시의 도복으로 유명한 아타마를 착용, 얼마냐고 여쭤보려다 말았다.)"라고 대답했는데, 이에 필자는 그간 인터넷에서 유명했던 이야기를 꺼냈다. 바로 유도복을 주짓수 도복으로 고쳐 입을 수 있냐는 질문이었다. 이에 박사범님은 "그렇게 하면 돈이 더 듭니다. 성사범님은 그렇게 고쳐입다가 20만원이나 들었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안합니다."라며 간단히 답변했다. 혹시라도 고쳐입겠다고 생각하던 분들 단념하시라, 20만원이면 인터넷에서 주짓수 도복 사고 남는다.
타 무도를 전혀 해 본 경험이 없다는 박준영사범님은 1년 2개월만에 블루벨트를 취득했다고 한다. 이번 마르셀로 3단의 국내 세미나에도 참석했다는 이야기에 필자는 검은띠와의 실력차가 어느 정도냐는 질문을 했다. 그러자 "이번 세미나를 통해 검은 띠에 대한 환상이 깨졌다고 할까요? 그렇게까지 엄청나게 다르다는 느낌을 받지는 않았습니다. 또한 승단기회가 별로 없는 우리나라의 주짓수 선수들의 경우, 브라질이나 일본 등 주짓수 강국에 비해 파란띠나 보라띠의 실력이 우수한 편이기도 합니다."라는 대답이 돌아왔다.(실제로 성사범님과 박사범님의 경우 세계 유술 선수권대회, 즉 문디알 대회에 참전한 뒤 브라질 유학을 떠날 예정이라고 한다.)
인터뷰를 마치고 보니, 정말 다양한 무술 경력자가 많았다. 전라도에서 합기도를 가르치다가 주짓수를 배우러 부산까지 왔다는 김영수사범님의 경우 도장에서 숙식을 하며 주짓수 수련에 매달리고 있다고 한다. 보통의 열정으로는 할 수 없는 일이다. 또한 유도 선수출신이나 킥복싱 챔피언 출신 등 기본적으로 타 무도로 좋은 베이스를 쌓아둔 관원이 많았으며 이미 MMA무대에도 참전중이라고 한다. 어떤 곳이든 무대만 있으면 가서 싸울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이다. 필자는 밤에 취재한 관계로 일반 수련만을 취재했지만 오전에는 선수부의 트레이닝이 따로 있다고 한다.
주짓수라는 무도 자체가 아직 생소한 국내, 특히 도장또한 수도권에 편중되어 있는 형편을 감안하면 부산의 동천백산 주짓수 도장이 앞으로 주짓수 보급이라는 측면에서 담당할 역할은 상당히 클 것이다. 또한 얼마전에 개관한 KPW 부산 본관, 그리고 극진 공수도 본관이 인접해 있어 이 부근은 부산 격투기의 중심지로 성장할 가능성이 아주 높아졌다. 이들의 성실한 땀 한방울 한방울이 우리나라 격투기/무도 발전에 큰 역할을 해 줄 것을 믿어 의심치 않으며 이번 도장 탐방기를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