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의 관문 '무전동'. 옛날부터 '양반입네' 하는 사람들도 하나같이 갓 벗어놓고 넘었다는 '원문고개'가 이 동네에 있다. 주로 바닷일이었던 생업에 격식 차릴 틈이 없었다는 것이다. 처음 무전동 이름을 접했을 땐 '무전여행', '무전유죄' 같은 말을 막연히 상상했다. 혹 '無錢洞' 아닐까….
그러나 요즘 이 동네가 잘 나가는 것을 감안하면 그럴 리가 없다. 통영 관문이라는 오랜 수식어에다 '행정과 상업 중심지'라는 견장이 새로 달렸다. 1992년 시 청사가 서호동에서 옮겨지고, 2000년까지 전체 655㎡가 추가 매립된 후에는 인구가 1만3600여명으로 늘었다. 13만 통영인구의 10%가 사는 셈이다.
무전동에 '다찌골목'이라는 게 따로 있는 것은 아니다. 매립 이후 신흥 중심지가 된 무전동에 하나 둘 다찌집이 모여들면서, 급기야 다찌의 중심지가 됐을 뿐이다. 별도로 다찌집이 집중된 곳은 없지만 산재한 다찌집의 수가 스무 곳을 넘었다. 통영항 옆 항남동에서 생긴 다찌집이 시대에 따라 정량동으로, 또 무전동으로 자리를 옮겼다.
안개 자욱했던 통영관문
무전동의 한자 표기는 '霧田洞'이다. '안개밭'이라는 뜻인데, 예전부터 북신만 바다를 낀 이곳 지형을 그대로 드러낸다. 예부터 외지인들이 통영에 들어설 때, 원문고개 마루에서 바라봤던 북신만 옆 무전동에 안개가 자욱했었다. 1970년대 초반까지 썼던 이 지명이 한 때 없어졌다가, 1985년 북신동과 분동되면서 다시 살아났다. 옛날 적적했던 안개밭은 지금 부산하다. 대단위 아파트 단지는 자욱했던 안개를 멀리 북신만 밖으로 몰아냈다. 오후 7시의 무전동은 더 요란하다. 아이들이나 어른들이나 제각각 어딘가를 향해 부산하게 움직인다. 그 중에서 출출한 뱃속을 삭이며 저녁 겸, 술 한잔 겸 주당들이 한결같이 향하는 곳이 있다. 바로 '다찌집'이다.
통영 명물 다찌가 요즘 이 동네에 스무 곳 이상 집중된 점에서도 연일 상한가를 치는 무전동 분위기가 감지된다. 시외버스터미널 서쪽 롯데마트를 기준으로 맞은편 주영에이스빌3차 옆에 '토담' '경동' 등의 실비집이 있다. 통영세무서 쪽으로 돌아가는 길목을 따라 '산양' '송죽' '북소리' 등의 실비집도 이어진다. 반대쪽 동하피아존 1·2차 아파트 주변에는 '대하'와 '갯벌', '만송일식' 등이 둘러싸였다. 한 때 다찌라는 단어가 일본 말이라 하여 대부분의 간판을 '실비'로 바꾸게 했었다는 대목에서는 실소를 금할 수 없다.
알려진 대로 다찌집은 통영의 풍부한 해산물을 무료로 내놓으면서, 소주든 맥주든 병에 따라 술값을 계산하는 독특한 형태의 주점이다. 마산의 '통술'이나 진주의 '실비' 같은 개념이지만, 60년이 넘는 가장 오랜 전통을 갖고 있다. 다찌라는 말이 '줄을 서서 마신다'는 뜻의 일본 말 '다찌노미'나 '음식을 서서 먹는 것'이라는 '다찌구이'에서 파생했다고 추측하지만, 그 형태에서 왜색을 느낄 수는 없다.
사업 기본철학 박리다매
통영우체국 아래쪽 유진빌딩 2층의 다찌집 '통영사랑'. 입구의 카운터에 앉은 그녀를 처음 보고, 물론 '사장'이라고 짐작은 했다. 카운터에 아무나 앉는가 어디. 게다가 카운터 앞 명함꽂이에도 사장 이름이 여성이었다. 그렇게 얼핏 봤던 사장이 다찌집 설명을 위해 마주 앉았다. 어려 보였지만, 굵은 이목구비의 선 속에 갯바람이 실려 있었다.
"다찌집 운영만 7년째에요. 할머니가 김치장사를 했고, 어머니가 식당을 했으니까 3대가 장사를 한 셈이죠. 특히 할머니한테 배운 손맛이 이 장사를 하는데 큰 밑천이 됐죠." 무엇이든 그냥 생기는 법은 없다. 3대에 걸쳐 장사에 쏟은 공덕이 지금 김성미 대표가 운영하는 다찌집으로 응축된 셈이다. 이 곳은 기본을 받고, 이후부터 병으로 계산이 추가된다. 사장에게 기본에 달리는 해물을 모두 대보라고 했다.
"학꽁치, 호래기, 가오리, 돌멍게, 개불, 낙지, 전복, 성게알, 가리비, 소라", 그렇게 그녀는 또박또박 말했다. 아마 기본 안주에 다 나오지는 않을 것이다.
보통 술값이 6만원을 넘어설 때부터 개불이나 해삼, 뿔소라, 낙지 같은 안주가 나온다고 본다. 성게알이나, 전복, 해삼창자 등의 귀한 안주는 더구나 10만원 대가 돼야 나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사장에게 외지인들이 다찌집에서 좋은 안주 먹는 법이나 가리는 방법을 물었다. "술보다 해물을 많이 먹으려면 오히려 코스 쪽이 낫지요. 1인 2만원짜리를 시키면 방금 말한 해물의 80% 정도를 먹을 수 있으니까요. 3만원짜리는 거의 다 먹을 수 있고요." 코스에 소주나 맥주도 곁들여지니 못할 게 없다는 것이다.
"사업 철학요? 그런 게 있겠습니꺼. 그냥 '박리다매'지예 뭐. 손님 많이 받아 최대한 서비스 하고, 이익을 쪼끔 남기는 거죠. 다찌 업주들, 다 그래요. 그러니까 많이들 오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