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자 청화철채동채초충문 병
<백자 청화철채동채초충문 병>이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192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경기도 팔당 인근에서 낚시와 봄나물 그리고 참기름을 생계로 하시던 노부부가 있었다. 어느 날 할머니는 인근 야산에서 나물을 캐던 중 흰색 병을 발견했는데, 이병은 참기름을 담기에 알맞은 목이 긴 병이었다. 할머니는 필요할 때마다 그곳에 가서 이와 비슷한 병들을 주워 참기름을 담는 용으로 사용했다. 그런데 할머니가 병을 발견한 그곳이 바로 조선시대 왕실용 자기를 생산했던 분원(分院) 가마터였다는 점에서 앞으로 전개될 이야기가 달라진다.
할머니는 야산에서 주운 그 흰 병에 직접 짠 참기름을 담아 중간 상인에게 1원씩 받고 넘겼다. 중간상인을 통해 이 참기름병을 구매한 광주리 행상 개성댁은 황금정에 있는 일본인 단골 무라노의 집으로 갔고, 어쩐지 참기름병에 마음이 갔던 무라노의 부인은 병값을 1원 더 쳐주고 참기름병까지 구입하였다.
조선백자를 단돈 1원에 구매한 무라노는 이어 다른 골동품상에게 60원을 받고 넘겼다. 얼마 후 그 백자는 스미이 다쓰오라는 수집가에게 600원에 팔렸고, 1932년 스미이가 다시 경매에 내놓아 모리 고이치라는 수집가에게 3천 원에 낙찰되었는데, 모리 고이치는 1908년 대한제국의 초청으로 국내로 들어온 금융전문가이자 유명한 고미술품 수장가였다. 1936년 모리 고이치가 죽게 되자 그의 유족은 수장품을 경성미술구락부의 주관하에 전시 및 경매하기로 결정하였다.
간송 선생님은 전시장에서 그 백자를 직접 확인한 후, 평상시와 달리 경매에 직접 참여하였다. 경매가 시작되자, 500원부터 시작된 가격이 순식간에 7천 원으로 뛰어올랐다. 이 경매에서 간송과 당대 세계적인 골동품 회사 야마나카 상회 측의 치열한 경쟁이 시작되었고, 결국 이 백자 병을 손에 쥔 사람은 간송이었다. 낙찰가격은 ‘1만 4,580원’으로 이는 당시 기와집 15채에 해당하는 엄청난 금액이었고, 경성미술구락부 사상 최고 낙찰가였으며, 조선백자로서도 역대 최고가였다.
이 백자 병은 청화, 철화, 동화 등 세 가지 안료가 한 기물 안에 모두 장식된 조선백자 유례상 매우 독특하고 희귀한 유물이다. 이 안료들은 각기 성질이 달라 소성온도나 가마 등의 제작 상황에서 까다로운 공정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백자 청화철채동채초충문 병>은 당시 도자를 장식하는 기법 중 가장 고난도의 기술이 적용된 것이라 볼수 있다.
출처 : 신주혜(국립문화재연구원 미술문화재연구실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