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하문명론의 등장배경
예로부터 한족(漢族)들은 만리장성을 ‘북방한계선’으로 하여 야만인이라고 여겨온 북방민족들과는 분명한 경계를 두었다.
그런데 1980년대 들어서면서 장성 밖 요하지역에서 중원문화보다 시기적으로 앞서고 발달된 신석기문화가 속속 확인됐다.
특히 기원전 3,500년(5,500년전)까지 올라가고 대규모 적석총, 제단, 여신묘가 확인되어 ‘초기 국가단계’에 진입했다고 보이는
홍산문화(紅山文化) 우하량 유적지의 발견은 중화인민공화국으로서는 충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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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산문화 우하량 유적지 : 원형제단, 적석총, 제단, 여신묘 발굴; 경향신문제공>
곽대순은 중화문명의 시작을 요하일대의 ‘사해문화’와 ‘홍산문화’에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지금으로부터 8,000년 전의 부신(阜新) 사해문화(査海文化)에서는,
(1) 사회조직이 분화된 것을 보여주는 위계적으로 배열된 방 유적지가 발굴되었고,
(2) 사회적 분업을 통해서 옥기가 말들어 졌으며,
(3) 의식의 발전정도를 나타내는 ‘용 형상물’도 발견되는데, 사해문화가 이미 ‘문명의 시작’ 단계에 들어섰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요하문명이 발전해 간 모습을 반영하는 홍산문화 우하량 유적에서는,
(1) 5,000년 전의 ‘제단(壇), 사당(廟), 무덤(塚)’ 삼위일체의 대규모 종교의례를 상징하는 건축군과,
(2) ‘용(龍), 봉(鳳), 사람(人)’ 위주의 각종 옥기들이 발견되는데, 이것은 요하유역이 ‘문명사회로 진입’했다는 중요한
실증들이라는 것이다.<곽대순「서언, ‘요하문명’ 해」>
이러한 입장은 기존의 황하문명보다 앞선 요하문명을 중화문명의 발상지로 새롭게 정의하고 있는 것이다. 중화인민공화국은,
황하문명보다 이르고 발달된 ‘요하문명’을 중화문명의 발상지의 하나로 재정립하고 있다.
이런 요하문명론의 선행작업으로, ‘하상주 단대공정’, ‘중화문명 탐원공정’, ‘동북공정’등을 시행했던 것이다.
‘요하문명론’에서는
(1) 황제의 손자인 고양(高陽)씨 전욱(顓頊)과 고신(高辛)씨 제곡(帝嚳) 두 씨족 부락이 지금의 하북성과 요령성이 교차하는
유연(幽燕) 지역에서 살면서 모든 북방민족들의 시조가 되었으며,
(2) 만주지역 ‘요하문명권’의 핵심인 홍산문화는 전욱 고양씨 계통에 의한 문명이며,
(3) 신석기시대 이래로 만주일대는 황제족의 영역이며,
(4) 이 일대에서 발원한 모든 민족과 역사는 모두 중화민족의 역사이며,
(5) 요하문명은 이집트나 수메르 문명보다도 오래된 ‘세계 최공의 문명’임을 밝히려는 것이다.
우리가 주목해야하는 것은
만일 중화인민공화국 학자들이 최근 논의하고 있는 ‘요하문명론’이 정리되면,
(1) 단군, 웅녀, 주몽, 해모수 등은 모두 황제의 후예가 되는 것이며,
(2) 대한민국의 역사는 중화인민공화국의 방계역사로 전락하게 된다는 점이다.
우리 역사학계에서 요하문명론에 주목하고 시급히 대응책을 마련해야하는 것은 이런 까닭이다.
요하지역 주요 신석기문화와 유적
(1) 소하서문화(小河西文化 : 기원전 7,000년 ∼ 6,500년)
가. 지역 : 1984년 내몽고 적봉시 오한기(敖漢旗) 소하서촌, 목두영자향 등 10여곳에서 발견,
1987년 ∼ 1988년 발굴로 ‘소하서문화’로 명명.
나. 특징 : 요하지역의 가장 이른 시기의 신석기 유적
다. 유물 : 요동 이동지역 최초의 ‘흙으로 만든 얼굴상(도소인물상)’ 발견
(2) 흥륭와문화(興隆洼文化 : 기원전 6,200년 ∼ 5,200년)
가. 지역 : 1982년 내몽고 적봉시 오한기 보국토향 흥륭와촌에서 발견
나. 특징 : 발굴 옥, 빗살무늬토기 등을 통해 이 시기 이미 요동, 요서, 연해주, 한반도가
단일문화권임 입증. 최초의 집단주거지를 통해 이시기 정착생활 돌입.
다. 유물
1) 세계 최고옥 발견 : 옥 귀걸이 100여점, 재료는 현재 요동 남부의 수암옥으로 제작.
- 옥을 통해 기원전 6,000년경 이미 요동, 요서, 연해주, 한반도가 단일문화권 입증.
(강원도 고성군 죽왕면 문암리에서 기원전 6,000년 이전 옥 귀걸이 발견, 전남 여수시
남면 안도리 패총에서 기원전 4,000년 ∼ 3,000년 시기의 귀걸이 발견)
1-1) 옥의 전파 경로
- 흥륭와(BC6000) ⇒ 양자강(BC5000 ∼ 4000) ⇒ 광동성 광주(BC2500) : 홍콩 등총교수
- 흥륭와 ⇒ 백두대간 동쪽 ⇒ 고성 문암리 ⇒ 동남해안 ⇒ 여수안도리, 일본 구주와 본토 : 우실하
2) 집단취락지 발견 : 소위 중화원고제일촌 또는 화하제일촌으로 명명.
- 요동 이동지역 최초의 집단 정착주거지 150호 발굴, 최초의 해자 발견
- BC 6000년경 이미 정착생활 시작됨.
3) 빗살무늬토기 발견 : 최초의 빗살무늬토기(이 이후 신석기문화 모두 빗살무늬토기 보임)
- 토기이동경로 : 시베리아 남단 ⇒ 만주 ⇒ 한반도 ⇒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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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左부터 사해유적, 흥륭와유적, 문암리유적의 옥기 비교; 경향신문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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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륭와 집자리떼, 150기 이상 발굴, 전체 4만평방미터;경향신문제공>
(3) 사해문화(査海文化 : 기원전 5,600 ∼ )
가. 지역 : 1982년 요령성 부신 몽고족 자치현 사해유적에서 발견
나. 특징 : 옥기, 집단취락지, 최대 용형상물 발견
다. 유물
1) 20여점의 옥기 발굴
2) 소위 ‘요하제일촌’인 정착주거지 발견
3) 석소룡(石塑龍)과 2점의 용무늬 도편 발견(최고 최대, 19.7m * 1∼2m, 199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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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해유적 용형상 도기파편; 경향신문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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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해유적 빗살무늬토기; 경향신문제공>
![](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cfs10.blog.daum.net%2Fimage%2F23%2Fblog%2F2007%2F11%2F14%2F16%2F42%2F473aa6c76f972%26filename%3D%26%2365533%3B)
<사해유적 용무늬 파편;경향제공>
(4) 부하문화(富河文化 : 기원전 5,200년 ∼ 5,000년)
가. 지역 : 1962년 내몽고 동요시 파림좌기(巴林左旗;林東) 호얼토향 부하구문.
나. 특징 : 최초의 복골 발굴
다. 유물 : 최고의 ‘점치던 뼈’ 발견, 후에 중원의 상나라 갑골점으로 전승
(5) 조보구문화(趙寶溝文化 : 기원전 5,000년 ∼ 4,400년)
가. 지역 : 1982년 적봉시 오한기 고가와포향 조보구촌
나. 유물 : 최초 봉황형상물(중화제일봉), 최초 채도 존형기(尊形器), 최초 신령도안(神靈圖案)
(6) 동석(銅石)병용 홍산문화(紅山文化 : 기원전 4,500년 ∼ 3,000년)
가. 지역 : 1955년 명명, 1979년 동산취유적, 1983년부터 우하량유적 발굴
나. 구분 : 홍산문화 전기(기원전 4,500년 ∼ 3,500년 : 신석기시대)
홍산문화 만기(기원전 3,500년 ∼ 3,000년 : 동석병용시대)
다. 특징
1) 만기우하량에서 순동의 주조 흔적 발견.
2) 제단, 여신전, 거대 적석총의 발견은 홍산문화 만기유적으로 이미 ‘초기 국가단계’,
‘최초 문명단계’에 진입한 것으로 ‘홍산문화의 꽃’으로 명명.
3) 수 만은 적석총 발굴, 금자탑식 거형 건축은 밑변이 100m 이상의 원형
4) 3원구조의 원형제단은 만주족이 세운 북경의 천단의 원형으로 보이며, 북방 샤머니즘의
‘3수 분화의 세계관(1-3-9-81)’이 엿보임.
5) 다량의 옥기와 적석총의 크기로 이미 신분이 분화된 사회임 입증
6) 여신묘에서의 흙 여신상, 흙 곰턱뼈, 흙 곰신상 등으로 홍산문화를 단군신화의 웅녀족 연결성 추론(우실하)
7) 옥저룡(玉猪龍), 옥웅룡(玉熊龍) 다량발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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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산유적 적석묘지>
(7) 동석병용 소하연문화(小河沿文化 : 기원전 3,000년 ∼ 2,000년)
가. 갑골문의 전신으로 보는 ‘토기에 새겨진 부호문자’인 도부문자(陶符文字) 발견
(8) 청동기 하가점 하층문화(夏家店 下層文化 : 기원전 2,000년 ∼ 1,500년)
가. 지역 : 적봉 하가점
나. 특징
1) 본격적인 청동기시대로 ‘고급 문명사회’,‘완전한 국가단계’에 진입
2) 하가점 하층문화는 바로 고조선문화로 이어짐
3) 이 시기에는 중원에서는 보이지 않고 고구려 특유의 것으로 알려진 ‘치를 갖춘 석성’,
‘비파형 동검’ 등 고조선문화의 상징들이 발견됨
4) 하가점 상층문화로 이어지면서 발달된 청동기시대를 이어가며 철기시대로 이어진다.
5) 하가점 하층문화는 적봉, 조양 등을 중심으로 수천여 곳이 발견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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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가점하층유적, 고구려가 계승한 치를 갖춘 석성의 원형;경향신문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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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좌점 석성의 치;경향신문제공>
![](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cfs6.blog.daum.net%2Fimage%2F33%2Fblog%2F2007%2F11%2F14%2F16%2F53%2F473aa960280b4%26filename%3D%26%2365533%3B)
<석성 내 원형구조물>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