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2년 그는 일간스포츠에 만화 ‘임꺽정’을 연재하며 성인용 연재 만화의 시작을 알렸다. 이어 73년 ‘수호지’, 78년 ‘삼국지’ 등을 잇따라 실으며 표현의 자유가 제한됐던 이 시기 중국 고전을 통해 당대를 말했다. 청바지와 포크송으로 대표되는 1970∼80년대에 문학의 최인호, 가요의 이장희와 함께 대중문화 스타 3인방으로 꼽히기도 했다. 만화가 고우영(사진) 얘기다.
그의 만화는 끝나지 않았다. 3년 전 작고한 그가 미술관으로 걸어 들어왔다. 서울 대학로 아르코 미술관에서는 16일부터 9월 12일까지 ‘고우영 만화: 네버 엔딩 스토리’전을 연다. 미술관에서 만화가 회고전을 열기는 처음이다. 아르코 미술관 김형미 큐레이터는 “신문 연재 만화를 처음 시작했고, 어른들을 위한 만화라는 영역을 확립, 확대하는 데 기여했다는 점을 높이 샀다”며 고우영 회고전을 기획한 이유를 설명했다.
미술관은 1970∼80년대 대중문화의 아이콘이자 역사 만화의 새로운 장을 연 인물, 어른을 위한 한국 만화의 본격적 출발을 알린 만화가로서 고우영에 주목했다.
해서 전시는 7080 대중문화, 고우영 원화와 희귀본, 관련 예술가들이 고우영을 주제로 만든 작품 등 3개 섹션으로 진행된다. 미술계에서 만화가에 대해 대규모로 조망하는 셈이다. 전시에는 유족들이 간직해 온 고우영 만화의 원화와 함께 미술작가인 강경구·윤동천·주재환씨 등이 고우영과 그의 만화, 시대를 소재로 만든 작품들이 나온다. 영화감독 김홍준씨가 고우영 만화를 토대로 만든 영화 ‘가루지기’를 새롭게 만든 ‘가루지기 리덕스’도 선보인다.
전시기간 중 만화가들의 낚시 동호회인 ‘심수회’에서 고우영과 함께 우정을 나눴던 이두호(머털도사)·신문수(로봇찌빠)·이정문(심술통)씨와 허영만·박재동씨 등이 독자들과 릴레이 대화를 연다. 전시에 맞춰 고우영의 만화 작품 세계를 다룬 책 『고우영 네버엔딩 스토리(가제)』도 발간되며, 유치원·초등생 대상의 체험 프로그램도 운영된다.
◇“고우영은 살아있다”=그의 ‘수호지’에는 선한 눈매의 인물, 무대가 등장한다. 70년대 대학가에 ‘무대 클럽’이 결성됐을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삼국지’의 ‘쪼다 유비’나 ‘싸나이 조조’는 또 어떤가. 고우영은 고전의 주인공들을 자기만의 캐릭터로 되살려냈다.
캐릭터 창조의 최고봉은 단연 ‘일지매’다. 93년 장동건·염정아 주연의 TV물로 제작돼 인기를 모았으며, 현재 SBS에서 이준기 주연의 드라마로 방영 중이다. MBC에서도 이승기 주연의 또다른 ‘일지매’를 제작 중이다. 일간스포츠에서는 지난달부터 고우영의 ‘삼국지’에 컬러를 입혀 연재중이다. 고 화백의 차남 고성언씨가 이 작업에 참여하고 있다.
김형미 큐레이터는 “지난 4월 25일로 3주기를 맞은 고우영은 요즘 젊은이들에게 낯선 이름일지도 모른다. 고우영 세대 아버지들이 자녀들 손을 잡고 미술관에 오면 좋겠다”고 기대를 표시했다. 02-760-4724.
권근영 기자
◇고우영(1938~2005) 화백
1938년 만주에서 태어나 평양을 거쳐 47년 서울에 정착했다. 53년 피란지 부산의 미군부대 쓰레기장에서 미키마우스를 보고 중학교 2학년이던 이듬해 단행본 『쥐돌이』로 데뷔했다. 58년 서울 동성고를 졸업할 무렵 소년 가장이 돼 잡지 ‘만화학생’에 입사, ‘짱구박사’ 등을 연재했다. 72년 일간스포츠에 한국적 극화 ‘임꺽정’ 연재를 시작한 데 이어 73년 ‘수호지’, 75년 ‘일지매’를 연재, 신문 연재 만화 시대를 개막했다. 2003년 서울국제만화페스티벌에서 공로상을 수상했으며, 2005년 은관문화훈장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