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그 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1989년 10월3일 시인 정지용 흉상제막기념공연이 있던 호암아트홀. 가수 이동원과 테너 박인수가 무대에 섰다. 그들은 정지용의 시 ‘향수’를 가사로 한 노래를 열창했다. 이동원의 다정한 목소리와 고향을 쫓는 듯한 호소력, 아득한 박인수의 목소리가 관중들을 매료시켰다. 이때부터 정지용의 시 ‘향수’는 더 이상 암송의 대상만이 아니라 노래로서 우리의 사랑을 더욱 받게 됐다. 정지용은 이 노래로 인해 국민시인의 자리를 더욱 굳건히 다지게 됐고, 잊혀져 가던 고향의 정경은 우리들 마음 속에 다시 태어나게 하는 계기가 됐다. 앞서 시인 정지용은 1988년 우리에게 다시 돌아왔다. 그의 해금에 따라 같은 해 6월 그의 생가가 헐린 자리에 세워진 집의 벽에 ‘이곳이 그의 생가 터였음’을 알리는 표지가 붙여지면서 그의 자취가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1996년도에는 그의 생가가 원래 모습으로 복원됐다. 그리고 10년 가까운 세월이 흐른 2005년 5월 그의 생애와 문학을 총 망라한 기념관이 세워졌다. 비로소 그의 발자취와 생애, 문학을 한 자리에서 돌아볼 수 있게 되었다.
문학관과 생가가 있는 곳은 옥천 구읍이다. 옥천역이 생기기 전에는 이곳이 옥천의 중심지였다. 역을 중심으로 발전하다 보니 지금은 쇠락해 ‘옛 구자(舊)’를 더해 구읍이라 불린다. 구읍은 비록 경제적으로 밀려나 있지만 이제 정지용의 삶과 문학을 이해하고 생가의 툇마루에 걸터앉아 그의 문학의 향기를 음미할 수 있는 명소로 탈바꿈했다. 구읍은 옛날의 영화를 말하듯 일제 강점기 건물과 미국식 교회당, 개량민가 등 근대건축물이 아직도 많이 남아 있다. 정지용 생가와 문학관만 들르면 섭섭하리니. 구읍의 근대건축물과 문화유산의 향기도 흠뻑 느껴보는 것도 좋다.
바다 없는 충북의 다도해 대청호
옥천은 원래 내륙 속의 내륙이었다. 그런 옥천에 육지 속 바다가 생긴 것은 1980년. 1975년 3월 착공된 대청댐이 1980년 12월 완공과 함께 담수가 시작됐다. 실개천 흐르듯 맑았던 금강 여울이 대하를 보는 듯 거대한 육지 속 바다로 변했다. 대청호가 생기는 바람에 어릴 적 멱 감고 천렵하던 강변의 추억과 그 아름답던 강마을 정취는 먼 기억 속으로 사라졌다. 수몰된 땅은 기억을 더듬어도 더 이상 찾아갈 수 없는 추억의 땅이 됐다. 대표적인 곳이 안남면과 안내면, 군북면이다. 이곳의 강마을은 금강의 아름답던 여울과 함께 물 속에 잠겼다. 그 언저리 높게만 보였던 산들은 제 키만큼 불어난 물에 산자락을 드리우고 더러는 물 돌아가는 산모퉁이가 되고, 더러는 섬이 되어 호수의 잔물결과 찰싹인다. 옥천은 전체면적의 83.7%가 수자원보호구역, 상수원보호구역 등 특별규제지역으로 묶여 있다. 그만큼 지역발전에 심각한 제한을 받고 있다는 방증이다. 그렇다고 탄식만 하고 있을 수는 없는 터. 대청호는 바다가 없는 땅에서 다도해의 풍광처럼 옥천의 모습을 바꾸었다. 물안개 피어올라 자욱한 아침의 고요가 있고, 안개 걷혀 곳곳에 모습을 드러낸 비경이 있다. 해질 무렵 황금빛 잔물결이 먼 산의 실루엣을 머금고 있는 풍경 속에서 대청호 주변 옥천의 산하는 이제 호수를 꿈꾸고 있다. | |
패스트푸드만 먹고 떠날 수는 없잖은가
청성면 동이면 조령리에 있는 금강휴게소는 경부고속도로 상·하행 통행 차량이 들러 한 장소에서 쉬어 갈 수 있는 단일휴게소다. 금강휴게소는 옥천의 오지 ‘높은 벌’에 전기를 가져다준 ‘은인’이다. 1969년 금강을 가로지르는 경부고속도로 공사 때 금강휴게소에서 사용할 전기를 끌어올 수 없었다. 산세가 너무 험준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금강에 소수력발전소를 설치하게 됐고 여분의 전기는 조령리와 높은 벌 등 인근 마을에 공급되기 시작했다. 또 발전소 둑은 잠수교가 되어 강을 자유로이 건널 수 있게 했다. 여느 고속도로 휴게소처럼 바쁘다는 핑계로 패스트푸드만 먹고 떠날 수는 없다. 금강휴게소를 벗어나지 않고 휴게소와 옥천의 토속음식촌을 잇는 굴다리를 통과하면 향토음식 푸짐한 식당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이곳에서 고속도로의 자동차 속도처럼 급했던 마음을 가라앉히고 느슨한 기다림 끝에 맛보는 옥천의 향토음식을 맛보고, 충분히 휴식을 취한 후 떠나는 고속도로 여행길은 한결 여유롭고 풍성한 추억의 여행이 될 것이다. 금강휴게소 아래 펼쳐지는 절경은 다름 아닌 금강유원지이다. 험준한 산자락 아래 흐르는 금강을 막아 만든 소수력발전소 주변은 옥천 산하의 절경이 있으며 여울낚시를 즐기는 낚시꾼과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금강휴게소를 지나 잠수교 구실을 하는 이 댐을 건너면 우산리(牛山里)에 쉽게 이를 수 있다. 우산리는 민박집과 토속음식점이 곳곳에 있어 식도락의 즐거움과 휴양의 즐거움이 함께 하는 곳이다. | |
거꾸로 옮겨 놓은 듯한 한반도를 보셨나요
강원 영월 선암마을은 모습이 한반도 지도와 같다 해서 유명하다. 그렇다면 한반도를 뒤집어 놓은 곳도 있을까. 옥천군 안남면 연주리 둔주봉 정상에 오르면 거짓말처럼 거꾸로 된 한반도 지형이 한눈에 들어온다. 한반도 지형의 장관을 볼 수 있는 둔주봉은 해발 270m의 산봉우리로 산세가 완만해 산책을 즐기면서 오르는 가벼운 코스다. 둔주봉 가는 길은 솔향기 물씬 풍기는 소나무 숲이 인상적이다. 고만고만한 소나무들이 대나무처럼 곧게 자라 송림욕도 즐기고 심신의 피로를 풀어가며 산을 오르는 기분은 어디서도 쉽게 느껴보지 못할 행운이 아닐까. 소나무 숲길을 즐기다 보니 어느새 정상의 팔각정이 가까이서 반기고 있다. 한반도 지형을 감상하며 팔각정에 앉아 휴식 취하는 일만 남았다. | |
소금강 꼭 빼 닮은 부소담악(병풍바위)
“거유(巨儒)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이 소금강이라 예찬한 추소팔경 제일의 선경 부소담악(赴召潭岳)은 세월과 지형의 변화 속에서 그 자태 더욱 빛내어 청정고을 옥천의 자연을 더욱 아름답게 수놓는다” 소금강이란 빼어난 산세가 마치 금강산을 축소해 놓은 것 같다는 의미로 한 지역의 천하절경을 뜻한다. 옥천의 소금강은 군북면 추소리에 있다. 추소리는 추동과 부소무니, 절골 등 3개의 자연마을이 있는 호반 마을로 이중 부소무니는 환산 밑에 연화부소형의 명당이 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마을 앞산은 부소무니 앞 물 위에 떠 있는 산이라 하여 부소담악이라 불리우고 있다.
예부터 추소리는 추소팔경으로 유명했다. 제1경은 문암독성(文岩讀聲)이다. 문바위에 서 있으면 강가에서 들려오는 물 흐르는 소리와 바람소리 새소리 등이 어울려 들리는 것이 마치 글 읽는 소리 같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제2경 인경낙조(人鏡落照)는 추소리 인기울산에서 바라다 보이는 정경으로 해질 무렵 석양에 비친 추소리 마을 정경과 물속에 비친 석양의 아름다움이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답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제3경 환산귀하(環山歸霞)는 마을 뒷산인 환산에 해질 무렵 붉게 타는 노을빛이 아름답다하여 붙여졌다. 제4경은 응봉조치(鷹峰朝雉)로 매봉에서 아침 일찍 정적을 깨고 우는 장끼의 울음소리가 듣기 좋다는 데서 이름이 붙여졌다. 제5경 안양한종(安養閑鍾)은 추소리 절골에 있던 안양사에서 들려오는 저녁 종소리가 번뇌를 잠재우고 마을에 평화를 안겨준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그리고 제6경 문필야적(文筆野笛)은 초동들이 봉우리에 올라 한가롭게 피리를 불어대면 이 소리는 마을에 은은히 들려와 마을의 평화를 더 한다는 뜻에서 붙여졌다. 제7경은 용암어화(龍岩魚火)로 부소무니 앞을 흐르는 강의 용바위 밑에서 밤고기 잡는 불빛이 멀리서 보면 신비롭고 아름답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며 제8경이 앞서 소개한 부소담악이다.
대청댐 건설로 인해서 일부는 물에 잠기고 안양사는 터만 남아 저녁 종소리는 더 이상 울리지 않는다. 문필봉에 올라 피리 부는 아이들 또한 간데 없다. 이처럼 세월의 변천에 따라 추소팔경은 빛 바란 지 오래지만 세월이 흐른 지금 부소무니의 부소담악은 대청호가 건설됨으로써 더욱 그 자태를 뽐내며 예전의 선경을 유감없이 그려내고 있다. 물안개 피는 이른 아침의 부소담악은 마치 구름 위로 떠오른 고준영봉인 듯 신비감마저 도는 선경을 연출한다. | |
옥천의 문화예술브랜드 ‘멋진 신세계’ 재탄생
정지용의 시 19편을 주제로 꾸며진 향수 30리가 옥천 장계리에 조성됐다. ‘멋진 신세계’로 명명된 이곳은 시와 그림을 보며 산책을 즐길 수 있어 지역의 새로운 명소로 떠오르고 있다. ‘멋진 신세계’는 옥천의 구읍에서 장계관광지를 잇는 아트벨트 30리 길을 이르는 말이다. 이미 오래되고 방치되어 사람들에게 잊혀진 장계관광지의 새로운 이름이기도 하다. 옥천은 한국 최초의 모더니즘 시인 정지용의 고향이며, 아름다운 금강을 품고 있는 곳이다. 이곳에 시인의 감각적 시 작품과 금강을 주제로 건축가, 디자이너, 아티스트, 문학인 등 100여 명이 참여하여 2년여의 시간을 함께 한 결과로 주민 모두가 꿈꾸는 이상향의 풍경인 ‘멋진 신세계’를 열 수 있었다. ‘나의 마음은 조그만 갈릴레아 바다’ 정지용의 시 [갈릴레아 바다]를 딴 가게 이름이다. 마을 초입도 아름다운 싯구와 감각적인 그림으로 가득하다. 도로변을 수 놓은 꽃 그림과 노랫말 같은 시, 시를 읊으며 30리 길을 따라가다 보면 거대한 원고지가 시 문학이 가득한 ‘멋진 신세계’로의 입장을 알린다. 이곳엔 최초의 모더니스트 정지용을 추억하기 위한 모단갤러리, 제2의 정지용을 위한 시 문학 도서관도 마련됐다. ‘꿋-이브닝’ 시구가 절로 나오는 ‘카페 프란스’도 빠질 수 없는 명소다. 주변 놀이 공원도 예술작품이다. 관람차는 각기 다른 스물두 개 디자인으로 꾸며졌고 놀이 기구의 이름도 감각적인 우리 한글로 바꿨다. 시와 예술, 교육이 함께 하는 옥천의 ‘멋진 신세계 향수 30리’는 올해 대한민국 공간문화대상을 차지하며 지역의 새로운 명소로 부각되고 있다. | |
옥천은 우리나라 최초의 포도 재배지
옥천포도는 캠벨어리가 주 품종으로 70~80%를 차지하고 있다. 천혜의 토지와 기후조건으로 착색이 잘 되고 당도가 높아 소비자들로부터 사랑받고 있다. 또한 시설 포도 재배면적이 전국 2위를 차지하고 있으며 전국 유일의 시설포도 시험장이 청성면에 위치하고 있다. 특히 전국적으로 유명한 용운마을포도는 ‘용운포도’ 또는 ‘세산포도’라는 브랜드로 서울 가락동시장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옥천군은 WTO·FTA 협정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우리농업·농촌에 활력을 불어 넣기 위해 생산자, 유통자, 소비자 지역주민 모두가 함께하는 도·농 상생 화합의 장인 포도축제를 개최하고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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