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하길종
출연; 윤문섭(병태),하재영(영철),이영옥(영자),김영숙
Y대 철학과에 재학 중인 병태는 그룹 미팅을 통해 같은 또래의 H대 불문학과 재학생 영자를 알게 된다. 급격히 전개된 서구 문명의 영향을 받고 성장해온 이들 70년대의 젊은이들은 캠퍼스, 가정 그리고 기존 사회의 벽과 부딪쳐가면서 고뇌한다. 그러나 그들의 이런 고뇌는 우직스러울 정도의 해학과 자조를 띄우면서도 좀더 밝고 명랑한 내일을 위해 성장해간다. 병태와 영자의 사이에는 어떤 사랑의 약속도 없다. 그들은 만나고 대화하고 그리고 병태는 좀더 큰 성장을 하기 위해 입대하게 된다. 그 군용 열차 차창에 매달려 입맞추는 병태와 영자.
감각적이고 음률적인 문장으로 대학생들을 비롯한 청춘 군상의 내-외면적 풍속을 그려 청년 독서층의 지지를 받았던
최인호 소설을 미국서 영화 공부를 하고 돌아온 하길종 감독이 연출한 그의 세번째 작품. 신인들을 과감하게 기용하여
'일간스포츠'에 연재된 최인호의 원작 소설을 영화화한 이 영화는 기존의 제작 체계와의 갈등 속에서 결국 상업 영화의 틀
안에서 비판적인 작가 의지를 불태운 하길종 감독의 대표적인 작품으로서, 젊은 층을 자극한다고 해서 영화 속의
대학교의 휴교 장면이나 직설적인 대사는 모조리 수정해야 했다.
원작 자체가 단편적인 에피소드를 중심으로 하여 대학 생활을 담고 있지만, 이 단편적인 얘기들을
리드미컬하게 이끌어 나가면서 극적 분위기를 고양시켰다는 점은 확실히 연출자의 재능이다.
현실 고발적인 작가 정신이 군데군데 번뜩이고 있으며, 차분하고 치밀하게 엮어나갔다.
젊은이의 꿈과 현실의 간격이 빚는 고통을 애상적이고 시적으로 잘 묘사한 청춘물.
장발 단속을 하는 경관이 더 장발인 모순된 사회, "근무 중 이상있습니다"하며 바쁜 상황에
상관에게 경례를 해야하는 경직된 체제, 70년대 초반의 우리 사회상이었다. 경찰 역을 한 배우는 지금은 작고한
코미디언 이기동씨였는데, 병태와 영철이 도망할 때 흐르는 곡이 송창식의 "왜 불러"이다.
항의하는 듯하는 듯한 반말투의 가사와 절규하는 듯한 곡조가 영화와 아주 적절하게 맞아떨어졌다.
이 노래는 얼마 후에 '외색'이라는 이상한 이유로 금지 가요가 되었다.
연이은 긴급 조치로 수업 보다는 휴강이 많았던 그 시절, "동해엔 고래 한 마리가 있어요,
예쁜 고래 한마리, 그걸 잡으로 떠날 것예요"라는 말과 함께 70년대에 만연했던 패배주의와 무력감에서 탈출하기 위해
우리의 바보들은 고래사냥을 목놓아 불렀고, 병태와 영자의 키스를 거둘어주던 헌병이 더 인상적인 마지막 장면은 역시
암담한 시절 일수록 사랑은 더욱 강렬하고 아름다워 보인다.
1975년은 70년대 한국 청년문화의 극점이었다. 새로운 세대의 새로운 감수성은 좁은 캠퍼스를 뛰쳐 나와
한 나라의 문화적 헤게모니를 장악한다. 최인호 소설, 이장호 - 김호선 - 하길종 영화, 그리고 셀 수도 없는 젊은 통기타
음악인들의 노래는 고도 성장의 그늘과 억압으로부터 탈출구를 찾으며 부글거리는 욕망을 적극적으로 반영했다.
그러나 그중 가장 강력한 파급력을 지녔던 노래에서는 이 비등점이 불행하게도 너무나 급작스럽게 파국을 맞아야 했다.
75년 여름과 겨울 유신정권은 예술문화윤리위원회(공륜 전신)를 내세워 '대중가요 재심
원칙과 방향'이라는 가요 규제를 선포했다.
이를 통해 무려 4백40여곡에 대해 음반발매와 방송을 전격 금지하는 탄압의 칼을 빼어들었다.
이 칼이 겨냥한 주 표적이 통기타와 로큰롤의 젊은 기수들이었음은 말할 것도 없다.
25만 관객을 동원하며 한국 영화계에 새 바람을 일으켰던 하길종 감독 영화 '바보들의 행진'의 음악은
통기타 군단 선두주자 송창식이 맡았다. 그는 이 영화에서 '왜 불러' '고래냥'과 '날이 갈수록'(김상배 작사- 작곡)
같은 노래를 선보였다. 이 노래들은 영화 흥행을 뛰어넘는 엄청난 성공을 거둔다.
그중에서도 행진곡 스타일의 독특한 드럼 서주로 시작하는 '고래사냥' 은 당시 대학가
청년지식인들이 안고 있던 절망과 희망을 도도하게 포착한 절편이었다.
'고래사냥'은 권력의 강압적 조치에 붕괴되는 청년문화의 운명을 극적으로 암시했다.
특히 서술적인 전반부 12마디,
'술마시고 노래하고 춤을 춰봐도
가슴에는 하나 가득 슬픔 뿐이네
무엇을 할 것인가 둘러 보아도
보이는 건 모두가 돌아 앉았네…
'는
70년대 내면
풍속도를 압축적으로 형상화한다.
강세와 매듭 없이 이어지는 이 지속 선율은 주류 대중음악에 횡행했던 상투적
운문형태의 기만에 대한 이 세대 특유의 전복적 '랩'이라고 보아도 무방하다.
이 노래는 '수출 1백억달러와 국민소득 1천달러'라는 국가적 환상을 우회적으로 질타한다.
그것은 비겁한 '현실도피'가 아니라 가장 '현실적인' 상상력의 산물이었다.
'고래사냥'에 곧바로 '퇴폐'와 '자학' 낙인이 찍혀 금지곡이 된 것은 역설적으로
너무나 당연한 운명이었다. (
대중음악 평론가 / 강헌)
감각적이고 음률적인 문장으로 대학생들을 비롯한 청춘 군상의 내-외면적 풍속을 그려 청년 독서층의 지지를 받았던 최인호 소설을 미국서 영화 공부를 하고 돌아온 하길종 감독이 연출한 그의 세번째 작품. 신인들을 과감하게 기용하여 '일간스포츠'에 연재된 최인호의 원작 소설을 영화화한 이 영화는 기존의 제작 체계와의 갈등 속에서 결국 상업 영화의 틀 안에서 비판적인 작가 의지를 불태운 하길종 감독의 대표적인 작품으로서, 젊은 층을 자극한다고 해서 영화 속의 대학교의 휴교 장면이나 직설적인 대사는 모조리 수정해야 했다.
원작 자체가 단편적인 에피소드를 중심으로 하여 대학 생활을 담고 있지만, 이 단편적인 얘기들을 리드미컬하게 이끌어 나가면서 극적 분위기를 고양시켰다는 점은 확실히 연출자의 재능이다. 현실 고발적인 작가 정신이 군데군데 번뜩이고 있으며, 차분하고 치밀하게 엮어나갔다. 젊은이의 꿈과 현실의 간격이 빚는 고통을 애상적이고 시적으로 잘 묘사한 청춘물.
장발 단속을 하는 경관이 더 장발인 모순된 사회, "근무 중 이상있습니다"하며 바쁜 상황에 상관에게 경례를 해야하는 경직된 체제, 70년대 초반의 우리 사회상이었다. 경찰 역을 한 배우는 지금은 작고한 코미디언 이기동씨였는데, 병태와 영철이 도망할 때 흐르는 곡이 송창식의 "왜 불러"이다. 항의하는 듯하는 듯한 반말투의 가사와 절규하는 듯한 곡조가 영화와 아주 적절하게 맞아떨어졌다. 이 노래는 얼마 후에 '외색'이라는 이상한 이유로 금지 가요가 되었다.
연이은 긴급 조치로 수업 보다는 휴강이 많았던 그 시절, "동해엔 고래 한 마리가 있어요, 예쁜 고래 한마리, 그걸 잡으로 떠날 것예요"라는 말과 함께 70년대에 만연했던 패배주의와 무력감에서 탈출하기 위해 우리의 바보들은 고래사냥을 목놓아 불렀고, 병태와 영자의 키스를 거둘어주던 헌병이 더 인상적인 마지막 장면은 역시 암담한 시절일 수록 사랑은 더욱 강렬하고 아름다워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