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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제록(경전연구회) 녹취2
가장 부처님의 마음에 가까운 불교다. 불교의 그 본질을 꿰뚫어보는 그런 불교다. 그러니까 새로운, 전혀 새로운 이라고 하는 것은 불교 본래의 의미다. 이 뜻이 예요. 본래의 의미에서 역사가 흘러가면서 많이 왜곡 되어버렸어. 어쩔 수 없이 왜곡 됩니다. 이게!
세월이 흘러가면 그렇게 되어 있어요. 대승불교 운동이라는 것도 왜곡된 부처님의 정신을 바로 세우자는 것이고 또 선불교라는 것도 그게 세상에 없는 불교가 아니라 그동안 왜곡된 불교를 본래의 부처님의 정신으로 돌아가자. 되살리자 하는 것이 선불교 운동, 제2운동이라고 할 수 있어요. 대승불교운동. 그 다음에 선불교운동이 정말 진정한 부처님의 정신으로 돌아가자 하는 운동이다. 그렇게 정리할 수도 있습니다.
참 다양한 인연으로《임제록》을 우리가 앞에 놓고 글쎄요. 몇 퍼센트나 임제 스님의 정신에 근접할까? 이건 물론 저 자신도 의문이고, 우리의 과제니까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이렇게라도 우리가 가까이 할 수 있다고 하는 이 사실이 이 말세에 참으로 다행 중에 다행이 아닐까 하는 이런 생각을 합니다. 이렇게 해서 우리의 조상으로서 위대한 임제! 또 우리 조상 중에서도 참으로 중요한 조상이구나 하는 그런 의식을 나름대로 여러분들께 내가 인식을 시켜드렸습니다.
또 임제록을 공부하는 데는 복잡하게 난자(難字) 찾고 행상 외우고 할 필요가 전혀 없는 청천백일에 날벼락 치는 식이니까 그냥 되면 좋고 안 되도 그만이고. 이런 공부예요. 그러니까 편안하게 마음 턱 놓고 어쩌다가 어느 그물에 걸리면 다행이고 아니면 다음 그물 기다리면 되는 것이고 그렇게 편안한 공부를 하시자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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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록(行錄)
세 번 묻고 세 번 맞다
師初在黃蘗會下하야 行業純一이어늘 首座乃歎曰
사초재황벽회하 행업순일 수좌내탄왈
雖是後生이나 與衆有異로다 遂問 上座在此多少時오
수시후생 여중유이 수문 상좌재차다소시
師云 三年이니다 首座云 曾參問也無아 師云 不曾參問이니
사운 삼년 수좌운 증참무야무 사운 불증참문
不知問箇什麽오 首座云 汝何不去問堂頭和尙호되
부지문개십마 수좌운 여하불거문당두화상
如何是佛法的的大意오
여하시불법적적대의
임제 스님이 처음 황벽 스님의 회하에 있을 때 공부하는 자세가 매우 순일하였다. 수좌 소임을 보는 목주(睦州)스님이 찬탄하여 말하기를, “비록 후배이긴 하나 다른 대중과는 상당히 차이가 있다.”라고 하였다. 그리고 묻기를, “스님이 여기에 있은 지 얼마나 되는가?” “3년 됩니다.” “공부에 대하여 물은 적이 있는가?” “아직 묻지못했습니다. 무엇을 물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방장 스님을 찾아뵙고 ‘무엇이 불법의 분명한 대의입니까?”하고 묻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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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제 스님은 어떤 수행을 어떻게 했는가? 이것도 우리가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것도 저는 다른데서 끌어와서 하려고 안 합니다. 시간은 빨리 가고 공부해야 할 것은 많은데 우리 임제록에 있는 것 59쪽 행록을 보면 이게 행장이거든요. 행록이라는 것이 행장을 좀더 자세히 쓴 내용인데 이걸 보면 뒤에 가서 순서대로 물론 하겠습니다만 임제 스님이 어떤 공부, 어떤 수행을 지어 왔는가? 그리고 또 어떻게 깨달았는가? 이것을 제대로 임제록에 근거해서 알아야 정말 잡티가 섞이지 않고 알 수 있는 것입니다.
대개 생애를 이야기 하는데 소설처럼 길게 써놓고 뒷사람들이 살을 붙이고 하는 것을 보면 또 왜곡 된다 구요. 그래서 가능하면 오리지날 그대로, 우리가 접할 수 있으면 그대로 접해가지고 그것을 우리가 얼마나 소화를 하느냐 하는 것이 관건인데 그건 각자의 몫이고. 그래서 행록을 한번 보도록 하겠습니다. “세 번 묻고 세 번 맞다” 그랬어요. “삼도발문(三度發問)에 삼도피타(三度被打)” 유식한 말로 하면 그런데 이게 《임제록 》공부의 전부입니다. “세 번 묻고 세 번 맞다” 세 번 물었는데 세 번 얻어맞았다 이거야!
師初在黃蘗會下하야 行業純一이어늘 首座乃歎曰
사초재황벽회하 행업순일 수좌내탄왈
임제 스님께서 처음 황벽회하(黃蘗會下)에 계셨는데 ‘행업(行業)이 순일(純一)이다’ 이 소리 한번 들어 봤으면 좋겠어요. 아, 그 사람 참 공부하는데 아주 순일(純一)해. 시종일관 똑 같애. 2년간 여기 경전연구회 했는데 한 번도 안 빠지고 참 아주 시간도 잘 지키고 일찍 와서 미리 방석도 깔고 정리도 하면서 참 잘해. (웃음) 그 소리! 그 정도만 해도 행업이 순일이라고 할 수가 있지. 그런데 이 스님은 본래 경학을 여러 해 공부를 했어요.
경학을 여러 해 공부하다가 황벽 스님께 와 가지고는 본래 천재성을 가지고 경학을 공부하신 분인데도 도대체 답답해. 불교가 뭔지 답답해 죽겠어. 그래서 그 답답한 마음, 불교를 알고 싶은 마음, 불교가 뭘까? 불법(佛法)이라는 말이 나와요. 지금은 우리가 ‘불교(佛敎)’ 라고 합니다. 몇 년 전만 하더라도 ‘불법(佛法)’ 이렇게 했어요. 불교라고 하는 말은 불과 몇 년 안 됩니다. 100년 안 돼요. 그것 아셔야 됩니다.
100년 전만 해도 불법이라고 했지 불교라는 말은 안 썼어요. 이것 일본 사람들이 와 가지고 종교를 분류할 때 불교, 불교 이런 말을 썼어요. 물론 화엄경에도 불교, 부처님의 가르침이라는 말은 나옵니다마는 일반적으로 종교의 하나로서 불교라는 말을 쓰다 보니까 그만 그렇게 되었지 본래는 불법이야. 나는 그걸 요즈음 우리의 성향에 맞도록 그냥 불법이나 불교나 똑 같이 씁니다. 똑 같이 이해해야 됩니다.
그래 불교를 그렇게 공부를 했는데도 불구하고 답답해서 황벽스님이 훌륭하다는 소리를 듣고 무조건 황벽스님의 회하에 왔어. 3년이 지나도 끙끙거리고 그냥 답답하기만 했어요. 무슨 화두를 들거나 염불을 하거나 경을 외우거나 하나도 안 했어. 그냥 답답해. 어찌 할 바를 몰랐을 뿐이라. 제가 임제 스님 속을 들여다보지는 못했지마는 내가 파악하기엔 대개 그래요. 임제 스님은 무슨 공부를 했나? 아니면 석가모니는 실지로 무슨 공부를 했나? 뭐 12인연을 깨달았느니 어쩌느니 그런 소리도 있고 별의별 이야기 다 있죠. 중도를 깨달았느니 뭐 별의별 이야기 다 있죠. 하나도 맞는 말 아닙니다. 모르는 거예요. 무슨 공부 했는지 몰라.
12인연은 부처님이 깨닫고 나서 모든 존재의 순차적인 관계성을 나중에 정리하신 거지. 12인연을 관해가지고 깨달았다. 물론 아함부에 그런 설(說)도 있어요. 그런데 정확한 것은 아무도 몰라. 임제 스님도 염불을 한 것도 아니고 화두를 든 것도 아니고 비파사나를 한 것도 아니고 내가 임제 스님을 알기에는 그냥 답답해서 끙끙댔을 뿐이야. 그동안 경전을 수 없이 봤는데도 불교가 뭔지 모르겠어. 경에 이래 이야기 해놓고 저래 이야기 해 놓고, 근기 따라서 방편 따라서 이런 저런 이야기 해 놓은 것이 아니라는 것은 알겠거든. 이 사람에게 이런 소리하고, A라는 사람에게는 A에 맞는 이야기하고, B라는 사람에게는 B에 맞는 이야기 하고, C라는 사람에게는 전혀 두 사람에게 이야기 한 것 하고는 전혀 당치도 않는 소리 또 해 놨거든.
이게 불교가 아니라는 것은 알았어. 그럼 무엇이 진짜 불교일까? 그저 그 생각 하나 가지고 3년 동안 아무것도 안 하고 잠도 못자고 끙끙댔어. 그런데 워낙 골똘해. 골똘하니까 “행업이 순일하다”고 탁! 점 찍힌 거야. 대중들에게 딱! ‘아, 저 사람은 뭔지 모르지만 아주 지독한 공부 꾼이다.’ 요렇게 인식이 된 거예요. 목주스님이 그 당시 수좌였었는데 수좌 눈에 뛴 거야. 수좌는 대중들을 이렇게 살펴가지고 소임도 맡기기도 하고 또 선지식, 방장스님께 데리고 가서 지도도 받도록 안내도 하는 그런 소임 자가 수좌거든요. 그 당시 수좌 소임을 받든 이는 목주 스님입니다. 누가 되었든지 그 까짓것 사실은 알 바도 없어요. 상당히 칭찬을 하면서 혼자 스스로 찬탄을 하면서 말하기를
雖是後生이나 與衆有異로다 遂問 上座在此多少時오
수시후생 여중유이 수문 상좌재차다소시
비록 후생(後生), 아주 새까만 후배이지마는 ‘여중유이(與衆有異)로다’ 대중들 하고는 영 달라. 보니까 다르다고. 그 공부하는 모습이 영 달라. 그래서 묻기를 ‘상좌재차다소시(上座在此多少時)오’ 상좌가 여기 온지 얼마나 되었느냐?
師云 三年이니다 首座云 曾參問也無아 師云 不曾參問이니
사운 삼년 수좌운 증참무야무 사운 불증참문
3년 되었습니다. 수좌가 그러면 방장스님께 가서 한번 질문이라도 했느냐? 참문이라도 했느냐? ‘불증참문(不曾參問)’ 일찍이 참문하지 못했습니다.
不知問箇什麽오 首座云 汝何不去問堂頭和尙호되
부지문개십마 수좌운 여하불거문당두화상
그런데 난 뭘 물어야 하는지도 몰라서 가서 묻지도 못했습니다. 그냥 답답할 뿐이다 이거야. 그건 내 소리고. ‘답답할 뿐이다’ 하는 것은... 그래 수좌가 말하기를 ‘여하불거문당두화상(汝何不去問堂頭和尙)’ 당두화상은 방장스님 혹은 조실스님이라고 할 수 있는데
如何是佛法的的大意오
여하시불법적적대의
‘여하시불법적적대의(如何是佛法的的大意)' 이것이 우리의 화두이고 이것이 우리의 과제이고 이것이 우리의 숙제 아니냐 이거야. 이것이 일반적인 우리의 숙제예요. 그때나 지금이나 부처님 당시 제자들이나 똑같은 우리 불교의 뜻있는 사람들의 숙제는 한결같이 불교가 뭐냐? 불법이 뭐냐? 하는 것이 숙제입니다. 이게 화두이고요. ‘그래 그것 질문하면 될 것 아니냐? 우리는 불법 알기 위해서 와 있으니까!’ 아주 평범한 이야기예요. 이것 ‘불법적적대의(佛法的的大意)’ 가 무엇이냐고 물으면 될 것 아니냐! ‘아, 그래요? 그러면 나도 가서 질문을 하지요.’ 이렇게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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師便去問한대 聲未絶에 黃檗便打하다
사편거문 성미절 황벽편타
師下來에 首座云 們話作麽生고 師云
사하래 수좌운 문화자마생 사운
某甲問聲未絶에 和尙便打하니 某甲不會니다
모갑문성미절 화상편타 모갑불회
首座云 但更去問하라하니 師又去問이라
수좌운 단갱거문 사우거문
黃檗又打하야 如是三度發問하고 三度被打하니라
황벽우타 여시삼도발문 삼도피타
師來白首座云 幸蒙慈悲하야 令某甲問訊和尙하야
사래백수좌운 행몽자비 영모갑문신화상
三度發問에 三度被打니다 自恨障緣으로
삼도발문 삼도피타 자한장연
不領深旨하니 今且辭去하노이다 首座云
불령심지 금차사거 수좌운
汝若去時에는 須辭和尙去하라 師禮拜退하니라
여약거시 수사화상거 사예배퇴
임제 스님이 바로 가서 물으니 묻는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황벽스님께서 대뜸 후려쳤다. 임제 스님이 내려오자 수좌가 물었다. “법을 물으러 갔던 일은 어떻게 되었는가?” “내가 묻는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화상이 느닷없이 때리니 저는 알수가 없습니다.” “그렇지만 다시 가서 묻도록 하게.” 임제 스님이 다시 가서 물으니, 황벽스님이 또 때렸다. 이렇게 세 번 묻고 세 번 맞았다.(三度發問 三度被打). 임제 스님이 돌아와서 수좌에게 말하였다.“다행히 자비하심을 입어서 제가 큰스님께 가서 불법을 물었는데 세 번 묻고, 세 번 맞았습니다.” “장애로 인하여 깊은 뜻을 깨닫지 못하는 것을 스스로 한탄하고 지금 떠나려 합니다.” “그대가 만약 떠나려거든 큰스님께 가서 하직 인사나 꼭 하고 가게.”임제 스님은 예배하고 물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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師便去問한대 聲未絶에 黃檗便打하다
사편거문 성미절 황벽편타
임제 스님이 여기서 사(師)자는 임제 스님을 지칭합니다. 임제 스님이 가서 곧 묻되 ‘스님, 어떤 것이 불법적적대의(佛法的的大意)입니까?’ 여기의 적적(的的)이라는 말에 또 걸리지 마세요. 명확한 것. 불교가 하도 어지러우니까 이놈의 불교가! 그러니까 정말 명확한 불교가 뭐냐? 이 말이 예요. 적적(的的)이라는 말이 적확(的確)이라고 하는 말 간혹 보면 쓰지요? 적확! 아주 딱 정곡을 찌른 바로 그것. 정답! 그래서 그런 것 다 빼버리고 군더더기 없이 불법 대의(佛法 大意)가 뭐냐? 라고 물었어요.
‘불법의 대의가 무엇입니까?’ 라고 하는 질문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 황벽스님이 곧 편타(便打)라, 곧 두들겨 팼다. 그런데 몇 대를 때렸다. 힘을 얼마나 주고 때렸다. 어디가 터졌다. 이런 소리는 안 나와 있어. 다른 기록에 의하면 황벽 스님의 평소의 습관상 20방망이를 친데요. 보통 주장자를 가지고 사정없이 20 방망이를 후려치는데 이 편타(便打)라고 하는 말 속에 20 방망이를 때렸다는 것입니다. 중국 사람들 우직하잖아요. 도를 논하는데 무슨 머리가 터진다. 뭐 다리가 부러진다. 이런 것 생각하고 염려해서 때리고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그런 것은 전혀 염려 안 해요. 다리가 하나 부러지든 목이 날아가든 그 사람이 그 이치를 깨달으면 된다는 것입니다. 공자의 말이기는 하지만 ‘석사라도 가라’ 아침에 도를 알면 저녁에 곧 죽어도 상관없으니까.
전번에 스님들이 공부하신 ‘선요’ 고봉스님과 제자와의 관계도 상수제자 이름이 뭐죠? 준공스님! 준공스님 다리가 부러졌다 구요. ‘내가 말이야. 사관에 올라와서 더 이상 안 내려가겠다고 하는데 네가 자꾸 꾸역꾸역 올라오느냐!’ 사다리를 놓고 올라가는데 사다리를 밀어 버린 거야. 사다리를 밀어버려. 어떻게 되겠어요? 사다리를 다 올라 왔는데 밀어버렸으니까, 이 집보다도 더 높은데... 그렇게 사정없이 떨어지기도 하고. 나가려고 해서 미처 나가지도 않았는데 문을 확! 밀어버려서 다리가 부러지는 경우도 있고 도인들은 그렇습니다. 도만 눈에 보일 뿐이지 그 외의 것은 눈에 보이지가 않아요.
그러니까 황벽 스님이 임제 스님을 두들겨 팬 것도 역시 마찬가지야. 20방망이를 때렸다. 그러면 왜 때렸느냐? 불법대의를 물었는데 이게 답이야. 이게 답이라고. 사실은 물은 것도 불법대의의 답이야. 묻는 그 자체부터 답이라고. 묻는다는 사실, 묻는 그 일, 그 행위 그것이 이미 불법대의거든요. 그러한 불법대의를 안고 와서 불법대의를 물으니까 좀더 쌘 불법대의를 보여준 거야. 이렇게 하면 네가 알까? 어느 것 하나 불법 아닌 것이 없으니까. 몸으로 참으로 구체적으로 불법을 보여준 겁니다. 여기서 우리가 이해가 되어야 됩니다.
“三度發問에 三度被打” 이런 식으로 세 번 묻고 세 번 얻어맞았는데 이것이 임제 스님의 불법 전체이고, 이것이 그토록 앞에서 살펴보았던 우리 선조들을 참으로 사모하고 그리워하고 부러워하고 동경하는 임제의 가풍입니다. 바로 이것이 임제 스님이 보인 불법이 예요. 여기서 우리가 얼마만치 가슴에 와 닿느냐 하는 것. 이 과정만 남았습니다. 우리에게 남은 건 그것뿐입니다. 묻는 사실이 불법이야. 또 황벽스님이 방망이로 때렸는데 때리는 그 사실이 불법이야. 방망이로 안 때려도 불법이야.
부처님은 꽃을 들어 보였어. 구지 화상은 손가락을 들어보였어. 여기 조금 있으면 ‘할’이 여러 번 나와요. 고함을 쳤어. 그게 같은 것입니다. 하나도 다른 게 아니 예요. 꽃을 들어 보인 것이나 손가락을 들어 보인 것이나 ‘할’을 한 것이나 방망이를 후려친 것이나 거기에 뭐가 있어. 그 사실! 그동안 우리는 불교 상식을 많이 가지고 있으니까 ‘아, 그것은 우리 마음이야. 삼계유심(三界唯心)이 만법유식(萬法唯識)이야’ 뭐 이런 식으로 또 풀어 나가겠지. 이렇게 풀어나가면 진짜를 만나기가 상당히 어려워져. 그런데 우리가 그런 상식이 풍부한데 그렇게 또 풀어나가지 않을 수가 없는 거야. 이게 참으로 골치 아픈 일이고 곤란한 일이야. 우리에게 문제가 있다면 바로 그게 문제입니다.
꽃을 들어 보인 것. 손가락을 세워 보이는 것. 방망이로 후려친 것. 뭔가 거기에 있긴 있는데, 있는 것을 짐작은 하는데 그동안 우리가 배운 지식이 많아가지고 계속 수학 문제 풀듯이 풀어나가는 거야. 끊임없이 머릿속에서 회전을 하고 있고 문제를 풀고 있습니다. 그대로 맞고 그대로 때리면 혹 알 수 있는 확률, 눈을 뜰 수 있는 확률이 상당히 높은데 우리는 거기서 벌써 풀기 시작하고, 사량 분별하기 시작하고 계산하기 시작하고 이러는 거야. 그래서 진짜를 알기가 참으로 어려워요.
그러나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자꾸 천착(穿鑿)하는 것뿐입니다. 자꾸만 종이가 뚫어지도록 눈으로 보고 입으로 외우고 해야 되는 것입니다. 수 천번 할 이야기니까. 화엄대지가 뭐죠? “통만법(通萬法) 명일심(明一心)” 이런 식으로 표현을 하지요. 임제록의 대지는 뭐냐? “삼도발문(三度發問) 삼도피타(三度被打)” 그렇게 아세요. 세 번 묻고 세 번 맞은 것이 임제록의 대지다.
師下來에 首座云 們話作麽生고
사하래 수좌운 문화자마생
수좌에게 말하기를 ‘문화자마생(們話作麽生)고’ 물으러 갔던 일이 어떻게 되었는지 전후 이야기를 해 봐라. 수좌스님이.
師云 某甲問聲未絶에 和尙便打하니 某甲不會니다
사운 모갑문성미절 화상편타 모갑불회
그러니까 임제 스님이 말하기를 ‘내가 묻는 말이 끊어지기도 전에 화상께서 곧 나를 때렸습니다. 모르기는 해도 이 무슨 뜻으로 때렸는지 참으로 알 길이 없습니다.’그러니까
首座云 但更去問하라하니 師又去問이라
수좌운 단갱거문 사우거문
수좌스님이 있다가 ‘그러면 다시 가서 물어 봐라. 이왕에 묻던 일이니까 두 번 맞으나 세 번 맞으나 까짓것 그냥 가서 한번 물어봐라’ 그랬어요.
黃檗又打하야 如是三度發問하고 三度被打하니라
황벽우타 여시삼도발문 삼도피타
사(師)가 또 가서 물었는데 황벽이 또 때린 거야. 묻는 것도 그대로고 때린 것도 그대로야. 불법이 변하면 안 되지. 당연하지. 당연히 똑같은 질문을 해야 되고 똑같은 대답이 나올 수밖에 없는 거야. 안 때리고 차 한 잔을 대접했다 해도 끽다거 하라고 했다 해도 같은 대답입니다. 황벽이 때린 것이나 조주가 끽다거 하라. 한 것이나 똑 같은 거예요. 어지간히 좀 눈치 채겠죠? 네? 거기에 뭔가 살아 있는 불법이 있어, 묻고 답하는 이 사실! 이 사실은요 대단한 거예요. 이 위대함. 이 능력. 이건 삼세제불도 어쩌지 못합니다. 역대 조사도 어쩌지 못하는 그것이 여러분이나 나나 또 임제나 황벽 사이에 똑같이 있습니다. 이것이 살아 있는 진짜 불교예요. 이러한 참 불교를 임제 스님이 전했고 그래서 역대 조사 스님들이 임제! 임제! 하는 거예요.
명함에다가 전부 임제 몇 대손이라고 전부 임제 몇 대 손이라는 것을 전부 찍어가지고 다니고 그래요. 어록이나 비석이나 ‘임제’ 빼버리면 세상에 내 놓을 수도 없는 것으로 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습니다. 이렇게 정곡을 찔러서 불교의 진수를 보여준 사람은 천하에 없어요. 석가모니는 한 번 했어요. 꽃 한번 든 것. 그래서 또 때려가지고 ‘여시삼도발문(如是三度發問) 삼도피타(三度被打) 여기에 나오네요. 세 번 묻고 세 번 맞았다.
師來白首座云 幸蒙慈悲하야 令某甲問訊和尙하야
사래백수좌운 행몽자비 영모갑문신화상
스님이 수좌에게 와서 말하기를, 다행히 스님의 자비스러운 지시를 입어서 큰스님께 가서 물었다.
三度發問에 三度被打니다 自恨障緣으로
삼도발문 삼도피타 자한장연
세 번 묻고 세 번을 맞았습니다. 그런데 스스로 한탄하여 장애의 어떤 인연이 있었던지
不領深旨하니 今且辭去하노이다 首座云
불령심지 금차사거 수좌운
그 깊고 깊은 뜻을 내가 알지를 못했으니 내가 인연이 아닌 것 같습니다. 황벽스님 회상에서 이제 그만 떠나려 합니다. 이렇게 했어요. 아니 20방망이씩 60번을 얻어맞고 더 이상 또 거기에 뭐가 있겠어요? 자기가 보여줄 것 다 보여주고, 받을 것 다 받았는데. 그러자 수좌가 말하기를
汝若去時에는 須辭和尙去하라 師禮拜退하니라
여약거시 수사화상거 사예배퇴
‘그대가 만약 이 회상을 떠나려고 하거든 큰스님께 하직 인사나 하고 가라.’ 아무리 맞고 괘씸하지만 그래도 언제 어디서 만날지 모르니까 인사라도 하고 가는 게 어떻겠느냐? 그랬어요. 그러니까 예배하고 물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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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벽의 불법이 별것이 아니다
首座先到和尙處云 問話底後生이 甚是如法하니
수좌선도화상처운 문화저후생 심시여법
若來辭時에는 方便接他하소서 向後穿鑿하야
약래사시 방편접타 향후천착
成一株大樹하야 與天下人作廕凉去在리이다
성일주대수 여천하인작음양거재
師去辭한대 黃蘗云 不得往別處去요
사거사 황벽운 부득왕별처거
汝向高安灘頭大愚處去하라 必爲汝說하리라
여향고안탄두대우처거 필위여설
수좌가 먼저 황벽 스님의 처소에 가서 말하였다. “법을 물으러 왔던 후배가 대단히 여법(如法) 합니다. 만약 와서 하직 인사를 드리거든 방편으로 그를 이끌어 주십시오. 앞으로 잘 다듬으면 한 그루의 큰 나무가 되어 천하 사람들에게 시원한 그늘을 드리울 것입니다.” 임제 스님이 가서 하직 인사를 드리니 황벽 스님이 말씀하였다. “다른 곳으로 가지 말고 자네는 고안의 물가에 사는 대우 스님 처소에 가도록하여라. 반드시 너를 위하여 이야기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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首座先到和尙處云 問話底後生이 甚是如法하니
수좌선도화상처운 문화저후생 심시여법
수좌가 먼저 조실스님 계신 곳에 갔어. 그렇게 임제 스님에게 일러 놓고는 얼른 지름길로 방장 스님 방에 가가지고 그 후생(後生), 아까 스님께서 두들겨 팬 그 후배가 매우 여법합니다. 그릇이 됐습니다. 괜찮은 그릇이 예요. 이런 이야기를 하는 거라.
若來辭時에는 方便接他하소서 向後穿鑿하야
약래사시 방편접타 향후천착
만약에 와서 스님을 떠난다 하거든 방편으로 그 사람을 좀 이렇게 제접해 주십시오. 방장 스님께 미리 이렇게 했는데 어떻게 무슨 뜻으로 했고 또 황벽스님은 어떻게 나올지 그건 아무도 모르는 거죠. 그래서 향후에 이것 잘 다듬으면
成一株大樹하야 與天下人作廕凉去在리이다
성일주대수 여천하인작음양거재
큰 재목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천하 사람들에게 큰 그늘을 드리우는 그늘이 될 것입니다.
師去辭한대 黃蘗云 不得往別處去요
사거사 황벽운 부득왕별처거
사(師: 임제스님)가 가서 떠나려고 인사를 하니까 황벽스님이 말씀하기를 ‘가는 것은 좋다.’
汝向高安灘頭大愚處去하라 必爲汝說하리라
여향고안탄두대우처거 필위여설
딴데 가지 말고 저기 고안이라고 하는 지방, 탄두(灘頭), 강가 항구에 대우라는 중이 있는데 거기 가 봐라. 혹시 인연이 될지도 모른다. 반드시 그대를 위해서 뭔가 가르침이 있을 것이다. 그랬어요. 참, 워낙 공부에만 마음이 있는 임제 스님 인지라 딴 생각 안하고 시키는 대로 대우 스님께 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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師到大愚한대 大愚問 什麽處來오
사도대우 대우문 십마처래
師云 黃蘗處來니다 大愚云 黃蘗有何言句오
사운 황벽처래 대우운 황벽유하언구
師云 某甲이 三度問佛法的的大意라가
사운 모갑 삼도문불법적적대의
三度被打하니 不知某甲이 有過無過닛가
삼도피타 부지모갑 유과무과
大愚云 黃蘗與麽老婆하야 爲汝得徹困이어늘
대우운 황벽여마노파 위여득철곤
更來這裏하야 問有過無過아
갱래자리 문유과무과
임제 스님이 대우 스님에게 이르자 대우 스님이 물었다. “어디서 왔는가?” “황벽스님처소에서 왔습니다.” “황벽스님이 무슨 말씀을 하시던가?” “제가 세 번이나 불법의 분명한 대의를 물었다가 세 번 얻어맞기만 했습니다. 저는 알지 못하겠습니다. “저에게 허물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황벽스님이 그토록 노파심이 간절하여 그대를 위해 뼈에 사무치게 하였거늘 여기까지 와서 허물이 있는지 없는 지를 묻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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師到大愚한대 大愚問 什麽處來오
사도대우 대우문 십마처래
대우스님께 가니 대우스님이 물었습니다. “어디서 왔느냐?”
師云 黃蘗處來니다 大愚云 黃蘗有何言句오
사운 황벽처래 대우운 황벽유하언구
“황벽스님 회상에 있다가 왔습니다.” 대우가 말하기를 “황벽이 무슨 말을 가르치더냐?”
師云 某甲이 三度問佛法的的大意라가
사운 모갑 삼도문불법적적대의
“세 번이나 불법적적대의(佛法的的大意)를 묻다가
三度被打하니 不知某甲이 有過無過닛가
삼도피타 부지모갑 유과무과
세 번 얻어맞기만 했습니다. 무슨 허물이 있는지 없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랬어요. 무슨 허물이 있어서 때리는데 나는 그 상식 밖에 없습니다. 저도 무슨 잘못이 있어서 큰 스님께서 그렇게 때렸는지 알 길이 없습니다. 그냥 그랬어요.
大愚云 黃蘗與麽老婆하야 爲汝得徹困이어늘
대우운 황벽여마노파 위여득철곤
대우가 말하기를, 황벽 스님이 그토록 친절해서 그대를 위해 철저하게 가르쳤거늘
更來這裏하야 問有過無過아
갱래자리 문유과무과
다시 여기까지 와서 허물이 있고 없음을 묻는가? 임제 스님은 세상에 이 말보다 더 큰 말이 없습니다. 천하의 팔만대장경을 다 배웠지마는 이 대우스님의 이 말! 여기에 무슨 이치가 있습니까? 여기에 색즉시공(色卽是空) 공즉시색(空卽是色)이 있습니까? 무슨 범소유상(凡所有相) 개시허망(皆是虛妄)이 있습니까? 아무것도 없는 이 말에 “언하(言下)에 대오(大悟)라!” 크게 깨달았어. 거기에 줄그어야 돼요. “黃蘗與麽老婆하야 爲汝得徹困이어늘更來這裏하야 問有過無過아” 여기까지. 세상에 아무 의미도 없는 소리인데 팔만대장경을 압축하고 압축하여서 한마디로 표현한 것보다도 더 임제 스님에게는 가치 있는 말이고 더 큰 법문입니다.
여기 보십시오! 무슨 말이 예요? 이까짓 것 “황벽이 그토록 친절해서 그대를 위해서 철저하게 가르쳤는데 다시 여기까지 와서 허물이 있느냐? 없느냐?”그렇게 묻느냐? 이 말이야. 황벽스님이 60방망이를 때린 것은 그대를 위해서 친절해서 그렇다는 거야. 노파심절로 하는 것이다 이거야. 그렇게 친절하게 너를 가르쳤는데... 야, ~ 대단하죠? 친절하지 않으면 자비가 아니면 그렇게 한 방망이로 못 때리는 거예요. 그런데 60방망이를 때렸잖아요. 노구에 그렇게 방망이를 들고 젊은 놈을 두들겨 패려면 힘이 좀 들겠습니까? 그런데 법을 위해 때린 거예요. 임제가 그릇이 되니까 때린 거예요. 그릇이 될 것 같지 않으면 그렇게 때리지도 안 해.
그게 법을 다 보인 거예요. 정말 간절하게 살아있는 불법의 진수를 보인 거예요. 그러니까 대우스님이 그걸 알고 황벽이 그토록 친절해서 그대를 위해 철저히 철곤(徹困)! 아주 철저하게 가르쳤다 이거야. 그런데 여기까지 와서 허물이 있느냐? 없느냐? 그런 소리를 하느냐? 이 소리 한번 하는데. 매일 아침 떠오르는 샛별인데 그 샛별 떠오르는 것이 그렇게 장한 일입니까? 그런데 그걸 보고 척 깨닫잖아. 때가 무르익으니까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무슨 좋은 법문이다, 금강경만 좋다, 반야심경이 좋다 이런 것이 세상에 없어. 샛별이 제일 좋지. 부처님이 깨달은 법문인데 그보다 좋은 법문이 어디 있어요? 병풍에 샛별만 잔뜩 그려 놔. 그러면 금강경 쓰는 것 보다 백번 나으니까.
어떤 이들은 정오에 닭이 우는 소리를 듣고 깨달은 사람도 있죠? 겨울에 화장실 가다가 눈에 미끄러져서 깨달은 사람도 있고. 이 세상 만물이 그래서 법문 아닌 것이 없고 계기만 되면 깨달을 근거가 되지 않는 것이 아무것도 없어요. 그러니 어느 것이 법문이 깊고 얕다고 따질 수가 없습니다. 이까짓 것. 아무것도 아닌 말이잖아요. 샛별 그것, 늘 떠오르는 것. 밤이면 많고 많은 별인데. 계기만 되면 뭐든지 깨달아요.
즉심시불(卽心是佛)만 꼭 좋은 화두인가? ‘짚신이 부처다’ 해도 좋은 화두라. 짚신이 부처다 하는 소리를 듣고 깨달은 노파가 있잖아요. 우리가 그런 틀에서 확 벗어나야 돼요. 틀과 고정관념, 우리가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던 것. 확 벗어 던지고 시원스럽게 마음 탁! 열고 가슴 확 열고. 승려라고 하는 것. 큰스님이라고 하는 것. 연륜이 얼마나 쌓였다 하는 것. 자존심. 거추장스러운 의식이 우리 본인에게는 이익 될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전혀 이익 될 것이 없고 손해만 봅니다. 불교에 대해서 이러한 것들도 우리가 그냥 이것 하나로만 볼 것이 아니라 이것을 좀더 확대해서 이해를 하기로 하면 세상이 달리보이고 다르게 다가온다니까요. 그 다음에 여기까지 와서 허물이 있다. 없다 그걸 묻느냐? 라고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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師於言下에 大悟云 元來黃蘗佛法이 無多子니다
사어언하 대오운 원래황벽불법 무다자
大愚搊住云這尿牀鬼子야 適來道有過無過러니
대우추주운자요상귀자 적래도유과무과
如今却道黃蘗佛法이 無多子라하니
여금각도황벽불법 무다자
儞見箇什麽道理오 速道束道하라
이견개십마도리 속도속도
師於大愚脅下에 築三拳한대 大愚托開云
사어대우협하 축삼권 대우탁개운
汝師黃蘗이요 非干我事니라
여사황벽 비간아사
임제 스님이 그 말끝에 크게 깨달았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황벽불법이 간단하구나.” 대우스님이 멱살을 움켜쥐며, “이 오줌싸개 같은 놈! 방금 허물이 있느니 없느니 하더니 이제 와서는 도리어 황벽스님 불법이 간단하다고 하느냐? 그래 너는 무슨 도리를 보았느냐? 빨리 말해봐라, 빨리 말해!” 하였다. 이에 임제 스님이대우 스님의 옆구리를 주먹으로 세 번이나 쥐어박았다. 대우 스님이 임제 스님을 밀쳐버리면서 말하였다. “그대의 스승은 황벽이다. 나하고는 상관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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師於言下에 大悟云 元來黃蘗佛法이 無多子니다
사어언하 대오운 원래황벽불법 무다자
그 말에 크게 깨달았어. 무슨 금강경 사구게 듣고... 아, 그래도 육조 혜능 스님은 금강경 구절 하나라도 듣고 깨달았으니까 거기는 상당히 수준이 있는 깨달음이지. 깨달음에 무슨 수준이 있고 없고, 있을 수도 없지마는 표현하자면 그렇습니다. 그 다음에 유명한 말입니다. “원래황벽불법(元來黃蘗佛法)이 무다자(無多子)” “원래 황벽스님의 불법이 고작 이거야?” 무다자(無多子)는 “간단하구나!” 다자(多子), 많은 건 복잡하니까, 무다자(無多子)니까. 간단하구나! 이렇게 해석하면 제일 정확합니다. “황벽 불법이 참으로 간단하구나”
질문만하면 몽둥이 하나 가지고 있다가 두들겨 패면 되는 것. 복잡하게 목청 높여 가면서 힘들게 이렇게 말할 이유 없어.(웃음) 몽둥이 하나 가지고 있다가 두들겨 패면 되는 거야. 얼마나 간단해. 그것보다 더 간단한 것은 손가락 하나만 가지고 평생 써먹은 구지 화상도 있지. 석가모니도 말하다가 재미없으니까 꽃 한 송이 척 들어 보이는 거야. 꽃 처음 봤다고 보여주고 구경시키려고 보인 게 아니야. “황벽불법(元來黃蘗佛法)이 무다자(無多子)” 아주 유명한 말입니다. 황벽이 천하에 대단한 양반이라고 알고 찾아가서 3년간 끙끙거리고 또 가서는 60방망이나 얻어 터졌는데 지금 몸살이 날 정도로 아프기도 한데 알고 보니 황벽 불법이 간단한 것을, 이 얼마나 시원스럽습니까? 참으로 대단한 말입니다. 이것! “황벽불법(元來黃蘗佛法)이 무다자(無多子)”
大愚搊住云這尿牀鬼子야 適來道有過無過러니
대우추주운자요상귀자 적래도유과무과
그래서 대우가 멱살을 딱 잡았어요. ‘야! 이 오줌싸개 같은 어린놈!’ 어릴 때, 대 여섯 살 때 오줌을 싸면 소금 얻으러 가잖아요. 오줌싸개 같은 어린놈이니까. 황벽 집에 있다가 오줌을 싸가지고 대우 집에 소금 얻으러 온 격이 되어 버렸거든. 그래서 요상귀자(尿牀鬼子)라고 하는 거예요. 금방 오줌싸개 같은 놈이 와가지고는 내가 허물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또 내가 무슨 허물이 있어서 그 스님이 나를 때려 팼습니까? 라고 하더니
如今却道黃蘗佛法이 無多子라하니
여금각도황벽불법 무다자
지금 뭐라고? 황벽불법이 간단하다고? 무다자(無多子)라고? 이렇게 하면서
儞見箇什麽道理오 速道束道하라
이견개십마도리 속도속도
네가 도대체 무슨 도리를 알았기에, 무슨 도리를 보았기에 그 따위 소리를 함부로 지껄이느냐? 빨리 일러봐! 속도속도(速道束道)! 빨리 일러보아라 머뭇거리면 그냥 안 둘 것이다.
師於大愚脅下에 築三拳한대 大愚托開云
사어대우협하 축삼권 대우탁개운
그러니까 임제스님의 협하(脅下)에, 대우스님의 옆구리에다가 그냥 황벽스님께 세 번에 60방망이 얻어맞은 것을 온통 주먹에다 다 싣고는 허리를 세 번 쥐어박았어요. 죽으라고 그냥 쥐어 박아버린 거야. ‘축삼권(築三拳)이라’ 주먹을 그냥 세 번 쾅쾅! 한번 때릴 때 자기가 한번 올라가서 맞은 20방망이씩 세 번, 그렇게 세 번 쥐어박은 것입니다. 그게 답이야!
대우스님이 “빨리 일러봐라” 이게 뭐겠어요? 불법 일러봐라 이 말입니다. “불법 일러봐라!” 임제 스님이 불법 배운 게 뭐 있어요? 얻어맞은 것 밖에 없는 거야. 간단하지 그러니까 스승에게 배운 대로 또 그렇게 가르쳐 준거예요. 이것이 아주 천하에 아름다운 깨달음의 계기와 그 깨달음을 표현한 역사로 남습니다.
수천만, 수억만의 깨달은 분들이 계시지만 그 계기들은 다 다르죠. 눈에 미끄러져서 깨달은 사람. 낮에 닭이 우는 소리 듣고 깨달은 사람. 무슨 복숭아 꽃 핀 모습을 보고 깨달은 사람. 울력하다가 돌이 굴러가서 대나무 하나 툭 치는 것 보고 깨달은 사람. 도반이 잠자다가 몸부림쳐서 목침위에서 머리가 떨어지는 것을 보고 깨달은 사람. 뭐 별별 계기가 많죠. 그런데 이 황벽 스님 밑에서 임제 스님이 맞고, 대우 스님 만나서 이렇게 눈을 뜬 이건 참~ 그림 같잖아요. 이건 우리가 영화를 만들고 연극을 만들어도 아주 멋질 그런 모습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천하의 명장면 이예요. 우리 불교 3000년 역사에 이런 장면은! 부처님의 깨달음은 너무 싱겁지. 척 앉아가지고 별 뜨는 것 보고 깨달았으니까. 영 싱겁지. 그런데 이 임제 스님의 깨달음은 아주 극적입니다. 그러니까 대우스님이 멱살을 잡았다가 확 밀쳐버리면서
汝師黃蘗이요 非干我事니라
여사황벽 비간아사
“너의 스승은 황벽이다. 나하고는 관계없다.” 네 하는 꼴이 그대로 황벽이다. (웃음) 나 하고는 관계없다. 나한테서 깨달았다면 딴 모습일 텐데. 네가 그대로 황벽 빼다 박았다. “비간아사(非干我事)” 는 말에 그런 의미가 표현 되어 있죠. 그렇게 해서 참, 천하에 임제 스님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길로 다시 황벽스님께로 되돌아가서
황벽스님과의 재회 “이 자식이 어딜 왔다 갔다 하느냐? 하니까. ”대우스님께 가니까 이러이러한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에이 이 놈의 자식 대우 그놈, 오기만 와 봐라. 내가 그냥 안두겠다.” 그랬거든. 그러니까 “대우스님 올 때 까지 기다릴게 뭐 있겠습니까? 지금 한대 한 번 쳐보시지요?” 이런 식으로 나간거야. 임제 스님이 참 아주 멋져요. 임제 스님! 그러니까 황벽스님이 있다가 이 자식이 말이야 새 파란 게 호랑이 수염을 뽑는다고? 이렇게 말하는 거야.
“재날호수(再埒虎鬚)”라고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그래서 “야, 시자야! 이 놈을 대중 방에 처넣어라." 이것이 정말 진짜 좋은 인가지. “대중 방에 처넣어라” 대중 방에 들어가서 대중 생활을 그때부터 하게 되는 그런 사연입니다. 이것이 그 당시 시대 상황이 어떠냐? 그 당시 불교 사조가 어떠냐? 이런 것 구구하게 장황스럽게 역사적인 사실을 대 가지고 이야기 해 봤자 임제 스님의 정신을 우리가 조금이라도 가슴에 와 닿는 데는 오히려 장애 요소라. 그래서 가능하면 그런 것 너절한 소리는 대우스님이나 황벽스님, 임제 스님. 특히 임제 스님의 정신에 가깝지 않기 때문에 내가 그런 것을 가능하면 적게 하려고 생각을 합니다. 잠깐 쉬었다가 다시 서문 보도록 하겠습니다.
첫댓글 ^^ _()()()_
黃蘗與마老婆하야 爲汝得徹困이어늘更來這裏하야 問有過無過아...一輪月님, 고맙습니다..._()()()_
元來黃蘗佛法이 無多子니다 ...고맙습니다.인륜월님^^*
내가 지금 읽어봐도 새삼스럽고 재미있네요. 임제록 하나만 잘 이해하면 불교성공, 인생성공이지요. 열심히 정진합시다.
큰스님! 참으로 고맙습니다...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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如何是佛法的的大意오... 묻는다는 사실, 묻는 그 일, 그 행위 그것이 이미 불법대의다. 그러한 불법대의를 안고 와서 불법대의를 물으니까 좀더 쌘 불법대의를 보여준 三度被打 ... 一輪月님! 고맙습니다... _()()()_
스승의 의식세계에 들어 가지않고는 어찌 스승의 의식세계를 훔쳐 낼 수 있겠습니까_()()()_
三度發問하고 三度被打하니라...一輪月님! 수고하셨습니다..고맙습니다...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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三度發問에 三度被打... 一輪月님, 고맙습니다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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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_ 일륜월님!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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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각화님 어서오세요^^ 잘 계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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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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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배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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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삼도발문 삼도피타 노파철곤 _()_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