ㆍ1. 과외시장에 불황이란 없다
ㆍ2. 학생에게 왕따 당하는 대입학원
ㆍ3. 기는 공교육에 나는 사교육
유치원서 고등학교까지… 대학입시 향한 강남 8학군 엄마의 체험 수기
저는 강남 대치동에 살고 있으며, 초등학교 2학년 여자아이와 중학교 1학년 남자아이를 둔 40대 가정주부입니다. 학기 초마다 아이들 학원시간표 짜기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초등학교 2학년 딸아이의 시간표를 보면 월요일에는 오전에 학교 갔다가 낮 12시30분 귀가, 오후 1시30분부터 수학과 국어 과목 구몬학습지 공부, 2시부터는 피아노학원, 3시부터는 영어학원에 가야 하고, 4시30분에 귀가합니다. 화요일부터 금요일까지는 12시30분에 귀가한 뒤 매일 두곳의 학원을 다닙니다. 화요일엔 국어학원(독서지도)과 미술학원, 수요일에는 피아노학원과 영어학원, 목요일에는 국어학원과 미술학원, 금요일에는 피아노학원과 영어학원을 다닙니다. 아이의 발달이 다소 늦은 편이라서 같은 또래 다른 아이들과 달리 수영이나 발레, 수학학원 등에는 보내지 않고 있습니다.
요즘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들은 영어 공부하는 시간이 가장 많은 편입니다. 딸아이의 같은 반 친구 가운데 한명은 영어유치원 출신입니다. 이 아이는 초등학교에 들어온 뒤에도 영어학원 집중반에 매일 다니는데, 학원비는 월 50만원입니다. 이 아이 엄마는 이것만으로 안심이 안 된다면서, 매일 전화로 선생님이 공부를 지도해주는 스터디영어라는 프로그램에도 가입해 월 16만원씩 주고 전화 영어공부까지 시키고 있습니다. 이 아이는 외국이라곤 가본 적도 없는 데도 웬만한 중학생 정도의 영어 실력을 갖추고 있습니다. 조기교육이 효과를 거둔 경우라고 볼 수 있지요. 아이가 받아들이는 능력만 된다면, 아마도 거의 모든 엄마가 이런 집중교육을 시키고 싶어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중학교 1학년 남자아이의 시간표는 내가 짜주긴 했지만, 들여다볼 때마다 안쓰러울 지경입니다. 아이는 오후 3시30분쯤 학교에서 돌아오면, 쉴 틈도 없이 엄청난 양의 학원숙제 해놓은 것을 챙겨들고 매일 학원에 가야 합니다. 영어, 수학, 국어, 과학은 기본입니다. 이들 과목은 각각 학원비가 월 23만원, 30만원, 20만원, 15만원이니, 이것들만 해도 월 88만원이 듭니다. 아이들마다 개인적인 편차가 있긴 하지만, 학교 성적이 상위권일수록 다니는 학원 종류가 많아지고 학원 다니는 데 들이는 시간이 길어지게 마련입니다.
두아이 과외비 한달에 150만원
여기에 학교에서 무슨 실기평가라도 하게 되면, 그때마다 단기 특별과외를 시켜야 할 일이 생기기도 합니다. 두아이에게 들어가는 사교육비가 한달에 100만원이 훌쩍 넘고, 어떤 달은 150만원이 넘기도 합니다. 남편이 집에 갔다 주는 월급으로 이런 사교육비를 감당하면서 생활까지 해나가기란 사실상 불가능해, 저도 틈틈이 부업으로 이런저런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이들 학교 친구나 동네 아이들을 보면, 이런 정도의 사교육은 최저수준입니다. 특히 대학입시가 얼마 남지 않은 고등학생 자녀를 둔 집은 한아이에만 한달에 200만~300만원씩 사교육비를 지출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어떤 때는 이런 사교육비 지출이 반드시 필요한가 하는 의문이 들 때도 있습니다. 이렇게 된 것은 현행 입시제도와 공교육이 서로 엄청나게 괴리돼 있는 데 그 원인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1994년부터 실시된 현재의 대학수학능력시험이 해가 지날수록 문제가 쉬워지긴 했지만, 수험생들에겐 내신(중간, 기말고사, 수행평가), 수능, 논술, 심층 구술면접, 각종 수시모집에서 요구되는 특기, 적성능력, 게다가 자기소개서, 봉사활동에 이르기까지 준비해야 할 것들이 더 많아지기만 했지, 적어진 적은 없었습니다.
이제 복잡해질 대로 복잡해진 시험제도를 앞에 두고는, 이 모든 것을 감당해내기 위해 사교육을 효과적으로 이용하는 것 외에는 다른 길이 없게 됐습니다. 이 많은 것들 가운데 어느 하나 무시할 수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이 때문에 초등학교, 심지어는 초등학교 입학 전 유치원 단계에서부터 대학 입시를 위한 과외 마라톤을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학교(공교육)는 학생의 내신성적을 평가·산출하는 기관일 뿐, 어느 것 하나 책임지지 않습니다. 이제 사교육은 없어서는 안 될 교육방법으로 자리잡았고, 그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산업이 됐습니다.
올해 대학 수시모집에서 수도권 학생들의 합격률이 월등히 높았던 것도 이런 교육 현실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시험제도가 복잡할수록 양질의 정보를 많이, 그리고 비교적 쉽게 얻을 수 있는 서울과 수도권 신도시 지역 수험생들이 절대적으로 유리할 수밖에 없습니다. 갑자기 준비해서는 될 일이 아니기 때문에, 어려서부터 입시준비를 시작하는 것입니다.
사교육 부문 중 학원들이 최근 3~4년간 시험제도 변화에 따라 변신을 거듭했습니다. 가장 큰 특징이 학원의 전문화입니다. 일단 영어부터 그 예를 들어보면 영어학원은 크게 외국인 강사가 가르치는 학원과, 내국인 강사가 가르치는 학원으로 나뉩니다. 학원 강의시간도 예전의 90분 정도에서 요즘은 3~4시간으로 길어지고 있습니다. 말하기, 듣기, 쓰기, 읽기, 문법 등 5개 부문을 교시별로 다른 선생님이 강의합니다. 에세이라고 하는 쓰기 전문 학원도 있고, 듣기만을 수강할 수 있는 학원도 꽤 많습니다. 이제는 한 선생님에게 영어를 배우려는 학생은 없습니다. 그러나 학교는 아직도 선생님 한분이 교과서만으로 수업을 진행합니다.
수학학원들도 대부분 선행학습 위주인데, 중1수학부터 고등학교 수Ⅱ에 이르는 과정을 단계별로 전문화하고 있는 것은 물론입니다. 수학경시 잘 하기로 유명한 대치동의 A학원은 도형Ⅰ·Ⅱ·Ⅲ, 통계, 확률, 함수 등 파트별로 전문적인 강의를 합니다. 도형에 약한 학생들은 일반 진도를 나가는 단계학습 외에 도형 심화과정도 몇번이고 선택적으로 반복합니다. 게다가 복습 전문학원도 요즘 꽤 인기가 좋습니다. 선행학습이 일반화하다 보니, 지나간 학습과정 복습도 필요하지요.
대치동에 있는 또다른 B학원은 복습학원인데, 특이한 공부방법을 적용해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이 학원에서는 강의는 하지 않고 각자 엄격한 레벨 테스트를 거쳐 부족한 부분이 있으면 그 부분을 집중해서 프린트 수업을 합니다. 예를 들면 수십장의 방정식 프린트를 학생이 혼자서 푼 뒤 검사를 받아 틀린 부분이 계산부분으로 나타나면 계산부분에만 집중한 프린트물을 주고 또 풀게 합니다. 이런 과정을 반복하는 것이 이 학원의 특별 수업방식입니다. 이 학원은 프린트물 내용을 모두 데이터베이스화해 컴퓨터로 출력하는 데 몇분밖에 걸리지 않습니다.
영어 한과목에만 교사 5명
국어 과목도 교과서를 공부하는 중하위권을 겨냥한 학원에서부터, 문학·비문학을 장르별로 나누어 엄청난 양의 독서와 토론, 쓰기를 병행하는 상위권 학생 대상 학원도 있습니다. 어휘만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과정, 배경지식을 쌓기 위해 동서양의 역사만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학원 등 그 다양함이 끝이 없습니다. 학원 수준 또한 상당히 높아서 학부모들의 만족도도 상당히 높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과학도 초등학교 대상의 실험 전문학원, 경시 전문학원, 소수정예 학원 등으로 다양하고, 강의도 생물, 지학, 물리, 화학 등으로 세분화해 각 부문별 강사가 전문적으로 강의합니다. 게다가 학교 내신성적에서 무시할 수 없는 비중을 차지하는 음악, 미술, 체육까지 개인별 또는 그룹별 과외를 받는 것이 학생들 사이에 당연시되고 있습니다.
체육시험을 준비해주는 과외도 많습니다. 시험종목은 구르기, 뜀틀, 줄넘기, 농구 등으로, 미리 공고를 합니다. 상위권 학생들은 그룹지도를 받으며 좋은 평가점수를 받기 위해 피나는 연습을 합니다. 누구보다도 효과적으로 짧은 시간 안에 목표치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대학 체육학과 출신들로 구성된 각종 스포츠과외 선생님들의 도움을 받게 됩니다.
시험을 잘 보기 위해 과외를 받는 학생들이 문제일까요? 아니면 과외선생님의 존재 자체가 문제일까요? 잘 가르치지도 않고 대뜸 시험만 보는 학교 교사들에게는 문제가 없는 건가요? 아마 학교 선생님들도 제대로 된 수업도 하지 않은 채 아이들에게 시험을 보게 하고 싶지는 않을 것입니다. 즐거워야 할 음악, 미술, 체육마저 시험으로 옭아매어 학생들을 시험의 노예로 전락하게 하는 제도에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학부모들은 왜 이렇게 엄청난 사교육비를 들여 선행학습, 심화학습을 시키는 걸까요? 공통수학의 정석은 중학교 1학년 때보다 고등학교 1학년 때 가르치는 것이 아이들이 받아들이기가 훨씬 쉽다는 것을 웬만한 학부모들은 압니다. 그러나 중학교 때 선행학습을 시키지 않으면 고등학교에 가서 적응하기가 어렵습니다.
고등학교에서 그 엄청난 수업과 내신관리 부담, 게다가 수행평가, 수능, 면접, 논술고사 준비 등을 선행학습 없이 어떻게 하겠습니까? 미리 영어·수학을 끝내놓아야, 단 한번의 실수도 허용하지 않는 내신과 많은 시간을 요하는 수행평가, 그리고 학교수업과는 별 상관도 없어 보이는 수학능력시험, 대입원서에 써넣어야 할 토플(TOEFL)과 텝스(TEPS) 점수 확보, 전공별 논술과 면접 등을 준비할 최소한의 학원 다닐 시간을 확보할 수 있습니다.
특히 학교에서 하는 수행평가라는 것은 노트 정리, 탐구보고서 쓰기, 설문지 조사 등 각 교과목마다 그 종류가 엄청나게 다양합니다. 영어와 수학 과목의 공부를 학교 진도에만 맞춰 따라가는 학생들은 상위권 대학에 가기 위한 최소한의 준비가 안 되어 있는 셈입니다. 생물, 지학, 물리, 화학을 포함하는 공통과학과 물리Ⅱ, 화학Ⅱ, 생물Ⅱ 등의 심화과정을 선택해야 하는 이과생은 과학과 수학도 엄청난 부담입니다. 돈은 돈대로 들고, 학교진도 따라가랴 선행학습하랴, 아이들은 건강을 축내고 잠을 아껴가면서 학원에서까지 많은 양의 숙제에 시달립니다.
이해찬 전 교육부 장관의 교육개혁 후 생겨난 새로운 제도인 수행평가와 특기적성 교육을 볼까요. 수행평가는 의무적으로 20~30%를 성적에 반영하도록 돼 있습니다. 무엇을 평가할지 그 내용은 학기 초에 프린트해서 나눠줍니다. 예를 들면 국어는 태도 10점·말하기 10점·쓰기 10점, 수학은 노트검사 10점·태도 10점, 과학은 보고서 15점·태도 5점 등입니다. 태도는 말 그대로 수업태도를 본다는 것인데, 이 때문에 선생님은 학기 내내 아이들의 책 준비상황, 떠드나 안 떠드나, 발표는 얼마나 많이 하나를 끊임없이 체크합니다. 아이들은 숨이 막히고, 선생님은 괴롭습니다. 글씨연습 이상의 의미가 없는 수학노트 정리하기도 평가 대상입니다. 글씨 못쓰는 남학생들은 절대적으로 불리합니다. 여기서 1점, 저기서 1점 깎이다 보면 차이가 벌어지고, 선생님들이 주관적 잣대로 평가하는 점수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도 터져나옵니다.
그러나 수행평가를 소홀히 할 수 없으니, 상위권 아이들은 1점에 목숨 걸고 친구를 일러바치고 서로를 불신합니다. 심한 경우 친구 책을 감추고, 절대로 자기 책은 빌려주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교육개혁의 일환이라는 수행평가는 열악한 공교육 현장에서 우리 아이들을 이렇게 창의력과는 거리가 멀고, 작은 것에 매달리는 속 좁은 아이들로 만들고 있습니다. 선생님들은 의무적으로 수행평가 비율을 반영해야 하니까 허덕거리게 됩니다. 이런 것이 무슨 교육 효과가 있을지 의문입니다.
이해찬 전 장관의 교육개혁 중 핵심으로 꼽는 특기적성 교육도 마찬가지입니다. 한가지 특기만 있으면 대학에 갈 수 있도록 하겠다고 하자, 각종 경시대회가 번성하고 있습니다. 국어경시(논술경시), 영어경시(토플, 텝스, 에세이, 스피킹, 라이팅 등), 수학경시, 과학경시, 컴퓨터경시 등 종류도 다양합니다.
이런 경시대회는 학교 교육과는 무관하고, 완전히 사교육의 몫입니다. 중학생의 경우 자기가 어느 특성이 있는지를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라서, 상위권 학생들은 두루두루 준비하다 보니 항상 시간에 쫓깁니다. 수학경시를 전문으로 하는 대치동의 C학원, D학원의 경우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경시를 준비하도록 학부모들에게 권합니다. 머리가 비슷하다면, 누가 먼저 시작하느냐가 학습량을 결정한다는 것이지요. 이 중 D학원의 경우에는 일요일 강의를 듣기 위해 지방에서 비행기를 타고 시간 맞춰 오는 아이들도 있다고 합니다.
어느 경시를 준비하느냐는 학부모의 결단에 달려 있습니다. 누가 먼저 결단을 내리느냐가 관건이 되고, 적성을 못 찾은 대부분의 학생들은 이것저것 다 손을 대보느라 그렇지 않아도 모자란 시간에 쫓깁니다. 특기적성 교육의 실상이 이렇다 보니 내신관리도 잘 해둬야 하고, 이 때문에 학원 앞에는 엄마나 아빠들이 저녁마다 아이들을 학원으로 실어나르고, 그 차 안에서 도시락으로 식사를 때우는 아이들도 심심찮게 볼 수 있습니다.
수행평가·특기교육이 되레 부채질
교육정책이 짐을 하나라도 덜어주면서 새로운 제도를 더하는 게 아니라 기존 제도는 그대로 둔 채 새로운 뭔가를 보태기를 몇년간 거듭해왔습니다. 이 때문에 이제 아이들은 증학교의 경우 국어, 영어, 수학, 과학, 음악, 미술, 체육, 컴퓨터, 한문, 기술, 가정 등 10여가지, 고등학교에서는 국영수에 국사, 세계사, 한국지리, 세계지리, 사회문화, 윤리, 일반사회, 정치경제, 생물, 지학, 물리, 화학, 음악, 미술, 체육, 한문, 가정, 기술, 교련, 정보 등 20여가지 과목들에 대해 일일이 내신, 수행평가, 실기평가를 챙기면서, 동시에 수능공부도 따로 해야 합니다. 가기에 토플, 텝스, 경시, 논술, 심층면접까지 준비하다 보면 도대체 뭐를 하자는 것인지 알 수 없는 지경이 됩니다.
“이건 아닌데…” 하면서도 따라갈 수밖에 없고, 이왕 따라갈 거면 앞서가야 한다는 게 많은 학부모들의 심정일 것입니다. 이런 속에서 저도 우리 두아이를 고등학교를 거쳐 대학까지 무사히 올려보내야 한다고 생각하면 아득해지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