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如日出에 照高山이며 駛馬가 見鞭影이라
해가 뜸에 높은 산에 비추며 빠른 말이 채찍 그림자를 보는 것과 같음이라. 해가 뜰때는 높은 산이 먼저 비치죠? [화엄경] 법문에 해가 뜰때 높은 산에 먼저 비치는 것과 같다라고 비유한게 나옵니다. [화엄경] 법문에... 駛馬라는 것은 빠를 駛字, 천리마. 빨리가는 말이 채찍 그림자만 보고도 더 빨리 도망가지요. 준마가편이라. 잘 가는 말에다도 채찍을 가한다는 말이 있죠? 駿馬加鞭이라. 상근기를 준마에다가 비유한거요. 아까 말한 (어...) 돈기, 돈기가 바로 준마요.
말을 그냥 가만 놔둬도 영리한 말은 가기야 가겠지만은 채찍을 들고 말타는 사람이 자꾸 채찍질을 해야 더 잘가죠? 그러니까 공부도 알아서 잘 하겠지만은, 경책하고 옆에서 자꾸 도반이나 스승이나 선지식이나 채찍질을 해야 공부가 잘된다는 거죠. 그래서 아란존자께서 혼자 좀 있어서 조용히 공부하면 좋겠다고 그런 말씀을 부처님께 여쭈었죠. 그러니까 부처님께서 그 생각은 잘못되었다. 대중에서 청중, 청규를 잘 지키고 공부를 정진을 잘 하는 그 대중속에 있으면 대중이 너그 공부 반이상은 해준다는 거요.
그러니까 나무도 그냥 하나 있으면 잘 안커도 여러 나무가 많이 있으면 햇빛을 볼려고 경쟁해서 빨리 크지요. 그와같이 대중처소에서 대중이 옆에서 경책해주고 대중의 규칙을 지키다보면 공부가 더 빨리 이루어진다는 거요. 그와같이 준마도 같으니라. 잘가는 말도 채찍을 가해야 더 잘가요. 그런데 둔한 말은 채로 채찍으로 때려도 갈동말동 하지만, 영리한 빠른 말은 천리를 가는 말은 채찍 그림자만 이렇게, 그림자만 보고도 때리기 전에 궁뎅이에 채찍이 가기전에 말 삼십육계 놓아버려요. 빨리 간다 그말이요. 그와같이 돈기들은 상근대기는 그렇다 말요.
所以로 丹霞和尚이 云 相逢不擎出하야도 舉意便知有라하시며
단하천연화상이 마조의 제잔데, 그 분이 이런 말씀을 했어요. 서로 만나서 떠 받쳐 내지를 아니해도, 생각만 뜻만 들면은 문득 있는 (어...) 것을 안다. 그러니까 영리한 사람은, 근기가 수승한 상근대기는 만나서 이러쿵 저러쿵 거 횡설수설 안해도 즉, 보면 알아요.
그래서 장자 [남화경]에도 목격도존이라는 말이있죠? 목격하기만 해도 도가 있다. 目擊道存이요. 조사 선문에 달사상봉. 사무친 사람은 서로 만날 때, 말하기 전에 즉 알아버려요. 볼서 말하기 전에, 주거니 받거니 문답으로 한것은 중근기 하근기한테 하는 짓이라. 그래도 그렇게 해도 또 모르는 사람은 모르죠. 모르는 사람은 손에다 쥐어줘도 모른다잖아요.
그런데 장자 [남화경]에는 목격도존이라는 말이 나와요. 목격도존은 장자에서 한 말인데, 공자가 온백설자를 볼려고 평소에 많이 생각을 두었어요. 온백설자라는 사람은 도가 높은 사람인데, 溫伯雪子. 글자만 보아도 그 사람 생김새를 알 수가 있죠? 여자 이름만 子가 아니라, 남자도 공자 맹자 무슨 子字 쓰잖아요? 온백설자. 눈과 같이 그렇게 참 고상한 고결하고 순결한 분이고, 온백이라는 말은 溫故知新을 해서 모든 것을 잘 아는 제일 으뜸가는 분을 伯이라고 하죠. 도에 도지사보고 도백이라고 하고 아까 나 소개할 때 뭐 강백이라고 했죠. 大講伯. 백은, 가장 으뜸은 백이라고 합니다.
온백설자를 공자가 만나고 싶었는데 그러다가 어디서 온백설자를 만나게 되었어, 우연히, 그래서 만나고 난 다음에는 아무 말도 없어. 그래서 공자 모시고 다니는 제자들이나 자로같은 이가 물었어.「선생님 평소에 온백설자를 보고 싶어 하시더니 막상 오늘은 만나서 보시면서 왜 아무말씀도 없습니까? 주거니 받거니 무슨 진지한 대화가 있을 줄 알았는데 왜 아무말씀도 안 하십니까?」하니까, 공자가 「이 사람은 目擊이 道存이라. 눈으로 보기만 해도 道가 있는데 뭐 말이 필요가 있느냐.」척 보면 안단 말이여.
그래서 절을 잘 아는 사람은 건너다 보면 절터요, 멀리서 봐도 저 산중에는 절이 있다는 것을 알잖아요. 꼭 그리 가봐야만 있다는 것을 아는 것 아니잖아요? 그래서 목격도존이라는 말이 거기서 나온 말이요. 장자 [남화경]에. 그와같이 빠른 말은 채찍 그림자만 보고도, 이것도 인자 고사가 있는데 경전에, 그 말도 내가 쭐입니다.
단하화상은 그런 말씀, 서로 만나서 도가 높은 사람끼리 만나서 이러쿵 저러쿵 들추어내지 않아도 척 한생각 생각을 낼려고 할 때, 그 사람이 도가 있는 줄을 알아버려, 척 알아버려. 요즘에 쓰리꾼들은 유명하이, 저 사람 돈 있다 없다 알고 돈 있는 사람을 칼로 착 긁어버리죠. (하하하) 그 사람도 참 영리한 놈이죠. 영리해야 도적질도 합니다. 둔한 사람은 도적질 할 자격도 없어요.
장자 [남화경]에 보면은 성인이 큰 도적이라는거요. 聖人. 공자같은 성인이 이 세상에 가장 (어...) 도적 중에는 최고 도적이란 말에요. 보통 도적놈들은 쓰리꾼들은 호주머니나 털고 또 쪼금 큰 놈은 금고까지 털지마는, 정말 성인은 우주전체를 다 훔쳐가버려요. 응? 세계 허공계 우주법계를 다 훔쳐가버려요. 그게 진짜 도적中에는 큰 도적이죠. 도적이 될라면 그런 도적이 되어야 되겠죠.
대도자가, 대도자. 여기에 대도무문. 정말 큰 도를 사무쳐 통달한 사람이 큰 도적이요. 여담인데 발음도 똑 같잖아요, 大道 大盜. (하하하...) 거지가 될라면 걸뱅이 거지가 될 게 아니라 (하하..) 우리는 남에게 탁발하고 걸식해 먹잖아요. 진짜 거지는 우리 출가사문들이 진짜 거지가 되어야죠. 응? 걸사. 크게 알아야 될거아뇨 뭐 시시하게 쪼금 알아가지고는 거지노릇도 못하는 거죠.
장성군에 가면은 홍길동이가 뭐 대단하다고 홍길동 많이 팔아먹고, 쌀도 홍길동 뭐 고장도 홍길동 뭐 홍길동 고장, 홍길동이 도적놈 아뇨 그. 대도중에 의도지. 조금 의리가 있는 도적이죠.
首楞嚴經에 云 圓明了知호대 不因心念이라하시며
원만하게, 둥글고 밝게 잘 안다 그말이죠. 道가 깊어서 보살의 경지를 뛰어 넘어서 成佛할 때, 육근 여기는 자 어디서 그런 말씀이 나오냐며는 (어...) 六根互用과 같은 관세음보살처럼 그렇게 원통을 하는 것을 설명할 때 이런 말씀을 했어요. 圓明하게 잘 알듯 마음 생각을 因하지 않는다. 얼마나 위대한, 보통사람들은 생각을 가지고 아는데, 생각을 작용해야 알죠? 저런 불보살들은 應無所住 而生其心이라. 我相人相衆生相壽者相 [금강경]에 말씀하신 四相을 다 초월했기 때문에 마음 생각을 因하지 않고 마음 생각 따르지 않고 圓明了知를 한다 그말요. 대단한거죠? 그리야 되요. 가만히 앉아서 아는 것은 별것도 아니요.
그래서 치문 책에 보며는 동방삭이는 삼천갑자를 살았죠? 신선이라요 동방갑자가. 동방갑자도 무얼 이렇게 손을 꼼작꼼작해서 알려고해야, 추수를 해봐야 알아요. 나한이 아무리 성인이지마는 나한도 생각을 일으켜서 알려고 해야 안다는 거요. 점쟁이가 아무리 점을 잘 쳐도 아무 말 않고 아무 생각 안하면서 점쳐라 하며는 못치는 거죠. 그러니까 점쟁이한테 다 알려주니까 점쟁이들이 점 잘치죠. 뭐하면 이렇고 저렇고 횡설수설 다 미리서 다 말해줘버리니 뭐 그렇게 점쟁이하믄 나도 하겠어요. 가만히 앉아서 누워 떡 먹기지.
생각을 일으키지 않에야 정작 상대방이 잘 모르는 거죠. 몸이 움직이면 사람이 볼 수 있고 생각이 움직이면 귀신이 본다는 거죠. 그래서 몸과 마음이 움직이지 않으면 귀신도 볼 수 없고 사람도 볼 수 없는 거죠. 그렇게 되아야 정말 [금강경]에 응무소주가 된거요. 응당 집착한 바 없이 머무른 바 없이 생각을 일으키지 않고도 알아야 되죠. 그게 참 고수죠. 정말 고수는 손 까닥하지 않고 다 처리해뻐린 거요.
좀 못난 사람들이 그 일을 누구 시켜서 뭐 자꾸 하다가 들통나고 발각나가지고 소두랑 쇠고랑차는 거죠. 그렇잖아요? 정말 잘한 사람은 쥐도 새도 모르게 해야 되죠. 쥐도 새도 모르게 한다는 것이 佛敎에서는 不因心念이라. 그래서 육이가 불거응모라(?) 하는 말이 나오죠? [전등록]에, 이런 말은 뭐 별것도 아니지만은 말이 나왔으니까. 육이가 여섯귀가 같이 공작을 꾀를 꾀 거자. 공작을 같이 하지 않는다. [전등록]에.
쫌 알기가 어렵죠? 그 말은 무슨 말이냐 하면, 선지식하고 그 공부를 잘 해서 도가 높은 두 사람이 일대일로 상대한거요. 일대일로 상대한 것은 두 분밖에는 모르겠죠. 서로 주거니 받거니 말한거. 그러나 그게 별것도 아니란 거요. 그 옆에 쥐가 들었다는 거요. 그러니까 귀가 여섯이죠. 한 사람 귀가 둘있고 또 한사람 거 대화를 나눈 사람 귀가 둘있고 옆에서 저 쥐구멍에서 쥐가 또 듣고있으니까 여섯귀가 생각이 똑같지를 않아서 꾀할수가 없다. 꾀가 같지를 않다는, 그런말도 [전등록]에 나옵니다.
揚眉動目이 早是周遮라
거까지는 인자 여기 지금 연수대사의 말씀입니다. [능엄경]은 불인심념까지 끝났죠? 揚眉動目은 눈썹을 드날리고 눈을 움직이는 거. 그러니까 눈짓을 하고 추파를 보내거나 눈을 뜨거나 부릅뜨거나 하는 것이 저것이 周遮, 그것 다 벌써 서투른 수작이다. 서투른 수작이라는 것은 그것 두루 막은거란 말요.
옛날에 약산유엄선사는 조동종의 도가 높으신 큰 스님아뇨? 藥山唯儼禪師. 약 藥字 뫼 山字 오직 唯字 엄연할 儼字. 약산유엄선사가 계셨는데 제자들보고 참선만 하지 經보지 말라고 했어요. 화두공부한 사람은 경보지 말라고 하잖아요? 참선만 해라고. 그래서 약산유엄선사에게 어떤 스님이 제자가 질문하기를,「스님은 왜 경을 보시면서 저희들은 경을 못 보게 하십니까?」약산유엄스님은 설법을 하시고 여러 사람들을 상대해서 교화를 하실라니까 부처님 경전이 필요하거든 그래서 경을 보시는데, 참선공부 하는 사람들 한테는 경을 못 보게 했어요. 그러니까「왜 스님은 보시면서 왜 저희들은 못보게 하십니까?」하니까 내가 어디 경을 보나, 눈을 가리운거지요. 눈으로 살짝살짝 한 장씩 넘기는, 눈만 슬쩍슬쩍 스쳐간다 그말이요. 여기서 주차같이, 周遮.
「그러면 저희들도 경보면은, 눈만 가리우면 될거 아닙니까?」하니까「야! 이놈아, 너는 경을 보면은 소가죽도 떨버진다.」그말이요. 얼마나 집착심이 강하던지, 소가죽까지 소가죽은 뚜겁잖아요 종이보다 훨씬 두껍잖아요. 그런 단단한 소가죽도 떨버질 것이다 그 말이요. 그러니까 너희들 집착심이 강하니까 그냥 슬쩍슬쩍 눈에 바람 지나가듯이 그렇게 지나가는게 아니다. 그래서 경을 못보게 하셨다는 그런 말씀도 있... 나와 있죠.
그와같이 가리운단 말, 두루 가리운 것, 눈짓 하는것도 벌써 어 서투른 수작이다. 어긋난 짓이다 그말이요. 잉?
如先德이 頌云
옛날 고덕 스님이요, 高德이나 先德이나 같은 말이요. 옛날 큰 스님이 게송으로 말씀하시기를,
便是라도 猶倍句요
문득, 옳을 是字로 봅니다. 문득 옳게 그 도리를 제대로 잘 알아서 적중한다 해도 猶倍句라, 오히려 어긋난 말이다. 어긋난 말이다 어긋난 어구다 그말요. 어긋날 倍字, 여기서는.
動目에 即差違라
눈을 움직이는, 눈을 부릅뜨거나 눈을 옆으로 돌리거나 할때도 곧 문득 어긋남이라. 어긋날 差字, 어긋날 違字. 그러니까 하는 짓이 벌써 틀렸다 그말이요. 틀리는 놈은 아무리 잘해본들 뭐 안 맞죠?
若問曹溪旨하면
만약에 육조 曹溪의 종지를 묻는다면,
不更待揚眉이라하시니라
다시 눈썹을 드날림을 기다릴 필요가 없다라고 옛날 스님이 그렇게 게송을 읊은게 있다 그말이요. 응.
조계의 종지를 묻는다면 단박에 알아야 되지, 눈을 꿈적꿈적하고 양미손목처에 타근날려고 하는거. 무자 열가지 대우(?)中에도 양미손목처에 타근나는 것이 병통이라고 했죠? 語路上이나 理路上에 활계를 지을려고 하거나, 정말 있다 없다는 無字 화두를 유음(?)으로 알려고 하거나 그거 다 무자를 드는 그런 것. 조주 拘子 無佛性, 개는 불성이 없다고 하는 無字화두를 들 때 열가지 병중에 양미손목처에다가 뿌리를 내릴려고, 뿌리박을려고 하지 말라는 그말과 비슷한 내용입니다.
答이라
그 다음에 인자 答이라,
今為樂佛乘人이
요자라고도 하고 락자라고도 합니다. 지금에 佛性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정말 실로 천득하지 못한 者를 위해서 영명연수대사께서는 佛敎를 佛乘이라고 그래요. 大乘 小乘하는. 그래인자 一佛乘 부처님의 法이죠. 일불승을 불성을 불법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불법을 좋아만했지 참으로 알지 못한 者, 천자는 천득이라고 해서 제대로 알아차린 것을 천득이라고 합니다. 얻을 得字. 천득하지 못한 자를 지금 위해서 그 사람들 때문에 이러한 언어문자 글을 가지고 이렇게 설명을 광범위하게 했다는 겁니다.
假以詞句하야 助顯真心이니
詞句로서 빌려서, 정말 참 마음을 좋아서 나타낼 뿐이라 그말이요. 眞如門의 그 신진여를 알리기 위해서 언어문자를 가지고 이렇게 설명을 한거다 그말이요.
雖挂文言이나 妙旨가 斯在라
비록 文言을 걸어, 걸 掛자 내나 옆에다가 점복(卜)한거나 같은 거요. 문언을 가지고 문언을 들추어서 언어문자 글을 써서 글로 보이기는 보이지만 妙旨는 斯在라. 묘한 종지는 그속에 여기에 바로 있다 그말이요.
俯收中下하야
엎드려서 중근기 하근기를 거두어서
盡罩羣機하니
모든 근기를, 상근기 중근기 하근기까지 모든 근기를 모든 사람들을 전부다 망라한 거라 말에요. 덮을 罩字 저 저저 토끼나 노루나 잡는 덫이죠? 덫을 가지고 덮쳐서 잡는 것. 그와 같이 모든 근기들을 모조리 때려잡아서 다 토호(?)를 깨닫게 하는 그런 의미로 조자를 쓴 거요. 농조(?)한다. 덫을 가지고 덫을 놓아서 짐승들 잡지요? 그와같이 한다 그말이요.
但任當人이 各資己利라
다만 當人은 모든 자기자신들을 당인이라고 합니다. 당자들이 각각 자기 이익을 보탬을 보태며 맡길뿐이다. 自利利他인데 자리를 얻도록 하는 그런 역할을 한다 그말이요. 모든 사람들이 각자 자기 본분을 깨달아서 마음이 밝아지면 그야말로 그뿐이죠.
百川이 雖潤이나 何妨大海廣含이며
百川이 비록 윤택하나 백천 중유, 온갖 냇물이 흘러가서 (어...) 적셔주고 윤택하게 하지요. 물이 흐르는 곳에는 물기가 윤택하는 그런 역할을 하잖아요? 백천은 작은거고 그보다 大海는 큰 바닷물이죠. 어찌 대해가 널리 포함한 것이 방해 할 것이며, 방해로울 妨. 걸릴 妨字요, 걸릴게 없다 그말이죠.
五嶽이 自高나 不礙太陽普照라
五嶽이 스스로 높으나 太陽이 널리 비추는 것에 걸림이 없다 그말이요, 걸리지 않음이라. 태양은 해죠. 해가 높으 높이떠서, 높은 중국의 오악이 아무리 높다해도 태양이 널리 비추는 데는 걸릴게 없다 그말이요.「태산이 높다하되 하늘아래 뫼이로다」라는 말이 있죠? 중국의 큰 산을 오악이라고 그래요. 오악은 달마대사가 계시던 데도 오악中에 들어가요. 崇山 華山 衡山 恒山 대산, 태산 泰山도 들어가요. 거기에, 五嶽.
우리나라 사람이 금강산에 대해서 좋은 시를 지어달라고 月沙선생한테 누가 부탁을 했어, 그래서 월사선생이 그걸, 이월사라고 글잘한 이조때 유명한 분아뇨? 그래서 그걸 글을 지어줄라고 상당히 생각을 하면서 아침밥을 안자시고 있어. 그러니까「왜 아침 진지를 자시지 왜 안자십니까?」하니까「누가 글을 부탁했는데 글 지어달라고 하니까 글 지어놓고 내가 아침밥을 먹던지 하겠다.」하니까「제가 짓겠습니다! 빨리 아침이나 자십쇼.」며느리가 그려 자부가, 자부가 떡 갖다가 인자 그러면 네가 금강산에 관해서 글을 짓겠느냐고 하니까 제가 단박에 지어버려요. 응?
여자도 그 정도면 참 (어...) 사임당처럼 글 잘하신 분이죠.「동국에 금강출」하니, 우리나라를 동국이라고 그러죠, 東國, 동국대학교 하는. 동국에 금강산이 나왔으니 중원에 중국은 중원이라고 합니다.「중원에 오악저」라. 중원에 오악이, 악자는 두 가지로 써요. 요렇게도 쓰고 아까 옥이라고 하는 獄字처럼 뫼山 밑에다 獄. 요렇게 운자가 똑 같아요. 두 가지다 알으셔야 되요. 중원에 오악이 나지만 중국에 제일 큰 오악이 금강산에 눌려서 금강산이 쑥 높이 솟아나니까, 일만이천봉이 한국에 금강산이 나고 보니까 중원에, 중국에 그말요 잉? 오악이 오악같이 큰 산도 나지막 하더란 말요. 별 수도 없다 그말요.
「선인 다굴택」하니 신선사람 굴택이 많으니, 금강산에는 신선들 많이 살잖아요? 「왕모가 탄생서」라 왕모가 서쪽에 난 것을 탄찬하다. 이 저자하고 서자가 운자요. 금강산에는 신선들이 많이 사는 신선의 선굴이 많다말에요. 신선의 굴택이 많으니 왕모는 서왕모아뇨? 西王母. 신선이죠? 여자 신선이요 저저 노고단처럼. 노고 노고가 아니라 문수보살이고 신선이라고 하잖아요. 지리산 노고할매.
서왕모, 서쪽에 산다해서 서왕모거든. 동국에 금강산에 신선들 굴택이 많으니까 서왕모가 서쪽에서 신선의 여자로서 서쪽에 태어난 것을 한탄한다 그말이요. 금강산 동국에 태어났으면 좋았을것을 하고 응? 얼마나 멋드러져요 글 잘졌죠? 그 정도는 글 지어야 글 진다고 자랑할 수 있지. 여기도 인자, 오악이 아무리 높다해도 태양이 널리 비추는 것에는 걸릴게 없다 그말이요.
根機가 莫等하고 樂欲이 匪同하야
중생의 근기가 똑같지를 않고 평등하지 않고 중생이 좋아하는 그게 똑같지를 않아서, 아니 匪字요.
於四門에 入處가 雖殊나 在一真見時無別이니라
四門에 들어가는 곳은 비록 다르나, 入處는 雖殊나. 동대문 서대문 남대문 북대문 사문으로 들어올 수가 있죠. 저 이북은 북대문으로 들어가죠. 강원도는 동대문으로 들어가도 되고 여기 부산이나 전라도는 남대문으로 들어가고 서울갈 때 옛날 사대문. 또 강화도나 저쪽 사람들은 서대문으로 들어가잖아요? 그렇지만은 사문으로 들어가는 것은 다 비록 다르지만, 중앙청 거시 경복궁이나 창덕궁 그 하나를 참으로 볼 때 있어서는 다를 바 없어요.
사대문이라고 하니까 보통사람들은 모르데요. 사대문 있어요. 서울에 저저 세검정쪽에 가면은 홍지문이 북대문이요. 북대문이라는 말은 안쓰죠? 홍지문. 인의예지로 됬죠. 동대문은 仁이고, 남대문은 불타버렸는데 숭례문 禮고, 서대문은 없어졌지만은 돈의문 義 돈의문 도남은 敦字에다가 義고, 지금 북대문은 있어요 세금정쪽에 홍지문. 클 弘字 지혜 智字.
그러니까 들어가는 곳은 달라도 그 자리를 보는 것은 다를 바 없어. 마음자리를 염불로 해서 들어가든지 참선으로 해서 들어가든지 진언으로 해서 들어가든지 경을 보아서 들어가든지 들어가는 것은 달라도 정말 견성성불하는 자리는 똑 같에요. 그 다 비유한 거죠.
如獲鳥者가 羅之一目이나 不可以一目으로 為羅요
새를 잡는 자가, 새는 그물코 하나에 걸리는 거죠. 여러개가 피워있는 건 아니지만은 그러나 하나가지고 허공에다 그물쳐노면 새 안걸려, 그물코가 삼천이면 걸릴 날이 있다고. 그래서 부처님의 팔만사천법문 팔만대장경도 우리가 다 필요한 것은 아니지만은 거기에 또 필요한 근기가 있어. 어떤 사람은 [금강경]보고도 깨치고 육조스님은 [금강경]中에도「응무소주 이생기심」만 듣고도 깨쳤잖아요. 어떤 사람은 [능엄경]보다 깨치는 거고 어떤 사람은 규봉스님같은 이는 [원각경]보다 깨쳤잖아요.
그래서 그물도 여러개가 필요한 거요. 그러나 걸리기는 한 코에 걸려요. 코를 目이라고 그래요. 한 코에 걸릴 羅字. 한 코에 걸리나 가이 한 코로써 그물을 삼을 수는 없고
治國者가 功在一人이나
나라를 다스리는 者는 功이 한사람에게 있지마는
不可以一人으로 為國이니
한 사람으로써 나라를 할 수는 없어요. [삼국지]에 유현덕을 도와서 촉나라를 일으킨 것은 제갈공명, 한 사람이죠? 그러나 제갈공명 한사람이 되는 건 아뇨. 관우 장비 뭐 조자룡이 뭐 여러사람들이 다 필요한거죠. 그와 같에요. 그와 같이 부처님 한 사람이면 되는 것 같지마는 부처님 外에 보살도 필요하고 나한도 필요하고 오백나한이나 십육나한이나 십대제자나 여러 보살들이 다 필요한 것 아뇨. 그와같이 법문도 여러 가지 법문이 다 필요한거요.
如內德論에 云
內德論에 말하기를, 내덕론이란 책이요.
夫一水는 無以和羮이요 一木이 無以建室이요 一衣가 不稱眾體요
一字가 많이 나오네. 내덕론이라는, 그 [광홍명집] 같은데 보면은 나옵니다. 대저 하나의 물은 하나의 물방울, 하나가지고 국물을 탈 수는 없죠. 국물이 물방울 하나가지고 되는 건 아니죠? 물 여러방울이라야 하나의 국그릇 국이 될 수가 있죠. 하나의 나무가 저 집을 세울수 없어, 기둥 하나가지고 안되죠. 여러기둥이 이렇게 있어야 집을 만들수가 있고.
하나의 옷이 여러사람의 몸에 걸맞지 않으며 옷 하나가 뭐 여러사람에게 맞는거 아니죠. 그러니까 옷점에 보세요 옷이 얼마나 많은지. 돈이 없어서 못 사지, 옷 없어서 못 사지는 않을꺼요.
一藥이 不療殊疾이요
또 하나의 藥이 여러병을 고치지 못하고 그래서 千病萬藥이라요. 병이 천갠데 약은 만가지라 이거요 엉. 약이 더 병보다 많아야 되요.
一彩가 無以為文繡요
하나의 채색이 써 문수가 될 수가 없어, 文繡라는 말은 바로새기는 거죠. 수를 놓아서 여러 울굿불굿하게 청황적백이 어울려서 금상첨화로 이렇게 인자 비단, 비단에 문체같은 거요. 하나의 채색만은 문수가 될 수 없어. 그러니까 단청할때도 색깔이 여러개가 필요하죠? 시커먼 걸로 칠해노면 단청 하나마나 하나 가지고 차라리 시커먼거 안 칠한게 낫죠. 시커먼 거 하나가지고 단청했다면 그 단청한 보람이 없잖아요.
一聲이 無以諧琴瑟이요
하나의 음성이 하나의 노래소리같은 것이 거문고와 비파에 어울릴 수가 없다 그말이요. 거문고와 비파같은 거는 옛날 악기아뇨? 여러 가곡 여러 거 리듬같은게 필요하다 말이요.
一言으로 無以勸眾善이요
하나의 말로서는 모든 착한것을 권할 수가 없어.「너 착한일 해라!」하는 그 말 가지고 완전한 것은 아니잖아요. 어떻게 어떻게 착한일 해라 하고 구체적으로 이렇게 여러 가지 말로 설명해 줘야 되죠.
一戒로 無以防多失이라하니
하나의 戒로서 많은 과실을 방어할수 없다 막을수가 없다. 그래서 오계도 있고 십계도 있고 이백오십계도 있고 오백계도 있고 계 하나가지고는 그 사람한테 허물을 방지할 수 없잖아요? 많은 허물을. 계도 여러 가지 계목(?)이 있어야되죠. 그와같이 법문도 여러 가지 법문이 필요하단말이요.
何得怪漸頓之異하야 令法門之專一이리요
어찌 頓敎 漸敎. 漸敎는 오래오래 닦아서 성불하는 법이고 頓敎는 단박에 돈오성불 단박에 성불하는 그런 법문이 頓法이죠. 점법과 돈법. 점과 돈이 다른 것을 어찌 괴이하게 이상하게 여겨서 法門으로 하여금 傳一하게 할 수 있느냐. 법문을 꼭 한가지로만 해서는 안된다 말이요. 그래서 조사공안도 천칠백이나 나왔죠? 하나가지면 되지 왜 천칠백공안이 있겠느냐 말이요. 經도 하나만 가지면 되지 왜 千經 萬論이 있느냐 말이요. 거 다 필요한 거요.
故로 云 如為一人하야 眾多亦然이요
그러므로 말하기를 한사람을 위하는 것과 같이 해서 모든 衆多한 사람에게도 또한 한 사람을 위해서 법문한 것처럼 똑같이 하고
如為眾多하야 一人亦然이라하니라
衆多한 사람을, 많은 사람을 위한 것과 같이 한 사람에게도 또한 같다라고 그렇게 [대덕론]에서 그런 말씀을 했다. [대덕론]말씀이 거기까지요.
그러니까 법문이 다 필요하지만 결국에는 하나고 一則一 一則多 多則一이죠? 하나가 곧 다고 많은 것이 곧 하나요. 一則一切多則一이죠? 그래서 일원론이 바로 다원론이고 다원론이 바로 일원론인 거요. 一多가 필요한거요 서로 통하는 거요. 圓融이요. 法性圓融無二相. 법성은 무이상이라 했는데 뭐 일즉일 즉 다즉일 一微塵中含時方 그런말들 왜 나와요? 그거 다 필요하니까 그렇게 한 거요. 그러나 결국에 많은 것은 하나고 하나도 많은 쪽으로 펼쳐지는 거요.
萬法歸一할때는, 만법은 많은 거고 하나로 돌아가는 것은 아무리 많더라도 결국에 한 가지 법이죠. 一心으로 다 돌아가요.
豈同劣解凡情이 而生局見가
어찌 저열한 용렬한 견해와 범부 소견이 국한된 국집된 그 소견을 내는것과 어찌 같겠느냐?
我此無礙廣大法門은
나의 이 걸림이 없는 廣大無邊한 그야말로 心賦에서 말하는, 광대한 法門은
如虗空이 非相이나
虛空은 온갖 물상이 아니지만 그러나
不拒諸相發揮요
모든 물상들이, 萬相이 허공안에서 發揮하는 것을 거부하지 않는다. 막지를 않는다 말이요. 虛空은, 이말은 [능엄경]에 있는 말씀이죠. 부루나章에.
似法性은 無身이나
法性자리, 法性이나 法身이나 같은 말이요. 法性은 몸이 없으나 육체의 몸은 아니잖아요. 그래서 육신이 없으나, 法性은 우주 허공계가 다 법성자리죠. 세계 허공계 할것없이 다 법성으로 이루어 진 거죠. 그러나
匪礙諸身이 頓現이라
모든 몸이 단박에 나타나는 것이 걸리지 않는다. 모든 몸이 법신에서 인자, 보신 화신 보리신 역지신 상호장엄신 복덕신 여래십신이 여러 가지로 나타나죠? [화엄경]에 보면은 여래십신을 세가지로 말했어요. 삼십가지죠? 허공도 여래의 몸이요. 허공신, 여러 세계도 여래의 부처님의 국토신. 국토도 몸이라요. 보리신이니 무슨 역지신이니 또는 복덕신이니 상호장엄신이니 그런것도 다 여래의 몸이고. 지신이니 지혜의 몸, 원래의 몸 그것들이 다 여래의 몸 아닌게 없죠.
그러니까 몸은 없지만은 여러몸이 단박에 다 나타나요. 해는 하나지만 해의 빛은 이 지구상에 널리 퍼지죠? 두루 비치죠? 그와같은 원립니다.
所以로 藏法師가 云
藏法師는 화엄종의 현수법장입니다. 현수법장 그 스님이 [기신론] 의기에서 이런 말씀을 하신거요. [대승기신론]에서 설명한 내용입니다.
自有眾生은 尋教得真하고
[기신론]이나 팔면기같은데 [기신론]에 직접은 안나오는데, 自由衆生 尋教得真 같은것은 [기신론]에 뜻으로는 나오고 현수법장스님이 다룬 그 오교, 현수오교가 있죠? 또 팔면기가 있고 그런데서 이런 말씀을 하신거죠.
어떤 중생은 敎를 찾아서 진리를 얻고 꼭 참선만 해서 다 되는것은 아니요. 經敎를 보다가도 見性하게 된다 그말이요. 그 얘기요. 敎라는 것은 부처님의 經敎. 敎法을 찾아서 교를 공부하다가 眞性 정말 참 진여자리를 얻게 된거요.
會理無礙하야
이치가 걸림이 없는 것을 알아서
常觀理而不礙持教하고
항상 진리를 관찰하면서 敎를 받는데 걸림이 없어, 禪敎를 두 가지 다 해요. 참선하면서 교도 통달하고 교도 통달하면서 참선도 깨치고 통하고 선교를 두 가지 걸림없이 다 해야 되는 거죠.
恒誦習而不礙觀空이라하시니
항상 경전을 외고 익히면서도 空을 관찰하는, 空을 관찰하는 것은 참선아뇨? 거기에 걸리지 않는다라고 법장스님이 그런 말씀을 하셨어요.
則理教가 俱融하야
곧 진리와 敎. 참선에서는 선리를 참구하고 또 교법을 경을 공부한 사람은 교법을 연구하는데, 그 선리와 교법이 理와 敎가 함게 원융해서
合成一觀하야사
모두가 禪敎를 둘로 보는게 아니라 선교가 하나의 관점으로, 하나의 관념을 하나의 관법을 합해서 이루어야만
方為究竟博通耳니
그래야 비로소 究竟에 널리 통달함이 될 것이라 그말이요. 그래서 약사유엄선사도 경을 보셨고 다른 대 선지식이 경모르는 선지식이 별로 없었어요. 육조스님은 문자를 모른다해도 육조스님이 법문하신거 [육조단경]에 보면은 經 모르고 그런 법문 못하거든. [금강경]에도 육조구결같은것도 거 육조스님이 전혀 모르는 것은 아니에요. 경을 불입문자를 주장하다보니까 달마의 중지를 그대로 이렇게 세상에 보일 뿐이지, 뒤에 인자 마명보살 용수보살 달마대사 뭐 기외에 오조홍인대사 또 삼조승찬대사 다 경교에, 삽삼조사가 무식한 조사는 육조스님 대표적인 하나뿐이고 기외는 다 선교에 다 박통하신 분이요. 그리야 되지요. 하나만 알아가지고는 안되죠.
볼줄만 알고 들을줄 몰라도 안되죠. 볼줄 알고 들을줄 모르면 귀머거리고 또 들을줄만 알고 볼줄을 모르면 눈먼 봉사고 그와 똑 같어 이 선과 교도. 그러니까 하나만 해서는 안되요. 그러므로 이 心賦註 註心賦를 그런 사람들에게 필요한 존재로 이러한 경을, 이러한 논문을 만들었다는 거죠. 經이나 똑같은 거요 경에 있는 말을 서술했다 해서 述字 쓴거요.
공자가 [논어]에 술이부작이라는 말이 나오잖아요 述而不作. 공자 나는 공자의 말이, 공자가 뭐 창작은 아니다 그말요. 옛날 있던 성인의 법을 서술했지 창작한것은 아니다 그와같이 여기 제일 첫머리에 송나라 항주 혜일 영명사에 지각선사 연수가 술이라고 나와있죠? 서술한거요. 창작한것은 아니다. 서술이라고 하는 것은 모든 경전 경론에 있는 말들을 전부 (어...) 펼쳐서 밝힌거요.
斯乃教觀이 一如며 詮旨가 同原矣니라
이것이야말로 이것은 이에 敎觀하니, 교는 경법을 공부하는 것은 교가 되고 참선 선관을 하는 것은 관이죠. 교와 관이 한결같고 똑 같고 詮旨가 同原矣니라. 전은 말로 설명한 것은 전이고 설명하는 진리 종지는 旨라고 한 거요. 그래서 전과 지가 근원이 같으니라.
(쪼금 쉬어따 하까요? 3시반이 넘었는데...)
첫댓글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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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_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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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_()()()_
화풍정 님! 수고하셨습니다..공부 잘 하고 갑니다..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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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또 ....^^* 너무 무리하지 않도록 하십시오. 새벽 3시반이면 밤을 꼬박 ~~~? 그저 고맙긴 하지만, ... 건강 챙기시면서 급하지 않게 하셨으면 좋겠습니다. 맘에 부담이 되려고 하는군요... 꿀물이라고 한 잔 드리고 싶은 마음입니다. 고맙습니다. _()()()_
_()()()감사합니다 거듭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
고맙습니다._()()()_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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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드립니다.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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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溫伯雪子>,,, 마치 눈처럼 순결하고 고상하며 고결한 사람을 일컫는 바 '溫伯'이란, '溫古而知新'해서 모든 것을 잘 아는, 제일 으뜸가는 분을 지칭함,,, <華嚴經의 義湘祖師 法性偈>에 나오는 "一中一切多中一 一卽一切多卽一"은 方便 法門이 다 필요는 하지만 결국엔 '마음자리' 하나로 돌아가고, 그 '마음자리'하나를 드러내 놓고 펼치자니,,,
八萬四千의 法門이 필요한 것으로 내 나름대로 認知 하고자 함,,,또, "一微塵中含十方 一切塵中亦如是" 역시 태양은 단 하나이나 그 빛은 온통 이 地球 전부를 머금으며 두루 다 비치고, 이 地球上 모든 有情無情의 存在 또한 그 태양 하나에 內包, 依存한다고 내 나름으로 解釋코져 하였더니 여태 껏의 疑問이 풀린 느낌임.
각성스님의 法門을,,, 지금 제 나름대로 이와 같이 對入해 본 것에 대하여 무비스님께서 혹시나 이 글을 보시게 된다면, 제 理解의 正邪에 관하여 助言, 添言 해 주시기를 仰望하옵니다,,,! <진공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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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문글씨를 크게 해주셔서 보기가 쉽고 녹취된 한글을 따라 읽어야만 강의 내용이 귀에 들어오니 화풍정님 너무나 감사합니다. _()()()_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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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풍정님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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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성스님 ..감사드립니다.,
허풍정님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