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6.29 우란분절(백중) 선망부모.인연영가 천도대재 입제식을 봉행 했습니다.
우란분절(백중)의 의미를 되새기며 관문사 6월 법보지의 우란분절 이야기를 인용해봅니다.
오늘 여법한 천도재가 될 수 있도록 보이지 않는 봉사에 동참해주신 간부님들께 감사 드립니다.
성불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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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목건련 이야기
해마다 우란분절이 되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목건련은 사리불과 더불어 부처님의 왼팔과 오른팔격의 뛰어난 상수제자이자 신통제일로 모두가 부러워할 만한 능력을 두루 갖추었습니다. 부유한 바라문의 외동아들로 태어나 유복한 가정환경과 바라문 출신이라는 신분상의 특권, 그리고 그 영민한 두뇌로 4베다를 비롯해 당시 고도의 학문 세계를 훌륭하게 학습하였습니다.
그러나 어려서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고, 어머니는 아들을 지극히 사랑했으나 출가 사문을 비방하며 미신을 믿어 축생을 함부로 죽여 귀신에게 바치고 바른 인과의 도리를 믿지 않았고 그 과보로 세상을 떠나자마자 지옥에 떨어졌습니다.
효심이 지극한 목련은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신통력으로 천상계와 인간계를 두루 살펴보았으나 어머니 모습을 찾을 길이 없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지옥계에 들렀다가 아귀도에 빠진 어머니를 찾은 목건련은 부처님께 도움을 청했습니다. 어머니를 영원한 고통으로부터 구제하기 위해 부처님의 말씀에 따라 안거가 끝나는 음력 7월 15일 청정한 스님들께 공양을 올렸습니다. 그것이 먼저 세상을 떠난 부모와 구천을 떠도는 영혼을 구제하고 천도하는 우란분절의 기원이 되었습니다.
부처님의 제자들 중 신통력을 얻은 이는 많고도 많았으나 목건련의 능력은 그 중에서도 최고였습니다. 부처님이 어머니인 마야부인을 위해 극락세계 도리천으로 설법하러 간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대중의 요구에 따라 지상에서 모습을 감춘 부처님을 부르러 신통력이 제일이었던 목건련이 도리천에 다녀오기도 했습니다. 또 말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은 채 쾌락을 추구하는 제석천왕을 혼내주기 위해 단독으로 도리천에 간 적도 있었습니다. 제 집처럼 극락을 오갔음에도 정작 자신의 어머니는 지옥에서 고통 받는 것을 지켜봐야 했으니 아무리 수행자라 할지라도 안타까움은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이런 인간적인 모습이 목건련을 신비로운 환상 속의 인물이 아니라 친근하게 느껴지게 하는 이유일 것입니다.
목건련의 신통력은 불법의 희유함을 믿지 않는 대중들에게 엄청난 영향력을 끼쳤고 그가 가는 곳마다 불법에 귀의하는 이들이 늘어났습니다. 어디서나 뛰어난 사람은 질투와 시기의 대상이 되는 법이라 목건련도 질투하는 이들이 많았습니다. 특히 지역사회에서 존경받으며 활발하게 활동해왔던 외도들에게 목건련은 그야말로 질시의 대상이었습니다. 자이나교의 창시자인 니간타 문하의 고행자들이 목건련은 살해할 계획을 세우고 자객들을 매수했습니다. 자객들은 목건련이 머무는 수도원을 포위하고 두 번이나 살해를 시도하였으나 신통력으로 이를 막아냈습니다. 하지만 정해진 숙명을 바꿀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 목건련은 기꺼이 자신의 죽음을 받아들입니다. 목건련의 신통력이라면 피하고도 남았을 폭력집단의 돌팔매질과 구타 앞에서 아무런 저항을 하지 않은 것입니다.
목건련은 숨이 끊어질 때까지 폭행을 당했고 결국 뼈가 부러지고 살이 너덜거릴 정도로 만신창이가 된 육신은 아무 곳에나 버려졌습니다. 숨이 끊어지기 직전 마지막 힘을 다해 부처님과 사리불 앞에 모습을 드러냈고 그것이 목건련 최후의 신통력이었습니다. 부처님의 도움으로 목건련의 육신이 버려진 곳을 찾은 사리불은 오랜 친구의 마지막 순간을 함께 했습니다. 슬퍼하는 사리불에게 목건련은 담담하게 말합니다.
"모든 것은 내가 전생에 지은 과보 때문이네. 그러니 너무 슬퍼하지 말게."
목건련은 과거 생에 아내의 꼬드김에 넘어가 눈 먼 부모를 숲속으로 데리고 가 때려죽인 적이 있었습니다. 이 악업으로 인해 세세생생 여러 부처님을 모시고 수행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항상 처참한 죽음이라는 결과를 맞이했던 것입니다. 이제, 목건련은 스스로 자신의 과보를 받아들이고 업장에서 벗어남으로써 윤희의 고통에서 벗어나 완전한 열반을 이루게 된 것입니다. 과정의 처참함은 차마 말할 수 없을 정도였으나 목건련의 열반은 자신의 악업으로 인한 과보를 받아들임을오써 윤회의 고통을 끊어버린 고귀한 행동이었습니다.
더구나 땅 위에 기어다니는 미물조차 밟지 않는다는 불살생의 아힘사(ahimsa)를 철저히 고수하는 자이나교(Jainism)에 의한 목건련의 순교적인 죽음은 당시 인도 사회에 큰 파란을 일으켰습니다.
많은 제자들이 부처님께 목건련 존자가 그렇게 뛰어난 신통력으로 왜 자신의 죽음을 막지 못했는 지 물을 때마다 부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이미 깨달은 이에게 나고 죽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라고 말입니다. 궁극의 자비를 실천하고 최초로 순교한 목건련은 최후의 순간에도 목건련다웠습니다.
목건련이 열반한 뒤, 죽마고우이자 평생의 도반이었던 사리불은 부처님께 허락을 구하고 고향으로 돌아가 열반에 들었습니다. 그리고 두 사람의 부재로 인한 쓸쓸함을 감추지 않으셨던 부처님도 오래지 않아 반열반에 드셨습니다. 한 길을 걸었던 인류의 스승과 빛나는 두 제자는 그렇게 각자의 방식으로 서로를 아끼며 이생에서의 마지막을 맞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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