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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명절과 세시풍속 |
- 세시풍속의 의의 - 세시풍속의 역사 - 세시풍속의 구분 (봄) - 세시풍속의 구분 (여름) - 세시풍속의 구분 (가을) - 세시풍속의 구분 (겨울) - 세시풍속의 구분 (윤달) |
KC대학교 (실천예절지도사과정)
강사 손 주 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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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명절과 세시풍속의 의미
동의어 세시(歲時), 세사(歲事), 월령(月令), 시령(時令), 세시의례
□ 세시풍속(歲時風俗) : 주기전승의례(週期傳承儀禮)
- 해마다 같은 시기에 반복되는 농경의례로서 생활의 마디마다 활력을 불어주는 축제임.. - 농경사회에서 풍농을 예측하거나 기원하는 의례임. - 명절, 24절후(節侯) 시기에 맞추어 농경에 따른 의례와 놀이 등 다양한 내용을 담고 있음. - 농경사회에서 세시풍속의 기준이 되는 역법(曆法)은 음력(태음력)임.
□ 세시풍속의 역사
상고시대 : 부여의 영고(迎鼓), 고구려의 동맹(東盟), 예의 무천(舞天), 마한의 농공시필기 등
삼국시대 : 추석·수리(단오)·유두·대보름 등
조선시대 : <동국세시기>·<열양세시기>·〈경도잡지〉 등에 잘 나타나 있다.
우리나라 세시풍속 기록 : ①신찬팔도지리지(세종/맹사성 不傳) ②신증동국여지승람(중종/이행) ③동경잡기(고려/작자미상) ④경도잡지(영정조/유득공/한양의 세시풍속) ⑤열양세시기(순조/김매순/한양의 세시풍속) ⑥동국세시기(현종/홍석모/우리나라 전체 세시풍속) 유네스코 세계무형유산 등재 : 강릉단오제, 강강술레 |
□ 세시풍속의 구분 ( 봄 ) → 대표명절 “설”, “한식”
음력 정월부터 3월까지임. 봄철 세시풍속은 정월 설날부터 대보름 사이에 집중되며, 정월 에는 1년 농사를 예측하는 세시풍속이 다양하게 행해진다. 대표적인 의례로 설날의 차례 와 성묘, 정초의 안택고사, 대보름의 액막이고사 또는 용궁맞이를 들 수 있다.
- 설(1월) : 야광귀 쫓기, 복조리 사기, 설빔짓기, 차례·세배, 떡국먹기, 문안비, 성묘, 원일소발, 세화(닭, 호랑이), 법고(떡 돌리기), 승경도놀이, 세시놀이(줄다리기· 널뛰기·윷놀이·연날리기·제기차기·돈치기 등), 토정비결 보기,
- 정월대보름 : 부럼, 더위팔기, 귀밝이술, 용알밥, 찰밥(오곡밥)먹기, 백가반, 개굶기기, 다리밟기, 달맞이, 달집태우기, 소지연 띄우기, 부잣집 부엌 흙 훔치기, 소 운동시키기, 논두렁 잡초태우기, 뱃가릿대 세우기, 대추나무 시집보내기,동신제(지신밟기,줄다리기· 다리밟기·고싸움·나무쇠싸움·동채싸움·석전·망우리[망월=望月]돌리기·횃불싸움·놋다리 밟기·기와밟기·탈놀이·석전(石戰,돌팔매싸움)·기세배,널뛰기·제기차기·연날리기· 회회아 (回回兒)·돈던지기[擲錢] 등
- 입춘(立春) : 立春祝 (입춘대길, 국태민안, 건양다경 등), 상치세전(경로행사), 보리점,
정월대보름 찰밥(오곡밥)먹기 유래 『삼국유사』권1, 기이(紀異) 사금갑(射琴匣)조에는 정월 대보름과 관련하여 오곡밥 먹는 풍습의 유래가 소개되어 있다. 신라 21대 소지왕(炤智王) 10년 정월 15일 왕이 천천장(天泉停)에 행차했을 때 날아온 까마귀가 편지를 한장 주고 갔으며 그편지에는 뜯어보면 둘이죽고 뜯지 않으면 혼자가 죽는다고 적혀 있었다 소지왕은 혼자라는 것은 왕 자신을 가르키는 것이라 생각하고 뜯어보았는데, “즉시 궁궐로 돌아가서 사금갑을 쏘아라 ! ”라는 글이 적혀 있어서 그대로 실행을 하여보니, 왕비와 간신의 간통사건이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 둘을 활로 쏘아 죽였으며 까마귀가 왕을 깨닫게 하여, 나라와 왕의 목숨을 지켰다고 하여서 소지왕은 매년 보름날마다 까마귀를 위하여 제를 올리며 찰밥(오곡밥)을 먹으며 근신하였다고 한다. |
- 2 월 : 2월부터는 농사에 전념해야 하므로 놀이가 그다지 성하지는 않다. 하지만 세시풍속이 긴장과 이완의 리듬을 조절하듯이 바쁜 철이라도 계절에는 민감하다. 봄꽃이 피기 시작하면 놀이가 시작되니 대표적인 것이 화전놀이이다.
: 영등할머니 고사(머슴날), 영등당굿, 콩 볶아 먹기, 썩은 새끼줄로 목매기, 노래기 쫓기, 주머니 세우기, 중화절(2월1일), 향랑각시, 좀생이점, 머슴날, 오신반, 처용불러내기 등
영등할머니 관련 설화 2월 초하루는 영등할머니가 하늘에서 내려온다고 한다. 이날은 비가 와야 풍년이 든다고 전해진다. 영등할머니가 지상에 내려올 때 딸을 동행하면 바람이 잔잔하지만 며느리와 동행하면 비바람이 친다고 한다. 딸을 데려올 때는 곱게 차려입은 딸의 다홍치마가 나부껴서 예쁘게 보이도록 바람이 잔잔하게 부는 것이며, 며느리를 데리고 올 때에는 옷이 비에 젖어 밉게 보이도록 비바람이 친다는 것이다. 하지만 며느리와 동행해야 풍년이 든다고 여긴다. 이를 고부간의 갈등과 관련시키기도 하지만 며느리와 동행해야 풍년이 든다는 점에서 우리의 전통적인 가족관을 찾아볼 수 있다. 즉 딸은 ‘출가외인’, 며느리는 비록 남의 집에서 왔지만 ‘우리가족’이라는 의식이 깔려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
- 3 월 : 3월삼짓날(제비오는 날) 바로 다음이 청명(봄밭갈이 시작)이고 보통 다음날이 한식인데 동시에 식목일(양력4월5일)과도 거의 겹치게 된다. 대부분의 농가에서는 청명을 기하여서 봄일 을 시작하므로 이날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였다.
농사력으로는 청명 무렵에 논밭둑의 손질을 하는 가래질을 시작하는데, 이것은 특히 논농사의 준비작업이 된다. 다음 절기인 곡우 무렵에는 못자리판도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농사를 많이 짓는 경우에는 일꾼을 구하기가 어려워서, 청명·곡우 무렵이면 서둘러 일꾼을 구하였다.
○ 한식(寒食) : 한식날은 쑥떡으로 차례 지냄, 산소 무덤에 떼 입히기, 성묘 한식절사(寒食節祀), 찬밥 먹기, 봄갈이 시작,
○ 청명일(淸明日) : 대부분의 농가에서는 이 날을 기점으로 농사일이 시작된다. 조선시대는 대궐에서 버드나무와 느릅나무에 불을 당겨 각사(各司)에 나누어 주었다.
○ 화류(花柳)놀이 : 3월에 강남 제비가 돌아오고 진달래꽃이 피기 시작하면 “꽃놀이”를 간다.
○ 화전(花煎)놀이 : 진달래 꽃전(꽃지짐) 지져먹기, ‘화전(花煎)놀이.
○ 나비 점, 석전제(釋奠祭),
‘개자추(介子推) 설화’ : 옛날 중국 춘추시대에 진(晉)나라의 조정에 가정풍파가 있어 임금의 아들이 망명할 때 개자추라는 충신이 뒤를 따라서 19년 동안 각 나라로 돌아다녔다. 그 후 난이 평정되어 임금의 아들 문공(文公)이 임금이 되었으나 개자추의 공을 잊어버리고 은공을 갚지 않았다. 개자추는 원망하는 일이 없이 어머니를 모시고 산으로 들어가서 숨고 말았다. 뒤늦게 잘못을 깨달은 임금이 개자추를 찾았으나 그는 나타나지 않았다. 산에 불을 지르면 그가 나오리라 생각하고 불을 질렀으나 나오지 않고 그만 불에 타서 숨졌다. 그 날이 한식이었다. 그래서 그 후부터 불에 타 숨진 개자추를 위로하여 이 날 화기(火氣)를 멀리하고 찬밥을 먹는 풍속이 생겼다.고 한다. |
□ 세시풍속의 구분 ( 여름 ) → 대표명절 4월초파일, 단오, 6월유두, 복날.
여름은 음력 4월부터 6월에 해당된다. 여름 의례로서 4월 초파일, 5월 단오, 6월 유두 명절이 있는데, 이 시기에는 농작물이 한창 성장할 때여서 농사의 풍작을 기원하는 제사를 지내며 기우제도 지낸다.『조선왕조실록』에도 기우제에 관련된 기록은 대부분 4월부터 7월까지 집중되어 있다. 또 더위를 이길 수 있는 놀이가 행해졌으며, 단오에는 풍작을 기원하는 제사(예: 강릉단오제)와 6월 유두에는 더위를 쫓기 위한 다양한 놀이가 행하여졌다.
- 초파일 (4 월) : 4월 8일은 석가모니의 탄생일로서 흔히 초파일로 부른다. 이날에는 절을 찾아 재를 올리고 연등(燃燈)을 하고 탑돌이를 하며 극락왕생을 기원하였다. 또한 줄불놀이로 밤을 한층 밝게 했다.
민가에서는 느티떡과 검은 콩볶음, 어채, 미나리강회 등을 만들어 먹으면서 부처님의 은공을 빌기도 한다. 쑥 범벅, 수리치 범벅 등도 유명한 계절음식이다.
- 단오제 (5 월) : 5월 5일은 단오·천중절(天中節)·중오절(重午節)·수릿날·단양(端陽) 등 여러 이름으로 불리어진다. 동국세시기에는 4대절사(四大節祀)라 하여 설(正朝)·한식(寒食)·단오(端午)·추석(秋夕)을 들었다. 단오날이면 궁중에서는 단오제(端午祭)를 지냈으며, 민간에서 행해지던 단오제의 대표적인 것은 강릉단오제로 전국적인 규모로 치루어졌다.
단오날은 농경의 풍작을 기원하는 제삿날이었으나 차츰 농촌의 명절로 되어 이날이면 각 가정에서는 수리치떡(쑥떡) 등 맛있는 음식을 마련하여 단오차례를 지내기도 하고, 여자는 창포에 머리를 감고 그네를 뛰며, 남자는 씨름 등의 놀이로 하루를 즐겼다.세시풍속인 단오제, 창포머리감기, 대추나무 시집보내기, 부채·법신·목기제작 택견시범, 전통무용극, 남사당놀이, 북청사자놀음 등 민속공연과 민속놀이와 시민들이 직접 참여할 수 있는 투호놀이, 가족줄넘기, 널뛰기, 그네뛰기, 민속탈놀이 등이 마련된다.
태종우 : “조선조 제3대 국왕 태종은 신(神)을 공경하고 백성을 지극히 염려하는 성왕이었다. 그런데 재위 22년 태종은 병에 걸려 앓아눕게 된다. 그러자 조선에 때 아닌 한발이 밀어 닥쳐 백성의 시름은 늘어만 갔다. 태종이 세상을 떠날 때 세종에게 ‘내 상제(上帝)에게 청하여 비를 오게 하여 백성을 구제하리라’ 하였다. 태종이 세상을 떠나자 소나기가 쏟아져 그 해에 대 풍년이 들었다. 백성들은 바로 태종의 은혜라고 입을 모았고 이후 5월 10일에 오는 비를 태종우라 했다.” 실제로 이 무렵이면 모내기 철로 이 때 비가 내리지 않으면 한 해 농사를 망치기 일쑤이다.『조선왕조실록』에도 기우제에 관련된 기록은 대부분 4월부터 7월까지 집중되어 있다. |
단오날에 뜯는 쑥과 익모초는 약효가 있으며, 집집마다 나쁜 귀신을 쫓는다 하여 문 위에 부적을 만들어 붙였다. 대궐의 내의원에서는 단오날 제호탕과 옥추단을 만들고 관상감에서는 역서(曆書)를 만들어 임금이 제신들에게 내려주었다.
- 유두 (6 월) : 6월 15일은 유두(流頭)라 하는데 부녀자들이 동쪽으로 흐르는 맑은 냇물을 찾아 머리 감는 풍속이 전한다(동쪽은 밝고 맑다는 뜻). 또한 논에 가서 빈대떡을 부쳐 물가에 놓고 고사를 지낸다. 빈대떡을 논에 가서 버리는 행위는 논에 가서 기름 냄새를 피워야 벌레가 없어진다고 해서 행해졌다. 이날 동네 사람들이 물가에 나와 발을 담그고 수박이나 참외를 먹는다.
탁족회(濯足會) : 여름철에 산수가 좋은 곳을 찾아다니며 시를 낭송하는 등 운치 있는 선비들의 모임이었다. 그러나 후대에 와서는 물놀이로의 성격이 강해졌다.
- 복날에는 물가에서 천렵을 하고, 매운탕을 끓여 먹으며 더위를 식힌다. 민어탕과 육개장은 복날의 음식이며 보신탕(개장국)은 복날을 대표하는 음식이다. 이 밖에도 삼계탕을 먹고 참외·수박을 차갑게 한 후 먹는다. 초복은 하지가 지난 뒤 일간이 세번째 庚이 드는 날 / 중복은 하지가 지난 뒤 일간이 네번째 庚이 드는 날 / 말복은 입추가 지난 뒤 일간이 첫번째 庚이 드는 날 이다.(2015초복 7월13일)
복날의 유래 : 진(桭)나라가 처음으로 복날에 제사하였으며 한나라 풍속에서도 "진나라 풍속을 그대로 좇았다"고 했다. "한서“에 복(伏)이라고 한 것은 음기가 일어나고자 하나 양기에 압박되어 상승하지 못하고 음기가 엎드려 있는 날이라는 뜻으로 복일(伏日)이라고 이름한 것이다. 그럼에도 왜 복날이면 견공들이 재앙을 면하지 못하는가. 그 답은 음양오행설에 있다. 음양오행으로 보면 여름은 불 즉 화(火)에 속한다. 화(火)가 극성하는 여름철에는 화(火)가 쇠(金)를 누르는 병리적 현상이 일어난다. 쇠(金)도 여기에 굴복해 엎드린다는 것이다. 이러니 인간인들 오죽하겠는가. 무기력해지고 허약해질 수밖에 없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금(金)에 해당하는 경일(복날)에 몸을 보충하여야 하는데 개(犬)가 또한 이 금(金)에 속한다. 이러니 견공들로서는 황당하기 짝이 없고 분통터지는 설(說)이지만 별다른 대책이 없으니 기가 막힐 것이다. 삼복기간에는 체온이 올라가는 것을 막기 위해 피부 근처에 다른 철보다 혈액이 많이 몰린다. 결과 위장과 근육의 혈액순환에 지장이 온다. 여름이면 식욕이 떨어지고 만성피로에 시달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먹는 것 시원찮으며 농사일은 힘겹던 전통사회에서는 이런 고통을 극복하기 위해서 복(伏)날 보신(保身)이라는 말로 영양섭취를 했다. |
□ 세시풍속의 구분 ( 가을 ) → 대표명절 칠석, 백중, “추석”, 중양절.
가을은 음력 7월부터 9월이며, 가을철 세시풍속으로는 칠석· 백중· 추석· 중양절이 있다. 칠석은 음력 7월7일로 양수인 홀수 7이 겹치는 날이어서 길일로 여긴다. 이 날은 견우와 직녀가 까막까치들이 놓은 오작교(烏鵲橋)에서 한 해에 한 번씩 만난다는 유래담이 있는 날이다.
칠석날 전설 : 양귀비(楊貴妃)의 혼이 재생하여 장생전(長生殿)에서 오매불망 그리워하던 당명황(唐明皇)을 만나 “하늘에서는 원컨대 비익조(比翼鳥:암수의 눈과 날개가 하나씩이라 짝을 짓지 않으면 날지 못한다는 전설상의 새)가 되고 땅에서는 원컨대 연리지(連理枝:한 나무의 가지가 다른 나무의 가지와 맞닿아 결이 서로 통한 것. 화목한 부부나 남녀 사이를 일컫는 말)가 되자”고 했다는 내용도 전한다. 우리나라 <춘향전에서 춘향과 이도령의 가약을 맺어주던 광한루(廣寒樓)의 다리는, 견우와 직녀가 만나는 다리와 이름이 같은 오작교였다. |
백중은 음력 7월 15일로 세벌김매기가 끝난 후 여름철 휴한기에 휴식을 취하는 날. 음식과 술을 나누어 먹으며 백중놀이를 즐기면서 하루를 보내던 농민명절을 뜻한다.백종(百種)·중원(中元), 또는 망혼일(亡魂日)이라고도 한다. 이 무렵 백가지 곡식의 씨앗[種子]을 갖추어 놓았다 하여 유래된 명칭이다.
추석은 음력 팔월 보름을 일컫는 말. 가을의 한가운데 달이며 또한 팔월의 한가운데 날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는 연중 으뜸 명절이다. 가배(嘉俳), 가배일(嘉俳日), 가위, 한가위, 중추(仲秋), 중추절(仲秋節), 중추가절(仲秋佳節)이라고도 한다.
중양절은 음력 9월 9일을 가리키는 날로 날짜와 달의 숫자가 같은 중일(重日) 명절(名節)의 하나. 중일 명절은 3월 3일, 5월 5일, 7월 7일, 9월 9일 같이 홀수 곧 양수(陽數)가 겹치는 날에만 해당하므로 이날들이 모두 중양(重陽)이지만 특히 9월 9일을 가리켜 중양이라고 하며 중구(重九)라고도 한다. 음력 삼월 삼짇날 강남에서 온 제비가 이때 다시 돌아간다고 한다. 가을 하늘 높이 떠나가는 철새를 보며 한해의 수확을 마무리하는 계절이기도 하다.
- 칠석 (7 월) : 처녀들은 직녀성에다 바느질솜씨가 늘기를 빌었고, 글공부하는 소년들은 두 별을 소재로 시를 지었다.
근래까지 우리나라에서는 칠석날 바느질 솜씨를 점치는 풍속이 행해졌다. 장독대 위에다 정화수(井華水)를 떠 놓고, 그 위에 고운 재를 평평하게 담은 쟁반을 올려놓고 처녀들이 바느질 솜씨를 좋게 해 달라고 축원한다. 그 이튿날 나가봐서 재 위에 무엇이 지나간 흔적이 있으면 영험이 나타났다고 한다. |
- 걸교제(7 월) : 칠석날 밤 처녀와 부인들이 바느질감과 과일을 마당에 차려놓고 바느질 솜씨가 있게 해달라는 이른바 걸교제(乞巧祭)를 지냈다.
- 칠성맞이 굿 : 칠석은 수명신(壽命神)으로 알려진 북두칠성에게 수명장수를 기원한다. 가족의 무병장수와 가내의 평안을 빈다. 어느 가정에서는 무당을 불러 칠성맞이 굿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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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석날은 견우와 직녀가 은하수를 사이에 두고 애타게 서로를 그리워하다가 일 년에 한 번 만나는 날이다. 아낙네들은 북두칠성을 보며 무병장수를 빌고 칠성당(七星堂) 앞에 백설기를 쪄 놓고 소원을 빌기도 한다. 그리고 처녀들은 바느질을 잘 하게 해달라고 빈다. 소년들은 습기 찬 장롱 속의 책들을 햇볕에 내놓아 말리며 학문이 높아지기를 기원한다. 칠석날은 터주단지에 곡물을 올려놓고 집안의 안녕을 위해 불공을 드린다. 몇몇 집에서는 이웃에서 들어오는 물건들을 왕신(王神)단지 위에 올려놓고 제(祭)를 지내기도 한다. |
견우와 직녀 설화는 중국 고대의 설화가 우리나라에 전래된 것이다. 중국의 『제해기(齊諧記)』는 남북조시대 송나라(420∼479) 때 동양무의(東陽無疑)가 찬(撰)한 책으로, 기이한 이야기가 많이 수록되어 있다. “7월 초이레 칠석날은 하늘에 있는 견우와 직녀가 1년에 한번 만나는 날이다. 이들은 원래 부지런히 일하는 젊은이들이었으나 혼인 후 일도 하지 않고 게으름을 피워 옥황상제가 떼어놓고 1년에 한 번씩 칠석날에만 만나도록 하였다. 그러기에 이 날 내리는 비는 견우와 직녀가 만난 기쁨의 눈물이다. 칠석날에는 까마귀와 까치가 전혀 보이지 않는데 이는 견우와 직녀가 만날 수 있도록 이들이 다리를 놓아주기 때문이다. 까마귀와 까치가 놓은 다리이기에 오작교라고 한다. 칠석이 지난 뒤 까마귀와 까치를 보면 머리털이 모두 빠져 있다. 이것은 오작교를 만드느라 모두 벗겨졌기 때문이라고 한다.” |
- 백중(8 월) : 백중날을 일꾼들의 명절이라고 한다. 씨름판이 벌어지고 농악이 있어서 농사꾼 노비들이 맘껏 즐길 수 있었다.
- 우란분회(盂蘭盆會) : 백중은 불가(佛家)의 명절이기도 하다. 절에서는 우란분회(盂蘭盆會)라 하여 고혼을 위로하는 재를 올린다.
○ 호미 씻기[洗銑] : 7월 백중이 가까워지면 밭농사가 거의 끝나게 되어 호미가 필요 없으므로 호미를 씻어 잘 보관해 둔다는 ‘호미 씻기[洗銑]’라는 행사를 마을별로 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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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칠석날 아침저녁으로는 대개 비가 오는데, 아침의 비는 견우와 직녀가 만나는 기쁨의 눈물이고 저녁의 비 는 이별해야 하는 슬픔의 눈물이라 한다. - 백중절에는 마을마다 동제를 지낸 다. 마을의 농사일이나 대소사 등을 의논하고 협의한다. - 삼복절에는 궁중에서 더위를 이겨 내라는 뜻에서 높은 벼슬아치들에게 빙표를 주어 관의 장빙고에 가서 얼음을 타 가게 하였다. |
- 추석 (8 월) : 중추절(仲秋節)
추석에 행해졌던 강강술래, 동채싸움, 줄다리기 등은 무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전승되고 있다. 한가위는 만월의 명절로서 다음과 같은 의미를 가진다.
첫째, 달의 고마움에 감사하고 달을 위했으며 떡을 해도 달떡을 했다. 중국은 만월을 상징하는 월병을 / 우리는 송편이라 해서 반월형의 떡을 했다.
둘째, 만월야를 계기로 사람이 신에게 대한 제의가 있었다. 풍년에 감사하고 또 명년의 풍작을 기대했으며 밭고랑을 기는 행위도 소박한 기풍행위의 하나이다. 농경민족의 최대소원은 풍작을 이루는 일이기에 한가위를 기해서 신에게 청하고 감사했다.
셋째, 오락을 풍성하게 했다. 풍작의 소원을 이루었고 포식하고 나니 할 일은 놀이를 즐기는 일이다. 농부들에 의해서 소놀이, 거북놀이, 농악, 씨름이 행해지고 부녀자들에 의해, 강강술래, 학동들에 의해서 원놀이, 가마싸움 등의 놀이가 흥겹게 있었다. 이러한 놀이는 만월과 풍작을 즐기는 축제이기도 했다.
넷째, 한가위는 혈연간의 화목을 확인하고 추원보본의 실천의 계기가 되었다. 분산되어 사는 혈연들이 집결해서 협동하고 화목하며 같은 조상의 제의에 참여하는 기쁨이 있었다.
- 추석연과 완월연 : 조선 성종은 이 날을 기해 인정전(仁政殿)에서 의정부와 6조에서 올리는 추석연을 받았고 신하들은 추석 완월연(玩月宴)을 베풀게 되었다.
- 반보기 : 이 추석 무렵이면 자주 만나지 못하는 일가친척의 부인네들 사이에 '반보기'를 하였다. 추석을 전후하여 서로 날짜와 장소를 통기하여 중간지점에서 만나 회포를 풀고 헤어졌다. 특히 친정어머니와 출가한 딸 사이에 서로 말미를 얻기 어려울 때 이 반나절 반보기를 하였다.
- 차례와 성묘 : 8월에는 온갖 곡식들이 성숙하고 풍요로워지는데 추석에는 햇곡식과 햇과일로 조상의 은덕에 감사하다는 뜻으로 차례를 지내며 산소에 가서 성묘를 한다.
- 강강술래 : 추석날 밤에는 강강술래와 달맞이가 행해졌다. 추석과 같은 보름명절에는 강강술래와 같이 원무(圓舞) 놀이가 중심을 이루는데 이는 보름달의 형상을 의미한다.
- 석전제(釋奠祭) 8월 첫 정일(丁日)에 성균관과 지방 향교에서 공자 추계석전을 지낸다.
- 추석음식 : 송편·인병(인절미)·율단자(栗團子) 같은 절식을 먹는다.
- 추석날 속설 : 추석에 비가 내리면 이듬해 흉년이 든다고 한다. 특히 다음 해 보리농사가 흉작이 된다. 또 구름이 너무 많거나 없어도 보리농사가 흉년이다.
- 단풍놀이 : 중양절에는 산에 올라가 국화로 빚은 술과 음식을 먹으며 단풍을 즐겼다.
- 여단제 : 중구일에 여단제(厲壇祭)를 지냈다. 무주고혼(無主孤魂)을 위령하는 제사다. 조선시대에는 서울과 군현의 일묘삼단(一廟三壇)에서 제사를 지냈다. 문묘·사직단·성황단·여단이다.
- 풍어제 : 동해안 마을에서는 중구에 풍어제를 지내기도 한다. 풍어제는 3년·5년·10년마다 한 번씩 지내는데 그 날짜는 마을마다 다르다. 몇 년마다 한 번씩 지내는 풍어제는 무당을 불러 크게 굿을 하는데 특별히 올리는 굿이라 하여 별신굿이라 일컫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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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력 9월 9일은 ‘9’라는 양수가 두 번 겹치기 때문에 중양절(重陽節)이라고 한다. 삼월에 왔던 제비가 다시 강남으로 돌아가는 날이라 하고 모기, 뱀, 개구리 등도 이때 쯤이면 사라진다. 3월 3일 삼짇날에 땅으로부터 나왔던 모든 동물들이 다시 땅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이 때부터 가을이 가고 겨울이 시작되는 것이다. 중양절에는 9월의 꽃이 국화인 만큼 이날 국화전을 부쳐 먹고 산소에 가서 제사를 지내는데 특별한 일이 있어서 추석에 제사를 지내지 못한 사람이 지내는 것이다. 중양절에 이렇다 할 행사가 없는 것은 추수가 한창일 때라 일손이 바쁘기 때문이라고 생각되는데 선조들의 합리적인 생활방식을 여기서도 엿볼 수 있다. |
□ 세시풍속의 구분 ( 겨울 )
시월은 상달[上月], 곧 으뜸의 달로서 각종 제례가 집중되어 있다. 고대 제천의례(祭天儀禮)였던 고구려의 동맹, 부여 영고, 예의 무천, 삼한의 소도 등이 모두 10월 제사였다. 10월 3일은 단군이 우리나라를 건국한 날로 대종교(大倧敎)에서는 이 날에 대제(大祭)를 지낸다. 원래 개천절은 음력 10월 3일이지만 ‘국경일에 관한 법률’에 의해 양력 10월 3일을 개천절로 정하고 국경일로 하였다.
- 성주굿 (10 월) : 10월 상달에 각 가정에서는 길일(吉日)을 잡아 고사를 지낸다. 상달의 고사는 추수감사제의 성격을 지닌 천신제(薦新祭)이기도 하다.
최남선은《조선상식(朝鮮常識)》에서 지방마다 고사 · 안택 · 도신(禱神)제 등 여러 이름으로 불리는 고사를 다음과 같이 분석했다. 비교적 규모가 작은 의례를 '고시레' / 굿의 규모가 아닌 중간 정도의 의례를 '고사' / 장구를 울리고 무악(巫樂)을 갖추어 춤을 추는 등 규모가 큰 의례를 '굿'이라고 하였다. |
- 동제 (도당굿 : 安宅굿) : 10월이면 중부 이북에서는 마을굿으로 동제를 지냈다.
- 시제 (10 월) : 10월15일을 전후해서 각 문중은 시제를 지낸다. 4대조까지는 집에서 차례와 기제사로 받들지만 5대조부터는 산소로 옮겨 1년에 한번 문중이 함께 모시는 것이 시제(시향)이다.
- 손돌바람 [孫乭風] : 손돌의 기일인 10월 20일 경에는 바람이 무척 세차게 불고 추운데 이를 손돌바람 또는 손석풍(孫石風)이라고 부른다.
손돌은 몽고(원나라)의 침입으로 고려 고종이 강화도로 피난할 때 뱃길을 잡은 뱃사공으로 거센 물살에 배가 심하게 흔들리자 왕은 위험한 곳으로 몰아간다고 의심하고, 손돌을 참수 하였다. 그러자 손돌은 물 위에 작은 바가지를 띄워 그 바가지를 따라가면 강화도에 무사히 도착할 것이라고 말한 뒤 죽음을 받아 들였다. 무사히 도착한 왕은 자신의 경솔함을 깨닫고 후하게 장사를 치른 뒤 사당을 세워 억울하게 죽은 손돌의 넋을 위로하였다 한다. 김포와 강화사이에 있는 강화해협을 염하강(鹽河江)이라고 부르며 또 "손돌목"이라고 한다. 손돌목은 물살이 빠른 위험한 지역으로 실제 태조4년(1395년)에 16척, 태종 3년 (1403년) 에 30척, 태종 14년(1414년)에 60척의 조운선이 침몰한 기록이 있다. 손돌의 기일(음력 10월 20일) 전후에 부는 바람은 매섭게 추워 '손돌바람'이라 부른다. 『열양세시기』 와 『동국세시기』에 기록되어 있다. |
- 김장 (11 월) : 겨울 저장음식으로 대표적인 것이 김장이다.
- 달력선물 (11 월) : 조선시대에는 '하선동력(夏扇冬曆)'이라 하여 단오나 하지에 부채를 선물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동지에 서로 달력을 선물하는 풍습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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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지는 일년 중에 밤이 가장 길고 낮이 가장 짧은 날이다. 이 날을 계기로 낮이 다시 길어지기 시작하여 양(陽)의 기운이 싹트는 사실상 새해의 시작을 알리는 절기이다. 동지를 아세(亞歲 : 작은 설)라고 하며 팥죽을 쑤어 집안의 주요 가신에게 고사를 지낸다. 고대 중국에서는 동지를 십이지의 시작인 자월(子月), 즉 새 해의 첫 달로 쳤으며, 동요 "까치까치 설날은 어저께고요"에서 말하는 '까치설'이 바로 이 '아세설'이다. |
중국의《형초세시기(荊楚歲時記)》에는 "공공씨의 불효자 아들이 동짓날에 죽어서 역질(疫疾)귀신이 되었는데, 그 아들이 생전에 팥을 두려워하여 팥죽을 쑤어 물리쳤다" 라는 기록이 있다. |
《농가월령가 (農家月令歌)》 11월 조에 기록된 노래 / 동지는 명일(名日)이라 일양(一陽)이 생(生)하도다 시식(時食)으로 팥죽을 쑤어 이웃과 즐기리라. 새 책력 반포하니 내년 절후(節侯) 어떠한고, 해 짤라 덧이 없고 밤 길기 지리하다 |
- 수세(守歲) (12 월) : 섣달 그믐날 온 집안에 불을 밝히고 새해 맞을 준비를 한다. 또한 이 날 밤에 방, 뜰, 부엌, 곳간, 변소 할 것 없이 집안 구석구석에 불을 밝혀 놓고 잠을 자지 않는다.
- 납향(臘享) (12 월) : 동지로부터 세 번째 미일(未日)을 납일(臘日)이라고 한다. 납일은 대개 연말 무렵이 된다. 나라에서는 이 날 종묘와 사직에 큰 제사를 올렸는데 ‘납향(臘享)’이라고 했다.
- 납약(臘藥) (12 월) : 납일에는 내의원에서 각종 환약을 만들어 나누어주었다.
- 참새잡기 : 납일 밤에 농촌에서는 새잡기를 하는 민속이 있다. 즉, 청소년들이 패를 지어 새통발을 가지고 다니면서 새가 사는 지붕의 추녀를 찾아다닌다.
- 대청소, 세찬준비 : 섣달 그믐날을 제석날이라 하고 다음 날이 바로 설날이다. 그래서 제석에는 설날 차례를 지내기 위해 여러 가지 음식을 만드는데, 이를 세찬(歲饌)이라 한다.
- 묵은세배 : 섣달 그믐날 저녁에 사당에 절하고 가내 어른에게 절을 하는데 이를 '묵은세배'라 한다. 시집간 딸들이 친정 부모나 친척집에 가서 세배하는데 '망년과세(忘年過歲)'라 한다.
- 축귀풍속 : 대궐 안에서는 연종포(年終砲)라 하여 제석 전날에 대포를 쏘았다. 화전(火箭)을 쏘고 징과 북을 올리는데 이는 역질 귀신을 쫓는 행사이다. 또한 민간에서는 섣달 그믐 저녁 때 집안의 검불을 모아 태우는데 자정이면 청죽(靑竹)을 태운다. 묵은 해에 집안 잡귀를 쫓는 의식이다.
- 그믐날 놀이 : 주부들은 세찬과 설빔 준비를 하느라 분주한 때이다. 섣달 그믐날 잠을 자면 눈썹이 센다 하여 설을 지내기 위해 모인 온 가족과 친척이 윷놀이를 하며 밤을 샌다.
□ 세시풍속의 구분 ( 윤달 )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일상력은 태양력(양력)이지만 세시명절의 기준이 되는 역(曆)은 음력(時憲曆)이다. 이는 조선조 효종 4년(1653년)에 채택되었는데 약 250년간 사용하다가 1896년 1월 1일(음력 1895년 11월 17일)부터 태양력을 쓰게 되었다. 그러나 세시명절의 날짜는 태음력이 중심인데다 바다의 간만이나 조수 관계는 달(月)의 인력에 따른 순리이기 때문에 어업을 주업으로 하는 어촌도 태음력을 중시한다.
태양력에서 윤달과, 태음력에서 윤달의 개념은 다르다. 태양력에서는 4년에 한 번 2월이 29일로 하루 길어지는 반면 음력에서는 3년에 한 번, 또는 5년에 두 번 드는데 윤달이 드는 달도 그 때마다 달라진다. 음력 윤달은 같은 달이 반복되어 그 해에는 1년이 13개월이 된다. 윤달은 1년, 12개월에서 벗어난 달이라 하여 군달·공달[空月]·덤달·여벌달 등으로도 불린다. 윤달이 들어 있는 해를 윤년(閏年)이라고 한다.
1년은 12개월이 정상이지만 음력으로 윤달이 드는 해에는 1개월이 더 있어서 1년이 13개월이 된다. 평상시와는 다른 월력이 생겨나 이 달에 대한 인식도 평시와 다르다. 윤달은 일상적인 열두 달에서 벗어난 달이어서 신성하게 여긴다. 이렇게 신성한 달인 윤달에는 신(神)과 자유롭게 만날 수 있어 평소 꺼리는 일을 마음 놓고 할 수 있는 달로 여긴다. 그래서 “윤달에는 송장 거꾸로 세워도 탈이 없다”는 말이 있다. 반면 악귀나 잡귀에 해당되는 귀신들이 들끓어서 각별히 조심해야 한다는 양면성을 지닌 달이 윤달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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