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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기 : 53.5cm x 35
상태 : 양호하나 얼룩이 있슴
홍우철(洪祐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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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3년(순조 13)~미상. 조선 후기 문신. 자는 윤명(允明)이다.
본관은 풍산(豊山)이다.
회곡(晦谷) 홍중기(洪重箕)의 후손으로, 고조는 이조판서(吏曹判書) 정혜공(靖惠公)
홍상한(洪象漢)이고, 증조는 홍낙최(洪樂㝡)이며, 조부는 참의(參議) 홍인모(洪仁謨)이다.
부친 영명위(永明尉) 홍현주(洪顯周)와 모친 정조(正祖)의 딸 사이에서 태어났다.
부인은 이정신(李鼎臣)의 딸이다.
1830년(순조 30) 왕실의 상사(喪事) 때 종척집사(宗戚執事)로 임명되었다.
1831년(순조 31) 성균관(成均館)에서 실시한 구일제(九日製)에 참여하여 수석을 차지하였고, 전시(殿試)에 응시할 수 있는 자격을 부여받았으며,
1834년(순조 34) 식년시 문과에서 병과 7위로 급제하였다.
1836년(헌종 2)에는 품계가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올랐는데,
삼촌인 좌의정(左議政) 홍석주(洪奭周)가 임금에게 지나친 처사라며 환수(還收)를
청원하였다.
그 결과 품계는 낮아졌지만,
그의 집안은 겸손과 근검 등의 미덕으로 칭송을 받았다.
1848년(헌종 14) 이조참의(吏曹參議)에 임명되었고,
1850년(철종 1) 경기관찰사(京畿觀察使)에 임명되었다.
이후 강화부유수(江華府留守)‧성균관대사성(成均館大司成) 등을 역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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