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명 : 캐린 프리스트의 「사랑해요, 아빠 - 딸을 성공으로 이끈 69인의 아버지 이야기」
제목 : 신사임당의 아버지를 생각하다
임승덕 (충남 부여군 옥산면 옥산초등학교)
지난 3월 24일 나의 딸 사비를 포함한 우리 가족은 강릉으로 여행을 떠났다. 특별한 목적지를 정하지 않고 단지 동해바다가 보고 싶어 떠난 여정이었지만, 사비가 초등학교 2학년이 되다 보니 부모로서의 욕심이 갑자기 발동했는지 강릉 관광지도에 소개된 문화유적지를 방문하기 시작했다. 사비가 두 살 되던 무렵에 이곳 강원도에 와서 바닷가를 거닐고 설악산 권금성에 간 것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7년이 지나고, 그 시절 아빠 엄마를 웅얼웅얼 거리던 아이는 이제 부모와 수준 높은 대화도 곧잘 하는 정도가 되었으니 세월도 참 빠르구나 생각하며 열심히 돌아다니던 여행길. 하루 종일 이곳저곳을 둘러보느라 모두 녹초가 된 가운데 마지막으로 오죽헌 앞에 도착했다. 시간은 오후 5시가 넘어가고 귀향길이 걱정이 되었지만 무언지 모를 마력 같은 힘이 나와 사비를 끌어당겼다. 오죽헌이라는 명칭은 율곡 이이와 관련 있는 곳. 율곡 이이는 신사임당의 아들. 이정도의 얕은 상식을 가진 채 방문한 이곳에서 나는 율곡 이이라는 걸출한 학자를 길러낸 훌륭한 어머니이며 조선 최고의 여류문인이자 예술가인 신사임당을 예전과는 다른 느낌으로 만나게 되었다. ‘나의 딸 사비가 신사임당 같은 현모양처이자 좋은 직업을 가진 전문인으로서 성장해 나가면 좋겠구나’ 라는 막연한 바램을 간직하며 귀가길을 재촉했다.
그런 강원도 여행길의 추억과 신사임당과 오죽헌의 여운이 가시지 않던 다음날 오후 이 책을 만나게 되었다. 표지에 적힌 「딸을 성공으로 이끈 69인의 아버지 이야기」라는 부제에 들어간 성공이라는 단어에 약간의 거부감을 가진 채 페이지를 넘긴다. 사회적 지위, 경제적 부유함, 명예 등을 누리는 이들의 이야기일까? 저자로서 참여한 69인의 딸 중에는 바바라 부시, 힐러리 클린턴, 마거릿 대처 등 정치․사회적으로 저명한 인물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또한 가수, 운동선수, 사업가, 작가 등 여러 직업군의 여성들이 그들의 아버지에 대한 기억을 써내려갔다. ‘교훈적인 내용이 주를 이룰거야, 좀 식상하겠군.’ 이러한 나의 우려는 페이지를 넘기면서 금새 사라져 버렸다. 책을 읽을수록 딸의 아버지를 생각하는 진솔하고 애틋한 문장, 또한 그들의 감정을 솔직하게 전달시켜주는 직설적 번역을 통해 오히려 저자들의 아버지에 대한 생생한 기억과 느낌을 듣는 듯 했다. 딸들의 입을 통해 보여지는 아버지는 -이 책에 등장하는 딸들은 이미 세상에서 우월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일종의 상위 클래스 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재산이나 사회적 지위에 관계없이 한결같이 소탈하고 진솔하며 때로는 진지하고 유머러스한 사나이 들이었다. 이미 세 아이의 아버지로서 내가 추구하고 있는 아버지상이 상당히 근접하게 이 책속의 아버지들을 통해 이미 실천되었다고나 할까. 이 책을 통해 나의 멘토가 되 주실 만한 훌륭한 아버지를 여러분 만났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라. 네가 하는 일을 사랑하라. 그러면 너는 결코 네 인생에서 하루 더 일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라는 멋진 경구를 실천하며 매순간 열정적으로 세상을 대하셨던 아버지. ‘내 꿈을 믿고 내게 자신감을 북돋워 주는 만큼, 내가 스스로 그러한 꿈들을 이룰 수 있게, 나를 자유롭게 해주었다.’ 이렇듯 딸의 꿈을 스스로 이룰 수 있도록 변함없이 지켜봐주었던 아버지. 아이의 부양에 대한 또렷한 원칙을 ‘첫째 최상의 교육, 둘째 훌륭한 모범, 셋째 세상의 모든 사랑! 아이들을 신뢰하고, 아이들을 자유롭게 해주며, 아이들에게 독립심을 심어줄 것.’ 이렇게 세우고 실천했던 아버지. 아버지와의 추억을 흥쾌히 쓴 이 책에 등장하는 69인의 딸들의 글에서 발견한 공통점은 아버지와의 어린 시절 소중한 시간을 많이 보냈다는 것, 그리고 그들의 아버지는 말보다는 행동으로 몸소 보여주신 분이라는 것, 무엇보다도 그들은 딸에게 꿈을 믿는다면 더 많은 노력과 인내를 통해 그 꿈을 성취할 있다는 삶의 지혜를 가르쳐 주신 분들이었다.
아버지는 대개 여자아이가 만나게 되는 첫 번째 남자다. 나는 가끔 수첩에 나와 사비의 나이를 끄적거려 본다. 우리는 33살 차이가 나니까 지금 사비가 9살이고 나는 41살, 10여년 후면 사비가 20살이 되고 나는 50이 넘어서니 내가 이 아이에게 내가 경험한 삶의 지혜를 전달해주고 뭔가를 가르쳐주고 허물없이 대화를 할 수 있는 시간이 길어야 십여 년 남았다고 생각한다. 이 책에 나온 아버지들처럼 나도 나의 딸에게 좋은 아빠가 될 수 있을까? 어떤 아빠가 좋은 아빠의 기준일까? 아이가 원하는 것을 사줄 수 있는 아빠, 원하는 곳을 데려다 줄 수 있는 아빠? 이런 생각이 꼬리를 물다가 문득 나는 그날 강릉 여행길에 만났던 조선 최고의 딸을 길러낸 신사임당의 아버지가 누구일까 궁금증을 가지게 되었다. 신사임당은 19세 되던 해인 1522년에 한양 태생의 이원수와 강릉에서 혼례를 치렀다. 혼례식이 끝나면 당연히 남편을 따라 한양으로 올라가야 했으나, 신사임당의 아버지는 사임당의 예술적 능력을 높이 평가해 사임당이 결혼한 후에도 시집에 얽매이지 않고 마음껏 능력을 펼칠 수 있도록 하였다고 한다. 그녀는 18년간 강릉 친정에서 살았으니 며느리보다는 딸로서 더 오래 살았다고 할 수 있겠다. 벌써부터 10여 년 후 딸이 대학생이 되고 성인이 되어 헤어짐을 서글퍼하는 여린 아빠로서 나는 신사임당 아버지의 딸을 향한 결심에 놀라는 한편, 딸을 성공으로 이끈 69인의 서양 아버지보다 더 대단하신 분이 조선시대에 계셨기에 신사임당과 같은 위대한 여성이자 어머니가 우리 땅에 존재했구나 생각해보게 되었다.
나의 훌룡한 멘토들이시여! 나도 당신들의 딸을 향한 지극한 사랑과 인내, 헌신 그리고 그 마음을 행동으로 옮기는 결단을 본 받아 오늘도 묵묵히 최선을 다하여 하루를 십년처럼 십년을 하루처럼 나의 딸 아이가 장성할 그 날까지 건강히 아빠 노릇 해보겠습니다. 좋은 가르침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