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에서 산다는 것은
올해 초 농사짓겠다고 했더니
아랫집 선배는 몇 년 동안 해온 유기농 잎깻잎 출하를 저에게 넘겼습니다.
잎깻잎 30장 한 봉에 500원 가량.
하루에 많을 때는 200봉 이상도 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서너 달 동안에 거의 매일 출하를 해야 하니 돈으로 따지면 꽤 괜찮은 수입이 된다고 했구요.
실제 팔당에서는 가족노동으로 하루에 500봉씩 출하하는 집도 있지요.
물론 돈은 꽤 되지만 그 가족의 생활은 거의 전쟁 수준이겠지요.
열심히 모종하고 심고 가꾸었는데 출하 때 문제가 생겼습니다.
유기농산물이 인증제가 되면서 인증을 받으려는 사람들이 한꺼번에 몰렸고 빨리 처리되지 않았습니다.
깻잎 잎은 호박잎만 해지는 데 인증서는 나오지 않았고 몇 번을 따서 그냥 버리게 되었지요.
두어 번을 편법으로 출하하고 생협에도 냈지만 생산물의 95%이상이 버려졌습니다.
인증서가 나왔을 때는 깻잎에 노란 반점이 번지기 시작했을 때였습니다.
마음고생이 심했습니다.
가끔 텔레비젼에서 무 갈아엎고 배추 갈아엎는 것을 보았지만 자기가 키운 농작물을 버리는 것은 정말 속 아픈 것입니다.
농작물 갈아엎는 사람들 심정을 알겠더라구요.
저도 갈아엎었지요.
올해 예상수입의 80% 이상이 날아가는 것이기도 했구요.
깻잎 갈아엎고는 아내와 많은 얘기를 했습니다.
속상해하는 제 모습에 아내도 마음이 무척 아팠나 봅니다.
농사를 짓는 다는 것,
유기농을 한다는 것,
시골에 산다는 것이 우리에게 무엇인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그때 저는 [조화로운 삶]이나 [자연농법] 등의 책자를 읽고 있었지요.
도시적 삶과 다른 삶을 살려고 왔는지, 농사로 성공해서 돈벌려고 왔는지.
농사를 짓고 싶은 것인지, 유기농과 환경에 대한 확고한 신념으로 농사를 선택한 것인지.
올 연봉이 1백만원.
저는 운 좋게도 아내의 고정수입이 있고 또한 저도 월 40 만원가량의 농사외 수입이 있지요.
내년에는 농외수입 부분을 없애려고 합니다.
그리고 연봉은 300만원 잡았습니다.
농사짓는 사람들의 연봉 계산법은 좀 달라야 할 것도 있습니다.
저는 올해 현금 1백만원 외에 다른 수입이 있습니다.
집에서 안전한 먹거리를 생산해서 먹으며 아낀 돈(생협가격으로 계산하면 꽤 되지요),
시골살면서 받은 혜택(서울살면서 교외로 빠져나가느라 길에 버린 돈, 돈으로 치환될 수 없는 가족의 정서적 안정과 풍요함, 서울보다 훨씬 싼 교육비 등).
이런 것들은 당장 현금화 되지는 않지만 삶의 질이란 면에서 돈으로 쉽게 환산 할 수는 없지요.
저는 직업으로서 농사를 선택한 것만이 아니라 시골의 삶을 택했습니다.
아내와 저는 '적게 벌고 적게 쓰기'가 목표입니다.
아직 도시적 삶을 다 떨치지 못해 핸드폰도 사용하고 위성안테나로 텔레비젼도 봅니다.
채식주의자가 아니라 아직 고기도 사 먹구요.
아이도 인스턴트식품과 과자에 대한 미련을 다 못 버려 조금씩 사주고 있습니다.
줄여갈 부분들이 생활 곳곳에 있습니다.
그래도 절대적 수입의 증가는 필요하지요.
팔당에서처럼 상업농으로 나서면 유기농하면서도 짭짤한 수입을 올릴 수도 있지요.
물론 농부가 아닌 농업노동자로 전쟁같이 살아야 하지만...
홍천에서 오랫동안 유기농하신 분이 있는 데 연 수입이 수천만원 된다고 하지요.
거의 기계처럼 손 빠르고 새벽부터 밤중까지 일하신다고 하지요.
우리 이웃마을엔 친환경농업은 아니지만 감자와 배추 팔아 수천만원씩 수입을 올리는 사람도 있지요.
반별로 할머니 할아버지들 모여서
감자 파종한번 하고(봄에 한 20일 정도 모여서 일하지요)
여름에 또 모여서 돌아가며 감자 캐고(비닐 벗기면 트렉터가 지나가며 감자 다 캐놓으면 상자에 담아 트럭에 실으면 끝).
다시 모여서 감자 캔 자리에 배추 함께 심고 조금 키워서 밭떼기로 넘기고.
평당 만원 벌이를 하는 것이지요.
사람들이 모여서 떼거지로 일한다고 벌떼농사라고도 하는데 곁에서 보면 참 쉽게 쉽게 일하고 돈버는 것처럼 보입니다.
전쟁처럼 일하고 많이 버는 사람,
손쉽게 많이 버는 사람 등 참 다양합니다.
아주 경험 많은 경우가 아니라면 혼자서 일해서 많은 수입을 올리는 것은 불가능할 듯합니다.
농사에도 기술과 전문성 그리고 규모의 경제가 도입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여유시간을 많이 가지고 싶고 생산성을 높이려면
작물을 단작화시키고 공동노동을 조직하는 것만이 노동력을 아끼고 수입을 증대시키는 길인 듯합니다.
단작화의 피해만 막을 수 있다면... 괜히 아는 척도 해보고 그럽니다.
2002. 10. 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