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책을 읽다보면 ‘부(불)대시’ 혹은 ‘부대시참(참부대시)’이라는 말이 종종 등장할 때가 있습니다. 국립국어원의 ‘국립국어대사전’에서 찾아보니 다음과 같이 정의되어 있더군요.
부대시(不待時)
「명사」『역사』
시기를 가리지 않고 사형을 집행하던 일. 봄과 여름철에는 사형을 집행하지 않고 가을철 추분까지 기다리는 것이 원칙이나 십악대죄와 같은 중죄를 범한 죄인은 이에 구애받지 않고 사형을 집행하였다.
위의 설명처럼 적어도 조선시대에는 사형을 아무 때나 그러니까 ‘시도 때도 없이’ 집행하지는 않았습니다. 당연히 조선은 법으로, 사형은 ‘보통 만물이 쉬는 추분에서 춘분 사이에 집행’하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 기간에 이루어지는 사형을 ‘때를 기다린다’는 의미에서 ‘대시(待時)’라고 하는데 ‘정치는 천지만물의 운행과 궤를 같이 해야 한다’라는 당시의 일반적인 관념의 여러 발현 중 하나입니다. 지금 역사의아침에서 출간 준비 중인 김종성 선생님의 <<왕의 여자>>(가제)에 보면 다음과 같은 글이 보입니다.
“이렇게 한 것은 정치를 천지만물의 운행과 일치시켜야 한다는 관념에서 비롯된 것이다. 『예기』 「월령」 편에는 만물이 생장하는 음력 1월, 그러니까 초봄에는 왕이 살생을 조심하고 전쟁도 벌이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이를 어기고 함부로 살생을 하게 되면 만물의 운행이 방해를 받아 나라에 불행한 일들이 생긴다고 믿은 것이다. 제왕은 단순히 인간만 통치하는 게 아니라 지구상에 있는 만물을 다스려야 한다는 관념이 동아시아를 지배했던 것이다.”
그런데 ‘생길지도 모를 불행한 일’을 무릅쓰며 ‘때를 기다리지 않고’ ‘부대시’를 행할 정도였다면 그 죄의 크기를 짐작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닙니다. 국어대사전은 “십악대죄와 같은 중죄를 범한 죄인은 이에 구애받지 않고 사형을 집행하였다”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부대시를 좀더 정확히 알기 위해서는 다시 한 번 국어대사전의 도움을 받아야 할 것 같습니다. (국어대사전 최고!)
십악대죄(十惡大罪)
「명사」『역사』
조선시대에, 대명률(大明律)에 정한 열 가지 큰 죄. 모반죄(謀反罪), 모대역죄(謀大逆罪), 모반죄(謀叛罪), 악역죄(惡逆罪), 부도죄(不道罪), 대불경죄(大不敬罪), 불효죄(不孝罪), 불목죄(不睦罪), 불의죄(不義罪), 내란죄(內亂罪)를 이른다. ≒십악(十惡)
검색해보니 이익의 <<성호사설>>에 ‘십악대죄’를 이야기해 놓은 것이 보입니다. 이참에 함께 옮겨보겠습니다. (IT 강국 대한민국에 태어난 것을 감사하며...) ^^;;
십악대죄는 모반(謀反)ㆍ모대역(謀大逆)ㆍ모반(謀叛)ㆍ악역(惡逆)ㆍ부도(不道)ㆍ대불경(大不敬)ㆍ불효ㆍ불목(不睦)ㆍ불의(不義)ㆍ내란(內亂)이다.
종묘와 사직을 위태롭게 하는 것은 반(反)이요, 나라를 배반하고 역적에게 좇는 것은 반(叛)이니, 반(反)은 곧 나라 안에서 흉모를 꾸미는 것이다. 대역은 종묘(宗廟)ㆍ산릉(山陵)ㆍ궁궐(宮闕)을 침해한 것이요, 악역은 조부모ㆍ부모ㆍ백부모ㆍ숙부모ㆍ고모ㆍ형제 자매ㆍ외조부모ㆍ남편의 조부모와 부모에게 거스리는 것이요, 부도는 일가 중의 죽을 죄 아닌 자 3인을 죽인 것과, 사람의 사지를 찢어 죽인 것과, 고독(蠱毒) 및 염매(魘魅)의 방법으로 사람을 죽인 것이요, 대불경은 큰 제사 및 신전(神殿)에 쓰는 기물 또는 임금이 쓰는 난여(鑾輿) 및 의복ㆍ기물 등을 도둑질한 것과, 어보(御寶)를 위조한 것과, 어약(御藥)을 조제할 때에 잘못 본방에 어긋나게 한 것과, 봉제(封題)를 그릇 쓴 것과, 어선(御膳)을 만들 때에 금기하는 물건을 범한 것과, 임금이 사용하는 배 및 항상 기거하는 궁전을 견고하지 않게 만든 것과 임금을 지적하여 그 정의가 박절하다 하는 것과, 주문(呪文)또는 부적 등속을 사용하여 임금의 총애를 구하는 것과, 임금 또는 임금이 보낸 사신에게 신하된 예절을 차리지 않는 것 등인데 그 나머지는 다 기록하지 못한다.
이는 죄악 가운데 가장 큰 것으로서 백성들끼리 서로 죽인 것과 도둑질한 것은 들지 않았으니, 이는 더욱 용서할 수 없는 죄악임을 밝힌 것이다. 그 나머지는 오형(五刑)에 속한 3천 가지에 스스로 해당되는 법률이 있다.
“종묘와 사직을 위태롭게 하는 것” 혹은 ‘그런 자’들의 단죄에 주저함이 없이, ‘부대시’를 행한 것은 어찌 보면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실제로 실록에 보면 ‘인간의 도리’를 어긋난 행위, 그러니까 성호 이익의 표현을 빌리자면 ‘악역’, ‘부도’와 함께 ‘대불경’ 등으로 부대시를 당한 경우도 제법 많이 보입니다. 물론 모두가 ‘십악대죄’에 해당하는 것들이지요. 그러고 보니 궁녀가 왕이 아닌 다른 남자와 통교했을 경우 ‘참(斬)부대시’를 당했다고 하는데, 이 경우 ‘대역’에 해당하는지 ‘대불경’에 해당하는지 궁금해집니다.
참고로, 조선 형법의 모태가 된 <<대명률(大明律)>>에 교형(絞刑)과 참형(斬刑)에 대한 설명이 있다고 합니다. (물론 직접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 앞의 이익의 인용문에서 나오는 ‘오형’은 죄인을 다루던 다섯 가지 형벌로 태형(笞刑), 장형(杖刑), 도형(徒刑), 유형(流刑), 사형(死刑)을 말하는데 교형과 참형은 오형 중 가장 중한 형벌인 사형의 방법입니다. 짐작하셨겠지만 교형은 목을 매달아 죽이는 것, 참형은 목을 베어 머리와 몸을 분리하는 것입니다. 특히 참형은 '가장 큰 죄에 대한 형벌'이라 했으니, ‘참부대시’를 당한 자라면 정말 대단한 죄를 범한 인물이었나 봅니다.
* 말이 생각보다 길어졌습니다. ^^*
첫댓글 종종 사극에 악역과 부도에 대한 용어등이 나오는데 그 모든 지칭이 십악대죄의 죄에 행하는 죄였군요
알찬 정보 감사합니다.
법이 또는 법관이 실수할수도 있다는 생각은
없었던 모양이네요.
사형삼심제와같은 제도가 없었던 관계로 그 보완책으로
대시가 있었던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